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漢詩(한시)

梁园吟(양원음) - 李白(이백), 양매(楊梅) = 소귀나무

낙은재 2025. 5. 6. 17:19

 

 

 

이번에는 당나라 시선 이백(李白, 701~762)의 대표작 중 하나인 梁园吟(양원음)이라는 긴 칠언고시(七言古诗)를 소개한다. 이 시는 당현종의 조정에 불려 가서 근무하다가 환관의 모함 또는 부적응 등으로 744년 퇴임하고서 현재 하남성 개봉시와 상구시에 걸쳐 있는 과거 송나라와 양나라의 유적지가 있는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서 쓴 시라고 한다. 이 시는 대략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전반부는 서사에 중점을 두고 후반부는 서정에 중점을 둔다. 전반부는 시인이 수도 장안을 떠나 동쪽으로 송주(宋州) 양원(梁园)에 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감회를 토로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주로 황량하고 퇴락한 춘추전국시대의 송(宋)나라 또는 한나라의 양국(梁國) 양원(梁园)을 마주하며 현재와 과거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표현하고 간접적으로 당 왕조의 쇠퇴에 대한 시인의 숨겨진 우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 전체의 감정은 분방하고 파란만장하며 시의 경지는 변화무쌍하고 구상이 기묘하다는 평을 받는다.

 

원래는 하나의 긴 시이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4단락을 구분하여 해석한다. 이 긴 시를 나름대로 열심히 번역한 이유는 여기 이 시에서는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두 번째 단락 다섯 번째 구절 玉盘杨梅为君设(옥반양매위군설)에 나오는 양매(楊梅, 杨梅) 때문이다. 이 양매를 국내서 제대로 번역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학명 Morella rubra인 한중일과 필리핀 등지에서 자생하는 자홍색 열매가 달리는 상록 교목을 말한다. 중국에서 그 열매의 모양이 오리나무 즉 기목(桤木)의 열매인 수양자(水杨子)를 닮았고 맛은 매실을 닮았다고 양매(楊梅)라고 하는 것이다. 이 양매는 내한성이 약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강남 이남 지역에서만 자생하는데 그 열매의 맛이 시지만 단맛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다. 소동파도 영남으로 귀양가서 비파와 양매 그리고 여지를 먹고 이들 과일의 맛이 너무 좋아서 계속 영남에서 살고싶다고 토로한 시가 바로 식여지(食荔枝)이다. 그리고 조조가 군사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잔꾀를 부려 저 앞에 매림이 있다고 즉 전방유매림(前方有梅林)이라고 소리쳐 침이 고이게 만들어 일시적으로 갈증을 해소했다는 그 고사 즉 망매지갈(望梅止渴)의 매(梅)는 매실이 아니라 바로 이 양매(楊梅)이다. 이 고사를 훗날 명나라 말 오삼계도 청나라 군사를 이끌고 남방으로 진격할 때 정주(靖州)에서 그대로 활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월왕 구천의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도운 범여(范蠡)와 서시(西施)가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 살면서 재배한 과일이 햐얀 열매가 달리는 양매이었다고 그게 바로 백양매(白楊梅)의 유래라는 전설도 있다. 그리고 신맛이 강한 양매를 먹을 때는 그 신맛을 중화시키고 풍미를 높이기 위하여 소금을 곁들여 먹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일부 생산되는데 그 이름이 소귀나무이다. 워낙 소규모로 분포하기에 국내서는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최근에는 묘목을 판매하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양매 = 소귀나무
망매지갈

 

 

 

이 시에서 梁园(양원)은 현재 상구시에 위치하는 한나라 양효왕이 건축한 정원을 말하며 平台(평대)는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태재 송황국부(宋皇国父)가 건축한 대를 말하고 阮公(완공은 삼국시대 위나라 시인이자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완적(阮籍)을 말한다. 蓬池(봉지)는 하남성 개봉시 위씨현 동남에 있는 호수를 말하며 旧国(구국)은 양나라 또는 장안을 말한다. 安可得(안가득)은 어떻게 실현가능할까? 하면서 반문하는 의미이며 (평두)는 서민들의 두건을 말하며 吴盐(오염)은 오나라 산 고급 흰 소금을 뜻하고 信陵君(신릉군)은 전국시대 사대공자 중 한 명인 위나라 위무기(魏無忌)를 이르며 梧(창오)는 九嶷山(구의산)으로도 불리는 호남성 영주시(永州市) 소재 산 이름이며 梁王(양왕)은 서한 제후 양효왕 유무(武)를 이르고 枚(매마)는 한나라 문인인 매승(枚乘)과 사마상여(司相如)를 말하고 汴水(변수)는 개봉(封)과 상구(商丘)를 지나가는 강이름이며 五白(오백)과 六博(육박)은 고대 놀이 또는 도박의 일종이며 分曹(분조)는 패를 가르다라는 뜻이다.  

 

 

 

梁园吟(양원음) - 시선 이백(李白, 701~762)

 

我浮黄河去京阙(아부황하거경궐)

挂席欲进波连山(괘석욕진파련산)。

天长水阔厌远涉(천장수활염원섭)

访古始及平台间(방고시급평대간)。

平台为客忧思多(평대위객우사다)

对酒遂作梁园歌(대주수작양원가)。

却忆蓬池阮公咏(각억봉지완공영)

因吟渌水扬洪波(인음녹수양홍파)。

洪波浩荡迷旧国(홍파호탕미구국)

路远西归安可得(노원서귀안가득)!

 

나 장안을 멀리 떠나려 황하에 배를 띄웠네

돛을 걸고 가는데 파도가 산같이 거세게 치네.

천하와 강물은 길고도 넓어 먼 길이 싫증날 때쯤

비로서 옛 유적지 평대에 도착하여 둘러 본다네

평대에서 방문객이 오만 가지 수심에 잠기게 되어

술을 마시며 이 노래 양원가를 지어 본다네

문득 봉지를 노래한 위나라 완적공이 생각나기에

그의 유명한 "녹수양홍파”라는 구절을 읊어 본다네.

큰 물결 넓고 드높아 옛 양나라 사정 혼미하지만

돌아갈 길도 까마득한데 어떻게 갈 수나 있겠나!

 

 

人生达命岂暇愁(인생달명기가수)

且饮美酒登高楼(차음미주등고루)。

平头奴子摇大扇(평두노자요대선)

五月不热疑清秋(오월불열의청추)。

玉盘杨梅为君设(옥반양매위군설)

吴盐如花皎白雪(오염여화교백설)。

持盐把酒但饮之(지염파주단음지)

莫学夷齐事高洁(막학이제사고결)。

昔人豪贵信陵君(차인호귀신릉군)

今人耕种信陵坟(금인경종신릉분)。

  

인생을 달관하면 어찌 근심 걱정이 있을 손가

좋은 술이나 마시고 높은 누대에 오르리라.

더벅머리 아이놈이 큰 부채를 부쳐주니

오월의 더위는커녕 마치 가을처럼 시원하구나.

옥 접시에 소귀나무 열매를 그대 위해 내어놓고

꽃 같은 오나라 산 소금은 백설보다 희도다.

소금을 안주 삼아 오직 술을 들어 마실지니

백이와 숙제처럼 고결함만 추구하지 말지리라.

그 옛날 신릉군은 호걸이고 귀인이었건만

지금 사람들은 그 무덤에 밭 갈고 씨 뿌리네.

  

 

荒城虚照碧山月(황성허조벽산월)

古木尽入苍梧云(고목진입창오운)。

梁王宫阙今安在(양왕궁궐금안재)?

枚马先归不相待(매마선귀불상대)。

舞影歌声散绿池(무영가성산록지)

空馀汴水东流海(공여변수동류해)。

沉吟此事泪满衣(침음차사루만의)

黄金买醉未能归(황금매취미능귀)。

连呼五白行六博(연호오백행육박)

分曹赌酒酣驰晖(분조도주감치휘)。

 

황성 푸른 산엔 달 빛만 허무하게 비추고

고목들은 모조리 창오산의 구름 속에 숨었네.

양왕시절 궁궐은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매승과 사마상여 먼저 가서 만날 수도 없도다.

춤사위와 노래 소리 맑은 연못에 흩어지고

오로지 변수만 남아서 동해로 흘러가도다.

이 노래를 읊고 있으니 눈물이 옷깃을 적셔

황금으로 산 술에 취해 돌아갈 줄 모르노라.

연이어 오백을 부르고 육박놀이 하면서 

편을 갈라 술내기로 해지도록 취하노라.

 

 

歌且谣(가차요) 意方远(의방원)。

东山高卧时起来(동산고와시기래),

欲济苍生未应晚(욕제창생미응만)。

 

노래할 땐 노래하지만 뜻은 원대하도다.

동산에 높이 누웠다가 때가 되면 일어나

창생을 구하더라도 때가 늦지는 않으리라.

 

양매 = 소귀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