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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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樹(홍수) – 성현(成俔)

조선 초 문신으로 문장가이자 음악가인 용재(慵齋) 또는 허백당(虛白堂)이란 호를 쓴 성현(成俔, 1439∼1504) 선생이 허백당집에 남긴 紅樹(홍수)라는 시이다. 그는 허백당집(虛白堂集) 외에도 수필 잡록집인 용재총화(慵齋叢話)도 저술하였고 악학궤범(樂學軌範) 편찬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紅樹(홍수) – 성현(成俔) 西山園裏攢靑楓(서산원리찬청풍)蔥蘢十里靑陰濃(총롱십리청음농)靑女一笑忽揮灑(청녀일소홀휘쇄)鉛華點葉酣秋容(연화점엽감추용)過客停車幾探翫(과객정거기탐완)彷彿火傘張高空(방불화산장고공)人牽官事停歌吹(인견관사정가취)人未得醉楓先醉(인미득취풍선취)安得置酒於其間(안득치주어기간)與楓同醉相傲戲(여풍동취상오희) 서산 정원엔 푸른 단풍나무를 모아 심어 단풍숲 우거진 십리에 푸른 그늘 짙더니 서리여신 한 번 웃으..

過故人庄(과고인장) – 孟浩然(맹호연)

과고인장(過故人庄)은 성당(盛唐)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이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로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당대(唐代) 전원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내용 소개: 시의 네 구절이 손님으로 온 전 과정을 완전하게 기록하고 있다. 첫 구절은 친구들이 농가 음식을 준비해 두고 정성껏 손님들을 초대하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둘째 구절은 푸른 나무에 둘러싸인 마을과 성 밖을 가로지르는 푸른 산이 펼쳐진 들판 풍경을 그려내며, 셋째 구절은 창밖의 밭과 채소밭을 마주한 손님과 주인이 잔을 들고 농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담고, 마지막 구절은 이별의 약속으로 중양절에 다시 와 국화를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이기로 한 뜻을 전한다. 창작 배경: 이 시는 맹호연이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던 시기에 지었다. 시..

送别(송별) – 王維(왕유)

송별(送别)은 당대 시인 왕유(王維, 701~761)가 지은 오언고시이다. 이는 벗의 은거를 배웅하는 시로, 문답 형식으로 벗의 입에서 은거의 이유를 듣는 방식을 통해 시인의 복잡한 사상과 감정을 드러낸다. 시인은 벗을 걱정하고 아끼며, 위로하는 동시에 은거 생활에 대한 부러움까지 드러내는데, 이는 시인 자신이 처한 현실에도 만족하지 못함을 보여 준다. 시 전체의 언어는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마지막 두 구절이 갑자기 시적 정취를 더해 주어, 말은 담백해도 정은 깊고 끝없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送别(송별) – 王維(왕유) 下馬飲君酒 (하마음군주)問君何所之 (문군하소지)君言不得意 (군언부득의)歸臥南山陲 (귀와남산수)但去莫復問 (단거막부문)白雲無盡時 (백운무진시) 말에서..

九月九日憶山東兄弟(구월구일억산동형제) - 王維(왕유)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는 성당(盛唐) 시인 왕유(王維, 701~761)가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로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되어 있다. 핵심 주제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친족을 생각하는 것으로, 왕유가 열일곱 살 때 홀로 떠돌던 길에 마침 중양절(重陽節) 즉 음력 9월 9일을 맞아 친족을 그리워하며 지은 향수의 시이다. 내용 소개: 시 전체의 언어는 소박하고 직설적이며, 복잡하고 화려한 수사법을 쓰지 않았다. 중양가절(重陽佳節)을 창작 배경으로 삼아, 고향을 떠나 있는 이들의 향수와 친지들에 대한 진실한 정을 드러낸다. 시의 첫 구절은 타향에서 떠돌며 겪는 외로운 처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며, 명절에 부모를 그리워하는 보편적인 심정을 분명히 한다. 뒤의 두 구절은 서술 시점을 전환해 고향의 친지들..

使至塞上(사지새상) – 王維(왕유)

사지새상(使至塞上)은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701~761)가 지은 오언 변새시(邊塞詩)로,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되어 있다. 왕유가 변방으로 장병들을 위문하러 가는 길에 지은 기행시이다. 참고로 변새시란 중국 성당 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창작되어 하나의 문학적 영역으로 확립된 한시를 말한다. 주로 나라의 경계나 변방의 요새를 배경으로, 전쟁의 참혹함, 병사들의 고생과 외로움, 변방의 황량한 풍경 등을 노래한다. 내용 소개: 시의 여덟 구절로, 수련(首联)은 사신의 행로를 기록하고, 함련(颔联)은 정봉과 돌아오는 기러기를 빌려 자신을 비유하며 방랑하는 심정을 드러내며, 경련(颈联)의 “대막의 외로운 연기는 곧게 피어오르고(大漠孤烟直), 긴 강의 낙일은 둥글다(长河落日圆)”는 구절은 천고에 전해지며, 미련..

鳥鳴澗(조명간) – 王維(왕유)

鳥鳴澗(조명간) 즉 새가 우는 계곡은 당나라 전원 시인 왕유(王維, 701~761)의 오언절구(五言絶句)이다. 이 시는 봄밤의 텅 빈 산이 지닌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내며, ‘고요할 정(静)’이라는 글자에 초점을 맞춰 밤의 봄산이 지닌 고요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드러내어, 마치 풍경 스케치화와도 같다. 시인은 꽃이 지고 달이 뜨며 새가 우는 등 활동하는 경물을 통해 달밤의 봄산이 지닌 고요함을 두드러지게 드러내어, 움직임으로 정적인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예술적 효과를 얻었으며, ‘새소리 울면 산은 더욱 고요하다’는 시정화의 정취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시 전체는 고요함을 그릴 겸하나 움직이는 경치로 처리함으로써, 이러한 대비 기법을 통해 시인의 선심과 선취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鳥鳴澗(조명간..

鹿柴(녹채) – 王維(왕유)

鹿柴(녹채)는 鹿砦(녹채)라고도 쓰는데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701~761)가 지은 오언절구(五言絶句)로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당대 산수시(山水詩)의 대표적인 고전 작품이다. 내용 소개: 첫 구절은 먼저 텅 빈 산의 적막하고 인적 없는 모습을 정면으로 묘사하며, 산의 공허하고 차가운 정취를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다. 이어지는 두 번째 구절에서는 경지가 갑자기 드러나,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울림’으로 전체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공적 정취를 대비시킨다. 셋째와 넷째 구절에서는 앞부분의 빈 산 묘사에서 나아가 깊은 숲의 반사된 빛을 묘사하며, 소리에서 색으로 이어진다. 창작 배경: 천보 연간에 왕유는 람전(藍田) 망천(輞川)에 별장을 세우며 벼슬살이와 은거를 병행했다. 그는 친구 배적(裴迪)과 함께 ..

竹里館(죽리관) - 王維(왕유)

죽리관(竹里館)은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701~701)의 오언절구(五言絶句)이다. 이 시는 은자의 한가로운 삶과 정취를 그려 내며, 시인이 달빛 아래 홀로 앉아 거문고를 타며 길게 울부짖는 여유로운 생활을 묘사한다. 표현과 문장은 소박하고 맑아 시인의 고요하고 담담한 심정을 전하며, 청아하고 고요하며 고상하고 속세를 초월한 경지를 드러낸다. 시 전체는 비록 짧은 스무 글자에 불과하지만, 경치와 정서가 있고, 소리와 색채가 있으며, 정적과 동적이 있고, 실재와 허상이 어우러져 대립과 통일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흥취를 더하므로, 시인의 생활 태도와 작품의 특징을 탁월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 시는 여러 차례 서로 다른 판본의 중국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고 한다. 竹里館(죽리관) - 王維(왕유) 獨坐..

山中送别(산중송별) – 王維(왕유)

산중송별(山中送别)은 당나라 전원파 시인 왕유(王維, 701~761)의 오언절구(五言絶句)이다. 이 시는 벗을 배웅하며 친구를 보내는 모습을 그려, 친구를 떠나보내기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소재는 매우 흔하지만, 구상은 독창적이어서 매우 개성이 뚜렷하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송별’이라는 두 글자에만 치우치지 않고, 송별 후의 행동과 심경에 초점을 맞추어 시 속 인물이 이듬해 봄풀이 다시 푸르게 자랐을 때 벗들과 다시 모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시 전체의 언어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감정은 깊고 진실하다. 뜻 속에 뜻이 있고, 맛 밖에 맛이 있어, 장인의 솜씨가 독특하여 곱씹을수록 여운이 남는다는 평을 듣는다. 山中送别(산중송별) – 王維(왕유) 山中相送罢(산중상송파)日暮掩柴..

石崙寺(석륜사) 效周景遊次紫極宮感秋詩韻(효주경유차자극궁감초시운) – 이황(李滉)

이백(李白)의 潯陽紫極宮感秋作(심양자극궁감추작)에 대한 차운시는 중국에서만 유행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조선의 문인들도 많이 참여하였는데 조선초 신숙주(申叔舟)를 비롯하여 주세붕(周世鵬) 같은 학자들이 먼저 시작하였고 그들을 따라 수많은 학자들이 이 시에 대한 차운시(次韻詩)를 남겼다. 그 중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내용은 거의 대부분 고려대 임준철(林濬哲) 교수의 조선시대 李白(이백) 시의 次韻(차운)과 轉用(전용)이라는 논문을 많이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퇴계 선생은 주세붕의 차운작에 영향을 받아서 창작하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동일 공간에서 지어진 것이지만 이황의 시는 이후 조선시대 차운작의 계보를 새롭게 형성하게 된다. 이황은 시의 幷序를 통해..

和李白浔阳紫极宫感秋(화이백심양자극궁감추) - 謝枋得(사방득)

和李白浔阳紫极宫感秋(화이백심양자극궁감추)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심양자극궁감추(浔阳紫极宫感秋)에 화답하기 위하여 송대 시인 사방득(谢枋得, 1226~1289)이 지은 오언고시이다. 이 시는 이백의 원작을 바탕으로, “비가 그치고 달빛이 밝아 소나무가 맑아지니(雨歇月明松), 하늘빛이 푸르게 대나무 사이로 비친다(天碧光入竹)”와 같은 이미지로 가을밤의 맑은 풍경을 그려 내며, “먼지 밖으로 함께 나아가 여행한다(相携尘外游)”는 은일의 이상을 담고 있다. 시의 “홀로 하늘의 마음이 수고로워 애처롭다(独怜天心劳), 천 년의 세월이 몇 번이나 엎치락 뒤치락 했을까(千岁几剥复)”, “푸른 바다에도 붉은 먼지가 있다(沧海有红尘)” 등의 구절에는 역사 변천에 대한 사색이 은근히 담겨 있으며, 안기..

次苏子瞻和李太白浔阳紫极宫感秋诗韵追怀太白子瞻 - 黄庭坚 차소자첨화이태백심양자극궁감추시운추회태백자첨

次苏子瞻和李太白浔阳紫极宫感秋诗韵追怀太白子瞻 - 黄庭坚차소자첨화이태백심양자극궁감추시운추회태백자첨 – 황정견 次苏子瞻和李太白浔阳紫极宫感秋诗韵追怀太白子瞻(차소자첨화이태백심양자극궁감추시운추회태백자첨) 즉 “소자첨의 이태백의 순양 자극궁 감추시에 화답한 시 운에 따라 태백과 자첨을 그리워하면서”는 송대 시인 황정견(黄庭坚, 1045~1105)이 지은 오언시이다. 이 시는 서두에서 이백과 소식, 이 두 적선(謫仙)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드러내며, 자극궁(紫极宫)을 맴돌며 그들의 정신적 가치를 깨닫는다. 중간 부분에서는 이백과 소동파가 평생 시기 질투를 받으면서도 곧고 굳게 지켜낸 처지를 서술하며, 시인이 그들과 가까이 지내며 교류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에는 초목의 가을 풍경을 비유로 삼아,..

和李太白(화이태백) - 蘇軾(소식)

和李太白(화이태백) 즉 ‘이태백과 화답하다’는 송대 문인 소식(蘇軾, 1037~1101)이 지은 화답시로, 원풍 7년(1084년)에 지었으며, 장소는 강서 구강의 자극궁(오늘날의 천경관)이다. 소식은 도사 호동미(胡洞微)가 스승 탁기(卓玘)의 이백(李白, 701~762) 심양자극궁감추(浔阳紫极宫感秋) 시석본(詩石本)을 보여주자 그 중에서 특히 四十九年非(사십구년비) 一往不可复(일왕불가복)이라는 구절에 깊이 공감하여 자신도 이제 마흔아홉 살이 되었음을 느껴 이백의 시풍을 본받아 지었다고 한다. 시에서는 허적당(虚寂堂)에 머물며 밝은 달빛이 듬성듬성한 대나무숲에 스며드는 풍경을 그려, 세월이 흘러가고 세상일이 바둑판처럼 돌아간다는 탄식을 드러내며, 절의로운 도인 탁기(卓玘)와 호동미가 심었다는 장수초 玉芝..

潯陽紫極宮感秋作(심양자극궁감추작) – 李白(이백)

심양자극궁감추작(潯陽紫極宮感秋作)은 750년 가을에 창작되었으며, 장소는 당시에는 심양(潯陽)으로 불리던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의 노자를 모신 도교 사원인 자극궁(紫極宮)이다. 이 시는 이백(李白, 701~762)이 말년에 지은 것으로 시인이 심양 자극궁에 머물 시기 가을을 맞이하여 지은 작품이다. 이 시에는 도가 사상, 인생에 대한 감회, 은거에 대한 정서가 어우러져 있으며, 벼슬길의 부침을 겪은 뒤 시인이 보인 깊은 성찰과 정신적 초월을 드러낸다. 또한 시의 “四十九年非(사십구년비)”라는 구절은 그의 만년 심경을 반영한다. 潯陽紫極宮感秋作(심양자극궁감추작) – 李白(이백) 何處聞秋聲 (하처문추성)翛翛北窗竹 (소소북창죽)回薄萬古心 (회박만고심)攬之不盈掬 (람지불영국)靜坐觀衆妙 (정좌관중묘)..

問來使(문래사) - 陶渊明(도연명)

서양의 Rose라는 말은 식물분류학적으로 Rosa속으로 분류되는 식물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현대 우리뿐만 아니라 한중일 3국에서는 Rosa속을 장미(薔薇)속이라고 하므로 결국 rose를 바로 장미로 번역하여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만 하여도 장미속으로 분류되는 자생종이 20여 종이 있는데 그 중에서 장미로 불리는 종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과거는 물론 현재도 이들을 장미라고 하지 않고 찔레와 해당화(때찔레) 그리고 인가목과 생열귀나무, 가시나무 등 다섯 종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미와 찔레를 다른 식물로 알고 있을 정도이다. 장미(薔薇)라는 이름이 중국에서 온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도 과거에는 장미라는 이름이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당굴성..

寄東界存撫使(기동계존무사) - 민사평(閔思平)

중국에서 해당(海棠)이라는 용어가 들어와 일부는 꽃사과나무로 제대로 사용되고 일부는 엉뚱하게 명사십리의 해당화를 이르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그럼 정작 중국 한자명 매괴(玫瑰)는 국내 언제 도입되었으며 사용되기는 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찾아 보니 이 용어 또한 고려시대에 이미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었음을 남아 있는 시로 알 수 있다. 문학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고려말 문신이자 학자인 민사평(閔思平 1295~1359)선생이 그의 문집 급암시집(及菴詩集)에 남긴 동계 존무사에게 부치다(寄東界存撫使)라는 제목의 시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 같다. 寄東界存撫使(기동계존무사) - 민사평(閔思平) 元帥臺前水自波(원수대전수자파)永郞浦外雪明沙(영랑포외설명사)玫瑰花下絲絲雨(매괴화하사사우)倒載蛾眉半醉何(도재아..

卽事(즉사) – 현일(玄鎰)

나이 든 사람이라면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서러마라'로 시작되는 우리 민요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대부분의 넘차소리 즉 상여소리에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고 일부 농요나 정선아리랑 등 아리랑에도 이런 구절로 된 가사가 있다. 이 구절이 원래 어디서 그리고 왜 유래되었는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앞뒤 가사는 전혀 다르게 다양하게 전개 되지만 이상하게 이 구절만은 어디서든 모두가 똑 같다. 이 구절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바로 이 해당화(海棠花)라는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분명 중국에서 꽃사과나무를 지칭하는 용어로 해당(海棠)을 우리 선조들이 받아들여 고려시대 이규보 선생 등의 시에도 많이 나왔는데 갑자기 이 해당화가 해안의 명사십리에 가서는 가시가 있는 장미의 일종인 때찔레..

해당(海棠)을 오용(誤用)한 선탄(禪坦) 스님

안축(安軸, 1282~1348) 선생과 비슷한 시기에 드디어 그 유명한 명사십리해당(明沙十里海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 용어를 처음 남긴 사람은 고려시대 스님인 선탄(禪坦, 생몰미상)이다. 이런 내용은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9)선생이 1614년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 사전 지봉유설(芝峯類說) 제14권 문장부칠(文章部七)의 방류(旁流)에 실려 있다. 거기에 시를 쓴 스님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에 선탄스님이야기가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어 그 전문을 소개한다. 前朝僧禪坦谷城人(전조승선탄곡성인)。즉 고려조 선탄스님은 곡성 사람인데其早春詩曰(기조춘시왈)。그 시 조춘은 이렇다. 早春(조춘) – 선탄(禪坦) 스님 管絃聲碎竹外磵(관현성쇄죽외간)。水墨畫點煙中山(수묵화점연중산)。..

海棠(해당) - 안축(安軸)

해당(海棠)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에서 꽃사과 등을 지칭하는 말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그런 의미로 사용하여 시로 남긴 작품들이 이규보 선생이나 진화 선생의 문집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쯤 후인 고려 말기 학자인 근재(謹齋) 안축(安軸, 1282~1348) 선생이 남긴 근재집(謹齋集)에서는 꽃사과가 아닌 백사장에서 잘 자라는 매괴(玫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변한다. 안축선생의 해당(海棠)이라는 시는 그 내용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관동팔경에서 본 장미의 일종인 가시 있는 지금의 해당화를 말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안축 선생은 1330~1331년 사이 강릉도(江陵道) 존무사(存撫使)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 존무사(存撫使)란 해당 지역 수령들을 감찰하던 관직이므로 강릉도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지..

海棠(해당) - 진화(陳澕)

고려 중기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선생과 동시대 인물인 매호(梅湖) 진화(陳澕, 생몰미상) 선생의 문집인 매호유고(梅湖遺稿)에 실린 아래 해당(海棠)이라는 시가 있는데 여기서는 내용으로 봐서는 장미의 일종인 오늘날의 해당화가 아닌 꽃사과나무인 것으로 추정된다. 海棠(해당) - 진화(陳澕) 酒痕微微點玉腮(주흔미미점옥시)暗香搖蕩隔林人(암향요탕격림인)紅杏紫桃無遠韻(홍행자도무원운)一枝都占上園春(일지도점상원춘) 술기운 살짝 올라 흰 볼이 발그스레하고그윽한 향기 멀리 숲속 사람을 뒤흔드네붉은 행화 자색 도화는 깊은 운치없는데해당화 홀로 정원의 봄 경치를 압도하네. 腮(시) 뺨, 볼搖蕩(요탕) 흔들거리며 움직이다. 흔들리다.紫桃(자도) 자두일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자색 꽃이 피는 도화로 추정

傷宅(상택) – 白居易(백거이)

상대택(傷大宅)이라고도 불리는 상택(傷宅)은 당대 시인 백거이의 연작시 진중음십수(秦中吟十首) 중 제3수인 오언고시 (五言古詩)이다. 여기서 진중(秦中)이란 장안(長安) 일대를 말한다. 이 시는 권문세가들의 호화 저택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묘사함으로써, 재벌가와 권세가들의 사치 풍조를 냉혹하게 폭로하고 비판하며, 중당 시기 전체 지배계층의 향락과 부패, 그리고 발전을 도모하지 않는 사회 현실을 깊이 반영한다. 또한 민생의 고통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국가의 운명에 대한 염려를 드러낸다. 시 전체의 언어는 소박하고 묘사는 섬세하며, 정서는 비통하고 분노에 젖어 침울하다. 특히 마지막 여섯 구의 질책은 한마디로 쏟아내는 듯해 매우 강렬하다. 이 시는 810년 전후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백거이는 수도 장안..

吳櫻桃(오앵도) – 白居易(백거이)

吴樱桃(오앵도)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지은 칠언시(七言詩)로, 백거이가 소주(蘇州)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창작되었으며, 시에서 말하는 오앵도는 당시 오지(吳地) 즉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상숙(常熟)에서 나는 앵도를 가리킨다. 이 시는 櫻桃(앵도) 즉 체리 벚나무를 주제로 동오 지역 체리의 풍성한 모습을 그려 내며, 그 색과 향기와 맛이 지닌 독특함을 묘사한다. 또한 새들이 몰래 먹고 사람들이 서로 따려 다투는 장면을 통해, 마지막에 “아쉽게도 바람과 비를 함께 맞으니, 내일 모레쯤이면 더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아름다운 것들이 쉽게 사라짐을 한탄하고 있다. 이 시 제목은 櫻桃라고 되어 있지만 본 시에서는 含桃(함도)라고 한 것은 앵도를 꾀꼬리(鶯)가 열매를 좋아한다고 鶯桃(앵..

久别离(구별리) – 李白(이백)

久别离(구별리)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창작 악부시(樂府詩)이다. 첫 두 구는 칠언구로 영원한 이별의 일을 말하며 부부가 그리워하는 고통의 이유를 드러내고, 이어 갑자기 두 개의 오언구로 주인공의 상실감을 드러냅니다. 또한 ‘황’ 자로 시작해 리듬의 변화를 주어, 감정이 갑자기 파문을 일으키게 하는 특징을 보여 준다. 또한 시에서 ‘지난해에 편지를 보냈다’, ‘올해에 편지를 보낸다’라고 연달아 말하는 방식, 구어체 문장과 같은 표현, 그리고 동풍에게 기원하는 방식은 모두 사(詞), 곡(曲), 민가(民歌)와 유사한 점이 있다. 시 전체는 모두 남편의 자술 어조로 쓰여, 오랜 이별 끝에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마음을 드러낸다. 久别离(구별리) – 李白(이백) 別來幾春未還家(별래기춘미..

美人梳頭歌(미인소두가) – 李賀(이하)

해방 후인 1950년대에 발표된 그 유명한 유행가 앵두나무처녀 때문만은 아니라도 우리 국민들은 거의 모두 앵두라고 부르지만 식물분류학상 정식 명칭은 앵도(櫻挑)나무이다. 그렇다고 어느 것이 옳다고도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원래 앵두라는 말이 중국에서 온 櫻挑(앵도)에서 변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정작 중국의 櫻挑는 앵두가 아니고 벚나무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시 중에서 왜 벚꽃을 노래한 시가 없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실제로는 중국에 櫻挑를 주제로 한 시가 많다. 주제는 아니더라도 櫻挑(앵도)가 등장하는 한시가 매우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국 한시의 앵도는 거의 모두 앵두가 아닌 벚나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

앵두, 살구꽃 피면 - 박용래

한 포기의 야생화만 봐도 울고 시래기 삶는 냄새에도 눈물 지어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었던 박용래(1925~1980)선생이 1975년 발표한 ‘앵두, 살구꽃 피면’이라는 시인데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 앵두꽃과 살구꽃에서 외할머니 목도리를 연상하며 눈물깨나 흘렸을 것 같다. 앵두, 살구꽃 피면 - 박용래 앵두꽃 피면앵두바람살구꽃 피면살구바람 보리바람에고뿔 들릴세라황새목 둘러주던외할머니 목수건

櫻桃(앵도) - 이숭인(李崇仁)

고려말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함께 이색(李穡, 1328∼1396)의 문하생으로 성리학의 정통을 이어받았고 당대 최고 수준의 문장력과 외교 문서 작성 능력을 인정받았던 문신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櫻桃(앵도)라는 시가 있다. 櫻桃(앵도) - 이숭인(李崇仁) 粲爛朱櫻熟(찬란주앵숙)團圓湛露濡(단원잠로유)摘來盤上看(적래반상간)箇箇是明珠(개개시명주). 찬란하게 붉은 구슬같은 앵두동글한 열매 이슬 머금고있네따다가 소반에 담아 바라보니하나 하나가 빛나는 구슬이네. 湛露(잠로): 듬뿍 내린 흠뻑 젖은 이슬.湛(잠) 이슬 맺힌 모양 잠, 괼 담, 담글 점 濡(유): 젖을 유. 이슬을 머금어 윤기가 흐르는 모습.

櫻桃(앵도) - 이규보(李奎報)

앵도나무는 시골 우물가에 많이 심어져 있어서 우리 자생종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중국 최북단 동북3성과 내몽고지역에서부터 중국 최남단 남쪽 사천성 운남성 및 서장성 등 거의 전역에서 자생하는 중국 고유종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문헌에 등장하므로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54권에 예종 6년 1111년 六月(6월) 中書省櫻桃結子(중서성앵도결자) 大如杏子(대여행자) 而中空無核(이중공무핵). 즉 “중서성(中書省)의 앵두나무가 열매를 맺었는데 크기는 살구만했으나 속이 비고 씨가 없었다.”라고 변괴가 발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무신집권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9~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다음과 같은 앵도(櫻桃)에 대한 율시가 있다...

有感(유감) – 이색(李穡)

梨花(이화)를 노래한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또 다른 칠언율시(七言律詩) 유감(有感)이다. 有感(유감) – 이색(李穡) 塵世悠悠一夢中(진세유유일몽중)循環榮辱儘無窮(순환영욕진무궁)人如逝水那能止(인여서수나능지)客與浮雲忽已空(객여부운홀기공)以酒爲名還作累(이주위명환작루)闔家待罪幸論功(합가대죄행론공)柳絲黃甚梨花白(유사황심리화백)寂寞林園春自濃(적막림원춘자농) 유유한 풍진 세상 한바탕 꿈속만 같아라 영고 성쇠가 돌고돌아 모두 끝이 없구려 인생은 유수 같아 어찌 머물게 하겠는가 나그네 뜬구름 같아 홀연 이미 헛되었네 술을 명분 삼았으나 도리어 누가 되었고 온가족 논죄 중에 공도 있었기 다행일세 버들꽃 노랗게 익고 배꽃은 하얗게 피어 적막한 수목 동산에 봄이 절로 깊어간다. 塵世(진세): 티끌 ..

卽事(즉사) – 이색(李穡)

고려말 삼은(三隱) 중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즉사(卽事)라는 칠언율시이다. 즉사란 눈 앞에서 보거나 듣거나 한 일을 말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쓴 시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선에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다시 원나라 과거에도 합격하여 주목을 받았던 목은 이색은 고려의 개혁을 앞장서서 주도하였으나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는 반대하였다. 그래서 그와 대척점에 있던 강경파 정도전과 남은 등은 조선 개국 후 그의 처형을 시도하였으나 이성계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왕자의 난 이후 정도전과 남은 등이 숙청되고 태종(太宗) 이방원이 즉위하면서 이색의 측근인 권근이 새로운 권력의 중심이 된 조정으로부터 ‘동방(東方)의 대유(大儒)’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학문은 ..

沃野縣客舍(옥야현객사) 次韻板上蔡學士寶文梨花詩(차운판상채학사보문이화시) – 이규보(李奎報)

고려 무신정권(1170~1270) 시절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배꽃에 대한 시가 고려 후기 문신인 최자(崔滋, 1188~1260)가 1254년 간행한 보한집(補閑集)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배나무를 단순한 유실수로만 인식하지 않고 그 꽃을 감상하는 꽃나무로도 인식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梨花(이화) - 이규보(李奎報) 初疑枝上雪黏華(초의지상설점화) 爲有淸香認是花(위유청향인시화) 飛來易見穿靑樹(비래이견천청수) 落去難知混白沙(낙거난지혼백사) 처음에는 가지 위에 눈꽃이 붙었나 의심했더니맑고 그윽한 향기 감돌아 이게 꽃인 줄 알았네푸른 나무 뚫고 날아들 땐 꽃잎 쉽게 보이더니흰 모래에 떨어지니 섞여서 분간하기 어렵구나. 黏(점) = 粘 붙다, 차지다穿(천) 뚫다, 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