수목탐구이야기

시(詩)/漢詩(한시) 70

使東川(사동천) · 江花落(강화락) - 원진(元稹)

당대 중기에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书门下平章事)라는 직책을 지낸 대신이자 유명한 시인인 원진(元稹, 779~831)이 30세이던 809년에 쓴 使東川(사동천) 江花落(강화락)이란 시를 소개한다. 원진은 동시대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와는 함께 한림학사로 일하던 막역지우(莫逆之友)이자 그와 시가(詩歌) 이론과 관점이 유사하여 언어가 평이하고 통속적인 장편 배율(排律)을 쓰는 새로운 신악부시가(新乐府诗歌) 운동을 주도한 동지로서 함께 차운상수(次韵相酬) 형식을 창시하였다. 그래서 세상에서 그들을 元白(원백)이라고 불렀다. 이 시는 원화(元和) 4년 원진(元稹)이 감찰어사(監察御史)로 검남동천(劍南東川)에 출사하러 가던 도중 가릉강변(嘉陵江辺)에서 본 광경을 즉석에서 노래한 것이다. 당시 늦봄 음력 3월 새..

大林寺桃花(대림사도화) -白居易(백거이)

평소 식물에 관심이 많은 당나라 대시인 백낙천(白樂天, 772~846)의 대림사도화(大林寺桃花)이다. 대림사는 강서성 구강시 관광명소인 여산(庐山)에 있는 사찰이다. 평지에 있는 세속에서는 이미 봄이 가고 없는데 깊은 산 중에 있는 산사에 와 보니 복사꽃이 한창 만개하고 있어 놀라면서 봄은 간 것이 아니고 몰래 여기에 들어 와 숨어있었구나 하면서 감탄하여 쓴 시이다. 덧없이 가는 것이 봄인지 인생인지는 모르지만 매우 공감이 가는 시이다.   大林寺桃花(대림사도화) 白居易(백거이) 人間四月芳菲盡(인간사월방비진)山寺桃花始盛開(산사도화시성개)長恨春歸無覓處(장한춘귀무멱처)不知轉入此中來(부지전입차중래)  인간세상 사월이면 꽃 다 지는데산사의 복사꽃은 이제 한창이네떠난 봄 찾을 길 없어 한탄했는데어느새 여기에 와 ..

渔歌子(어가자) 西塞山前白鹭飞(서새산전백로비) - 张志和(장지화)

도화를 읊은 노래라면 당나라 시인 장지화(张志和, 732~774)의 어가자(渔歌子) 서새산전백로비(西塞山前白鹭飞)를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시(詩)가 아니고 사(詞) 즉 노래 가사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가자(渔歌子)를 사패명(词牌名)이라고 한다. 복사꽃 피는 봄날 낚시배를 띄우고 한가롭게 낚시하는 중에 가랑비가 온들 대수이겠나 싶다. 서새산(西塞山)은 절강성(浙江省) 호주시(湖州市)에 있는 산이며 도화유수(桃花流水)는 복사꽃이 질 때 쏘가리가 살찌므로 그 시기를 말한다. 시인의 말년인 772~773년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노래가 어부사(渔父词)라고도 불리기에 조선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가 불현듯 생각난다.  渔歌子(어가자) 西塞山前白鹭飞(서새산전백로비) - 张志和(장지화) 西塞山前白鹭飞(서..

山中问答(산중문답) - 李白(이백), 도화유수(桃花流水)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 701~762)의 산중문답이라는 시인데 여기서 도화유수(桃花流水)라는 말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복사꽃 흐르는 냇물을 묘사한 별유천지비인간(别有天地非人间)이라는 문구도 못지않게 유명하다. 중국에서 도화유수(桃花流水)는 춘일미경(春日美景) 즉 아름다운 봄 풍경을 형용하거나 남녀애정(男女爱情)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 余(여)는 시인 이백 자신을 말하고 碧山(벽산)은 이태백이 은거하면서 독서를 하였던 도화암(桃花岩)이 있는 호북성 안륙시에 있는 백도산(白兆山)을 말하며 何意(하의)는 何事(하사)라고도 쓰며 窅(요)는 杳(묘)로도 쓴다. 도화(桃花)와 별유천지(别有天地)는 다분히 진나라 도연명(陶渊明)의 도화원기(桃花源记)의 이상세계를 비유한다. 내용으로 봐서 이백이 노년..

桃花源记(도화원기) - 陶渊明(도연명), 무릉도원(武陵桃源)

중국에서 도화 즉 복사꽃은 봄(春天)과 애정(爱情) 미인(美颜) 그리고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전설적 인물들인 서왕모(西王母)나 손오공(孫悟空) 또는 동방삭(東方朔) 등과 얽힌 열매인 복숭아나 가지의 주술적인 기능 따위와는 별개로 복사꽃 그 자체 만으로도 중국의 유명 시인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유사이래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노래하였는데 먼저 주(周, 1046~256 BC)때 쓰여진 詩經(시경)에서부터 桃夭(도요)라는 복숭아와 관련된 3장(章)으로 이루어진 시가 등장한다.  詩經(시경) - 桃夭(도요) 桃之夭夭(도지요요) 灼灼其華(작작기화)之子于歸(지자우귀) 宜其室家(의기실가) 어린 복숭아 나무에 예쁜 꽃 피었구나 이 아가씨 결혼하면 그 집안 복되리라. ..

살구꽃의 암(暗) - 游园不值(유원불치) - 叶绍翁(엽소옹), 杏花(행화) - 薛能(설능)

그런데 중국에서 살구꽃이 항상 좋은 의미로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살구나무 즉 행(杏)을 풍류수(風流樹)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풍류란 멋스럽고 풍치가 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색정적(色情的)이라는 뜻으로 결국 에로틱(erotic) 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20세기 초반에 에로틱하다는 뜻으로도 쓰기 시작하여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도색(桃色)이라는 개념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행색(杏色)을 그런 색정적인 의미로 쓰지는 않고 단지 살구나무 즉 행수(杏樹)를 풍류수(风流树)라고 하며 홍행출장(红杏出墙) 즉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는 붉은 살구꽃을 유부녀가 외도를 하는 것이라는 의미 정도로 쓴다. 이는 하루 아침에 누가 말한 것이 아니고 과거 당송시대부터..

살구꽃의 명(明) – 행단(杏壇) 행림(杏林) 행림춘연(杏林春燕) 급제화(及第花)

왕벚나무가 없던 과거 중국에서 살구나무는 그 개화시기가 매화와 복사꽃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특히 고향의 조상들 묘소를 찾게 되는 명절인 청명절에 피는 꽃이므로 고향의 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된다. 게다가 중국에는 살구나무와 얽힌 좋은 의미의 용어들이 많다. 앞에서 본 두목(杜牧)의 청명(淸明)이라는 시 덕분에 중국에서 주막을 뜻하는 행화촌(杏花村)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공자가 살구나무 단에서 강의를 하고 거문고를 연주하였다고 강단(講壇)을 뜻하는 행단(杏壇)이라는 용어가 있으며 청명절 즈음에 내리는 봄비를 행화우(杏花雨)라고 하며 의술이 고명한 의원을 행림(杏林)이라고 한다. 행림은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 오나라에 살던 동봉(董奉, 220~280)이라는 의원이 평소 진료비를 살구나무로 받아서 주변에 심어..

絶句(절구) – 志南(지남)

청명 한식절이 워낙 유명한 명절인 데다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서 움츠렸던 겨울을 털고 야외로 봄나들이를 많이 가게 된다. 그래서 중국에는 그 청명절을 대상으로 한 시(詩)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 남송시절 지남(志南)이라는 승려가 쓴 칠언절구가 가장 유명하여 지금도 중국인들은 청명 한식절에 많이 인용하는 것 같다. 여기서 봉(篷)은 돛은 없고 지붕이 있는 배를 말하며 沾衣는 霑衣(점의)의 간체자(简体字)로 가랑비에 옷 젖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이 沾은 添(첨)의 간체자이기도 하므로 국내서 첨의로 잘못 읽는 경우도 더러 보인다. 양류풍(楊柳風)은 24번 화신풍 중에서 청명 제3후(淸明第三候)에 해당하는 화신풍(花信風)이다. 그쯤에서 버들의 새잎이 아름답게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명절을 노래한 ..

清明(청명) –杜牧(두목), 행화촌(杏花村)

중국에는 수많은 문인들의 살구꽃을 대상으로 노래한 시가 있지만 주막이나 주촌을 뜻하는 그 유명한 행화촌(杏花村)이라는 말이 탄생한 만당(晩唐) 대시인 두목(杜牧, 803~852)이 비내리는 청명(淸明)절에 살구꽃을 감상한 청명(淸明)이라는 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두목은 성당(盛唐)시대의 대시인이자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 712~770)에 견주어 소두(小杜)라고 불리었으며 같은 시대의 유명한 시인인 이상은(李商隱, 812~858)과 더불어 소이두(小李杜)라고도 불렸다. 이는 시선(詩仙)으로 불렸던 이백(李白, 701~762)과 두보(杜甫, 712~770)를 대이두(大李杜)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하여 부르는 세칭(世稱)이다. 참고로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절은 절기 중 유일하게 중국에서 크..

杏花诗(행화시)와 飮水思源(음수사원) – 庾信(유신)

살구나무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재배 역사가 길고 문자가 발달한 덕분에 살구꽃에 대하여 읊은 시는 수도 없이 많다. 우선 당나라 이전의 시인으로는 남북조시대의 문학을 집대성하였다고 알려진 북주(北周)의 대문호 유신(庾信, 513~581)이 쓴 행화시(杏花诗)를 들 수 있겠다. 유신은 남양 신야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수재라는 소리를 들은 천재로서 남조 양나라에서 북조의 서위에 사신으로 간 사이에 나라가 망하여 돌아갈 곳이 없자 서위와 북주에 계속 머물면서 높은 벼슬을 하고 문단의 종사가 되고 황제의 예우도 받았지만 남쪽 고국을 늘 그리워하면서 사람은 그 본분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그가 징조곡(徵调曲)에서 언급한 아래 문구는 그 유명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