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과 벗나무속/자두아속살구조

1789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에 대한 유감(有感)

낙은재 2023. 3. 13. 19:07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 가면서도 항상 거문고의 가락을 간직하고,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한 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그 향기를 팔아 안락(安樂)을 추구하지 않는다.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달은 천 번을 이지러지더라도 그 본래의 성질이 결코 변하지 않으며,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또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다.

 

매년 세한삼우(歲寒三友)에다가 사군자(四君子)로 칭송되는 매화가 피는 계절이 오면 너도나도 매화예찬을 늘어 놓게 되는데 이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시가 바로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이 지었다는 바로 위의 칠언절구 한시(漢詩)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시에 반드시 덧붙이기를 매화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 퇴계 이황(李滉, 1502~1571)선생이 이 구절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앞 1783번 게시글에서 매화관련 시를 다루면서도 이 시를 포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필자로서는 두 번째 구절 즉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퇴계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퇴계는 평생 100여 편의 매화관련 시를 썼지만 정치적인 색채는 거의 없고 거의 대부분 식물로서의 매화 그 자체를 사랑하여 읊은 것들이었다. 그런 퇴계선생이 이런 매우 비장하고도 단호한 시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상촌 신흠도 매화관련 시를 몇 편 썼지만 이렇게 강한 정치적인 색채는 없었다. 

 

그래서 파악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상촌 신흠선생은 퇴계의 제자인 동인 류성룡(柳成龍, 1542~1607)과 동시대 인물인 서인 정철(鄭澈, 1536~1594)의 보좌관을 역임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닦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찌 퇴계가 한참 후세 사람인 상촌의 시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따져보니 신흠선생은 퇴계선생이 사망하기 조금 전에 출생하여 퇴계선생이 사망할 당시 나이가 겨우 5세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퇴계선생이 이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는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므로 이제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주요 일간지를 비롯하여 내로하라는 학자들이 너도나도 이 한시의 출처는 상촌집(象村集)의 야언(野言)이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설마 이것마저도 엉터리일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이 또한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야언(野言)은 물론 상촌집 어디에도 이런 시는 없다. 그럼 이게 도대체 뭐라는 말인가? 우리나라 방방곡곡 명문세가(名門世家) 고택이나 서원 그리고 사원 등에 가면 주련(柱聯)으로 이 시의 구절 전부 또는 일부가 많이 걸려있었다는데 말이다. 특히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두 구절은 백범 김구선생이 말년에 휘호로 남겨서 더욱 유명해 졌다고 한다.

 

백범선생이 말년에 남긴 휘호
안동하회마을의 주련(柱聯)

 

이 시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다른 구절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두 번째 구절 즉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은 뭔가는 선뜻 납득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즉 일반적으로 “매화는 한 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그 향기를 팔아 안락(安樂)을 추구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부분 말이다. 왜냐하면 오동나무는 가만히 그저 세월만 보내 고목이 되어 가는 것만으로도 거문고 등 악기의 좋은 목재가 된다고 치켜세우면서 매화는 추운 겨울의 눈과 얼음을 뚫고 꽃을 피운 것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여 절개가 굳은 고결지사(高潔志士)라는 칭송을 받는데 이걸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여기에다가 어찌 향기를 팔고 안팔고를 또 따진다는 말인가? 도대체 불매향(不賣香)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엉뚱하게 매화는 추운 겨울에 피지만 향기는 없다는 말인지 아니면 향기를 머금고 있지만 스스로 시기나 상대방을 선택하여 발산(發散)한다는 것인지 말이다. 참고로 향기가 없으면 그건 매화가 아니고 살구다.  일본에서 과수용으로 개발된 살구와 자연교잡종인 풍후매(豊後梅) 즉 중국명 행매(杏梅)는 향기가 거의 없기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결코 대중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향기가 없는 매화는 없었다. 그럼 후자인 아무나에게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는 말로 풀이 된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매화에게 매우 높은 수준의 절개와 지조를 요구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 어렵게 꽃을 피운 매화에게 다시금 상대방을 가려서 향기를 발산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참고로 불매향(不賣香) 또는 그와 유사한 문구도 중국과 일본에는 없다. 중국에서 매화는 눈과 서리를 무릅쓰고(傲霜斗雪) 추위속에 홀로 피어 나는(凌寒独开) 것만으로도 청아하고 준수(清雅俊逸)하므로 백화 중 으뜸(百花之魁)으로 치는 것이므로 거기에다가 더 이상 바라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매우 냉정하며 가혹하기도 한 이 시구는 누군가 독창적으로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작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의 첫 구절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은인자중(隱忍自重)을 말하고 두 번째 구절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을 세 번째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과 네 번째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구절은 백절불굴(百折不屈)의 항거정신(抗拒精神)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조에 손꼽히는 대단한 문장가인 상촌 신흠선생은 잠시 광해군 집권시에 유배간 적은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보낸 사람이 아니고 일생 비교적 순탄한 공직생활을 하여 영의정까지 오른 사람이다. 물론 그 당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몸소 겪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일편단심 충절을 절박하게 요구하거나 천번 백번 꺾일지라도 투지를 불태우라고 자기자신이나 타인에게 바라거나 격려할 정도의 시대환경에 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엉뚱한 가설을 제기해 본다. 우선 이 시는 조선시대가 아닌 일제강점기에 어느 애국지사가 지어서 독립운동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널리 퍼트린 것으로 보인다. 첫 구는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겨레의 저력을 일깨움과 동시에 아직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는 명문세가들을 향한 외침이고 두 번째는 초기에는 애국지사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변절하는 자들을 향한 경계와 경고성에 가깝고 세 번째와 네 번째는 힘없이 당하고 있는 일반 백성들에 대한 위로이고 이미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독립지사들을 향하여 격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임시정부 주석 김구선생이 세 째와 네 째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아 휘호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당연히 작자를 숨겨야만 했을 것이고 아니 더 적극적으로 조선시대 상촌의 시라고 위장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좀 더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시기적으로 맞지도 않는 퇴계 이황까지 동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상촌선생의 작품이 아니며 퇴계 선생의 좌우명 운운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 팩트인 작가 미상 출처 미상인데 일제강점기에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 차원에서 만들어 적극적으로 유포하였을 것이라는 것이 낙은재의 생뚱맞은 추정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