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용 개량사과나무의 학명
우리나라에서 사과나무속 수종들을 부르는 이름은 매우 다양하다. 사과와 능금 그리고 해당, 꽃사과 및 야광 또는 아그배, 이노리나무 등 무려 7가지나 된다. 이들 이름은 순수 우리말도 있지만 대부분 중국에서 유래된 말이기에 먼저 중국의 사과나무속 수종들의 명칭 변경 역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복잡하여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학명 Malus domestica 또는 Malus pumila로 표기하는 사과나무는 우리 인간들이 식용하기 위하여 과수원에서 재배하는 사과를 말한다. 천산산맥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워낙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교잡 등을 통하여 개량된 것이므로 그 원종을 쉽게 파악할 수가 없어서 그 자체를 하나의 종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 재배용 사과나무 즉 apple tree에 대하여 린네가 식물분류학을 창설하면서 1753년 배나무속으로 분류하여 Pyrus malus L.라는 학명을 부여한다. 여기서 종소명 malus는 라틴어로 사과 즉 apple을 이르던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배나무와는 다르다고 판단했던지 이듬해인 1754년 영국 식물학자인 Philip Miller(1691~1771)가 린네가 사용한 종소명 malus를 속명으로 한 새로운 속을 창설하였는데 그게 바로 사과나무속이다. 그는 그 후 1768년에 Malus pumila Mill.이라는 학명을 발표한다. 린네가 초창기 명명하였던 Pyrus malus는 이 학명의 이명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이 학명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과수용 사과나무를 지칭하는 학명으로 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사과나무라는 국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종소명 pumila는 small 또는 dwarf 즉 왜성이라는 뜻인데 과수용 사과나무이므로 열매가 작은 것은 아닐 터이고 그렇다면 키가 작기 때문일 것인데 이게 좀 의문스러웠다. 그 당시 밀러는 유럽 야생사과나무인 Malus sylvestris와 미국서 건너온 Malus coronaria와 더불어 3종을 동시에 명명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실제 사과나무는 야생에서 15m까지도 자라므로 결코 작은 사이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후 1803년에 독일 삼림학자인 Moritz Balthasar Borkhausen (1760~1806)이 유럽에서 재배하는 과수용 사과나무를 대상으로 아예 그런 취지의 종소명을 사용한 학명 Malus domestica (Suckow) Borkh.를 발표한다. 이들 둘은 같은 재배용 사과를 지칭하기에 시기적으로 선순위인 밀러의 학명 Malus pumila가 널리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에 와서 밀러의 학명은 재배용 사과나무 중에서 특별히 약하고 낮게 자라는 서양에서 Paradise Apple로 불리는 왜성 품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처음부터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왜성종이더라도 재배용 사과나무인 것은 사실이므로 선순위는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여 한동안 Malus pumila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다가 2010년대에 와서 후자 즉 Malus domestica를 정명으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한번 부결된 바도 있으나 2017년에 다시 상정되어 최종적으로 가결되어 보존명 즉 conserved name으로 확정되었다. 새로운 학명의 종소명 domestica는 재배용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학명을 Malus domestica로 변경하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과나무의 중국 정명은 평과(苹果)
우리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현재 식용하는 재배용 사과는 거의 대부분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 신장(新疆)이 원산지인 학명 Malus domestica 또는 Malus pumila라고 표기하는 이 사과나무 단 한종이다. 따라서 식용하는 수종이 3개나 되는 배와는 다르다고 앞 배나무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사과도 이 사과나무 외에 다른 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중국 원산의 학명 Malus asiatica로 표기하는 능금나무가 있다. 중국에는 서기 270년경 기록이 남아 있는 능금은 중국 거의 전 지역이 원산지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일찍이 전파되어 한중일 3국이 모두 임금(林檎)이라고 부르면서 재배하여 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서양 즉 미국에서 과수원용 개량사과나무가 도입되기 전까지 한중일 3국에서 오랫동안 재배하고 먹었지만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바로 그 추억의 옛날 사과나무를 말한다.
그렇다고 서양에서 개량사과나무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능금나무만 재배하고 능금(林檎)만 먹었다는 말은 아니다. 원래 그 옛날 서역(西域)이라고 불리던 중국의 신장(新疆)위구르지역도 사과나무의 원산지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청나라 말기인 1871년에 서양에서 품종이 개량된 사과나무가 도입되기 전까지 사과나무가 중국 중원에 전혀 반입되지 않았을 수가 없다. 원나라(1271~1368) 중후반에 중앙아시아에서 맛이 좋은 품종이 도입되어 초기에는 황실주변에서만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현대의 사과에 비하면 볼 품 없는 수준이었지만 능금보다는 훨씬 더 크고 품질이 좋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가 점차 민간으로 퍼지면서 재배되자 명나라에 와서 저명한 원예학자인 왕상진(王象晋, 1561~1653)이 1607~1627년 사이에 저술한 군방보(群芳谱)에서 서역에서 온 그 과일의 이름을 처음으로 평과(苹果)라고 하였는데 이게 오늘날 사과나무 즉 학명 Malus pumila의 중국 정명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평과(苹果)가 알려져 1645년에 조선 왕실의 왕자가 직접 중국으로부터 빈과(蘋果) 즉 평과(苹果)를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14세기 초에 원나라에 처음 도입된 중앙아시아 원산 평과(苹果) 즉 사과가 17세기 중반에 우리 조선에도 건너 온 것이라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획기적으로 개량된 품종이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한중일 삼국에 보급되면서 그동안 재배하던 능금(林檎)이던 빈과(蘋果)이던 자취를 감춰버리고 그 개량사과나무만 우리가 재배하고 먹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다른 주장이 있다. 중국 일부에서는 원나라시대에 도입된 빈과(蘋果)가 중국에 도입된 최초의 사과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나라 상림원(上林苑)에 심은 내(柰)가 임금(林檎)이 아닌 바로 신장 원산의 사과나무 즉 Malus domestica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개량사과나무의 원산지 중 한 나라가 되며 한나라시대부터 재배한 역사를 가지게 된다. 물론 그 당시 이름은 현재의 평과(苹果)가 아닌 내(柰)인데 지금의 사과에 비하여 보드랍고 쉽게 물러지는 특징이 있어 현재 중국에서는 이를 면평과(绵苹果)라고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일단 이 게시글에서는 후자 즉 한나라 상림원에 심었다는 내(柰)가 임금(林檎)과는 다른 면평과(绵苹果)였다는 주장을 따라서 중국 명칭의 변천과정을 파악해 본다. 따라서 임금(林檎)을 능금으로 내(柰)를 면평과(绵苹果)로 평과(苹果)를 사과(沙果)로 칭한다.
중국의 내(柰)와 임금(林檎) 해당(海棠)
그럼 현대의 개량사과나무를 중국에서 평과(苹果)라고 부르는 이유와 중국 토종 능금나무와 서역에서 한나라시대에 건너 온 내의 명칭들을 알아보자. 중국 고대에는 임금(林檎)이라고 부르던 중국 토종인 능금나무 외에도 서역에서 건너 온 내(柰)가 있었는데 워낙 원시형태의 사과라서 임금(林檎)과 큰 차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柰)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한나라 사마상여(司马相如, BC.179~BC.118)의 상림부(上林赋)이다. 황실정원인 상림원(上林苑)에 능금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이다. 내(柰)를 파자(破字)하면 제단(示) + 나무(木)가 된다. 즉 제사에 쓰는 과일나무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임금보다는 품질이 좋아서 제단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초창기에는 작은 열매를 말려서 포(脯)를 만들어 식용 또는 향으로 쓰기 위하여 재배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생식할 정도의 충분한 크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서진(西晋, 266~317)시대인 서기 270년쯤 곽의공(郭义恭)이 저술한 광지(廣志)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林檎似赤柰子 亦名黑檎. 一名来禽 言味甘熟则来禽也.” 즉 “임금은 붉은 내자를 닮았으며 흑금 또는 내금이라고도 한다. 열매가 달짝하게 익을 때 새(禽)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능금을 지칭하는 임금(林檎)과 내금(來禽)이라는 명칭이 유래된 것이다. 그 후 북위(北魏, 386~534) 시대 고양 태수 가사협(贾思勰)이라는 사람이 533~544년에 저술한 농학서인 제민요술(齐民要术)에 면사과 즉 금(柰)에는 백내(白柰) 자내(紫柰) 녹내(绿柰) 소내(素柰) 주내(朱柰) 적내(赤柰) 등 다수의 종(多种)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중앙아시아 원산의 사과나무 즉 Malus domestica가 중국에 도입된 얼마 후부터 이미 나름대로 여러 품종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문화가 융성하게 피어나는 당나라시대에 와서는 백거이(白居易) 정곡(鄭谷) 등의 시인들이 임금(林禽)을 대상으로 노래한 시들을 남겼다. 그리고 왕방언(王方言)이라는 사람이 발해(渤海)에서 재배하여 진상한 크고 붉은 반점이 있는 백색 임금(林檎)을 받고서 당고종(唐高宗, 재위 643~649)이 크게 기뻐하며 왕문림랑(王文林郞)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하여 문림랑과(文林郞果)라는 능금나무의 또 다른 별명도 생겨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가탐(贾耽, 730~805)이라는 사람이 남긴 백화보(百花谱)에 해당(海棠)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海棠为花中神仙,色甚丽” 즉 “해당은 화중 신선이며 색이 매우 아름답다.”라고 극찬하는 내용이다. 중국에서 해당(海棠)은 해외 또는 역외서 온 아름다운 꽃이 피는 명자나무나 꽃사과를 부르는 이름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해당화 즉 꽃사과의 인기는 지금도 매우 높다.
불경속 인도 빈바과(頻婆果)
그런데 동한시대 인도로부터 전래된 불교가 당나라 시대에 와서 점점 성해지면서 가끔 승려들이 인도를 직접 다녀오게 된다. 그러면서 인도에서 본 불경에서 언급되는 그리움 즉 상사(相思)와 단정하고 붉은 입술을 상징한다는 빈바과(频婆果)를 언급하자 그게 내(柰) 즉 면평과(绵苹果)와 매우 유사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빈바(频婆)는 범어(梵語)의 bimba를 음역한 것으로 원래 인도에서는 학명 Coccinia grandis인 박과의 채소로 먹는 덩굴식물로서 지금 중국에서는 이를 홍과(红瓜)라고 한다. 그리고 한자 婆는 음이 파이지만 음역할 때는 바로도 읽는다. 하지만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던 그 시절 당나라 사람들은 인도의 빈바(频婆)가 서역에서 들어 온 내(柰)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나라 시대 한 때 서역에서 온 내(柰) 중에서 열매가 붉게 익는 홍색내(红色柰)를 빈바과(頻婆果)라고도 불렀다. 한편 그 당시 일본에서 온 견당사에 의하여 임금(林檎)이 일본으로 건너갔기에 일본에서는 아직도 능금나무를 임금이라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도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일본과 비슷한 시기인 삼국시대 말기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국내에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이름 능금은 원래 림금(林檎)에서 닝금으로 다시 능금으로 변한 것이라니 일본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건너 온 임금(林檎) 중에 신장에서 건너 온 내(柰)도 섞여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다가 송나라 시대에 와서는 임금의 재배가 늘어나고 품종도 금임금(金林檎) 홍임금(红林檎) 수임금(水林檎) 등으로 세분되고 관련 시사(詩詞)도 많아지게 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당나라와는 달리 불경 속의 빈바과(頻婆果)를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는 부처님의 눈(眼) 즉 불안과(佛眼果)로 인식하면서 중국 자생 학명 Sterculia monosperma인 아욱과(구 벽오동과) 교목이라고 판단하여 그 수종에다가 평바(苹婆)라는 이름을 붙인다. 평바(苹婆)의 열매 모습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빈바(頻婆)가 중국 발음이 같은 蘋婆(빈바 또는 평바)가 되고 그 평바(蘋婆)의 간체자가 평바(苹婆)가 된 것인데 중국 발음은 같지만 우리 발음은 빈바에서 평바로 달라진다. 실제로 지금도 중국에서 평바(苹婆)는 아욱과 그 교목으로 통한다. 흔히 중국의 식물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엉뚱하게 이름이 뒤바뀌어 붙듯이 중국도 인도 식물 이름을 엉뚱한 나무에다가 붙인 것이다.
능금의 정명인 화홍(花紅)과 별명인 사과(沙果)의 등장
그러다가 몽고가 중원을 점령하여 대원제국을 건설하면서 유럽까지 펼쳐진 드넓은 영토에서 드디어 중앙아시아 원산의 사과나무 즉 Malus domestica의 한층 더 개량된 품종이 들어오게 된다. 원나라 때 기록 중에 성홍평파(猩紅平波)라는 것이 있는데 이걸 모두 품질이 향상된 내(柰) 즉 면평과(绵苹果)라고 풀이한다.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은 원나라시대가 끝나고 명나라시대에 들어와서는 중국 토종 임금(林檎)의 새로운 명칭이 생겨난다. 우선 화홍(花紅)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1436년 등장하는데 이 이름이 훗날 임금(林檎)을 제치고 중국식물학계에서 인정하는 학명 Malus asiatica의 정명이 된다. 이 이름은 명나라 재야 의학자인 난무(兰茂, 1397~1470)라는 사람이 1436년에 완성한 진남본초(滇南本草)에 화홍과(花紅果)라는 약재로 소개한 것이 최초인 것 같다. 그리고 1505년에 명나라 관주도로 유문태(刘文泰) 등이 편집한 본초품휘정요(本草品汇精要)라는 본초서에 화홍이 임금의 속칭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이 시기에 우리에게 친숙한 사과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사과(沙果)라는 명칭이 중국에서는 아주 흔하게 쓰는 용어는 아니라서 중국에서도 언제부터 사용된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으나 호북성 등 북방에서 불러오던 이름으로서 최초 출처는 앞에서 언급한 1505년에 유문태(刘文泰) 등이 편집한 본초품휘정요(本草品汇精要)이다. 거기에 사과(沙果)가 화홍(花紅)과 더불어 임금의 속칭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20세기 이전의 다른 본초서에는 사과(沙果)라는 어휘를 찾기가 어렵다. 그만큼 널리 쓰인 별명은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내(柰)는 면평과 임금(林檎)은 능금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은 1578년에 완성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林檎,即柰之小而圆者”라고 “임금은 내(柰)의 작고 둥근 것이다.”라고 기록하여 능금인 임금(林檎)과 면사과인 내(柰)가 다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중국식물지에는 내(柰)가 평과(苹果)의 별명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화홍(花紅)의 별명으로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참고로 어원을 따지고 보면 내(柰)는 제사에 쓰는 조상들께 바치는 것이고 임금(林檎)은 날짐승들이 먹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은 같은 의미로 혼용하였을 수 있어도 나중에 둘을 분리한다면 크고 좋은 쪽이 당연히 내(柰)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중국 자생 임금(林檎)과 서역에서 온 원시형태의 내(柰)는 큰 차이가 없었기에 초기에는 혼용될 수 있는 명칭이었으나 원나라시절 중앙아시아 원산의 크고 맛이 좋은 내(柰) 즉 면평과(绵苹果)가 도입되었으므로 둘의 구분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명나라 후기에 와서 드디어 면평과(绵苹果)가 평바과(苹婆果)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먼저 명나라 중후기 관리였던 왕세무(王世懋, 1536~1588)의 1587년 완성된 학포여소(学圃余疏)에 “北土之苹婆果,即花红一种之变也”라는 문구가 있다. 북방에서 재배하는 평바과는 화홍의 변종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북방에서 재배하는 평바과는 토종 화홍과는 다른 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평바(苹婆)라는 명칭을 이미 다른 벽오동과의 교목에다가 붙였기에 혼동될 여지가 있었다.
그리고 명나라 때 정원설계사인 문진형(文震亨, 1585~1645)이 1621년 발간한 장물지(长物志) 소과(蔬果)편에 “西北称柰,家以为脯,即今之苹婆果也… 吴中 称花红,即名林檎,又名来禽,似柰而小,花亦可观.” 즉 “서북에서는 내(柰)라고 하며 가정에서 포를 만든다. 지금의 평바과를 말하며… 오(吳)지방에서는 화홍이라 하는데 곧 임금이고 내금이다. 내(柰)를 닮았지만 작다. 꽃 또한 볼만 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내(柰)와 임금(林檎)이 유사종이었는데 서북지방에서 주로 재배하는 중앙아시아에서 도입된 보다 크고 맛이 좋은 Malus domestica를 내(柰)이자 당나라시대부터 말하던 불경 속의 바로 그 평바과(苹婆果)라고 하고 남방에서 재배하는 기존의 작은 임금(林檎)은 화홍(花紅)이라고 불러 둘을 분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면평과(绵苹果) 즉 사과나무는 온난한 지역에서는 제대로 결실하지 않기 때문에 서북지방에서 주로 재배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 경상도에서 주로 재배하던 사과가 충청도를 거쳐 강원도까지 북상한 것은 바로 기후 온난화 때문이다.
사과의 정명인 평과(苹果)의 등장
그러다가 명나라의 저명한 원예학자인 왕상진(王象晋, 1561~1653)이 1607~1627년까지 직접 고향에서 원예작물을 재배하면서 그 경험을 저술한 군방보(群芳谱) 과보(果谱)에 면평과(绵苹果)를 처음으로 평과(苹果)라고 하였는데 이게 오늘날 중국의 정명이 된 것이다. 불경 중에 언급되는 색단차윤(色丹且润) 즉 붉고 몹시 윤이 난다는 빈바과(频婆果)에서 온 이름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빈바과(频婆果)가 평바과(苹婆果)가 되고 다시 약칭인 평과(苹果)가 되어 아욱과 교목인 평바(苹婆)와 중복을 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왕상진이 기록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번식과 수확시기까지 구체적으로 상세하다.
苹果:出北地,燕赵者尤佳。接用林檎体。树身耸直,叶青,似林檎而大,果如梨而圆滑。生青,熟则半红半白,或全红,光洁可爱玩,香闻数步。味甘松,未熟者食如棉絮,过熟又沙烂不堪食,惟八九分熟者最佳。
사과 : 북쪽 연나라나 조나라산이 으뜸이다. 임금(능금나무)에다가 접목한다. 나무는 곧게 자라고 잎은 푸르러 임금만큼 크고 열매는 배처럼 매끄럽다. 녹색에서 반홍반백색 또는 홍색으로 익으며 표면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열매에 향기가 있고 맛은 달지만 덜 익은 것은 솜과 같고 너무 익으면 물러서 먹기 힘들어 80~90% 익힌 것이 가장 좋다.
청나라 초기인 1654년 조선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이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빈과(蘋果)를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사과나무라고 한다. 이 빈과는 원나라시대에 도입된 품질이 향상된 면평과(绵苹果) 즉 내(柰)가 분명해 보인다. 여하튼 청나라시대에는 사과를 무척 좋아했다는 강희제 (재위 1661~1722) 때 내속(柰属) 과일류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 결과 품종을 나눈 기록이 있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柰有数种,小而赤者,曰柰子, 大而赤者,曰槟子, 白而点红,或纯白,圆且大者,曰苹婆果。半红白,脆有津者,曰花红。绵而沙者,曰沙果 .”라고 “내(柰) 즉 능금속은 다수 종이 있는데 작고 붉은 것이 내자(柰子)이고 크고 붉은 것이 빈자(槟子)이며 백색에 붉은 반점이 있거나 순백색에 둥글고 큰 것이 평바과(蘋婆果)이고 홍백색에 아삭아삭하고 수분이 많은 것이 화홍(花紅)이고 무르고 모래 같은 것이 사과(沙果)이다.”라고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내속(柰属)은 현재의 사과와 능금을 아우르는 사과나무속을 말하고 내자(柰子)는 임금(林檎) 즉 능금나무 일종을 말하는 것 같고 빈자(槟子)는 평과(苹果)와 사과(沙果)의 교잡종으로 이 또한 임금의 일종이다. 그 당시 이미 중국에서 교잡 품종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여기서는 이미 원나라(1279~1368)시대에 중앙아시아로부터 도입하여 북경 인근에서 많이 재배하던 개량사과 즉 면평과(绵苹果)를 평과(苹果) 또는 평바과(蘋婆果)라고 불러서 그런지 내자(柰子)를 다시 중국 토종 능금나무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있어 이시진의 본초강목 등에서 언급된 내(柰)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실제로 중국 바이두백과사전에서도 내와 내자를 다른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사과(沙果)는 능금 즉 Malus asiatica 중에서도 품질이 좋지 못한 품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과라고 부르는 과수원 재배용 수종은 중국에서는 평과(苹果, 蘋果, 頻果)라 하고 중국에서 사과(沙果)라고 하는 것은 품질이 떨어져 우리나라는 물론 원산지 중국에서도 197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임금(林檎) 즉 능금나무를 지칭하는 별명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근대 사과인 평과(苹果)의 도입
그리고 근대에 와서 1871년 미국인 목사가 중국 옌타이(烟台)에 심으면서 근대 개량종 사과나무가 도입되었으나 이는 중앙아시아 원산 사과나무가 유럽을 거쳐서 미국으로 건너 갔다가 미국에서 품종이 획기적으로 개량되어 중국에 들어온 것이다. 이건 중국에 완전히 새로운 종이 도입된 것이 아니다. 학명 Malus domestica인 이 수종은 이미 1차 한나라 때 서역에서 재래종이 들어와 내(柰)로 불렀으며 2차 원나라 때 개량된 종이 들어와 빈바과(頻婆果)로 불리다가 평과(苹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두 차례에 도입된 사과 품종들을 현대의 사과나무와 동일한 수종이지만 그 품질이 현격한 차이를 보여 편의상 중국에서 면평과(绵苹果)라고 불러 현대의 사과 즉 평과(苹果)와 구분하여 부르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에서 도입된 현대의 사과를 면평과(绵苹果)와 구분하기 위하여 서양평과(西洋苹果)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하튼 이후 서양에서 식물분류학이 도입되었어도 중앙아시아 원산 학명 Malus domestica의 정명은 평과(苹果)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예로부터 쓰던 이름 임금(林檎)은 중국 자생종인 학명 Malus asiatica의 정명이 되지 못하고 별명으로 남고 그 대신 화홍(花红)이 정명이 된다. 그리고 북방 민간에서는 화홍(花紅)을 사과(沙果)라는 속칭으로 많이 부르게 된다. 실제로 중국에서 노인들은 사과(沙果)라는 말을 잘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임금(林檎)이라는 명칭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라서 남방 원산인 학명 Malus doumeri는 아직도 대만임금(台湾林檎)을 정명으로 하며 학명 Malus melliana는 첨취임금(尖嘴林檎)을 정명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작은 열매가 달리고 꽃이 아름다운 사과나무속 수종들 즉 꽃사과들은 해당(海棠)이라는 이름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현재 중국식물지에 등재된 22종 중 13종이 해당(海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도 사과나무속 수종들 중에서 꽃사과라는 이름이 가장 많다.
사과나무 Malus domestica 평과(苹果) 빈바과(頻婆果) 내(柰) 면평과(绵苹果)
능금나무 Malus asiatica 화홍(花紅) 임금(林檎) 내금(來禽) 사과(沙果) 문림랑과(文林郞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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