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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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1 대추나무

대추나무는 현재 전 세계에서 재배하는 과일 나무이지만 원래는 중국이 원산지이다. 그 자생지는 한랭한 중국 동북지방에서부터 온난한 중국 남방지역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대추나무는 그만큼 기후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길림성과 요녕성도 그 원산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고조선이나 고구려 지역에서도 자생한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중국에서 도입된 외래종으로 분류해야만 하니 단군이나 주몽할아버지가 안다면 매우 서운해 할 것 같다. 여하튼 이 수종 일찍이 아랍으로 건너가 거기서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서 유럽으로 보급되었다. 그래서 린네가 식물분류학을 창설할 당시인 1753년에 이를 갈매나무속으로 분류하고 종명을 고대 그리스에서 부르던 이..

2120 헴슬레이아누스갯대추나무 – 중국 원산 동전수(铜钱树)

갯대추나무는 지중해갯대추나무 한 종을 재외한 나머지 네 종은 모두 동아시아가 원산지인데 헴슬레이아누스갯대추나무 또한 중국 중남부지역이 원산지이다. 이 수종의 학명 Paliurus hemsleyanus는 미국 식물학자인 하버드대 Alfred Rehder(1863~1949)교수가 1931년 명명한 것인데 종소명 hemsleyanus는 영국 식물학자인 William Botting Hemsley (1843~1924)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종의 표본은 누가 별도로 어디에서 채집한 것이 아니고 1894년 헴슬레이가 명명한 또 다른 중국 원산의 학명 Paliurus orientalis (Franch.) Hemsl.의 표본 중에서 일부를 분리하여 독립된 종으로 명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후자는 국내 미등..

2119 지중해갯대추나무 - 예수의 가시관 나무

전세계 5종으로 구성된 아주 작은 속인 갯대추나무속 즉 Paliurus속은 1754년 영국 식물학자 Philip Miller (1691~1771)가 창설한 속이다. 속명 Paliurus는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에 썼던 가시관으로 사용되었던 가시나무 즉 Christ's thorn의 그리스 이름 paliouros에서 온 것인데 그 원래 어원은 오줌을 누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옛날 그 지역 사람들이 이뇨제(利尿劑)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밀러가 처음 붙인 이름은 아니고 먼저 린네가 지중해 연안과 중앙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자생하는 수종인 지중해갯대추나무를 당초 갈매나무속으로 분류하여 1753년 명명한 학명 Rhamnus paliurus의 종소명을 그대로 속명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참고로 예수의 가..

2118 갯대추나무 - 열매가 독특한 자생종

갯대추나무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발견되는 갈매나무과 수종이 있다. 키가 1.4~6m인 낙엽 관목 또는 소교목인 이 수종은 제주도 외에 중국 강소성 이남 여러 성과 대만 베트남 그리고 일본에서도 자생한다. 중국에서는 주로 해발 2000m 이하의 산지나 평원에서 야생하지만 시코쿠와 규슈 그리고 오키나와에서 자생하는 일본에서는 주로 해안가에서 발견되기에 아예 해안가 식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이름을 해변 모래땅에서 자라며 잎이 대추를 닮았다고 하마나츠메(ハマナツメ) 즉 빈조(浜棗)라고 부른다. 한자 빈(浜, 濱)은 물가 빈 자이다. 따라서 우리 이름도 일본 이름을 따라서 개 + 대추나무 즉 갯대추나무라고 붙였다.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의미한다. 어차피 제주도에서 발견된 것이므로..

2117 헛개나무

갈매나무과 헛개나무속은 전세계 모두 5종으로 구성된 속인데 열대아메리카에 분포하는 한 종을 제외한 나머지 4종은 모두 동아시아에 분포하며 그 중 가장 널리 보급된 수종이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는 낙엽 교목인 헛개나무이다. 헛개나무는 한중일 삼국에서 자생하는데 린네의 직계 제자이자 스웨덴 식물학자인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가 1775년 일본에 도착하여 1년 3개월간 머물면서 탐사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의 일본 원정대를 후원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공직자인 David ten Hoven(1724~1787)의 이름으로 1871년 새로운 속을 창설하고 학명 Hovenia dulcis Thunb.를 부여한 것이다. 여기서 종소명 dulcis는 달다는 뜻으로 식용하는..

2116 상동나무

갈매나무과 상동나무속은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며 아프리카와 미주에도 일부 분포하는 전세계 38종으로 구성된 속인데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전라남도 해안가에 일부에 상동나무 한 종만 자생한다. 이 속은 프랑스 식물학자인 Adolphe-Théodore Brongniart(1801~1876)이 1826년 Sageretia라는 속명을 붙였는데 이는 또 다른 프랑스 식물학자인 Augustin Sageret(1763~1851)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상동나무는 당초 린네의 직계 제자로서 스웨덴 탐험가이자 자연학자인 Pehr Osbeck(1723~1805)이 갈매나무속으로 분류하여 1757년 Rhamnus thea Osbeck라고 명명하였던 것을 200여 년 후인 1968년 미국 식물학자인 Marshall ..

2115 꽃사과 해당화(海棠花)와 장미 해당화(海棠花)의 이름 혼선

나이 든 사람이라면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서러마라'로 시작되는 우리 민요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대부분의 넘차소리 즉 상여소리에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고 일부 농요나 정선아리랑 등 아리랑에도 이런 구절로 된 가사가 있다. 이 구절이 원래 어디서 그리고 왜 유래되었는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앞뒤 가사는 전혀 다르게 다양하게 전개 되지만 이상하게 이 구절만은 어디서든 모두가 똑 같다. 이 구절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바로 이 해당화(海棠花)라는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분명 중국에서 꽃사과나무를 지칭하는 용어로 해당(海棠)을 우리 선조들이 받아들여 고려시대 이규보선생 등의 시에도 많이 나왔는데 갑자기 이 해당화가 해안의 명사십리에 가서는 가시가 있는 장미의 일종인 때찔레를 ..

长恨歌(장한가) - 白居易(백거이)

长恨歌(장한가) - 白居易(백거이) 汉皇重色思倾国(한황중색사경국)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杨家有女初长成(양가유녀초장성)养在深闺人未识(양재심규인미식)。天生丽质难自弃(천생려질난자기)一朝选在君王侧(일조선재군왕측)。回眸一笑百媚生(회모일소백미생)六宫粉黛无颜色(육궁분대무안색)。春寒赐浴华清池(춘한사용화청지)温泉水滑洗凝脂(온천수활세응지)。侍儿扶起娇无力(시아부기교무력)始是新承恩泽时(시시신승은택시)。云鬓花颜金步摇(운빈화안금보요)芙蓉帐暖度春宵(부용장난도춘소)。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从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부조조)。承欢侍宴无闲暇(승환시연무한가)春从春游夜专夜(춘종춘유야전야)。后宫佳丽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三千宠爱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金屋妆成娇侍夜(금옥장성교시야)玉楼宴罢醉和春(옥루연파취화춘)。姊妹弟兄皆列土(자매제형개열..

长恨歌(장한가) - 白居易(백거이) 3, 비익조(比翼鳥) 연리지(連理枝) 천장지구(天長地久)

당나라 대시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806년에 쓴 엄청나게 긴 칠언가행(七言歌行) 형식의 시인 长恨歌(장한가) 중 마지막 제3단을 소개한다. 여기서는 당 현종이 사람을 하늘과 땅으로 보내 양귀비의 혼백을 찾는 과정과 드디어 양귀비가 하늘의 봉래궁에서 당 현종의 사자를 만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백낙천이 35세인 806년 12월 섬서성 주질현위(盩厔县尉)로 재직할 당시 친구 왕질부(王质夫)와 소설가 진홍(陈鸿) 세 사람이 선유사(仙游寺)라는 곳으로 놀러 갔다가 우연히 당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나와서 누가 글로 쓰지 않으면 곧 잊혀질 것이라며 후세에 자세한 내막을 알리기 위하여 백낙천은 장시(长诗)를 쓰고 진홍은 전기(传记)를 쓰기로 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마지막 ..

长恨歌(장한가) - 白居易(백거이) 第二段(제이단), 오동과 벽오동

당나라 대시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806년에 쓴 엄청나게 긴 칠언가행(七言歌行) 형식의 시 长恨歌(장한가) 중 제2단을 소개한다. 여기서는 마외역병변(马嵬驿兵变)으로 양귀비가 살해되고 이후 당 현종이 양귀비를 자나깨나 그리워하며 깊은 정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마외역병변(马嵬驿兵变)은 안록산의 난 때 당현종이 피난을 가던 중에 현 섬서(陕西)성 흥평(兴平)시인 마외역에 이르렀을 때 수행 근위병들이 양귀비의 사촌오빠 양국충(杨国忠)을 처형하고 양귀비 즉 양옥환(杨玉环)을 자결하게 만든 사건을 말한다. 식물로는 제1단에 이어 여기 제2단에서도 부용(芙蓉)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부용은 현재는 무궁화속 목부용을 지칭하지만 과거 당나라시대까지는 중국에서 연꽃을 의미했다. 백..

长恨歌(장한가) - 白居易(백거이) 中(중) 第一段(제일단)

당나라 대시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806년에 쓴 엄청나게 긴 칠언가행(七言歌行) 시인 长恨歌(장한가)인데 너무 길어서 편의상 3대단(三大段)으로 구분하여 우선 그 제일단(第一段)을 소개한다. 이 단에서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모습과 효과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황정의 난국과 안사의 난을 다루고 있다. 백낙천의 장한가는 중국에서 다음과 같은 평을 받는다. 장한가의 중심 사상은 당현종이 여색을 밝혀 안사의 난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의 비극을 동정하고 그들의 생사불변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으로 시 전체의 예술성이 비교적 높다. 첫째, 원본 사료의 선택과 활용이다. 당 현종은 비극의 제작자이자 수용자였다. 시인은 그들의 죄악적인 면을 쓸 때 끝까지 주의..

枇杷(비파) – 이직(李稷), 비파

조선초에 재상까지 지낸 이직(李稷, 1362-1431)이란 분이 쓴 비파라는 시가 있다. 하지만 앞의 포은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명나라에 여러 차례 사신으로 다녀온 사실로 봐서는 중국에서 본 비파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로부터 머지않은 시기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비파를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이 나온다. 전라도 순천에 가면 오림정(五林亭)이란 정자가 있다. 연산군때 목사를 지낸 신윤보(申潤輔, 1483~1558)란 분이 1545년 을사사화 후 낙향하여 부근에 松梅枇柚竹(송매비유죽) 즉 소나무와 매실나무, 비파나무, 유자나무 그리고 대나무 등 5종류의 나무를 심어 오림정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정조때인 1784년 문신인 조현범(趙顯範, 1716~1790)이 지은 악부인 강남악부(江南樂府)의 오림사(..

楊州食枇杷(양주식비파) – 정몽주(鄭夢周), 비파

우리나라 기록에 비파가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말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이다. 포은선생 후손이 유생들과 함께 나중에 엮은 중판집에 다음과 같은 양주식비파(楊州食枇杷)라는 시가 있다. 그런데 이 시의 배경은 우리나라가 아니고 중국 강소성 남경 인근에 있는 양주이다. 내용으로 봐서는 그 당시 고려에서는 비파가 재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사신으로 여러 번 방문한 바 있는 포은선생은 양주와 인연이 깊어 2013년 국내 후손들의 협력으로 중국 양주시에 있는 당나라 유적박물관인 당성유지박물관(唐城遺址博物館)에 선생의 동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 인근에는 최치원(崔致遠, 857~908)선생의 기념관도 있다고 한다. 楊州食枇杷(양주식비..

田舍(전사) - 杜甫(두보), 비파(枇杷) 굴피나무(榉柳)

장미과 비파나무는 이름이 정감이 가고 잎모양이 좋아 주로 관상용으로만 재배되는 줄로 생각하기 쉬우나 알고보면 뛰어난 약효로 중국과 일본에서 오래 전부터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면서 다양한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으며 그 열매까지 먹는 유실수이다. 중국이 원산지인데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인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도 널리 분포되어 있는 키가 10m까지도 자라는 상록 소교목 또는 교목이다. 비파나무라는 그 이름은 서역에서 들어온 악기 비파(琵琶)를 닮았다고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악기는 비파(批把)이고 나무는 비파(枇杷)라서 글자가 매우 비슷하였으나 둘의 혼동을 방지하고자 위진(魏晋, 220~420)시대에 악기 비파의 한자표기를 비파(琵琶)로 변경하였다는 설이 있다. 중국 기록에서 비파나..

惠州一绝 食荔枝(혜주일절 식여지) - 蘇軾(소식), 리치 = 여지(荔枝)

송나라 대시인 동파거사(東坡居士) 소식(蘇軾, 1037~1101)이 1095년 저 멀리 영남 광동성 혜주(惠州)로 귀양가서 여러가지 지역 특산 과일을 맛보고서 읊은 시이다. 열대 과일들의 맛이 너무 좋아서 귀양지에서 계속 머물고 싶을 정도라고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진문혜공(陈文惠公)은 북송 재상이자 시인인 진요좌(陈尧佐, 963~1044)를 말하고 나부산(罗浮山)은 광동성 혜주시에 있는 영남제일산(岭南第一山)으로 불리는 해발 1,296m인 산 이름이고 노귤(芦橘)은 비파 열매를 양매(杨梅)는 소귀나무 열매를 말한다. 惠州一绝 食荔枝(혜주일절 식여지) - 蘇軾(소식)혜주 제일은 여지를 먹는 것이다. 惠州太守东堂,祠故相陈文惠公,堂下有公手植荔枝一株,郡人谓将军数。今岁大熟,赏啖之馀,下逮吏卒。其高不可致者,纵猿取..

过华清宫 绝句 三首(과화청궁 절구 3수) - 杜牧(두목), 리치 = 여지(荔枝)

무환자나무과에는 리치(荔枝)와 람부탄(紅毛丹) 그리고 용안(龙眼)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열대 과일나무들이 속한다. 그 중 하나인 리치는 동남아시아, 인도 및 아프리카와 하와이, 미국 남부, 중남미까지 전세계 열대 및 아열대지방에 널리 퍼져 재배되고 있지만 원 고향은 2천 년 전인 한나라 시대부터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중국이다. 중국 이름은 여지(荔枝)인데 원래 이름은 이지(离支 =离枝)였다고 한다. 이 과일은 달린 가지와 함께 잘라서 보관하여야만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대 이시진이 본초강목에 당나라 유명 시인 백거이의 말을 빌려 만약 열매를 가지에서 분리하면 하루면 색이 변하고 3일이면 맛이 변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지(离支)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동한시대에 와서 지금의 ..

梁园吟(양원음) - 李白(이백), 양매(楊梅) = 소귀나무

이번에는 당나라 시선 이백(李白, 701~762)의 대표작 중 하나인 梁园吟(양원음)이라는 긴 칠언고시(七言古诗)를 소개한다. 이 시는 당현종의 조정에 불려 가서 근무하다가 환관의 모함 또는 부적응 등으로 744년 퇴임하고서 현재 하남성 개봉시와 상구시에 걸쳐 있는 과거 송나라와 양나라의 유적지가 있는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서 쓴 시라고 한다. 이 시는 대략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전반부는 서사에 중점을 두고 후반부는 서정에 중점을 둔다. 전반부는 시인이 수도 장안을 떠나 동쪽으로 송주(宋州) 양원(梁园)에 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감회를 토로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주로 황량하고 퇴락한 춘추전국시대의 송(宋)나라 또는 한나라의 양국(梁國) 양원(梁园)을 마주하며 현재와 과거의 변화무쌍..

윤사월 - 박목월, 송화가루

어제 봄바람 치고는 매우 거센 바람이 불어 저멀리 앞산에서 송화가루가 피어오르는 것이 마치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전원주택에서 생활하면 매년 봄이면 겪는 것이 송화가루의 날림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면 마치 황사가 덮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지나 간 자리는 노란 잔해가 남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알레르기를 유발하기도 한다는데 실제로 그런 고통을 받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소나무는 곤충이 아닌 바람에 의하여 수분하는 풍매화이다. 수꽃과 암꽃이 저 멀리 떨어진 자웅이주도 아니고 한 나무에 수꽃과 암꽃이 동시에 피거나 아예 어떤 경우는 하나의 꽃에 밑에는 수꽃이고 위는 암꽃이 피는데 그냥 자기들이 알아서 조용하게 수분(受粉)할 것이지 왜 이런 요란(搖亂)을 떠는지 모..

시(詩)/한글시 2025.05.05

正月初二日(정월초이일) 詣曲城府中(예곡성부중)..- 이색(李穡), 영산홍

이번에는 이색(李穡, 1328~1396)의 문집인 목은시고권지13(牧隱詩藁卷之十三) 시(詩) 중에 있는 正月初二日(정월초이일) 詣曲城府中(예곡성부중) 見梅花(견매화) 躑躅一時盛開(철쭉일시성개) 退而不能忘(퇴이불능망) 因成三首(인성3수)라는 매우 긴 제목이 붙은 시를 감상한다.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정월 초이튿날에 곡성백(曲城伯)의 부중(府中)에 가서 매화와 철쭉이 일시에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는 물러나서 그것을 잊지 못하여 3수를 짓다. 이색이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인 곡성백(曲城伯) 염제신(廉悌臣, 1302~1382)의 댁에 갔다가 제목 그대로 거기서 한 겨울인 정초에 매화와 철쭉이 핀 것을 보고서 놀라 ..

携中童與隣長朴英起(휴중동여린장박영기) 看躑躅長湍石壁(간척촉장단석벽) - 이색(李穡), 철쭉

우리나라 역사상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만큼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긴 사람도 드물다. 이색(李穡)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정치인이며 대학자이고 사상가이며 교육자이고 또한 철학가이자 시인이라고 소개된다. 그리고 익제(益齋) 이제현의 제자로서 정몽주와 정도전 그리고 이숭인, 권근, 하륜 같은 제자를 길러 대단한 스승에 대단한 제자를 둔 사람으로 기억된다. 여기에 포은(圃隱) 정몽주와 야은(冶隱) 길재 또는 도은(陶隱) 이숭인을 포함하여 여말삼은(麗末三隱)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에게는 그저 덤에 불과하다. 어떻게 일생 접하는 사람마다 당대도 아니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일까 정말 제왕도 명군이 아니라면 이런 사례는 없을 듯하다. 그랬던 그도 공양왕 때 판문하부사(判門下府使)가 된 이후 ..

獻花歌(헌화가) – 견우노인(牽牛老人), 철쭉(연달래)

이규보(李奎報, 1169~1241)선생의 시 다음으로 철쭉이 등장하는 기록이 바로 그 유명한 신라 향가(鄕歌) 헌화가(獻花歌)가 수록된 승려 일연(一然)이 1281년 편찬한 삼국유사이다. 하지만 서기 700년 전후인 신라 성덕왕(691~737)이 시대적 배경인 이 헌화가(獻花歌) 자체에는 구체적인 꽃 이름이 없어서 철쭉(躑躅)이라는 용어가 신라시대부터 사용된 것인지에 대하여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중국에서 머뭇거리거나 날뛰거나 깡총깡총거린다는 뜻의 척촉(躑躅)이 식물명으로 사용된 것은 기원전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부터 이지만 주로 약재명으로 사용되다가 문학 작품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 앞 게시글에서 본 백거이가 815년에 쓴 시 题元八溪居(제원팔계거)이므로 그보다 앞선 신라시대 헌화가에서 철..

文長老見和 多至 九首..(문장로견화 다지 9수..) - 이규보(李奎報), 철쭉

우리나라 고문헌에 철쭉 즉 척촉(躑躅)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대목은 고려사이다. 고려 문종 33년 즉 1079년 7월 송황제가 의원과 약재를 보내오다라는 내용 가운데 西京躑躅(서경 척촉) 鄭州麻黃(정주 마황) 西京赤芍藥(서경 적작약)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두견화(杜鵑花)가 980년에 고려사에 등장하는 것보다 99년이나 늦다. 철쭉은 역시 꽃보다는 약재로 먼저 알려져 있었다. 철쭉 중에서도 독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양척촉(羊躑躅) 등을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약재로 써왔기 때문이다. 그 다음 꽃나무로서는 1241년 편찬된 이규보(李奎報, 1169~1241)선생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동국이상국집에 文長老見和(문장로견화)로 시작하는 엄청 긴 제목 아래 9수의 고율시가 수록되어 있..

贈送雲南使臣(증송운남사신) - 민사평(閔思平), 두견화

고려말 문신 급암(及菴) 민사평(閔思平, 1295~1359)의 두견화 관련 시를 소개한다. 그는 고려 30대 임금인 충정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다녀 온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때 지은 시가 아닌가 한다. 그가 남긴 급암시집(及菴詩集)은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제목 증송운남사신(贈送雲南使臣)은 ‘운남으로 가는 사신을 송별하며 드리는 시’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딱히 두견화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두견새가 앉아서 애절하게 우는 산화(山花)가 바로 두견화(杜鵑花)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英蕩(영탕)은 출중하다는 뜻이고 劍外州(검외주)는 검각 외주 즉 촉땅을 의미하며 不管(불관)은 ~에 관계없이라는 의미이며 帝는 啼의 차자로 보인다. 贈送雲南使臣(증송운남사신) - 민사평(閔思平) 英蕩還馳劍外州(..

寄雞林郡公(기계림군공) - 이제현(李齊賢), 두견화

이번에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8~1367)선생이 자신이 모시던 충선왕(忠宣王)의 양아들인 계림군공(雞林郡公) 왕후(王煦) 본명 권재(權載, 1296~1349)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의 시 寄雞林郡公(기계림군공)을 감상한다. 여기서 황금대(黃金臺)는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 소왕(燕昭王)이 스승인 곽외(郭隗, 351~297 BC)를 초대하고 기리기 위하여 현 하북성에 축조한 건축물을 말한다. 그래서 초현대(招贤台)라고도 불린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아마 익제선생이 충선왕을 보좌하기 위하여 원나라에 체류하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중에 계림군공에서 시를 지어 편지 형식으로 보낸 것 같다. 내용을 보면 뭔가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아마 충선왕이 즉위..

感懷 二首(감회 2수) - 이제현(李齊賢), 두견화

고려 후기 문신으로서 정당문학 판삼사사 정승 등의 직책을 지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8~1367)선생이 쓴 두견화 관련 시를 감상한다. 그는 상왕인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원나라 연경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곳 학자들과 교류도 하고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학식과 견문을 넓힌 사람이다. 고려에 성리학을 도입한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제자로서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같은 유학자를 길러 냈다. 이 시는 1363년에 간행된 그의 문집인 익재난고(益齋亂藁)에 수록된 것이며 배경은 중국 요녕성(遼寧省)에 있는 봉성(鳳城)이다. 感懷 二首(감회 2수) - 이제현(李齊賢) 杜鵑花發杜鵑啼(두견화발두견제)香霧空濛月欲西(향무공몽월욕서)立馬得詩還忘却(입마득시환망각)鳳城東望草萋萋(봉성동망초처..

長生殿後百葉杜鵑花(장생전후백엽두견화) – 최승로(崔承老), 겹산철쭉

최치원에 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두견화(杜鵑花)를 언급한 시가 신라 6두품 출신으로 고려초 문하시중 직책까지 지낸 최승로(崔承老, 927~989)의 문집인 금중잡저시고(禁中雜著詩藁)에 수록된 장생전후백엽두견화(長生殿後百葉杜鵑花)라는 제목의 시가 등장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문집 금중잡저시고(禁中雜著詩藁)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중 시 4수가 최자(崔滋, 1188~1260)가 1254년 파한집의 속편으로 편찬한 보한집(補閑集)에 실려 있어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장생전(長生殿)은 고려 궁궐의 전각 이름이며 백엽두견화(百葉杜鵑花)는 꽃잎이 여러 장인 두견화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자생종으로 그런 품종은 겹산철쭉 또는 만첩산철쭉이라고 부르는 학명 Rhododendron yedoense인 우리 자생종을 이..

杜鵑(두견) - 최치원(崔致遠), 두견화

진달래속의 수종들을 부르는 이름은 참으로 많다. 우선 진달래와 철쭉이 있고 두견화가 있으며 영산홍도 있으며 참꽃도 있고 만병초도 있다. 그 외에도 차(茶)라는 이름도 있고 아잘레아라는 서양식 이름도 있다.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 온 이름인데 이 중에서 우리나라 고려시대 이전 문헌에는 두견(杜鵑)화와 철쭉(躑躅)만 보이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진달래를 盡月背(진월배)라는 한자어로 표기한 기록이 등장한다. 그럼 고려 시대 이전의 기록에서 나타나는 두견(杜鵑)과 철쭉(躑躅)이 과연 현재의 어느 수종을 지칭하는지에 대하여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산하에는 진달래와 수달래로 불리는 산철쭉 그리고 연달래라고 불리는 철쭉 등 3종이 주로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 중 산철쭉과 철쭉은..

题元八溪居(제원팔계거) - 白居易(백거이), 중국황철쭉(羊踯躅) 부용(芙蓉)

당나라 시왕(詩王)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현 강서성 구강시인 강주(江州)의 사마(司馬)로 좌천된 시절인 815년에 인근 여산(廬山)의 계거(溪居)에 사는 그 지방에서 새로 사귄 친구 원집허(元集虛)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지은 시이다. 백거이의 시를 많이 거론하는 이유는 그는 식물에 관심이 매우 많고 해박한 지식을 갖추어 그의 시에는 다양한 식물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별도로 식물학자가 없던 시절 이런 문인들의 작품이 없었다면 그 당시 그 식물을 뭐라고 불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여기 이 제원팔계거(题元八溪居)라는 시에서도 요즘 우리가 널리 부르는 철쭉이라는 한자어 躑躅(척촉)가 문학작품에서는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라서 의미가 있다. 원래 중국의 한자어 척촉(躑躅)이라는 말은 원래 ..

山石榴寄元九(산석류기원구) - 白居易(백거이), 두견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815년에 쓴 산석류기원구(山石榴寄元九)라는 제법 긴 시 가운데 두견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최고의 찬사를 표현한 바 있다. “花中此物是西施(화중차물시서시), 芙蓉芍药皆嫫母(부용작약개모모)” 풀어서 해석하면 꽃 가운데 두견이야말로 서시(西施)에 비유할 수 있고 연꽃과 작약은 이에 비하면 모모(嫫母)에 불과할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서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인이고 모모는 가장 추한 여인으로 비유되는 인물이다. 두견화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연꽃과 작약을 이렇게 과감하게 깎아 내리는 비유는 백낙천이 아니면 감히 누가 할 수 있겠는가? 1987년 상해에서 실시한 약 15만 명이 참가한 국민투표에서 두견화는 당당 6번째로..

宣城见杜鹃花(선성견두견화) - 李白(이백), 두견화(심스아잘레아)

중국에서 두견화를 노래한 유명한 시로는 당나라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태백(李太白, 701~762)이 나이 들어 755년에 쓴 선성견두견화(宣城见杜鹃花)라는 짧은 칠언절구(七言絶句) 시가 있다. 실제로 이태백은 어릴 적 파촉 검문각 부근에서 산 적이 있다는 설이 있으며 시인이 시를 쓸 당시 있던 선성(宣城)은 현재 안휘성이므로 사천성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천만리 타향에서 두견화를 보자 어릴 적 고향에서 슬프게 울던 두견새 생각이 문득 나면서 그 울음 소리로 대변되는 고향의 소리가 마음 속에서 들려 그 애절한 향수(鄕愁) 즉 회향지념(怀乡之念)을 노래한 것이다. 이태백이 말한 두견화(杜鵑花)는 현재 중국에서는 학명 Rhododendron simsii Planch.인 진달래속 상록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