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장미과 벗나무속/자두아속자두조

1768 자두나무 = 오얏 추리 고야 애추 자도(紫挑) 이(李)

낙은재 2022. 4. 25. 10:47

자두나무
자두나무

 

자두나무는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오늘 현재도 자생종이라고 표기를 하고 있으나 국립수목원 도감에서는 1,500년전 경에 도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도감에서도 대개 중국 원산 도입종이라고 말한다. 이웃 일본에서도 자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고대에 일본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두나무가 1870년 일본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갔기에 이를 Japanese plum이라고 부르는 서양에서도 중국이 원산지인 것으로 추정은 하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자생지가 발견된 적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자두나무가 자기들 고유식물이라고 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점에 있어서는 서양자두나무와 비슷하다. 자연 상태에서 서식하는 자생지가 없으니 뭐를 표준을 삼을 수도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과일나무들이 그렇듯이 수많은 과수용 재배품종들이 개발되어 있어 어느 것이 표준이라고 특정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설혹 자생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종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식용 과일의 모습과는 다른 경우가 많아 생소하게 느껴지게 된다.

 

여하튼 자두나무는 1828년 영국 식물학자인 John Lindley경(1799~1865)이 잎이 버들잎 같다고 Prunus salicina Lindl.라고 학명을 부여한 것인데 명명자 자신이 해외로 나가 직접 표본을 채집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표본을 어디에서 누가 채집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 시기에 독일 식물학자인 지볼트가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아마 일본에서 채집한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본다. 동양의 자두나무는 서양자두나무에 비하여 잎이 다소 길쭉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버들잎에다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자두와 차이점은 꽃과 과일의 사이즈가 더 크고 꽃이 거의 대부분 3개씩 모여서 피므로 더 풍성하게 핀다는 점이다. 잎의 앞뒤 양면에 모두 털이 없고 과육이 항상 핵에 붙어 있는 점핵(粘核)인데 서양자두의 일부 품종은 과육과 핵이 쉽게 분리되는 이핵(離核)인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다르며 동양의 자두가 개화기와 수확기가 약 1개월 정도 빠르다. 그리고 겉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결정적인 것은 염색체 수가 2n=16으로 서양자두의 2n=48과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양 일부에서는 동양의 자두나무가 서양자두와 관상용 정원수로서의 활용도는 비슷하지만 과수용 유실수로는 못하다고 말한다. 아마 풍토의 차이에 의하여 유럽에 가서는 제대로 결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분석하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두라고 부르고 이를 표준어로 삼지만 과거 민가에서는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 대표적인 이름이 오얏과 추리 고야 애추 등이다. 정말 자두가 중국에서 도입된 수종이라면 중국에서 함께 따라온 이름인 이(李)나 산리자(山李子) 등은 어디 가고 왜 이렇게 지방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제대로 조사 연구가 안되어서 그렇지 우리나라에서 어디엔가는 토종의 자생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지금도 강원도에 가면 고야라고 조그마한 열매가 달리는 토종 자두나무가 야산에 있어 민가에서 더러 옮겨다 심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이름 자두는 한자어 자도(紫桃)에서 변형된 말로서 앵두나 호두가 앵도(櫻桃)와 호도(胡桃)에서 변화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그런데 호도는 중국에서 호두를 부르는 정명이고 앵도도 중국에서 서양벚나무의 열매인 체리나 앵두(毛櫻桃)를 부르는 이름이므로 중국에서 온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비록 복숭아는 아니지만 그 형상 등이 복숭아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 그렇게 불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도(紫桃)는 중국에서도 이런 말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모두 복숭아의 한 종류 즉 겉 표면이 자색인 복숭아를 지칭하는 말이지 자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자도를 복숭아가 아닌 오얏을 지칭하는 말로 쓴 것은 우리나라 독자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자도(紫桃)라는 말이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것이 고려후기 문신인 매호(梅湖) 진화(陳澕, 1180~1222 추정)의 문집인 매호유고(梅湖遺稿)에 수록된 해당(海棠)이라는 한시라는데 여기서는 자두(오얏)가 아닌 자색 복사꽃을 의미한다.

 

해당(海棠) - 매호(梅湖) 진화(澕)

酒痕微微點玉腮(주흔미미점옥시)

暗香搖蕩隔林人(암향요탕격임인)

紅杏紫桃無遠韻(홍행자도무원운)

一枝都占上園春(일지도점상원춘)

술기운 살짝 올라 흰 볼이 발그스레하고

그윽한 향기 멀리까지 뒤흔드네

붉은 살구꽃과 자색 복사꽃은 깊은 운치가 없는데

해당 홀로 정원의 봄을 압도하네.

 

여기서는 물론 자두가 아닌 글자 뜻 그대로 자색 복숭아를 뜻하기 위하여 자도(紫桃)라는 용어가 쓰였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다룰 사과나무속 꽃사과나무를 생각하니 최소한 고려시대에는 꽃사과나무를 중국 이름을 그대로 따라서 해당(海棠)이라고 불렀다는 중요한 사실을 부가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즉 진화선생의 해당이라는 시에서는 해당(海棠)이라는 명칭을 가시가 있는 우리 토종 장미의 일종인 해당화가 아닌 꽃사과나무의 일종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쓰인 것이 분명하다. 봄에 살구나 복사와 비슷한 시기에 꽃핀다는 점과 옥색 바탕에 불그스레한 꽃 색상이 꽃사과의 일종인 서부해당이나 수사해당을 연상하게 만든다. 복사꽃이 필 때는 장미속 해당화는 잎이 겨우 날동말동하는 수준에 불과하므로 꽃이 핀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해당화는 초여름꽃이지 봄꽃이 아니다. 다만 그윽한 향기가 있다는 점은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암향(暗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해당화의 향기는 너무 강하다. 개아그배나무 같은 일부 수종에서는 은근한 향기가 나지만 대부분의 꽃사과 수종에는 향기가 거의 없거나 매우 약하여 민감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꽃사과 즉 해당(海棠)이 봄정원에서 워낙 우미고아(優美高雅)한 자태를 뽐내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향기가 있다고 착각한다고 한다.

 

개아그배나무(좌)는 색상도 그렇고 은은한 향기마저 있어 진화선생의 해당에 어울린다. 우측은 향이 없는 수사해당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 처음에는 자두가 아닌 글자 그대로 복숭아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던 자도(紫桃)가 조선시대에 와서는 자두를 의미하는 말로 바뀌게 된다. 처음 등장하는 것이 그 유명한 정치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중종에게 감세를 주장하면서 언급한 다음 대목이다. “又見民間有一弊焉, 如櫻桃、紫桃、黃桃、林檎等物, 乃其弊也.” ”또 민간에서 보건대 한 가지 폐가 있으니, 백성들이 바치는 앵두·자두·황도·능금과 같은 것이 곧 그것입니다.” 여기서 황도는 복숭아를 자도는 자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에 와서 자두를 이(李)라고 하지 않고 자도(紫桃)라고 한 것은 분명 임금의 성인 전주 이씨(李氏)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감히 왕의 성씨를 함부로 불러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경희대 여채려님의 논문에 의하면 자도가 처음에는 복숭아를 지칭하다가 도중에 자두의 한 품종명이 되었다가 나중에 자두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변화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면 복사나무 대목에 자두를 접목한 것을 자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두를 복숭아의 일종인 것처럼 스모모(スモモ)라고 부르고 한자로는 이(李) 또는 초도(酢桃)나 산도(酸桃)로 쓴다. 초(酢)나 산(酸) 모두 신맛이 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과일의 색상에 따라서 자도라고 부르고 일본은 맛에 따라서 초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중국에서 자도(紫桃)란 진짜 자색 복숭아를 말한다.

 

원산지 중국에서는 비록 야생에서 서식지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남산유기(南山有杞) 북산유리(北山有李)라는 대목에 나온다. 여기서는 이미 그 당시에 앞산 뒷산에 구기자와 자두를 재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시경 대아(大雅)에는 투지이도(投之以桃) 보지이리(报之以李)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남이 나에게 복숭아를 대접하면 그 보답으로 자두를 대접하라는 좋은 뜻인데 이게 요즘 같은 살벌한 세상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단호한 용어로 둔갑하여 현대 중국어에서 빈번히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즘의 우리 잣대로는 전혀 아니지만 자두가 최소한 복숭아와 대등한 수준의 과일로 대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당시 복숭아는 지금만큼 크거나 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꽃의 아름다움으로 복사꽃과 자두꽃 즉 도리(桃李)는 가장 아름다운 봄꽃의 대명사가 되어 많이 회자된다. 시경 소남(召南)에 이런 문구가 있다. 何彼襛矣(하피농의) 华如桃李(화여도리) “어찌 저리 고운가, 복사꽃 자두꽃 같으시네”라고 말이다. 이후 도리(桃李)는 미모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서 당나라 초기 명신인 적인걸(狄人傑)이 천거한 인재들에서 유래된 훌륭한 스승 아래의 문하생을 뜻하기도 하며 사자성어 이대도강(李代桃僵)에서 비롯된 우애 좋은 형제를 뜻하기도 한다. 사마천은 사기 이장군편에서 평생 70여 차례 흉노와의 전쟁에서 큰 전공을 세운 한나라 명장 이광(李廣, ?~ BC119)이 죽자 전장병이 대성통곡하고 백성들도 슬퍼 눈물을 흘렀다면서 그를 평가하기를 “천성이 강직하고 성실하며 말재주가 없어 시골 농부처럼 보였지만 그가 죽었을 때는 온 나라가 그를 위해 묵념하고 애도했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桃李不言(도리불언) 下自成蹊(하자성혜)라는 속담이 있는데 깊은 이치를 담고 있다고 부언하였다. 즉 “복사나무와 자두나무는 스스로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라고 큰 인물 아래 사람이 모이는 것을 아름다운 복사꽃과 자두꽃을 감상하러 몰려드는 상춘객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잘 아는 자두와 관련된 중국 격언에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즉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것도 있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자두는 남의 것도 따먹고 싶을 만큼 먹음직스러운 과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자두를 뜻하는 한자 오얏 이(李) 자가 매우 중요한 성씨로 중국과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李(리) 자는 나무 목(木) 자에   아들 자(子) 자가 결합된 글자로서 나무에 열매(子)가 매우 많이 달리기 때문에 만들어진 한자어이다. 그래서 성씨로 사용될 경우 다산 즉 후손의 번창을 뜻하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실제로 이씨 성은 현재 중국에서는 왕(王)와 거의 비슷한 1억 명이 넘는 제 2의 대성이고 우리나라에서도 7백만 명이 넘어 김(金)씨 다음으로 많다는 것이 흥미롭다. 중국의 이씨 성은 원래 순(舜)임금의 신하인 고요(皋陶, BC 2,220~2,113)에서 출발하는데 그는 고대 제왕인 전욱(颛顼)의 후예로 요, 순, 우임금과 더불어 중국 고대 4대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중국사법의 시조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와 후손들이 형법을 관장하는 직책을 맡았기에 이(理)라는 성을 사용하였는데 상(商)나라 말기 그의 후손인 이징(理徵)이 폭군 주(纣)왕에게 직간하다가 죽음을 당하자 그의 아내가 아들과 함께 도망을 가게 된다. 도망 중에 배고픔과 목마름을 길가의 자두를 따먹고 해결하여 살아났다고 신분도 속일 겸 자두나무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아들의 성을 李로 바꾸어 이이정(李利貞, BC 1,069~992)이 되는데 그 아들이 바로 현재 1억 명이 넘는 중국 이씨의 시조가 된다. 그의 후손 중에 얼마나 많은 유명인이 배출되었는지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 중에 우선 본명이 이이(李耳)인 노자(老子)도 있고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과 당태종 이세민 그리고 흉노를 물리친 이광장군도 있으며 시선인 이태백과 본초학자이자 명의인 이시진 등 기라성 같은 과거인물이 있으며 근대 인물로는 싱가폴을 건국한 이광요도 있으며 홍콩 최대 갑부인 이가성도 있다. 그리고 중국 이씨들은 직접 자두나무와 관련이 있으므로 자두나무를 신성시하여 집안에 열심히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태백의 집에도 도리원(桃李圓)이 있었으며 당나라 황궁에는 자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의 자두나무는 단순히 꽃이 아름다운 과일나무만은 아닌 것이다.

 

자두를 뜻하는 李(이) 자는 나무에 열매(子)가 빼곡하게 달린다고 만들어진 글자이다. 삽화 - 네이버사전

 

우리나라도 이씨가 많기는 하지만 수백 개의 본관으로 갈라져 있으며 가장 인구가 많은 전주 이씨의 경우는 통일신라 시대 사공벼슬을 지낸 전주 출신인 이한(李翰)이라는 사람이 시조이고 그 다음으로 큰 가문인 경주 이씨는 신라 건국 당시 알천양산촌의 촌장이었던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이라는 사람이 시조로서 건국 후에 이씨 성을 사성(賜姓)받았다고 하므로 직접적으로 자두나무와 관련된 인연은 없는 것 같다. 참고로 본관이 달라서 별 의미는 없지만 우리나라도 이씨 성을 가진 역사적 인물은 세종대왕 이도와 이순신장군을 비롯하여 조선과 대한민국의 초대 통치자 및 이퇴계와 이율곡 등 대학자들까지 중국 못지 않게 많아 열거할 수도 없다. 여하튼 중국에서는 자두나무를 이(李) 또는 이수(李树)라고 부르는 것 외에도 산이자(山李子)나 가경자(嘉庆子) 또는 가응자(嘉应子)라고 하거나 옥황리(玉皇李)라고도 부른다. 산이자는 산자두라는 뜻이고 가경자는 과거 동도(東都) 즉 낙양(洛陽)의 가경방(嘉庆坊)이란 지역에서 나는 자두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여 붙은 이름인데 발음이 비슷한 가응자(嘉应子)라고도 불린 것이며 옥황리(玉皇李) 또한 자두 산지로 유명한 하남성 옥황령(玉皇岭)이라는 지명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등록명 : 자두나무

이   명 : 자도나무, 추리나무, 오얏나무

학   명 : Prunus salicina Lindl.

분   류 : 장미과 벚나무속 낙엽성 교목

원산지 : 중국

중국명 : 이(李) 산이자(山李子) 가경자(嘉庆子) 가응자(嘉应子) 옥황리(玉皇李)

일본명 : 스모모(酢桃, 酸桃)

영어명 : Japanese plum, Chinese plum

수   고 : 9~12m

잎특징 : 6~12 x 3~5cm, 상면 광택 양면 무모

잎자루 : 1~2cm

꽃특징 : 3송이, 지름 1.5~2.2cm, 백색, 수술 다수

열   매 : 핵과 구형, 지름 3.5~5cm, 재배종 7cm, 황,홍,록,자색

개화기 : 4월

결실기 : 7~8월

염색체 : 2n=16

내한성 : 영하 29도

 

자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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