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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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花源记(도화원기) - 陶渊明(도연명)

晋太元中(진태원중) 武陵人捕鱼为业(무릉인포어위업)。缘溪行(연계행) 忘路之远近(망로지원근)。忽逢桃花林(홀봉도화림) 夹岸数百步(협안수백보) 中无杂树(중무잡수) 芳草鲜美(방초선미) 落英缤纷(낙영빈분)。渔人甚异之(어인심이지) 复前行(부전행) 欲穷其林(욕궁기림)。 缘(연) 가장자리, 인연, 까닭, ~을 따르다远近(원근) 편의상 복사, 그냥 멀다는 의미夹(협) 끼우다, 사이에 두다 夹岸(협안) - 两岸(양안) cf. 狭 좁을 협 峡 골짜기 협 진나라 태원 연간에 무릉 땅에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시내를 따라 가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시내 양 기슭 수백 보에 걸쳐 잡목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복사나무 숲을 만났다. 싱그럽고 향기로운 풀들이 아름다웠고 떨어지..

陶渊明(도연명)의 桃花源记(도화원기)란?

桃花源记 又名 桃花源诗序,是晋宋之际文学家陶渊明为其诗作《桃花源》创作的序言,收录于《陶渊明集》,约成文于南朝宋永初二年(421年),为现行中学语文课本的经典入选篇目 。 도화원기는 도화원시서라고도 하며, 진·송 교체기의 문학가 도연명이 자신의 시 도화원을 위해 지은 서문으로, 도연명집에 수록되어 있다. 대략 서기 421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 현행 중국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创作背景:晋宋之际门阀制度垄断仕进通道,家道中落的陶渊明空有济世抱负却无从施展,借创作虚构的理想社会抒发情志 。 창작 배경: 진·송 시기 문벌 제도가 벼슬길을 독점하면서, 가세가 기울어진 도연명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포부만 있을 뿐 이를 펼 곳이 없었고, 허구의 이상사회를 창작함으로써 자신의 정서를 표출하였다. 内容简介:全文共320字,以武陵渔人行踪为..

饮酒(음주) 其七(기칠) - 陶渊明(도연명)

饮酒(음주) 其七(기칠) - 陶渊明(도연명) 秋菊有佳色(추국유가색)裛露掇其英(읍로철기영)泛此忘忧物(범차망우물)远我遗世情(원아유세정)一觞虽独进(일상수독진)杯尽壶自倾(배진호자경)日入群动息(일입군동식)归鸟趋林鸣(귀조추림명)啸傲东轩下(소오동헌하)聊复得此生(요부득차생) 가을 국화는 아름다운 빛을 지니니이슬을 머금은 그 꽃을 채취하여서꽃잎을 여기 술잔 속에다 띄우도다나를 세속과 멀리 떨어지게 만드네술 한잔을 혼자서 마시고 있지마는잔 비면 술병이 저절로 기울어지네해지면 모든 무리 움직임을 멈추고 서둘러 돌아온 새는 숲에 와서 우네동창 아래 여유롭게 거닐고 있으니 그럭저럭 이번 생을 되찾은 듯하네. 裛(읍) 책갑, 두르다, 담그다, 적시다掇(철) 줍다 채취하다 만지작거리다忘忧物(망우물) 술의 다른 이름觞(상) 잔趋(..

饮酒(음주) 其六(기육) - 陶渊明(도연명)

饮酒(음주) 其六(기육) - 陶渊明(도연명) 行止千万端(행지천만단)谁知非与是(수지비여시)是非苟相形(시비구상형)雷同共誉毁(노동공예훼)三季多此事(삼계다차사)达士似不尔(달사사불이) 咄咄俗中愚(돌돌속중우)且当从黄绮(차당종황기) 세상에는 수많은 행위가 있는데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있겠나만약 시비를 서로 비교한다면은 남 따라서 칭찬 비난 할 것이다하상주말 이런 일이 흔하였지만 달인들은 결코 휩쓸리지 않았네 세속을 따르는 어리석은 자들아 잠시 상산사호 뒤를 따르려무나 端(단) 끝, 항목, 까닭相形(상형) 서로 비교誉毁(훼예) 칭찬과 비난雷同(뇌동) 남의 말을 따라 하다. 같다三季(삼계) 夏商周(하상주) 3대의 말기达士(달사) 현명하고 사리에 밝은 사람咄咄(돌돌) 뜻밖의 일에 놀라 지르는 소리.黄绮(황기) 진나라 ..

饮酒(음주) 其四(기사) - 陶渊明(도연명)

饮酒(음주) 其四(기사) - 陶渊明(도연명) 栖栖失群鸟(서서실군조)日暮犹独飞(일모유독비)徘徊无定止(배회무정지)夜夜声转悲(야야성전비)厉响思清远(여향사청원)去来何依依(거래하의의)因值孤生松(인치고생송)敛翮遥来归(염핵요래귀)劲风无荣木(경풍무영목)此荫独不衰(차음독불쇠)托身已得所(탁신이득소)千载不相违(천재불상위)。 불안한 모습의 무리 잃은 새 한 마리 해질 무렵에 여전히 혼자 날아오르네이리저리 날아다니나 정해진 곳 없어 밤이면 울음 소리 더욱 애처로워지네크게 울며 맑고 먼 경지 바라고 있어 오고 가는 모습 그리움 가득 차 있네마침 외로운 소나무 하나를 만났기에 날개를 접고서 먼 곳에서 되돌아온다차가운 바람에 모든 나무 시들었지만소나무 그늘만이 홀로 시들지 않도다 이미 몸을 의지 할 자리를 잡은 이상 천년이 되어도 ..

饮酒(음주) 其三(기사) - 陶渊明(도연명)

饮酒(음주) 其三(기사) - 陶渊明(도연명) 道丧向千载(도상향천재)人人惜其情(인인석기정)有酒不肯饮(유주불긍음)但顾世间名(단고세간명)所以贵我身(소이귀아신)岂不在一生(기부재일생)一生复能几(일생부능기)倏如流电惊(숙여류전경)鼎鼎百年内(정정백년내)持此欲何成(지차욕하성)! 도가 쇠퇴한지가 어언 천 년이니사람들이 정 나누기를 꺼려 하네술이 있어도 마시려 하지도 않고단지 세상 헛된 명성만 쫓는다네나 자신이 귀하다고 여기는 것도단 한번뿐인 인생에 있지 않던가인생은 또 얼마나 길다는 말인가번개 같은 짧음에 사람들 놀라네한평생 내내 매우 바쁘게 살아도이런 욕망 품는다면 뭘 이루겠나 丧(상) = 喪 잃다, 기가 꺾이다, 죽다载(재) = 載 싣다, 가득 차다, 해, 년惜(석) 아까워한다肯(긍) 기꺼이 ~하다顾(고) 뒤돌아보다,..

饮酒(음주) 其二(기이) - 陶渊明(도연명)

饮酒(음주) 其二(기이) - 陶渊明(도연명) 积善云有报(적선운유보)夷叔在西山(이숙재서산)善恶苟不应(선악구불응)何事空立言(하사공립언)!九十行带索(구십행대삭)饥寒况当年(기한황당년)不赖固穷节(불뢰고궁절)百世当谁传(백세당수전)。 선을 쌓으면 보답이 있다고 말하지만 백이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네선행과 악행에 이렇게 반응이 없다면 어떻게 헛된 가르침 말들을 세웠는가!영계기 선생은 아흔에 새끼줄 매고서 장년 때보다도 심한 기근과 추위에도가난 속에서도 지킨 절개가 없었다면 백세 뒤에 누가 이름을 전하였겠는가 云(우) = 雲 말하다. 이르다 구름西山(서산) 首阳山(수양산)夷叔(이숙):상(商)나라 말기 은사 伯夷(백이)와 叔齐(숙제)苟(구) 만약 함부로何事(하사) 어째서立言(입언) 수립격언赖(뢰) 나쁘다, 좋지않다,..

饮酒二十首(음주이십수) 序文(서문) - 陶渊明(도연명)

도연명의 음주 20편은 연작시이므로 시인이 쓴 짧은 서문이 있는데 그 것을 소개한다. 饮酒二十首(음주이십수) 序文(서문) - 陶渊明(도연명) 余闲居寡欢(여한거과환) 兼比夜已长(겸비야이장)偶有名酒(우유명주) 无夕不饮(무석불음) 顾影独尽(고영독진)。忽焉复醉(홀언부취)。既醉之后(기취지후) 辄题数句自娱(첩제수구자오) 纸墨遂多(지묵수다)。辞无诠次(사무전차) 聊命故人书之(료명고인서지) 以为欢笑尔(이위환소이)。 나는 한가롭게 지내며 기쁜 일이란 거의 없는데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 오는데다가 가끔 좋은 술이 생길 때면 매일 저녁 홀로 그림자와 함께 마시다가 금새 다시 취하곤 한다. 술에 취한 다음에는 심심풀이로 몇 구씩 시를 짓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글들이 점차 많아졌다. 문체들이 아무런 두서가 없어서 옛 친구에게..

饮酒(음주) 其一(기일) - 陶渊明(도연명)

饮酒(음주) 其一(기일)은 동진 시인 도연명(陶渊明, 365~427)이 서기 417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지은 오언고시(五言古诗)로 도연명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연작 음주 20수 중 첫 번째 편으로 도연명이 전원에 은거하여 술을 마시며 한가로이 생각한 바를 기록한 시이다. 이 시는 식물의 성장과 쇠퇴, 여름과 겨울의 변화와 같은 자연 현상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진나라 동릉후 소평(邵平)이 나라가 멸망한 후 오이를 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은둔자의 세속적인 명예와 불명예에 대한 초연한 태도를 표현하며 도연명의 은둔 철학 즉 세속적인 근심을 초월하는 철학을 구현하고 있다. 간결하고 명료한 언어 속에 철학적 성찰을 담아낸 이 시는 도연명의 원숙한 오언고시(五言古诗) 기법을 보여준다..

乞食(걸식) - 陶渊明(도연명)

乞食(걸식)은 진송(晋宋) 시대 위대한 시인 도연명(陶渊明, 365~427)이 쓴 오언시(五言詩)이다. 이 시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음식을 구걸하러 나갔다가 남들에게 환대를 받은 시인의 경험을 담고 있다. 시인의 말년 궁핍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그의 소박하고 진실한 성품을 드러낸다. 처음 네 구는 구체적인 행동과 내면의 고뇌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중간 여섯 구는 활기찬 대화와 즐거운 잔치 그리고 시 낭송까지 이어지는 따뜻한 환대를 묘사한다. 마지막 네 구는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애틋하고 깊은 분한 마음을 담아낸다. 시의 언어는 간결하고 꾸밈없지만 인간미의 아름다운 빛을 발산한다. 실제로 이 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도연명이 62세인 426년에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시인은 몸이 약하..

咏贫士(영빈사) 其七(기칠) - 陶渊明(도연명)

이번 詠貧士(영빈사) 7번째 수는 동한 말기 오나라의 황자렴(黄子廉)에 대한 이야기이다. 삼국지의 오나라 황개전 주석에는 오서를 인용하여 "황개(黃蓋)는 전 남양현 황자렴의 후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왕응린의 곤학기문에는 풍속통을 인용하여 "영수의 황자렴은 말이 물을 마실 때마다 물에 동전을 대금으로 던졌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청렴한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동일 인물인 황자렴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는 과거 남양태수를 역임했으며 청렴한 인물로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咏贫士(영빈사) 其七(기칠) - 陶渊明(도연명) 昔在黄子廉(석재황자렴)弹冠佐名州(탄관좌명주)一朝辞吏归(일조사리귀)清贫略难俦(청빈략난주)年饥感仁妻(년기감인처)泣涕向我流(읍체향아류)丈夫虽有志(장부수유지)..

咏贫士(영빈사) 其六(기육) - 陶渊明(도연명)

咏贫士(영빈사) 其六(기육) - 陶渊明(도연명) 仲蔚爱穷居(중위애궁민)绕宅生蒿蓬(요택생고봉)翳然绝交游(예연절교유)赋诗颇能工(부시파능공)举世无知者(거세무지자)止有一刘龚(지유일유공)此士胡独然(차사호독연)?实由罕所同(실유한소동)介焉安其业(개언안기업)所乐非穷通(소락비궁통)人事固以拙(인사고이졸)聊得长相从(료득장상종) 중위 선생 궁하게 살기를 좋아하여 집 주변 잡초들만 무성히 자랐다네숨어 살며 사람들과 교유 끊었지만 시를 짓는 능력은 자못 뛰어났다네세상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아도오직 친구 유공 한 사람뿐이었다네이 선비 어찌 이리 홀로 지냈을까?뜻 맞는 사람 드물었기 때문이라네곧고 굳은 자세로 본분을 지켰다니낙이 곤궁 영달에 좌우되지 않았네세상 살아가는 일에 본래 서투르니 그저 그의 뜻을 오래도록 따르리라 ..

咏贫士(영빈사) 其五(기오) - 陶渊明(도연명)

작가인 도연명(陶渊明, 365~427)은 오언고시(五言古诗)인 영빈사(詠貧士) 제 5수에서는 동한시대 가난한 선비인 袁安(원안, ? ~ 92)과 阮公(완공)을 기리며 본받고자 노래하고 있다. 원안에 대한 기록은 여남선현전(汝南先贤传)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원안은 낙양에 머물고 있었던 시절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낙양 현령이 시찰을 나갔는데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고 구걸하는 선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안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길이 아예 막혀 있었다. 현령은 원안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눈을 치우게 한 후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원안은 뻣뻣하게 누워 있었다. 현령이 왜 나오지 않았냐고 묻자, 원안은 '폭설 때문에 모두 배가 고픈데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

咏贫士(영빈사) 其四(기사) - 陶渊明(도연명)

咏贫士(영빈사) 其四(기사) - 陶渊明(도연명) 安贫守贱者(안빈수천자)自古有黔娄(자고유검루)好爵吾不荣(호작오불영)厚馈吾不酬(후궤오불수)一旦寿命尽(일단수명진)弊服仍不周(폐복내부주) 岂不知其极(기부지기극)非道故无忧(비도고무우)从来将千载(종래장천재)未复见斯俦(미부견사주)朝与仁义生(조여인의생)夕死复何求(석사부하구)。 빈천한 가운데 편안하게 도를 지킨 자 예부터 검루 선생이 본보기가 되었네좋은 작위는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고후한 선물은 갚을 수 없어 마다하였네어느 날 수명이 다하여서 돌아 갔는데가진 옷으로 몸 하나 가리기 어려웠네그 가난 극심함 어찌 그가 몰랐겠는가?도와 무관한 일 근심치 않았을 뿐이네그로부터 천 년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그와 같은 현인을 다시 보지 못한다네아침에 일어나 仁과 義 道를 행한다면 ..

咏贫士(영빈사) 其三(기삼) - 陶渊明(도연명)

咏贫士(영빈사) 其三(기삼) - 陶渊明(도연명) 荣叟老带索(영수로대삭)欣然方弹琴(흔연방탄금)原生纳决履(원생납결리)清歌畅商音(청가창상음)重华去我久(중화거아구)贫士世相寻(빈사세상심) 弊襟不掩肘(폐금불엄주)藜羹常乏斟(여갱상핍작)岂忘袭轻裘(기망습경구)苟得非所钦(구득비소흠)赐也徒能辨(사야도능변)乃不见吾心(내불견오심)。 영 노인은 허리를 노끈으로 매고서도즐겁기만 한 모습으로 거문고를 타네원헌은 헤어진 신발을 신고 있으면서맑고 시원하게 상음곡 노래를 부르네순임금 시대는 오래 전에 가버렸지만 세상에 가난한 선비는 계속 나타난다누더기 옷은 팔꿈치도 가리지 못하고명아주 국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다네어찌 가죽 옷 입는 거 좋은 줄 모르랴구차하게 얻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네자공은 쓸데없이 말재주에만 능할 뿐 결국 내 마음을 ..

咏贫士(영빈사) 其二(기이) - 陶渊明(도연명)

咏贫士(영빈사) 其二(기이) - 陶渊明(도연명) 凄厉岁云暮(처려세운모)拥褐曝前轩(옹갈포전헌)南圃无遗秀(남포무유수)枯条盈北园(고조영북원)倾壶绝馀沥(경호절여력)闚灶不见烟(규조불규연)诗书塞座外(시서색좌외)日昃不遑研(일측불황연)闲居非陈厄(한거비진액)窃有愠见言(절유온견언)何以慰吾怀(하이위오회)赖古多此贤(뇌고다차현)。 쓸쓸하고 매서운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거친 옷 걸치고 앞뜰에서 햇볕을 쬐네남쪽 밭에는 남은 채소가 하나도 없고 북쪽 밭에는 시든 가지들만 가득 찼네병에는 술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고부엌에서는 연기조차도 보이지를 않네 서책들은 자리 옆에 가득 쌓여 있지만, 해 저물어도 그를 읽을 여유가 없도다.고요히 사는 것이 진의 곤경은 아니리 나도 모르게 마음 속 불만이 나타나네어떻게 내 마음을 위로할 수가 있..

咏贫士(영빈사) 其一(기일) - 陶渊明(도연명)

咏贫士(영빈사) 其一(기일) - 陶渊明(도연명) 万族各有托(만족각유탁)孤云独无依(고운독무의)暧暧空中灭(애애공중멸)何时见馀晖(하시견여휘)朝霞开宿雾(조하개숙무)众鸟相与飞(중조상여비)迟迟出林翮(지지출림핵)未夕复来归(미석부래귀)量力守故辙(양력수고철)岂不寒与饥(기불한여기)? 知音苟不存(지음구부존)已矣何所悲(이의하소비)。 만물을 저마다 의지할 곳이 있으나 외로운 구름만이 기댈 곳이 없도다.아득한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리니 언제 남은 빛을 다시 볼 수 있을까?아침 노을이 밤안개를 걷어 버리니 많은 새들이 서로 어울려 날아간다.느릿느릿 날갯짓으로 숲 나섰지만 저녁이 되기도 전에 다시 돌아오네.분수를 알아 고인들 자취를 따르니 어찌 춥고 배고프지 않을 수 있겠나? 혹 마음 통하는 진정한 벗이 없다면 아 그렇다고 어찌 ..

도연명의 咏贫士 七首(영빈사 칠수)란?

이 연작시는 남조 송나라 시대 서기 426년 도연명이 강주자사 단도제(檀道济)가 선물한 양식과 고기를 받기를 거절하기 전후에 지은 것으로 도연명이 말년에 마음에 품은 생각을 읊은 시라고 한다. 咏贫士七首是晋宋之际文学家陶渊明的组诗作品。这七首诗通过对古代贫士的歌咏,表现了诗人安贫守志、不慕名利的情怀。 영빈사칠수는 진송 시대 작가 도연명의 연작시이다. 이 일곱 수의 시는 고대의 가난한 선비들을 노래함으로써, 시인이 가난 속에서도 뜻을 지키고 명예와 이익을 탐하지 않고자 했던 심정을 드러낸다. 第一首诗以孤云、独鸟自况,象征着诗人孤独无依的处境和命运,表现出诗人守志不阿的高洁志趣; 첫 번째 시는 외로운 구름과 홀로 있는 새를 자신에 비유함으로써, 시인의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처지와 운명을 상징하고, 뜻을 굽히지 않는 시인의..

归园田居(귀원전거) 其六(기육) - 陶渊明(도연명)

귀원전거(归园田居) 제 6수는 작자에 대한 논쟁이 있다. 송나라 소동파(蘇東坡)는 도연명(陶渊明, 365~427)의 작품이라고 인정했지만 후세 학자들은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강엄(江淹, 444~505)이 도연명의 시풍을 모방하여 쓴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래서 이 시를 강엄(江淹) 작 잡체시 도정군잠전거(杂体诗 陶征君潜田居)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征君(정군)은 관직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种苗在东皋(종묘재동고)苗生满阡陌(묘생만천맥)虽有荷锄倦(수유하서권)浊酒聊自适(탁주료자적)日暮巾柴车(일모건시거)路暗光已夕(노암광이석)归人望烟火(귀인망연화)稚子候檐隙(치자후첨극)问君亦何为(문군역하위)百年会有役(백년회유역)但愿桑麻成(단원상마성)蚕月得纺绩(잠월득방적)素心正如此(소심정여차)开径望三益..

归园田居(귀원전거) 其五(기오) - 陶渊明(도연명)

归园田居(귀원전거) 其五(기오) - 陶渊明(도연명) 怅恨独策还(창한독책환)崎岖历榛曲(기구력진곡)山涧清且浅(산간청차천)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漉我新熟酒(녹아신숙주)只鸡招近局(지계초근국)日入室中暗(일입실중암)荆薪代明烛(형신대명촉)欢来苦夕短(환래고석단)已复至天旭(이부지천욱) 슬픔에 잠긴 채 홀로 지팡이 짚고구불구불 험한 산길로 돌아왔도다 산골짜기 시냇물은 맑고도 얕아서 발을 시원하게 담그고서 씻었노라내가 빚은 술이 갓 익어 걸러내고닭 한 마리 잡아 이웃사람 불렀네해가 지자 방 안이 어두워 졌으나땔 나무 장작이 촛불 역할 했다네즐거웠으나 저녁이 짧아 아쉽구나어느새 다시 새 날이 밝아 왔도다. 怅(창) 실의에 빠지다, 서운하다. 한탄하다怅恨(창한) 원망스럽고 한스러움悵然하다 : 몹시 서운하고 섭섭하다. cf...

归园田居(귀원전거) 其四(기사) - 陶渊明(도연명)

归园田居(귀원전거) 其四(기사) - 陶渊明(도연명) 久去山泽游(구거산택유)浪莽林野娱(낭분림야오)试携子侄辈(시휴자질배)披榛步荒墟(피진보황허)徘徊丘垄间(배회구롱간)依依昔人居(의의석인거)井灶有遗处(정조유유처)桑竹残杇株(상죽잔오주)借问采薪者(차문채신자)此人皆焉如(차인개언여)薪者向我言(신자향아언)死没无复余(사몰무부여)一世异朝市(일세이조시)此语真不虚(차어진불허)人生似幻化(인생사환화)终当归空无(종당귀공무)。 오랫동안 산과 늪지를 헤매고, 여기저기 숲과 들판을 누볐다. 이제 아이들과 조카들과 함께 개암나무 헤치고 폐허로 나가분묘 사이를 이리저리 걸었다 어렴풋한 사람들의 옛 거처네우물과 부엌이 아직 남아있고 죽어가는 뽕과 대나무 보인다땔나무 하는 사람에게 묻는다 이 사람들 다 어디로 갔나요? 나무꾼이 나를 향해 대답한..

送人(송인) - 정지상(鄭知常)

한국 한시 역사상 이별의 그리움(恨)을 가장 아름답고 처연하게 노래한 명작으로 손꼽히는 고려시대의 천재 시인 정지상(鄭知常, ?~1135)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송인(送人)이 있다. 이 시는 오래 전부터 고교 교과서에 실려 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시이다. 그런데 이 시는 고려시대부터 표절(剽竊) 시비에 휘말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파한집(破閑集)과 함께 고려 시대 한국 비평 문학을 대표하는 양대 명작인 보한집(補閑集)의 저자 최자(崔滋, 1188~1260)도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시중에서는 최자(崔滋)는 정시상의 송인(送人)을 극찬하였으면서도 이를 일부 표절이라고 경책(警策)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경책이란 불가에서 좌선(坐禪)할 때 주의가 산만..

归园田居(귀원전거) 其三(기삼) - 陶渊明(도연명)

归园田居(귀원전거) 其三(기삼) - 陶渊明(도연명) 种豆南山下(종두남산하)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晨兴理荒秽(신흥리황예) 带月荷锄归(대월하서귀) 道狭草木长(도협초목장) 夕露沾我衣(석로점아의) 衣沾不足惜(의점부족석) 但使愿无违(단사원무위) 남쪽 여산 아래 콩씨를 심었건만잡초만 무성하고 콩 싹은 드무네새벽 일찍 일어나서 잡초를 매고달빛 아래 괭이를 메고 돌아온다좁은 길 초목들이 크게 자라나서저녁 이슬에 내 옷을 적시는구나옷 젖는 것이야 아쉽지가 않지만단 소원이 어긋나지 않길 바라네. 南山(남산) 여기서는 여산(庐山)荒秽(황예) 더러움 荒蕪(황무) 잡초가 우거지다. 荒穢 肮脏(항장) 더럽다秽(예) = 穢 무성하다 더럽다 음란하다兴(흥) = 興 일다, 시작하다 일어나다理(리) 정리하다, (잡초를) 뽑다锄(서..

归园田居(귀원전거) 其二(기이) - 陶渊明(도연명)

归园田居(귀원전거) 其二(기이) - 陶渊明(도연명) 野外罕人事(야외한인사)穷巷寡轮鞅(궁항과륜앙)白日掩荆扉(백일엄형비)虚室绝尘想(허실절진상)时复墟曲中(시부허곡중)披草共来往(피초공래왕)相见无杂言(상견무잡언)但道桑麻长(단도상마장)桑麻日已长(상마일이장)我土日已广(아토일이광)常恐霜霰至(상공상산지)零落同草莽(영락동초망) 외진 시골엔 인간 관계 드물고 좁은 골목엔 수레도 거의 없다 대낮에도 사립문 닫혀 있으며 텅 빈 방에서 잡생각 끊어낸다 때론 산골 벽지 시골마을에도 풀숲 헤치며 서로 오고 간다네 만나도 쓸데 없는 이야기 없이 뽕과 삼 자라는 이야기만 한다 뽕과 삼은 날마다 높이 커지고 내 땅은 날마다 넓어져만 간다 항상 두렵다 서리와 눈이 내려 잡초와 같이 말라 떨어질까 봐. 穷(궁) = 窮 가난하다, 곤궁하다..

归园田居(귀원전거) 其一(기일) - 陶渊明(도연명)

归园田居(귀원전거) 其一(기일) - 陶渊明(도연명) 少無適俗韻(소무적속운)性本愛丘山(성본애구산)誤落塵網中(오락진망중) 一去三十年(일거삼십년)羈鳥戀舊林(기조련구림) 池魚思故淵(지어사고연)開荒南野際 (개황남야제)守拙歸園田(수졸귀원전)方宅十餘畝(방택십여묘)草屋八九間(초옥팔구간)楡柳蔭後簷(유류음후첨) 桃李羅堂前(도리라당전)曖曖遠人村(애애원인촌) 依依墟里烟(의의허리연)狗吠深巷中(구폐심항중)雞鳴桑樹顚(계명상수전)戶庭無塵雜(호정무진잡) 虛室有餘閑(허실유여한)久在樊籠裏(구재번롱리) 復得反自然(부득반자연) 젊은 시절부터 세속적이지 못 했고 원래 산과 언덕 자연을 사랑했으나 그릇되어 속세의 그물에 걸린 후에단번에 십삼 년이 흘러가 버렸도다 갇힌 새는 원래의 숲을 잊지 못하고 못의 물고기는 옛 연못을 생각한다 들의 남쪽 ..

陶渊明(도연명)의 归园田居(귀원전거)란

归园田居是晋宋之际文学家陶渊明的组诗作品,共五首(一本作六首)。第一首诗从对官场生活的强烈厌倦,写到田园风光的美好动人,农村生活的舒心愉快,流露了一种如释重负的心情,表达了对自然和自由的热爱。厌倦(염권) 싫증나다 진저리나다动人(동인) 감동시키다舒心(서심) 마음이 편안하다, 한가롭다.流露(유로) 무의식 중에 나타내다如释重负(여석중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것 같다. 몸과 마음이 홀가분 하다.表达(표달) 표현하다. 귀원전거는 진송 시대 작가 도연명의 다섯 편(어떤 판본에서는 여섯 편)의 연작시이다. 첫 번째 시는 관직 생활에 대한 강한 염증에서 시작하여 아름답고 감동적인 전원 풍경과 한가롭고 즐거운 농촌 생활을 묘사하며,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홀가분한 심정과 자연과 자유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第二首诗着意写出乡居生活的宁静..

和歸去來辭(화귀거래사) – 이인로(李仁老) – 4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사(辭)로서 시(詩)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문(散文)도 아닌 운문(韻文)이다. 말하자면 시와 변려문(騈儷文)의 중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부(賦)와 비슷하나, 사(辭)가 음절(音節)과 정서(情緖)를 위주로 한데 대하여, 부는 서술(敍述)을 위주로 한 점이 다르다. 사(辭) 구절 사이에는 억양과 감탄, 박자를 맞추기 위한 어조사 兮(혜)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귀거래사 외에도 유명한 사(辭)로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굴원(屈原, BCE 340~BCE 278)의 이소(離騷)가 있고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의 대풍가(大風歌) 등이 있다. 和歸去來辭(화귀거래사) – 이인로(李仁老) – 4 已矣乎(이의호)天地盈虛自有時(천지영허자유시)行身甘作賈胡留(행..

和歸去來辭(화귀거래사) – 이인로(李仁老) – 3

和歸去來辭(화귀거래사) – 이인로(李仁老) - 3 歸去來兮(귀거래혜)問老聃之所遊(문노담지소유)用必期於無用(용필기어무용)求不過於無求(구불과어무구)化蝶翅而猶悅(화접시이유열)續鳧足則可憂(속부족즉가우)閱虛白於幽室(열허백어유실)種靈丹於良疇(종령단어량주)幻知捕影(환지포영)癡謝刻舟(치사각주)保不材於櫟社(보부재어력사)安深穴於神丘(안심혈어신구)功名須待命(공명수대명)遅暯宜歸休(지막의귀휴)任浮雲之無迹(임부운지무적)若枯槎之泛流(약고차지범류) 귀거래사에 답하여 – 이인로 중 3, 양주동 역 돌아가련다 노자(老子)가 노닌 데를 물어보자 쓰임은 꼭 무용을 기하고 구함은 구함 없음에 지나지 않는 것 나비 날개가 됨사 기쁘거니와 오리다리를 연결시키는 것은 걱정거리 그윽한 방에서 흰빛 보고 좋은 밭에 신령한 단을 심자 그림자를 잡음이..

和歸去來辭(화귀거래사) – 이인로(李仁老) - 2

和歸去來辭(화귀거래사) – 이인로(李仁老) - 2 遊於物而無忤(유어물이무오)在所寓以皆安(재소우이개안)鱗固潛於尺澤(인고잠어척택)翅豈折於天關(시개절어천관)肯逐情而外獲(긍축정이외획)方收視以內觀(방수시이내관)途皆觸而無礙(도개촉이무애)興苟盡則方還(흥구진즉방환)鵬萬里而奚適(붕만리이해적)鷦一枝而尙寬(초일지이상관)信解牛之悟惠(신해우지오혜)知斲輪之對桓(지착륜지대환) 귀거래사에 답하여 – 이인로 중 2, 양주동 역 사물을 초월하여 거슬림이 없으니 몸 붙이는 곳마다 편안키만 하구나 물고기는 못물에 잠겨야만 하는데 새가 멋모르고 높이 뜬들 하늘문에 날개 꺾여질손가 왜 정욕을 쫓아 밖에서 얻으려 하리 바야흐로 눈 감고 안을 보고 있네 길은 다 닥치는 데마다 걸림이 없고 흥이 다하면 곧 돌아오리 붕새는 만리를 무얼 하러 가나 ..

和歸去來辭(화귀거래사) – 이인로(李仁老) - 1

중국 육조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인인 동진(東晉) 전원시인(田園詩人) 도연명(陶渊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당나라시대까지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 작가인 본명이 도잠(陶潛)인 오류(五柳) 선생 도연명의 존재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나라(唐, 618~907) 시대에는 도연명의 시적 기교를 제대로 이해한 시인이 드물었다. 위응물(韋應物, 737~791) 백거의(白居易, 772~846) 등 몇몇 시인만이 그의 문체를 본받았을 뿐, 이백(李白, 701~762) 한유(韓愈, 768~824)는 도연명의 시풍을 따르지 않았다. 심지어 두보(杜甫, 712~770)조차도 도연명을 세속을 등진 노인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다가 북송 시대에 구양수(歐陽脩, 1007~1072)와 소식(蘇軾,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