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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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東界存撫使(기동계존무사) - 민사평(閔思平)

중국에서 해당(海棠)이라는 용어가 들어와 일부는 꽃사과나무로 제대로 사용되고 일부는 엉뚱하게 명사십리의 해당화를 이르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그럼 정작 중국 한자명 매괴(玫瑰)는 국내 언제 도입되었으며 사용되기는 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찾아 보니 이 용어 또한 고려시대에 이미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었음을 남아 있는 시로 알 수 있다. 문학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고려말 문신이자 학자인 민사평(閔思平 1295~1359)선생이 그의 문집 급암시집(及菴詩集)에 남긴 동계 존무사에게 부치다(寄東界存撫使)라는 제목의 시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 같다. 寄東界存撫使(기동계존무사) - 민사평(閔思平) 元帥臺前水自波(원수대전수자파)永郞浦外雪明沙(영랑포외설명사)玫瑰花下絲絲雨(매괴화하사사우)倒載蛾眉半醉何(도재아..

卽事(즉사) – 현일(玄鎰)

나이 든 사람이라면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서러마라'로 시작되는 우리 민요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대부분의 넘차소리 즉 상여소리에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고 일부 농요나 정선아리랑 등 아리랑에도 이런 구절로 된 가사가 있다. 이 구절이 원래 어디서 그리고 왜 유래되었는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앞뒤 가사는 전혀 다르게 다양하게 전개 되지만 이상하게 이 구절만은 어디서든 모두가 똑 같다. 이 구절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바로 이 해당화(海棠花)라는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분명 중국에서 꽃사과나무를 지칭하는 용어로 해당(海棠)을 우리 선조들이 받아들여 고려시대 이규보 선생 등의 시에도 많이 나왔는데 갑자기 이 해당화가 해안의 명사십리에 가서는 가시가 있는 장미의 일종인 때찔레..

해당(海棠)을 오용(誤用)한 선탄(禪坦) 스님

안축(安軸, 1282~1348) 선생과 비슷한 시기에 드디어 그 유명한 명사십리해당(明沙十里海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 용어를 처음 남긴 사람은 고려시대 스님인 선탄(禪坦, 생몰미상)이다. 이런 내용은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9)선생이 1614년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 사전 지봉유설(芝峯類說) 제14권 문장부칠(文章部七)의 방류(旁流)에 실려 있다. 거기에 시를 쓴 스님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에 선탄스님이야기가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어 그 전문을 소개한다. 前朝僧禪坦谷城人(전조승선탄곡성인)。즉 고려조 선탄스님은 곡성 사람인데其早春詩曰(기조춘시왈)。이른 봄 시로 쓰기를 無題(무제) – 선탄(禪坦) 스님 管絃聲碎竹外磵(관현성쇄죽외간)。水墨畫點煙中山(수묵화점연중산)。立馬..

海棠(해당) - 안축(安軸)

해당(海棠)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에서 꽃사과 등을 지칭하는 말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그런 의미로 사용하여 시로 남긴 작품들이 이규보 선생이나 진화 선생의 문집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쯤 후인 고려 말기 학자인 근재(謹齋) 안축(安軸, 1282~1348) 선생이 남긴 근재집(謹齋集)에서는 꽃사과가 아닌 백사장에서 잘 자라는 매괴(玫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변한다. 안축선생의 해당(海棠)이라는 시는 그 내용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관동팔경에서 본 장미의 일종인 가시 있는 지금의 해당화를 말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안축 선생은 1330~1331년 사이 강릉도(江陵道) 존무사(存撫使)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 존무사(存撫使)란 해당 지역 수령들을 감찰하던 관직이므로 강릉도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지..

海棠(해당) - 진화(陳澕)

고려 중기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선생과 동시대 인물인 매호(梅湖) 진화(陳澕, 생몰미상) 선생의 문집인 매호유고(梅湖遺稿)에 실린 아래 해당(海棠)이라는 시가 있는데 여기서는 내용으로 봐서는 장미의 일종인 오늘날의 해당화가 아닌 꽃사과나무인 것으로 추정된다. 海棠(해당) - 진화(陳澕) 酒痕微微點玉腮(주흔미미점옥시)暗香搖蕩隔林人(암향요탕격림인)紅杏紫桃無遠韻(홍행자도무원운)一枝都占上園春(일지도점상원춘) 술기운 살짝 올라 흰 볼이 발그스레하고그윽한 향기 멀리 숲속 사람을 뒤흔드네붉은 행화 자색 도화는 깊은 운치없는데해당화 홀로 정원의 봄 경치를 압도하네. 腮(시) 뺨, 볼搖蕩(요탕) 흔들거리며 움직이다. 흔들리다.紫桃(자도) 자두일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자색 꽃이 피는 도화로 추정

傷宅(상택) – 白居易(백거이)

상대택(傷大宅)이라고도 불리는 상택(傷宅)은 당대 시인 백거이의 연작시 진중음십수(秦中吟十首) 중 제3수인 오언고시 (五言古詩)이다. 여기서 진중(秦中)이란 장안(長安) 일대를 말한다. 이 시는 권문세가들의 호화 저택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묘사함으로써, 재벌가와 권세가들의 사치 풍조를 냉혹하게 폭로하고 비판하며, 중당 시기 전체 지배계층의 향락과 부패, 그리고 발전을 도모하지 않는 사회 현실을 깊이 반영한다. 또한 민생의 고통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국가의 운명에 대한 염려를 드러낸다. 시 전체의 언어는 소박하고 묘사는 섬세하며, 정서는 비통하고 분노에 젖어 침울하다. 특히 마지막 여섯 구의 질책은 한마디로 쏟아내는 듯해 매우 강렬하다. 이 시는 810년 전후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백거이는 수도 장안..

吳櫻桃(오앵도) – 白居易(백거이)

吴樱桃(오앵도)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지은 칠언시(七言詩)로, 백거이가 소주(蘇州)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창작되었으며, 시에서 말하는 오앵도는 당시 오지(吳地) 즉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상숙(常熟)에서 나는 앵도를 가리킨다. 이 시는 櫻桃(앵도) 즉 체리 벚나무를 주제로 동오 지역 체리의 풍성한 모습을 그려 내며, 그 색과 향기와 맛이 지닌 독특함을 묘사한다. 또한 새들이 몰래 먹고 사람들이 서로 따려 다투는 장면을 통해, 마지막에 “아쉽게도 바람과 비를 함께 맞으니, 내일 모레쯤이면 더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아름다운 것들이 쉽게 사라짐을 한탄하고 있다. 이 시 제목은 櫻桃라고 되어 있지만 본 시에서는 含桃(함도)라고 한 것은 앵도를 꾀꼬리(鶯)가 열매를 좋아한다고 鶯桃(앵..

久别离(구별리) – 李白(이백)

久别离(구별리)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창작 악부시(樂府詩)이다. 첫 두 구는 칠언구로 영원한 이별의 일을 말하며 부부가 그리워하는 고통의 이유를 드러내고, 이어 갑자기 두 개의 오언구로 주인공의 상실감을 드러냅니다. 또한 ‘황’ 자로 시작해 리듬의 변화를 주어, 감정이 갑자기 파문을 일으키게 하는 특징을 보여 준다. 또한 시에서 ‘지난해에 편지를 보냈다’, ‘올해에 편지를 보낸다’라고 연달아 말하는 방식, 구어체 문장과 같은 표현, 그리고 동풍에게 기원하는 방식은 모두 사(詞), 곡(曲), 민가(民歌)와 유사한 점이 있다. 시 전체는 모두 남편의 자술 어조로 쓰여, 오랜 이별 끝에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마음을 드러낸다. 久别离(구별리) – 李白(이백) 別來幾春未還家(별래기춘미..

美人梳頭歌(미인소두가) – 李賀(이하)

해방 후인 1950년대에 발표된 그 유명한 유행가 앵두나무처녀 때문만은 아니라도 우리 국민들은 거의 모두 앵두라고 부르지만 식물분류학상 정식 명칭은 앵도(櫻挑)나무이다. 그렇다고 어느 것이 옳다고도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원래 앵두라는 말이 중국에서 온 櫻挑(앵도)에서 변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정작 중국의 櫻挑는 앵두가 아니고 벚나무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시 중에서 왜 벚꽃을 노래한 시가 없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실제로는 중국에 櫻挑를 주제로 한 시가 많다. 주제는 아니더라도 櫻挑(앵도)가 등장하는 한시가 매우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국 한시의 앵도는 거의 모두 앵두가 아닌 벚나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

앵두, 살구꽃 피면 - 박용래

한 포기의 야생화만 봐도 울고 시래기 삶는 냄새에도 눈물 지어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었던 박용래(1925~1980)선생이 1975년 발표한 ‘앵두, 살구꽃 피면’이라는 시인데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 앵두꽃과 살구꽃에서 외할머니 목도리를 연상하며 눈물깨나 흘렸을 것 같다. 앵두, 살구꽃 피면 - 박용래 앵두꽃 피면앵두바람살구꽃 피면살구바람 보리바람에고뿔 들릴세라황새목 둘러주던외할머니 목수건

櫻桃(앵도) - 이숭인(李崇仁)

고려말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함께 이색(李穡, 1328∼1396)의 문하생으로 성리학의 정통을 이어받았고 당대 최고 수준의 문장력과 외교 문서 작성 능력을 인정받았던 문신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櫻桃(앵도)라는 시가 있다. 櫻桃(앵도) - 이숭인(李崇仁) 粲爛朱櫻熟(찬란주앵숙)團圓湛露濡(단원잠로유)摘來盤上看(적래반상간)箇箇是明珠(개개시명주). 찬란하게 붉은 구슬같은 앵두동글한 열매 이슬 머금고있네따다가 소반에 담아 바라보니하나 하나가 빛나는 구슬이네. 湛露(잠로): 듬뿍 내린 흠뻑 젖은 이슬.湛(잠) 이슬 맺힌 모양 잠, 괼 담, 담글 점 濡(유): 젖을 유. 이슬을 머금어 윤기가 흐르는 모습.

櫻桃(앵도) - 이규보(李奎報)

앵도나무는 시골 우물가에 많이 심어져 있어서 우리 자생종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중국 최북단 동북3성과 내몽고지역에서부터 중국 최남단 남쪽 사천성 운남성 및 서장성 등 거의 전역에서 자생하는 중국 고유종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문헌에 등장하므로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54권에 예종 6년 1111년 六月(6월) 中書省櫻桃結子(중서성앵도결자) 大如杏子(대여행자) 而中空無核(이중공무핵). 즉 “중서성(中書省)의 앵두나무가 열매를 맺었는데 크기는 살구만했으나 속이 비고 씨가 없었다.”라고 변괴가 발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무신집권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9~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다음과 같은 앵도(櫻桃)에 대한 율시가 있다...

有感(유감) – 이색(李穡)

梨花(이화)를 노래한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또 다른 칠언율시(七言律詩) 유감(有感)이다. 有感(유감) – 이색(李穡) 塵世悠悠一夢中(진세유유일몽중)循環榮辱儘無窮(순환영욕진무궁)人如逝水那能止(인여서수나능지)客與浮雲忽已空(객여부운홀기공)以酒爲名還作累(이주위명환작루)闔家待罪幸論功(합가대죄행론공)柳絲黃甚梨花白(유사황심리화백)寂寞林園春自濃(적막림원춘자농) 유유한 풍진 세상 한바탕 꿈속만 같아라 영고 성쇠가 돌고돌아 모두 끝이 없구려 인생은 유수 같아 어찌 머물게 하겠는가 나그네 뜬구름 같아 홀연 이미 헛되었네 술을 명분 삼았으나 도리어 누가 되었고 온가족 논죄 중에 공도 있었기 다행일세 버들꽃 노랗게 익고 배꽃은 하얗게 피어 적막한 수목 동산에 봄이 절로 깊어간다. 塵世(진세): 티끌 ..

卽事(즉사) – 이색(李穡)

고려말 삼은(三隱) 중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즉사(卽事)라는 칠언율시이다. 즉사란 눈 앞에서 보거나 듣거나 한 일을 말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쓴 시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선에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다시 원나라 과거에도 합격하여 주목을 받았던 목은 이색은 고려의 개혁을 앞장서서 주도하였으나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는 반대하였다. 그래서 그와 대척점에 있던 강경파 정도전과 남은 등은 조선 개국 후 그의 처형을 시도하였으나 이성계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왕자의 난 이후 정도전과 남은 등이 숙청되고 태종(太宗) 이방원이 즉위하면서 이색의 측근인 권근이 새로운 권력의 중심이 된 조정으로부터 ‘동방(東方)의 대유(大儒)’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학문은 ..

沃野縣客舍(옥야현객사) 次韻板上蔡學士寶文梨花詩(차운판상채학사보문이화시) – 이규보(李奎報)

고려 무신정권(1170~1270) 시절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배꽃에 대한 시가 고려 후기 문신인 최자(崔滋, 1188~1260)가 1254년 간행한 보한집(補閑集)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배나무를 단순한 유실수로만 인식하지 않고 그 꽃을 감상하는 꽃나무로도 인식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梨花(이화) - 이규보(李奎報) 初疑枝上雪黏華(초의지상설점화) 爲有淸香認是花(위유청향인시화) 飛來易見穿靑樹(비래이견천청수) 落去難知混白沙(낙거난지혼백사) 처음에는 가지 위에 눈꽃이 붙었나 의심했더니맑고 그윽한 향기 감돌아 이게 꽃인 줄 알았네푸른 나무 뚫고 날아들 땐 꽃잎 쉽게 보이더니흰 모래에 떨어지니 섞여서 분간하기 어렵구나. 黏(점) = 粘 붙다, 차지다穿(천) 뚫다, 뚫고..

杏花诗(행화시) – 庾信(유신)

살구나무의 원산지 중국의 문인들이 살구꽃에 대하여 읊은 오언고시(五言古詩)에 눈을 돌려보자. 우선 당나라 이전의 시인으로는 남북조시대의 문학을 집대성하였다고 알려진 북주(北周)의 대문호 유신(庾信, 513~581)이라는 시인이 쓴 행화시(杏花诗)를 들 수 있겠다. 유신은 남양 신야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수재라는 소리를 들은 천재로서 남조 양나라에서 북조의 서위에 사신으로 간 사이에 나라가 망하여 서위와 북주에 계속 잡혀서 벼슬하면서 고국이 그리워 사람은 본분을 망각하면 안된다는 뜻으로 그가 징조곡(徵调曲)에서 언급한 落其实者思其树(낙기실자사기수) 饮其流者怀其源(음기류자회기원)에서 그 유명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杏花诗(행화시) – 庾信(유신) 春色方盈野(춘색방영..

李生窺墻傳(이생규장전) – 김시습(金時習)

행화(杏花)가 언급된 소설로는 조선 초 생육신 중 한 명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선생이 쓴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李生窺墻傳(이생규장전) 中(중) – 김시습(金時習) 芙蓉帳暖香如縷(부용장난향여루)窓外霏霏紅杏雨(창외비비홍행우)樓頭殘夢五更鍾(누두잔몽오경종)百舌啼在辛夷塢(백설제재신이오)燕子日長閨閤深(연자일장규합심)懶來無語停金針(나래무어정금침)花底雙雙蛺蝶飛(화저쌍쌍협접비)爭趂落花庭院陰(쟁진낙화정원음)嫩寒輕透綠羅裳(눈한경투녹라상)空對春風暗斷腸(공대춘풍암단장)脉脉此情誰料得(맥맥차정수료득)百花叢裡舞鴛鴦(백화총리무원앙)春色深藏黃四家(춘색심장황사가)深紅淺綠映窓紗(심홍천록영창사)一庭芳草春心苦(일정방초춘심고)輕揭珠簾看落花(경게주렴간락화) 연화 휘장 따스한 향기 실..

閏三月二日。約與李花史侍郞 鼎臣 – 신위(申緯)

자하(紫霞) 또는 경수당(警修堂)이란 호를 쓴 신위(申緯, 1769~1845) 선생이 1841년에 쓴 閏三月二日。約與李花史侍郞 鼎臣,李東樊 晩用。雅集海居都尉南園。拈韻共賦 三絶句 즉 윤 3월 2일. 이화사 시랑 정신, 동번 이만용과 더불어 초대받아 해거도위댁 남원에 모여 운을 짚어가며 함께 짓다. 칠언절구 3수.라는 제목이 시에 보면 그 당시 경성 십만 가구 집집마다 살구꽃이 만개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선조들은 개화기 일본으로부터 왕벚나무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매년 봄이면 이렇게 살구꽃을 보면서 봄 꽃놀이를 하였던 것이다. 風流花史與東樊(풍류화사여동번)喚我金樽醉沁園(환아금준취심원)大抵王城十萬戶(대저왕성십만호)春來都是杏花村(춘래도시행화촌)。 풍류 넘치는 화사 이정신과 동번 이만용을나와 초대..

杏花(행화) - 최유청(崔惟淸)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인 최유청(崔惟淸, 1093~1174)의 한시 행화(杏花)가 남아 있는데 언제 어디서 쓴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최유청이 워낙 고려에서 개경뿐만 아니라 북쪽 동북면과 지금의 서울인 양주 그리고 충청도 충주와 경상도 상주 등 여러 지역에서 관직을 수행한 데다가 중국 송나라와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바도 있어 실제 어디서 이런 살구꽃이 만발한 광경을 보고 흥에 겨워 이 시를 썼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지명의 언급이 없고 장자(莊子)를 거론한 점으로 봐서는 중국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남경유수사나 충주목사로 좌천된 시절 답답한 마음에 행화가 만발한 광경을 접하고서 호접몽(나비꿈)으로 들어가 잠시 위안을 삼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행화(杏花) – 최유청(崔惟淸) 平生最是戀風光(평생..

惠通降龍讚(해통항룡찬) – 일연(一然)

일연(一然, 1206~1289) 스님은 삼국유사 신주(神呪) 부제 혜통항룡(惠通降龍)편에서 신라 고승 혜통(惠通) 스님 관련된 일대기를 수록하고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그를 찬양(讚揚)한 시를 추가했다. 혜통(惠通) 스님은 7세기경 신라의 승려로 해동진언종(海東眞言宗)의 개조(開祖)로 알려져 있다. 山桃溪杏映籬斜(산도계행영리사)一徑春深两岸花(일경춘심양안화)頼淂郎君閑捕獺(뇌득랑군한포달)盡教魔外逺亰華(진교마외원경화) 산복숭아와 계곡 살구가 울타리를 비스듬히 비추고봄이 깊어가니 길 양 언덕에 꽃이 가득히 피었구나다행하게도 혜통스님이 짬내어 수달을 잡은 덕분에마귀와 외도를 제대로 교화해 경성에서 멀리보냈네. 頼淂(뇌득) ‘다행히 ~덕분에’, ‘~을 힘입어’라는 뜻魔外(마외) 마귀와 외도(外道). 당나라와 신라..

正月二日立春(정월이일입춘) 二首(이수) – 이황(李滉)

퇴계(退溪) 선생 이황(李滉, 1502~1571)이 52세 당시인 1552년 낙향하여 안동에 머물 당시 입춘을 맞이하여 매화시 두 수를 썼는데 그 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이 시는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에 正月二日立春(정월이일입춘)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퇴계선생연보(退溪先生年譜) 제1권에 제목 없이 수록되어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 시가 기생 두향(杜香)에게 써서 보낸 것이라고 한다. 퇴계의 11대 손으로 고종 때 홍문관 교리를 지낸 치암 이만현의 안동 고택 기둥에 남아 있다고 한다. 梅窓(매창)의 매화는 창 밖에서 꽃망울이 움트는 매화 소식일 수도 있겠지만 제목이나 내용으로 봐서 음력 1월 입춘이라면 아무래도 실내 화분에서 길러 꽃 피운 매화일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 정말 화분이라면 한둘..

奉酬金慎仲詠梅(봉수김신중영매) – 이황(李滉)

우리나라에서 매화시를 가장 많이 남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2~1571)선생의 매화시를 보자. 중국의 많은 매화시나 고려말 또는 조선초 매화시와는 달리 퇴계의 매화시에는 정치적인 색채는 없다. 퇴계에게 매화는 견정불굴(堅貞不屈)의 의지를 가진 고결지사(高洁志士)라기보다는 세속의 띠끌이 없는 순수함과 아름답고 격조 높은 운치를 가진 사려 깊은 벗이자 스승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매화시를 남긴 문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매화를 꽃나무 그 자체로 보거나 중국의 도연명이나 임포와 같은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그에게 자연의 일부로서 풍류의 대상이거나 인격을 부여하여 수시로 교감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여타 시인들이 읊은 매화는 한겨울인 음력 정초에 눈과 얼음을 뚫고서 꽃을 ..

探梅(탐매) 二首(2수) - 김시습(金時習)

매화를 무척 사랑하여 아예 매월당(梅月堂)이라는 호를 쓴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매화시를 소개한다. 그는 조선시대 최고의 매화시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수많은 매화시를 발표하여 훌륭한 작품도 많지만 그 중에서 탐매 14수 중 제 2수(首)가 모란과 매화를 비교한 내용이다. 여기서 모란을 불의에 아부하여 권세를 누리는 세조의 계유정난을 주동하거나 협조한 이른바 훈구파(勳舊派)에 비유하고 매화를 사육신이나 생육신 등 절의파(節義派)에 비유하여 매화의 정백(貞白)에 반하여 훈구파에는 다소 모욕적인 춘정(春情)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다. 아마 모란과 매화의 중국 국화논쟁에도 모란은 지역적으로는 북방원산에 보수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매화는 남방원산에다가 진보 개혁층을 대변하고 있어 쉽게 결..

매화(梅花) - 이규보(李奎報)

이미 서기 24년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의 기록에 매화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으므로 최소한 그 이전에 중국에서 매화를 도입하여 재배한 것으로 보이는 우리나라는 885년 신라 헌강왕 시절 당(唐)에 파견된 견당유학생(遣唐留學生)으로 신라 10현 중에 한 명이라는 최광유(崔匡裕)선생이 쓴 정매(庭梅)라는 시가 매화에 관한 최초의 시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인 故園還有臨溪樹(고원환유임계수) 應待西行萬里人(응대서행만리인)을 봤을 때는 국내가 아닌 중국 유학시절 만리 타국에서 고향의 시냇가 매화를 그리며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도연명의 은일생활을 동경한다면서도 고려시대 최씨 무신정권에서 입신한 문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쓴 매화라는 시가 있어 소개한다. 달나라 선녀인 항아(姮..

卜算子·咏梅(복산자·영매) - 毛澤東(모택동)

1961년 12월 모택동(毛澤東, 1893~1976)이 쓴 복산자·영매(卜算子·咏梅)라는 작품이다. 1949년 수립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이던 그가 1960년 6월 루마니아에서 열린 공산당국제회의에서 소련과 논쟁 후 갈라서 수많은 협정이 파기된 여파로 경제발전에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어 3년간 고생하게 된다. 그 어려운 시기에 1961년 12월 광주 전국 공산당회의를 앞두고 답답한 마음에 남송 시인 육유(陆游, 1125~1210)가 쓴 복산자 영매라는 동명 시사(詩詞)를 읊다가 매화와 같은 위무불굴(威武不屈)의 정신과 공산혁명 특유의 낙관주의(乐观主义) 정신으로 역경을 타파하고 싶은 심정을 잘 나타낸 노래로 평가 받고 있다. 이렇듯 매화는 원래 개혁과 저항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모택동(毛澤東)의 ..

卜算子·咏梅(복산자 · 영매) - 陸游(육유)

남송(1127~1279) 저명한 매화 시인인 육유(陆游, 1125~1210)가 쓴 복산자 영매(卜算子·咏梅)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이런 형식은 시(詩)라 하지 않고 사(詞)라고 한다. 당나라 중엽에 생겨 송대에 번성하였던 문학형식으로 주로 노래로 불리기에 가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육우는 북송시절 태어나 남송에서 자랐는데 진사시험에서 장원을 하였으나 그 당시 간신인 승상 진회(秦桧)의 손자보다 앞섰다고 이듬해 파면되었다. 육유가 여진족에 빼앗긴 북쪽 실지의 수복을 주장하는 파라서 투항파의 수뇌인 진회의 미움을 산 것도 원인이었다. 그 후 진회가 죽은 다음에야 관직에 나갔으나 실지수복을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매번 현실 안주를 원하는 신료들에 의하여 좌절되고 두 번이나 파직된..

百日紅(백일홍) – 성삼문(成三問)

앞 게시글의 시 爛漫紫薇(난만자미)에서는 자미(紫薇)라고 했던 성삼문은 같은 나무를 두고서 여기서는 백일홍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조선 초에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다가 점차 자미라는 말은 사라지고 백일홍이 국내서 널리 쓰이는 이름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국내 도입 종의 꽃 색상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중국 자미의 꽃 색상은 자색(紫色)이 기본이지만 국내는 주로 분홍색(粉紅色) 꽃 품종 즉 홍미(紅薇)가 들어왔기에 자미(紫薇)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백색 꽃이 피는 품종도 있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은미(銀薇)라고 부른다. 百日紅(백일홍) – 성삼문(成三問) 昨夕一花衰(작석일화쇠)今朝一花開(금조일화개) 相看一百日(상간일백일) 對爾好衡盃(대이호형배) 어제 저녁 한 ..

爛漫紫薇(난만자미) – 성삼문(成三問)

爛漫紫薇(난만자미) - 성삼문(成三問) 歲歲絲綸閣(세세사륜각) 抽毫對紫微(추호대자미)今來花下飮(금래화하음) 到處似相隨(도처상사수) 해마다 승정원에서 근무할 때는 붓을 들고 자미화를 대하였다네 오늘은 자미화 아래서 술마시니 가는 곳마다 뒤따르는 듯하구나. 抽毫(추호) 글을 쓰기 위하여 붓을 꺼내는 것을 말함絲綸閣(사륜각) 중국 중서성 즉 자미성을 말하며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이 근무하였던 조선시대 승정원을 말함

百日红(백일홍) – 楊愼(양신)

중국 원산 자미화(紫薇花)를 가져와 심으면서 처음에는 당연히 우리도 자미화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점차 백일홍이라고 부르다가 그 말이 늘어져서 현재의 배롱나무가 되었다는데 그렇다면 백일홍(백일홍)이라고 부른 것은 우리 선조들 독단적인 이름일까? 물론 아니다. 이 이름 또한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며 그 원조는 이미 송나라 자료에 나오고 있으나 시문에서는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명대 문학가 양신(杨慎, 1488~1599)이 지은 백일홍(百日红)이라는 재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라고 한다. 百日红(백일홍) – 楊愼(양신) 李径桃溪与杏丛(이경도계여행총)春来二十四番风(춘래이십사번풍)朝开暮落浑堪惜(조개모락혼감석)何似雕阑百日红(하사조란백일홍) 자두 오솔길 도화 계곡과 살구나무 숲봄바람에 매 오일마다 들리..

紫薇花(자미화) - 杨万里(양만리)

자미화의 긴 개화기간에 대한 원산지인 중국의 남송 유명 시인인 양만리(杨万里, 1127~1206)가 쓴 칠언절구(七言絶句)로 疑露堂前紫薇花兩株, 每自五月盛開, 九月乃(응로당전자미화양주 매자5월성개 9월내)라는 매우 긴 이름으로도 불리는 시이다.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필치로 자미화의 독특한 자태와 강인한 생명력을 그려 낸다. 긴 세월 동안 자미화는 화려한 색채와 길게 이어지는 개화 기간으로 여름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았을 뿐만 아니라, 문인과 예술가들의 붓끝에서 사랑 받는 존재가 되어 깊은 문화적 의미를 담아 왔다. 紫薇花(자미화) - 杨万里(양만리) 似痴如醉丽还佳(사치여취려환가),露压风欺分外斜(노압풍기분외사)。花谁道无红百日(화수도무홍백일),紫薇长放半年花(자미장방반년화) 마치 미친 듯 취한 듯 곱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