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이색(李穡, 1328~1396)의 문집인 목은시고권지13(牧隱詩藁卷之十三) 시(詩) 중에 있는 正月初二日(정월초이일) 詣曲城府中(예곡성부중) 見梅花(견매화) 躑躅一時盛開(철쭉일시성개) 退而不能忘(퇴이불능망) 因成三首(인성3수)라는 매우 긴 제목이 붙은 시를 감상한다.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정월 초이튿날에 곡성백(曲城伯)의 부중(府中)에 가서 매화와 철쭉이 일시에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는 물러나서 그것을 잊지 못하여 3수를 짓다.
이색이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인 곡성백(曲城伯) 염제신(廉悌臣, 1302~1382)의 댁에 갔다가 제목 그대로 거기서 한 겨울인 정초에 매화와 철쭉이 핀 것을 보고서 놀라 돌아 와서 지은 시로 보인다. 그래서 이 매화와 철쭉은 개성에서 노지 재배해서는 도저히 정월에 피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화분에서 재배한 매화와 철쭉을 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가 화분에서 가꾸어 늦겨울 또는 초봄에 개화하는 영산홍 화분재배를 이미 고려시대 염제신 같은 문신들도 즐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우리나라 화분재배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8~1392)의 난파사영(蘭坡四詠) 차도은양촌운(次陶隱陽村韻)이란 시를 근거로 고려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제 보니 포은의 스승 목은(牧隱)선생도 같이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보필하였던 선배 곡성백(曲城伯) 염제신(廉悌臣, 1302~1382)의 댁에서 겨울에 핀 꽃을 보고 놀라서 이런 시를 지은 것이다. 하기야 염제신은 어릴적 원나라에서 자라서 거기서 관리로 일하다가 서른이 넘어서 고려에 돌아온 사람이므로 중국 풍습의 영향으로 고려에는 없던 화분재배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약 백 년 후 조선초 문신인 강희안(姜希顔, 1419~1464)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화분재배법은 물론 일본철쭉화(日本躑躅花)에 대하여도 설명하고 있어 고려말 그 당시에도 이미 다양한 철쭉 종류가 국내 도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강희안선생은 일본철쭉이 세종 때 대마도에서 들어 왔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중국의 영산홍들이 고려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을 이 시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겠다. 이미 염제신이 이렇게 재배하여 정초에 아름답게 꽃을 피워 손님을 초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삼달존(三達尊)은 맹자(孟子) 공손축하(公孙丑下) 편에서 “天下有达尊三(천하유달존삼):爵一(작일) 齿一(치일) 德一(덕일)。朝廷莫如爵(조정막여작) 乡党莫如齿(향당막여치) 辅世长民莫如德(보세장민막여덕)”이라고 “천하에 두루 통하는 존중 받는 길은 작위(爵位)와 고령(高龄) 그리고 덕행(德行)이다. 조정에서는 작위만 한 것이 없고 고을에서는 나이만 한 것이 없고 군주를 보좌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에는 덕만 한 것이 없다.”라고 언급한 내용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삼달존옹(三達尊翁)이런 이런 세 가지 즉 지위와 나이 그리고 덕성을 고루 갖춘 염제신을 말하는 것이다. 함께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치를 보좌하는 후배 이색의 입장에서 상관인 염제신에 대한 존경심이 보이는 대목이다.
여기서 暗香(암향)은 매화를 상징하고 濃艶(농염)은 철쭉을 상징한다. 臈(랍)은 腊(랍)의 이체자로서 섣달 즉 음력 12월을 의미하며 기영회(耆英會)는 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란 서경(西京) 유수(留守)가 연로한 사대부 11명을 초빙하여 여흥을 즐긴 모임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염제신의 집에 모인 원로들을 말한다. 綺羅(기라)는 곱고 아름다운 비단을 말하며 黃花(황화)는 국화(菊花)를 이르고 搖落(요락)은 凋落(조락)으로 시들어 떨어짐을 말하고 蕊(예)는 꽃술이지만 여기서는 꽃망울을 뜻한다.
正月初二日(정월초이일) 詣曲城府中(예곡성부중) 見梅花(견매화) 躑躅一時盛開(철쭉일시성개) 退而不能忘(퇴이불능망) 因成三首(인성3수) - 이색(李穡)
氷雪前頭錦作堆(빙설전두금작퇴)
暗香濃艶巧相陪(암향농엽교상배)
幾人能得一時看(기인능득일시간)
三達尊翁獨竝栽(삼달존옹독병재)
빙설 앞에 비단 더미 쌓인 것처럼 보이고
은은한 향과 짙은 색상이 잘 어울리는구나
몇 사람이나 이들을 동시에 볼 수 있을까
오직 삼달존 어르신만이 이렇게 길렀다네
臈盡溪山氷雪堆(납진계산빙설퇴)
芳心絶俗自無陪(방심절속자무배)
肯嫌躑躅爭春色(긍혐철쭉쟁춘색)
已被高人縱意栽(이피고인종의재)
섣달이 지나 계곡과 산엔 빙설이 쌓였으니
꽃다운 마음 세속과 멀어 절로 벗이 없구려
봄꽃과 경쟁하길 싫어하는 철쭉을 이해하여
이미 고결하신 분 뜻대로 재배되어 왔다네
耆英會上綺羅堆(기영회상기라퇴)
後進無由得暫陪(후진무유득잠배)
共羡黃花耐搖落(공선황화내요락)
自憐靑蕊晚移栽(자린청예만이재)
기영회에는 화려한 비단이 더미로 쌓였건만
후진은 잠시도 모실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여전히 시들지 않은 국화를 함께 감상하니
늦게 옮겨 심은 푸른 꽃망울이 가련하구나
이색은 그의 문집인 목은집(牧隱集)에서 보면 躑躅(척촉)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등장하지만 그 중 일부는 머뭇거리다 또는 깡총깡총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나머지 반 정도는 철쭉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반면에 그는 두견화(杜鵑花)라는 용어는 전혀 쓰지 않았다. 이는 그의 스승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8~1367)선생이 철쭉(躑躅)이라고 하지 않고 두견화(杜鵑花)라고만 한 것과 대비된다. 이렇듯 고려말이나 조선초에도 두견화와 철쭉의 용어가 제대로 구분되어 사용되지 못하고 혼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러다가 나중에 영산홍과 진달래까지 추가되어 더 혼란스러운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조선 말기 많은 실학자들이 구분에 어려움을 토로하게 된다. 식물분류학이 도입된 지금 현재는 거기에다가 참꽃과 만병초, 차 그리고 아잘레아까지 추가되어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되어 버렸다. 진달래속 자생종이 겨우 24종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왜 이리 중구난방(衆口難防)인지 어지럽기만 하다. 문제는 이렇게 달리 부르는 이름들의 뚜렷한 구분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 자생종이 수백이 넘는 중국에서는 현재 이들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모두 두견(杜鵑)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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