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김춘수(金春洙, 1922~2004)시인이 1959년 발표한 능금이라는 시의 1연이다. 달콤한 향이 나는 새빨간 자그마한 능금이 저절로 떠오른다. 다음은 1968년 발표된 전설의 가수 배호(裵湖, 1942~1971)의 능금빛 순정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사랑이 그립거든 손짓을 해요
말못할 순정은 빨간 능금알
수줍어 수줍어 고개 숙이다
조용히 불러주는 능금꽃 사랑
사랑을 따려거든 발돋움 해요
꽃바람 지며는 빨간 능금알
외로워 외로워 눈물 흘리다
말없이 떨어지는 능금빛 순정
젊은 사람들은 수능 공부하던 기억이 나이가 든 노년층이라면 어릴 적 먹던 능금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홍옥(紅玉)과 국광(國光)이라는 과수원 사과는 가난한 집안에서는 좀처럼 먹기 힘든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홍옥과 국광이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미국에서 개발된 Jonathan과 Ralls Janet이라는 품종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홍옥과 국광 등의 근대 사과품종은 한중일 모두 미국에서 도입되었다. 일본과 중국에는 1871년경에 우리나라는 10여 년 늦게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그 이전에는 사과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 이전에도 사과(沙果)가 있었다. 그리고 사과와 비슷하지만 약간 작은 능금이라는 것도 있었다. 사과라는 명칭이 문헌에는 조선 초에 처음 등장하지만 그 이전에는 다소 품질이 떨어지는 멋이라고 부르며 내(柰)라고 썼던 먼 옛날 도입된 재래종 사과가 있었다. 멋은 이미 신라 처용가에도 머자라는 이름의 과일로 나오므로 아주 오래 전에 국내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사과나무는 같은 수종이지만 품종이 계속 개량되어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재래종 멋(柰)과 조선시대 청나라서 도입된 사과(楂果)와 개화기 미국서 들어온 근대 사과(沙果, 楂果) 등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과나무의 의붓형제라고 할 수 있는 능금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능금을 사과의 조상이거나 또는 같은 수종인데 품종만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원래부터 능금과 사과는 수종이 전혀 다른 나무이다. 다만 초창기 재래종 사과와 능금이 외형상 구분이 쉽지 않아서 한중일 모두 구분 없이 임금(林檎)으로 표기하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 현재도 우리나라 사과 산지에는 능금조합이 있고 능금아가씨를 뽑는 행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능금은 “1. 능금나무의 열매 2. =사과’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고려시대까지는 재래종 사과인 멋(柰)과 능금이 큰 차이가 없어서 함께 식용 과일로 이용되었으며 문헌에도 둘 다 임금(林檎)이라고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신라시대부터 재배하였다는 멋(柰)이 조선 세종 때까지 우리 기록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1654년 품질이 개선된 멋(柰) 즉 사과(楂果)가 청나라로부터 도입된 이후는 능금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자 둘을 구분하여 부르고 점차 사과위주로 재배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개화기 근대 사과가 도입된 이후에는 능금은 식용 과일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어 재배하는 농가가 없으므로 자연히 우리 주변에서도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성급하게 멸종위기설까지 운운한다. 이런 현상은 한중일 3국이 모두 비슷한 처지인데 중국에서는 아직도 일부 고장에서 능금 즉 화홍(花紅)을 재배하여 가공식품이나 양조용으로 생산 상업화하며 일본에서는 사라져가는 능금 즉 화임금(和林檎)을 살리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식물에 무심한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에서 자하문 부근에서 많이 재배하던 서울능금을 복원하기 위한 움직임 외에는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현재 나무시장에서도 능금나무는 구하기도 어려우며 우리나라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에서 운영하는 국생정 도감에도 단 한 장의 사진조차도 없다. 능금나무가 이미 멸종된 것도 아닌데 왜 이게 능금이다 하면서 표준목이 될 만한 사진 한 장도 올리지 못할까? 능력이 없는 것인지 성의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실제로 수년 전에 능금나무를 구하려고 여러 곳 헤매다가 아주 어렵게 구한 기억이 있다. 능금나무가 옛 추억을 되살려 주는 데다가 키가 아담하고 작은 열매도 아름다워 정원 관상수로는 이만한 수종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고로 능금은 종자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멸종될 수종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멸종된 것은 17세기 중반 청나라서 도입한 사과(楂果) 품종이 아닌가 한다. 18세기 초에 저술된 산림경제(山林經濟)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사과는 종자번식이 불가능하고 접목에 의하여야 하는데 근대 사과가 도입된 다음 경쟁력이 떨어져 아무도 접목번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능금은 원래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자생한다. 하지만 중국 동북지방 일부가 과거 우리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이었으므로 과거에는 분명 우리 자생종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한반도에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도입된 외래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숲(林) 속에서 이 열매가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익을 때 날짐승(禽)들이 모여든다고 임금(林檎) 또는 내금(來禽)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져 오랫동안 그렇게 표기했다. 하지만 林檎의 중국 발음은 린친(línqín)이지만 국내서는 임금이 되어 백성들이 함부로 부를 수가 없어서 그랬는지 림금에서 님금으로 다시 닝금으로 변하고 최종적으로 능금이 되었다고 한다. 임금(林檎)이 등장하는 우리 문헌은 고려 무신정권 시절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전집 권제13(東國李相國全集 卷第十三)에 구우홀청(久雨忽晴) 여객행원중기소견(與客行園中記所見)이라는 제목의 고률시(古律詩)에 ‘林檎綴珠琲(임금철주배) 頗覺味釅苦(파각미염고)’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게 최초가 아닌가 한다. 내용인즉 ‘능금이 구슬같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그 맛이 시면서도 쓰구나’이다. 손님과 함께 정원을 둘러보면서 작시한 것이므로 실제로 재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시면서도 쓴 맛인 것으로 봐서는 재래종 사과인 멋(柰)이 아닌 능금(林檎)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우리 기록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 사신들이 남긴 글로서는 이보다 앞선 기록이 있다. 중국 북송의 관리 손목(孫穆)이란 사람이 고려 숙종(肅宗) 8년 즉 1103년에 봉사고려국신서장관(奉使高麗國信書狀官)으로 고려를 방문한 후 당시 보고 들은 고려의 조정제도와 풍속 및 고려 방언 약 360어휘를 채록하여 저술한 견문록이자 어휘집인 계림유사(鷄林類事)에 고려인들이 林檎(임금)을 悶子訃(민자부)라고 부르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민자부가 도대체 뭔지 아직 아무도 제대로 풀이하지 못하지만 여하튼 그 당시 고려에도 임금(林檎)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년 후인 1123년 다시 송나라의 사신으로 고려에 온 관리 서긍(徐兢, 1091~1153)의 선화봉사 고려도경(宣和奉使 高麗圖經)이라는 보고서에 ‘倭國者, 亦有來禽·青李·瓜·桃·梨·棗, 味薄而形小’라는 내용이 있다. 즉 ‘왜국(倭國)에서 온 능금(來禽) 청리(靑李) 참외 복숭아 배 대추 등은 작고 맛이 나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으로 일본에서도 그 당시 능금을 재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 중엽인 931~938에 저술된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에 利宇古宇(리우고우, りうこう/りうごう)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게 전와되어 오늘날 임금(林檎)의 발음 린고(リンゴ)가 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어 단순히 기록으로만 보면 우리보다 앞선 시기가 된다. 중국에서도 당나라 때 일본견당사(日本遣唐使)에 의하여 임금(林檎)이 일본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과거 고구려와 발해의 땅인 요동 등지에서 능금이 자생하였기에 최소한 삼국시대에 한반도로 유입되었을 것이므로 일본과 그 시기를 비교할 바는 아니다.
능금나무의 학명 Malus Nakai는 1915년 일본 식물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 명명한 것인데 종소명 asiatica는 아시아라는 뜻이다.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동아시아에 널리 재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종은 최근인 2017년 유전자 분석 결과 혈통적으로 먼 옛날 야광나무 Malus baccata와 중국 신강 서부 원산의 Malus sieversii 즉 신강야평과(新疆野苹果)가 교잡 조상임이 밝혀졌으나 하나의 종으로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마치 사과나무 즉 Malus domestica가 신강야평과(新疆野苹果)와 유럽 야생사과나무 즉 Malus sylvestris와의 교잡종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종으로 인정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사과는 중국 신장 원산의 야생 사과나무가 실크로드를 따라서 서진(西進)하면서 유럽야생 사과나무를 만나서 교잡되어 탄생한 종이고 능금은 같은 신장 원산의 야생 사과나무가 실크로드를 따라서 동진(東進)하면서 중국 북방에서 야광나무를 만나서 교잡하여 탄생된 잡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둘은 신장에서 출발하여 처음부터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였기에 혈통적으로 직접적으로 섞인 관계는 아니지만 조상 중 하나가 신강야평과(新疆野苹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비유하면 의붓형제와 같은 관계라 할 수 있다.
능금나무의 중국 최초 이름은 임금(林檎)이었지만 현재 중국 식물학계에서 인정하는 정명은 화홍(花紅)이다. 이 이름은 명나라 때 정원설계사인 문진형(文震亨, 1585~1645)이 1621년 발간한 장물지(长物志) 소과(蔬果)편에 “吴中 称花红,即名林檎,又名来禽,似柰而小,花亦可观.” 즉 “오(吳)지방에서는 화홍이라 하는데 곧 임금이고 내금이다. 내(柰)를 닮았지만 작다. 꽃 또한 볼만 하다.”라고 기록한 것이 출처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인 1505년에 명나라 관주도로 유문태(刘文泰) 등이 편집한 본초품휘정요(本草品汇精要)라는 본초서에 화홍이 임금의 속칭이라는 기록이 나오고 그 먼저 명나라 재야 의학자인 난무(兰茂, 1397~1470)라는 사람이 1436년에 완성한 진남본초(滇南本草)에 화홍과(花紅果)라는 약재를 소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중국에는 다양한 별명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사과(沙果)이다. 우리가 말하는 사과가 중국에서는 사과가 아닌 바로 능금의 별명인 것이다. 사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에 대하여는 모래땅(沙地)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라는 설과 사아(沙俄) 즉 제정러시아에서 온 품종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정설은 “其肉质疏松,味甜酸而芳香不耐贮;稍贮后肉质即沙化,故名沙果.” 즉 “과육이 푸석푸석하고 달고 신맛이 나지만 저장하기 어렵다. 시간이 약간만 지나도 과육이 모래와 같이 변하여 사과(沙果)라고 한다”라고 아예 중국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초창기 한나라시대부터 임금(林檎) 또는 내금(來禽)으로 불렀던 이 나무를 중국에서 사과(沙果)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명백하게 정리된다.
중국에서 사과(沙果)라는 명칭의 최초 출처는 명나라 때인 1505년에 관주도하에 유문태(刘文泰) 등이 편집한 본초품휘정요(本草品汇精要)라는 본초서이다. 그리고 20세기 이전의 다른 본초서에는 사과(沙果)라는 어휘를 찾기가 어렵다. 다만 청나라 강희제(재위 1661~1722) 때 내속(柰属) 과일류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 결과 품종을 나눈 기록이 있는데 그 중에 “绵而沙者 曰沙果.”라고 “솜같이 무르고 모래 같은 것이 사과(沙果)이다.”라고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의 사과는 능금 즉 Malus asiatica 중에서도 품질이 좋지 못한 품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과라고 부르는 과수원 재배용 수종은 중국에서는 평과(苹果, 蘋果, 頻果)라고 하는 것이고 중국에서 사과(沙果)라고 하는 것은 품질이 떨어져 우리나라는 물론 원산지 중국에서도 197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임금(林檎) 즉 능금나무를 지칭하는 별명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능금을 임금(林檎)이라고 쓰고 린고(リンゴ)라고 했는데 능금과 우리가 멋(柰)이나 조선시대 사과(楂果)라고 했던 것을 구분 없이 같이 불렀다. 그러다가 개화기에 미국에서 신품종 사과가 도입되자 이를 서양임금(西洋林檎)이라고 하고 능금은 화임금(花林檎)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그러니까 일본은 우리가 사과라고 하는 것과 능금을 구분 없이 모두 린고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중국명 林檎의 우리식 발음 림금에서 온 것이다. 일본에는 17세기 전반에 도입되었다는 열매가 약간 길쭉하고 색상이 빨간 린고의 변종으로 과거에 학명 Malus asiatica var. rinkii로 표기하였고 지금은 재배품종 학명 Malus asiatica ‘Rinkii’로 표기하던 린키(リンキ) 또는 린킨(リンキン)이라는 품종이 있는데 이 발음은 林檎의 중국 발음 린친(línqín)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보나 그 열매의 모양으로 보나 이 품종은 林檎(능금)이 아닌 사과(楂果)이거나 벚잎꽃사과나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일본에서는 능금의 일종으로 분류하다가 지금은 원종인 능금에 통합되었다. 여하튼 초창기 일본에 도입된 능금은 과거 한반도에서 건너갔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린고의 도래경로를 1. 조선반도 경유 2. 중국 수나라 또는 당나라에서 직접 3. 발해에서 유입 중 하나라고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 북부지역을 근거지로 삼았던 발해(渤海, 698~926)도 임금의 자생지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 문림랑과(文林郞果)가 바로 발해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중국 기록도 있다. 여하튼 국내서도 능금을 사과의 원종 또는 재래종이라고 인식하거나 나아가서 아예 능금을 사과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과와 능금을 과거는 물론 현재도 린고(林檎)라고 부르는 일본의 영향으로 보인다.
식물분류학이 도입되자 우리나라는 1937년 발간된 최초의 한글 식물목록인 조선식물향명집에 사과속 수종으로 능금과 야광나무, 털야광나무 그리고 아그배나무 등 4종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사과나무와 꽃사과들이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가끔 능금이 우리나라 서울과 강원도 그리고 황해도에 자생하므로 우리 자생종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조선식물향명집에서부터 현재의 학명 Malus asiatica Nakai 그대로 표기되어 있었던 능금은 그 당시에도 벌써 국내 자생설이 부정되었는지 재배식물(栽培植物)이라고 (栽)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본 명칭은 조선임금(朝鮮林檎)이라는 뜻인 테후센린고(テフセンリンゴ)로 표기되어 있어 흥미롭다. 테후센(テフセン)은 과거 조선을 이르던 옛말이다. 일본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이 수종의 원산지가 과거 발해(渤海)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초창기에 일본인들이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조센린고(チョウセンリンゴ, 朝鮮林檎)라고도 했다. 물론 지금은 일본임금이라는 의미의 와린고(ワリンゴ, 和林檎) 또는 지린고(ジリンゴ, 地林檎)라고 한다. 우리나라 도감에서는 능금나무가 10m까지도 자란다고 설명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소교목으로 키가 4~6m라고 묘사한다.
등록명 : 능금나무
학 명 : Malus asiatica Nakai
이 명 : Malus pumila var. dulcissima (Koidz.) Koidz
분 류 : 장미과 사과나무속 낙엽 소교목
원산지 : 중국
중국명 : 화홍(花紅) 임금(林檎) 문림랑과(文林郞果) 사과(沙果)
일본명 : 와린고(ワリンゴ, 和林檎)
영어명 : Chinese pearleaf crabapple
수 고 : 4~6m
줄 기 : 소지 조장 원주형 눈지유모밀생 노지 암자갈색 무모 희소 천색피공
동 아 : 난형 선단급첨 초시유모 축점탈락 회홍색
엽 편 : 난형 타원형
잎크기 : 5~11 x 4~5.5cm
잎모양 : 선단금첨점첨 기부원형 관설형 변연세예거치
잎면모 : 상면 단유모 축점탈락 하면단유모
잎자루 : 1.5~5cm, 단유모
탁 엽 : 소 막질 피침형 조락
꽃차례 : 산방화서 4~7송이 소지정단집생
꽃자루 : 1.5~2cm 유모밀생
꽃크기 : 3~4cm
꽃받침 : 종상 외면유모밀생
악 편 : 삼각피침형 4~5mm 선단점첨 전연 내외유모밀생 악편비악통초장
화 판 : 도란형 장원도란형 8~13 x 4~7mm 기부단조 담분색
수 술 : 17~20, 화사장단부등 비화판단
화 주 : 4(5) 기부장융모 비웅예교장
열 매 : 난형근구형 지름 4~5cm 황색홍색 선단점협 불구융기 기부함입 숙존악비후융기
개화기 : 4~5월
결실기 : 8~9월
특 징 : 저장운송 어려움
내한성 : 영하 34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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