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시(詩)/漢詩(한시)

田舍(전사) - 杜甫(두보), 비파(枇杷) 굴피나무(榉柳)

낙은재 2025. 5. 8. 09:33

상상속의 전사와 성도에 있는 실제 두보의 초당

 

 

 

장미과 비파나무는 이름이 정감이 가고 잎모양이 좋아 주로 관상용으로만 재배되는 줄로 생각하기 쉬우나 알고보면 뛰어난 약효로 중국과 일본에서 오래 전부터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면서 다양한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으며 그 열매까지 먹는 유실수이다. 중국이 원산지인데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인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도 널리 분포되어 있는 키가 10m까지도 자라는 상록 소교목 또는 교목이다. 비파나무라는 그 이름은 서역에서 들어온 악기 비파(琵琶)를 닮았다고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악기는 비파(批把)이고 나무는 비파(枇杷)라서 글자가 매우 비슷하였으나 둘의 혼동을 방지하고자 위진(魏晋, 220~420)시대에 악기 비파의 한자표기를 비파(琵琶)로 변경하였다는 설이 있다. 

 

잎이 악기 비파(琵琶)를 닮았다고 비파(枇杷)라고 했다.

 

 

 

중국 기록에서 비파나무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한나라 사마상여(司马相如, BC.179~BC.118)의 상림부(上林赋)이다. 상림은 한나라 궁중 정원을 말한다. 거기에 비파십과(枇杷十棵)라고 비파가 10대 과일나무 중 하나로 기록된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비파는 “秋萌(추맹) 冬花(동화) 春实(춘실) 夏熟(하숙) 备四时之气(비사시지기)라고 즉 가을에는 꽃망울을 보고 겨울에는 꽃이 피고 봄에 열매가 달리고 여름에 성숙하여 사계절 기운을 두루 갖춘 나무이며 앵도(중국 체리)와 양매(소귀나무)와 더불어 초여름 과일 세자매로 꼽고 있다. 이후에 남북조시대 양무제 시절 학자 주흥사(周興嗣, 470~521)가 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자문(千字文)에도 비파만취(枇杷晚翠) 오동조조(梧桐早凋)라고 ”비파는 늦게까지 푸르고 오동(벽오동)은 일찍 시든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일년내내 푸른 상록수와 가장 먼저 잎이 떨어져 가을을 알린다는 벽오동나무를 대비한 말이다. 그래서 천자문을 기본적으로 공부한 우리 선조들은 비파나무를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내한성이 충분하지 못하여 중부지방에서는 실물을 보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중국문화의 융성기인 당나라와 송나라에 들어와서는 수많은 시에 비파가 등장하게 된다.

 

 

비파나무의 사계절 관상 포인트

 

 

 

비파 관련 시로는 성당(盛唐)시대의 대시인이자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 712~770)가 760년에 쓴 시골집이라는 뜻의 전사(田舍)라는 시가 유명하다. 여기서 櫸柳(거류)는 중국굴피나무인 枫杨(풍양)을 말하며 鸬鹚(노자) 즉 鸕鷀(노자)는 가마우지를 말하고 어량(魚梁)은 둑을 쌓고 물을 막아 물고기를 잡기위하여 말뚝이나 나뭇가지 또는 그물로 울타리나 목책을 만들어 강이나 바다 조수 흐름에 놓는 시설을 말한다.

 

 

田舍(전사) - 杜甫(두보)

  

田舍清江曲(전사청강곡)

柴门古道旁(시문고도방)。

草深迷市井(초심미시정)

地僻懒衣裳(지벽라의상)。

榉柳枝枝弱(거류지지약)

枇杷树树香(비파수수향)。

鸬鹚西日照(노자서일조)

晒翅满鱼梁(쇄시만어량)。

    

오두막을 맑은 강이 휘감아 돌고

사립문은 옛길 방향으로 나있다네

마을 가는 길은 잡초가 무성하지만

벽지에서는 옷차림이 자유롭다네

굴피나무 가지 가냘프게 드리우고

비파열매 나무마다 향기 풍기도다.

가마우지들은 서쪽 해를 쬐이려고      

어량에 가득 모여 날개를 말리도다.

 

 

중국굴피나무인 櫸柳(거류) = 枫杨(풍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