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漢詩(한시)

獻花歌(헌화가) – 견우노인(牽牛老人), 철쭉(연달래)

낙은재 2025. 5. 2. 08:43

흔히 연달래로 불리는 철쭉

 

 

 

이규보(李奎報, 1169~1241)선생의 시 다음으로 철쭉이 등장하는 기록이 바로 그 유명한 신라 향가(鄕歌) 헌화가(獻花歌)가 수록된 승려 일연(一然)이 1281년 편찬한 삼국유사이다. 하지만 서기 700년 전후인 신라 성덕왕(691~737)이 시대적 배경인 이 헌화가(獻花歌) 자체에는 구체적인 꽃 이름이 없어서 철쭉(躑躅)이라는 용어가 신라시대부터 사용된 것인지에 대하여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중국에서 머뭇거리거나 날뛰거나 깡총깡총거린다는 뜻의 척촉(躑躅)이 식물명으로 사용된 것은 기원전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부터 이지만 주로 약재명으로 사용되다가 문학 작품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 앞 게시글에서 본 백거이가 815년에 쓴 시 题元八溪居(제원팔계거)이므로 그보다 앞선 신라시대 헌화가에서 철쭉이라는 식물명으로 사용하였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나중에 구체적으로 철쭉꽃이 만발하였다고 부가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편찬할 당시 이미 40년 전에 사망한 이규보선생이 먼저 철쭉을 언급하고 있었으니까 삼국유사가 가장 먼저의 기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럼 삼국유사에 기록된 그 수로부인(水路夫人) 편을 보자.

 

水路夫人(수로부인)

聖徳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州行次海汀晝饍. 傍有石嶂如屛臨海, 髙千丈, 上有躑躅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謂左右曰, “折花献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辝不能. 傍有老翁牽牸牛而過者, 聞夫人言折其花, 亦作歌詞献之. 其翁不知何許人也.

 

신라 33대 성덕왕(691~737) 때 순정공(純貞公)이라는 사람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던 중에 수로(水路)부인이 길가 가파른 절벽에 철쭉(躑躅)이 활짝 핀 것을 보고 좌우에 말하기를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줄래요?” 종자가 “사람 발 길이 닿지 않는 곳이예요.”라고 말하며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그 소리를 듣고서 그 꽃을 꺾어서 노래까지 지어서 바쳤다. 아무도 그 노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견우노인이 수로부인에게 헌화하는 그림과 삼척 수로부인헌화공원

 

 

그리고 그 노인이 꽃과 함께 수로부인에게 바친 노래가 헌화가(獻花歌)라는 향가(鄕歌)인데 다음과 같다. 이건 한시(漢詩)가 아니라 이두로 된 향가(鄕歌)이므로 단순한 한자식 번역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여러 번역 버전이 있는데 여기서는 김완진님의 역을 소개한다.

 

獻花歌(헌화가) – 견우노인(牽牛老人) – 김완진역

 

紫布岩乎邊希(자포암호변희)

執音乎手母牛放敎遣(집음호수모우방교견)

吾肸不喩慚肸伊賜等(오혜불유참혜이사등)

花肸折叱可獻乎理音如(화혜절비가헌호리음여)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그런데 헌화가에 등장하는 꽃이 일연스님은 철쭉이라고 하였으므로 진달래속 수종임에는 틀림없을 것이지만 현대식 식물분류법에 따르면 과연 어느 수종인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경주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에 자생하는 진달래속 수종은 진달래와 산철쭉 그리고 철쭉 즉 연달래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 중에서 어느 수종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건 분명 진달래는 아니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진달래는 너무나도 흔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에 지천으로 깔린 것인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에 올라 가서 꺾어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꽃이라면 고려시대 궁궐 장생전(長生殿) 후원(後園)에 꽃이 아름답게 피어 광종(光宗)이 신하들에게 시를 지으라며 명한 백엽두견화(百葉杜鵑花) 즉 겹산철쭉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일반 산철쭉이 아니라 꽃잎이 여러장 겹으로 피는 겹산철쭉은 충분히 하나의 후보가 된다는 말이다.

 

겹산철쭉

 

 

그리고 또 하나의 유력한 후보는 바로 현재 우리 나라 정명이 철쭉인 연달래이다. 진달래보다 꽃 색상이 연한 핑크색이라고 연달래로 불리는 이 수종은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는 전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수종이다. 진달래는 잎이 나오기 전에 줄기만 쭉 길게 나와서 그 끝에 꽃이 피므로 하나하나 뜯어 보면 특별히 아름답게 느껴지지도 않고 특별히 꽃이 예쁘게 모여서 피는 가지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철쭉은 곡선으로 자라서 그 수형이 매우 아름다워 오죽하면 철쭉이 자생하지 않는 일본에서조차 ‘쯔쯔지(철쭉속)의 여왕’이라고 칭송하겠냐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철쭉을 Royal Azalea로 부르는 서양에서도 그 자체로 완벽하게 아름다워 더 이상 원예종 개발이 필요 없는 품종이라고 한다. 지금 현재도 진달래는 특이한 색상의 변종이 아니라면 정원에 심지도 않고 국내 화원에서 잘 팔지도 않는다. 이런 진달래를 순정공(純貞公)의 수로부인이 목매었다고 추정하는 것은 선인들의 수준을 너무 얕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달래는 너무 흔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결정적인 포인트는 이 철쭉 즉 연달래가 서양인들에게 처음 발견된 장소가 바로 수로부인의 행로와 비슷한 코스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제주도를 제외한 거의 전지역 외에도 중국 동북부 그리고 극동러시아에서 자생하는 철쭉은 서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러시아 해군 장교 Baron Alexander von Schlippenback(1828~?)가 1854년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채집한 표본을 대상으로 러시아 식물학자 Karl Maximovich(1827~1891)가 그 장교의 이름을 따서 1871년 학명을 Rhododendron schlippenbachii Maxim.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표본을 채집한 Alexander von Schlippenback는 러시아 해군 장군이자 외교관인 Yevfimiy Vasilyevich Putyatin (1803~1883)과 함께 그 당시 최신식 증기기관 구축함인 Vostok(보스톡)과 Pallas를 타고 와서 1853년 일본 나가사키에 정박하면서 무력시위를 하던 와중에 1854년 우리나라 동해안을 거쳐 러시아 연해주를 다녀갔는데 그때 동해안 어디에선가 철쭉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일본 나가사키에서 출발하여 선박으로 동해안을 따라서 올라가는 도중에 발견한 것이므로 그 장소가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수로부인이 발견한 강릉 인근 해안가 절벽 바로 그 장소일 수도 충분히 있다는 생각도 들어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일치하여 필연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나라 자생 관목 중에서는 정원수로 가장 높이 평가받는 철쭉 즉 연달래가 바로 수로부인이 반하여 꺾어 주길 바랬던 바로 그 아름다운 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싶다는 말이다.

 

 

동해안을 따라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다가 철쭉을 발견하였던 바로 그 Pallss호 모습

 

 

이 견우노인이 불렀다는 헌화가를 훗날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이 패러디(parody)한 싯구도 있다. 본명이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인 깃삿갓이 어느 날 산에 오르다가 두견화가 핀 것을 보고서 옆에 있던 노인에게 한 가지 꺾어 달라고 요청하였다가 금새 마음이 바뀌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삿갓은 철쭉을 두견화로 바꾸고 두견새까지 등장시켜서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꽃을 자기만 보겠다고 굳이 꺾게 만든 수로부인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두견일지증야객(杜鵑一支贈野客)

명년두견하처곡(明年杜鵑何處哭)

 

두견화 한 가지 꺾어서 길손에서 준다면  

명년 두견새는 어느 가지에 앉아 울겠는가?

 

철쭉 - 연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