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漢詩(한시)

牡丹芳(모란방) - 白居易(백거이), 花开花落二十日(화개화락이십일)

낙은재 2025. 4. 24. 22:08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모란꽃을 감상하는 모습

 
 
 
모란을 대상으로 한 시를 거론하면서 花开花落二十日(화개화락이십일)이라고 노래한 당나라 대시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모란방(牡丹芳)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란방(牡丹芳)은 거의 50구절로 구성된 매우 긴 악부시(乐府诗)인데 그 중에서 가운데 일부분인 8구절만 소개한다. 여기서 위공댁(卫公宅)은 장안에 있던 당나라 개국 공신인 위국공(卫国公) 이정(李靖, 571~649)의 저택인 것으로 당초 알려졌기에 이 시는 809~813년에 장안에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최근에는 관중(管仲) 상앙(商鞅) 제갈량(诸葛亮) 왕안석(王安石) 장거정(张居正)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정치가 6명 중 한명으로 꼽히는 또 다른 당나라 위국공(卫国公)인 만고양상(万古良相) 이덕유(李德裕, 787~850)의 낙양(洛阳)에 있던 평천산장(平泉山庄)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대세이다. 따라서 이덕유가 위국공에 봉해진 연도가 845년이므로 최소한 이 문구는 845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시는 워낙 길기 때문에 모든 구절을 동시에 쓴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花开花落二十日(화개화락이십일)은 꽃이 필 때부터 질 때까지의 개화 기간을 말하는데 모란의 경우는 겨우 3~4일에 불과하여 20일은 가당치 않다. 다만 모란의 꽃망울이 맺히는 시기부터 꽃잎이 져서 떨어질 때까지의 기간으로 계산해도 글쎄 하나의 개별 꽃을 기준으로 한다면 너무 길게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모란 한 그루 아니 한 정원의 모란을 기준으로 할 때는 맨 처음 나무의 꽃망울로부터 마지막 나무의 꽃잎이 질 때까지를 계산한다면 충분히 20일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백거이는 모란의 꽃 개화기간이 길다고 장점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모란이 필 때쯤 근 20일 동안 온 나라가 모란 축제에만 빠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황제를 비롯하여 왕족 고관대작 사대부들까지 온통 모란에만 열광하고 농사일을 내팽개쳐 긴 행정 공백 기간이 초래되는 것이 못마땅하여 읊은 노래이다. 그래서 一城之人皆若狂(일성지인개약광)은 “온 성안 사람들이 모두 열광하는구나.”라고 젊잖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결코 좋은 의미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할 일은 제쳐두고 온통 모란 꽃놀이에만 미쳐있구나.”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대목이다. 백거이 스스로 이 노래 제목 아래 “美天子忧农也(미천자우농야).” 즉 “훌륭한 천자는 농사를 걱정한다.’라고 부기하고 있다.

 

그리고 一城之人皆若狂(일성지인개약광)이라는 구절은 동시대의 시인인  유우석(刘禹锡)이 그 유명한 시 상모란(赏牡丹)에서 먼저 표현한 문구인  花开时节动京城(화개시절동경성)를 닮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과거에는 백거이의 모란방이 먼저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최소한 20여 년 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우석이 모란꽃이 피는 시기에 경성 사람들이 들썩거린다고 표현한 것은 좋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지만 백낙천은 나쁜 의미로 모두가 미쳐있다고 표현한 것이므로 다르다. 여하튼 백낙천의 花开花落二十日(화개화락이십일) 이 문구 때문에 일본에서는 아직도 모란을 별명으로  이십일초(二十日草)라고 부르고 있다. 실상과 부합하지도 않고 더구나 나쁜 의미로 사용된 문구인 줄도 모르고서 말이다. 물론 현대 일본인들은 이걸 모를 리가 없지만 과거에는 모란을 예찬하는 문구로 인식하였다는 말이다. 필자도 7년 전에 쓴 481번 게시글에서 시 전체를 보지 않고 단지 이 두 구절만 보고서 모란을 예찬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했었다. 
 

 
 
牡丹芳(모란방) - 白居易(백거이)
 
卫公宅静闭东院(위공댁정폐동원)
西明寺深开北廊(서명사심개북랑)。
戏蝶双舞看人久(희접쌍무간인구)
残莺一声春日长(잔액일성춘일장)。
共愁日照芳难驻(공수일조방난주)
仍张帷幕垂阴凉(잉장유막수음량)。
花开花落二十日(화개화락이십일)
一城之人皆若狂(일성지인개약광)。
 
위공댁 동원은 조용하게 꽉 닫혀 있고
서명사 북쪽 회랑까지 깊게 열려 있네
쌍쌍이 춤추는 나비 오랫동안 보았고
때늦은 꾀꼬리 울음에 봄날이 길구나
행여나 따가운 햇볕에 꽃이 시들까 봐
긴 장막을 내리니 아직은 썰렁하구나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이십 일 동안은
온 성안 사람들이 모두 열광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