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문헌에 철쭉 즉 척촉(躑躅)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대목은 고려사이다. 고려 문종 33년 즉 1079년 7월 송황제가 의원과 약재를 보내오다라는 내용 가운데 西京躑躅(서경 척촉) 鄭州麻黃(정주 마황) 西京赤芍藥(서경 적작약)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두견화(杜鵑花)가 980년에 고려사에 등장하는 것보다 99년이나 늦다. 철쭉은 역시 꽃보다는 약재로 먼저 알려져 있었다. 철쭉 중에서도 독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양척촉(羊躑躅) 등을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약재로 써왔기 때문이다. 그 다음 꽃나무로서는 1241년 편찬된 이규보(李奎報, 1169~1241)선생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동국이상국집에 文長老見和(문장로견화)로 시작하는 엄청 긴 제목 아래 9수의 고율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4 번째 수에 다음과 같이 철쭉(躑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동국이상국집에는 철쭉장(躑躅杖) 즉 철쭉으로 만든 지팡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럼 그 네 번째 시를 감상한다. 이규보선생은 두견(杜鵑)과 철쭉(躑躅) 중에 철쭉(躑躅)만 사용하였는데 이는 그 당시 둘을 같은 의미로 인식하고 하나를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익제(益齋) 이제현(李齊賢, 1288~1367)선생이 두견(杜鵑)으로만 쓴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규보 선생은 躑躅(척촉)을 철쭉이라는 의미가 아닌 머뭇거리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썼다.
이 시는 우선 그 제목이 文長老見和(문장로견화) 多至 九首(다지 9수) 每篇皆警策遲鈍(매편개경책지둔) 勉强備數奉賡耳(면강비수봉갱이)이다. 이를 풀이하자면 ‘문 장로의 화답이 아홉 수에 이르렀는데 편마다 모두 지둔한 나를 일깨우고 책려하였기에 힘써 후속 시를 수대로 갖추어 받들어 올리다.’이다. 아마 이규보선생이 고려 고종 때인 1237∼1248년에 간행된 해인사 대장경판 인경 작업에도 참여한 수암(睡菴) 문장로(文長老)라는 스님과 시로 교유하면서 9수를 써서 보낸 것에 대하여 문장로가 응답하여 시 9수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하여 재차 9수를 써서 보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장로(文長老)라는 이름은 문장력이 뛰어난 노인이라는 뜻에서 붙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에 대한 내용이 훗날 이숭인(李崇仁, 1347~1392)선생의 도은집(陶隱集)에도 실려있다고 한다. 여기서 이규보선생이 스님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깍듯해 보인다. 여기서 見和(견화)는 시문학에서 응답하여 창작하는 것을 말하며 賡(갱)은 계속하다 또는 응답하다는 뜻이며 耳(이)는 而已(이이) ~일 뿐이다라는 뜻이므로 奉賡耳(봉갱이)는 恭敬延续而已(공경연속이이) 즉 공손하게 받들어 계속이어가고자 할 따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支郞(지랑)은 동진(东晋)시대 고승(高僧) 지둔(支遁, 314~366)을 말하는 것 같다.
文長老見和。多至 九首。每篇皆警策遲鈍。勉强備數奉賡耳。- 이규보(李奎報)
문장로견화 다지 구수 매편개경책지둔 면강비수봉갱이 중 4수
語帶天仙不帶僧(어대천선부대승)。
到頭吟盡幾番燈(도두음진기번등)。
冷聽秋雨芭蕉響(냉청추우파초향)。
紅賞春風躑躅層(홍상춘우척촉층)。
未必老禪工鍊玉(미필노선공련옥)。
只緣淸質本如氷(지연청질본여빙)。
支郞况有降魔手(지랑황유항마수)。
移作詩鳴世孰勝(이작시명세숙승)。
하늘의 신선이 말하고 스님이 말하지 않았으니
신선의 경지 읊노라 몇 번이나 등불 밝혔던가
가을 비에 차갑게 울리는 파초 잎 소리 듣고
봄 바람에 붉게 핀 철쭉 무리 감상하였다네
노선사의 단약 제조법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청아한 자질이 본래 빙옥 같기 때문이라네
하물며 지둔처럼 귀신도 굴복시키는 솜씨를
작시에 옮겨 쓰니 세상 누가 이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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