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과 벗나무속/자두아속살구조

1795 행매(杏梅) = 풍후매(豊後梅)

낙은재 2023. 3. 20. 12:14

행매 즉 풍후매는 내한성이 강하므로 일본 아오모리 같은 추운지역에서 과수용매실로 인기가 높다.

 

일본의 매화는 원산지 중국에서 기원전에 한반도를 경유하여 도입되었다는 설이 있다. 최소한 일본 나라시대(710~794)에 약용으로 당나라서 도입한 기록이 있으며 그때부터 정원수로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그후 일본 전국시대(1467~1615)에 와서 병사용 휴대식량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일종의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梅干し)가 널리 퍼져 에도시대(1603~1868)에 와서는 일본 가정의 식탁에도 오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과수용 매실나무의 재배가 크게 늘어났으며 따라서 다양한 실매 품종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한편 중국에서 도입하여 꽃을 감상하던 정원수 꽃매화도 에도시대에 와서 그 품종이 크게 늘어나 원산지 중국을 능가하는 무려 300여 종의 다양한 매화 품종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중국에는 없던 처진매화도 있었고 운용매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일본 특유의 매화품종이 있는데 그게 바로 풍후매(豊後梅)라고 불리는 매화와 살구의 자연교잡종이다. 현재 규슈의 오이타현(大分県)에 위치하였던 옛날 풍후국(豊後国)에서 최소한 1600년대 이전에 처음 발견되었기에 일본에서는 풍후매라고 부르는데 중국에서는 살구(杏)와 교잡종이라고 행매(杏梅)라고 부르며 국내 미등록종이지만 우리나라서도 일반인들이 대체로 행매라고 부른다. 이 품종은 병충해에는 약하고 과육에 섬유질이 많아서 거칠지만 내한성이 매우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 추운지방에서는 매실 수확용 과매(果梅)로 인기가 높다. 이 품종과 매화 품종들간 교잡으로 많은 화매(花梅) 품종들도 탄생하였는데 이들을 모두 풍후계매 또는 행매류라고 분류한다. 향이 없는 살구와의 교잡종이므로 꽃향기는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며 행매는 자가불화합성인 경우가 많으므로 단독으로 심을 경우 결실이 불량하다. 그래서 매실 농장에서는 별도의 수분수(受粉樹)가 필요하다.

 

이 행매 즉 풍후매에 대하여 일본의 저명한 식물학자인 마키노 토미타로(牧野 富太郎, 1862~1957)가 1908년 매실나무의 변종으로 분류하여 Prunus mume var. bungo Makino라는 학명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또한 최근의 대통합의 바람에 의하여 매실나무 원종으로 통합되어 현재는 하나의 원예품종으로 대부분 분류한다. 하지만 아직도 합법적인 변종으로 인정하는 학자도 있고 살구나무와 교잡종이라고 교잡종 형식의 Prunus x Bungo Group이라는 학명으로 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여기서 변종명 bungo는 풍후(豊後)의 일본식 발음 분고(ぶんご)에서 온 것이다. 풍후  자체가 하나의 품종명은 아니므로 일본에서는 주로 풍후계(豊後系)라고 하지만 풍후매(豊後梅)라고 할 경우에는 분고우메(ぶんごうめ)라고 발음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직립형 풍후계 품종은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풍후계(豊後系)를 다시 가지가 왕성하고 다갈색이며 잎이 크고 표면에 털이 없어 살구의 특성이 강한 풍후성(豊後性)과 반대로 가지가 약하고 회갈색이며 잎이 작고 털이 없는 행성(杏性)으로 양분한다. 최근에 창덕궁 만첩홍매화가 아름다워 그 품종을 구입하려고 화원에 가서 만첩홍매라고 구입해다 심으면 나중에 이상하게 하나의 가지에 꽃이 매우 촘촘하게 많은 꽃이 피는 품종들을 만나기 쉽다. 색상은 만첩홍매화와 비슷한데 꽃 느낌은 마치 복사나무 원예품종인 남경도로 알려진 수성도와 같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서 약간 징그럽게 느껴져 실망하게 된다. 바로 이런 품종들이 일본에서 도입된 풍후매 즉 행매인 것이다. 우리나라 식물업계는 우리 자생종이거나 오랜 기간 이 땅에서 검증된 아름다운 품종들을 번식하여 공급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손쉽게 외국에서 수입해다가 팔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앞 1792번 게시글에서 본 후지보탄 즉 등모란 품종은 수지매라서 그런지 그 혈통이 풍후계 풍후성으로 분류되지만 꽃이 그렇게 심하게 다닥다닥 피는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모든 행매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 여기서 행매의 몇몇 품종들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풍후계(豊後系) 풍후성(豊後性) 품종

양귀비(楊貴妃, ようきひ) 
양귀비(楊貴妃, ようきひ)
양귀비(楊貴妃, ようきひ)
무사시노(武蔵野, むさしの)
무사시노(武蔵野, むさしの)
팔중양우(八重揚羽, やえあげは) 양우는 (호랑)나비를 뜻함
팔중양우(八重揚羽, やえあげは)

 

풍후계(豊後系) 행성(杏性) 품종   

히노하카마(ひのはかま) = 비노고(緋の袴) 비단치마바지라는 뜻
강남소무(江南所無, こうなんしょむ)

 

이렇게 이와 같이 행매를 탐구하고 나니 매화와 살구의 교잡종인 행매(杏梅) 즉 풍후매(豊後梅)가 마치 일본 규슈지방에서 17세기에 최초로 탄생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 우리나라 조선초기 문신인 강희안(姜希顔, 1417~1465)선생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이미 행매(杏梅)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강희안선생은 중국의 남송시대 정치가이자 문학자인 범성대(范成大, 1126~1193)가 1186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세계 최초의 매화재배서인 범촌매보(范村梅谱)를 인용하였다. 거기에는 12개 품종의 매화를 수집하여 번식하고 재배하는 법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중에 살구와 교잡종인 단행형(单杏型) 즉 행매(杏梅)가 있었던 것이다. 범성대는 행매는 꽃과 잎 그리고 가지가 매화와 살구의 중간이라며 향기가 없거나 약하며 꽃받침은 크고 꽃색상은 홍매에 비하여 연하고 열매는 편평하고 알록달록하며 맛은 홍매에 미치지 못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행매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으므로 그 당시 살구와의 교잡종이 분명 중국에 존재하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 후 명나라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농포전서(农圃全书)라는 책에 행매를 양매(洋梅) 또는 학정매(鹤顶)라고도 부른다고 하였고 청나라 시절 진호자(陈昊子, 1612~?)가 1688년 저술한 원예서인 화경(花镜)에는 행매가 연한 붉은색 꽃이 피고 열매는 때론 편평하고 반점이 있으며 그 맛은 살구와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  학정(鹤顶)매란 학의 머리끝과 같은 붉은색 꽃이 피기에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그런 행매 품종이 오늘날 중국에서는 어디로 사라지고 죄다 일본에서 최근에 도입된 풍후계 품종들만 존재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처진매화와 마찬가지로 이 품종 또한 중국에서는 실전되어 결국 일본이 행매의 본고장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과거 중국에서 직접 또는 우리나라를 통하여 일본 규슈지방으로 건너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거꾸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오래전에 건너갔을 수도 있다. 중국 행매의 별명 양매(洋梅)라는 것이 바다 건너 온 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중국에서도 행매는 내한성이 강하므로 현재 동북지방에서 많이 재배하며 2018년에는 북경임업대학에서 일본 풍후매를 기반으로 향기가 나는 향서백매(香瑞白梅)라는 행매류 품종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매화를 그토록 사랑한다면서 정작 중국은 그 옛날 문헌에 언급된 조수매와 수지매가 실전된 것도 안타까운데 여기 또 하나 행매마저도 중국내에서 제대로 그 존재를 찾지못하고 일본에서 도입한 종을 기반으로 품종개량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가 일본에는 운용매라는 품종도 있기에 매화의 품종에 관한한 그 종류로 보나 수량으로 보나 중국이 더 이상 매화의 본고장이라는 주장이 무색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