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콩과/--등속

902 등(藤) = 등나무, 갈등(葛藤)의 어원

낙은재 2019. 12. 30. 16:43


(藤)


우리가 일반적으로 등나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등(藤)이며 등나무는 참등과 함께 그 이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국표식에 의하면 이 덩굴식물의 명칭은 1942년 정태현의 참등과 1949년 박만규의 조선등나무 그리고 1996년 이우철의 등나무라는 이름들을 모두 제치고 1980년 이창복의 등을 정명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등(藤)은 1937년 정태현의 조선식물향명집에 처음 사용된 것 같으며 등나무가 아닌 그냥 등이라고 한 것은 아마 일본 이름 후지(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국내 거의 모든 도감에서 등나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한동안 우리나라 정명(추천명)이 등나무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등으로 변경되었는지에 대하여는 표기를 하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다만 등(藤)으로 변경되더라도 그 출처는 1937년 정태현의 조선식물향명집이 되어야 마땅해 보이는데 1980년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으로 되어 있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의아함을 느낀다.

  

(藤)은 경남과 전남 일부 지방에서 자생하기 때문에 우리 자생종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중국과 일본에서는 일본고유종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 약 900년된 고목이 있어 천연기념물 제25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도 자생종이 아니라면 그럼 이 나무는 1100년대 고려시대에 중국도 아닌 일본에서 도입하여 심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된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의 신라시대 사냥터에 있다는 등나무와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부산 범어사 계곡의 등나무 군락지가 있다는데도 등나무가 우리 자생종이라고 인정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은 뭐란 말인가? 이는 아마 과거에 국내 자생종 등나무와 일본 자생종 등나무가 따로 있었는데 지금은 통합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내 자생종 등나무는 1935년 일본학자 Uyeki가 별도의 독립종으로 학명 Wisteria koreana로 명명하였으나 나중에 일본 자생종인 Wisteria floribunda와는 같은 종으로 판단되어 통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청동 총리공관 수령 900년 등나무 고목 


삼청동 총리공관 수령 900년 등나무 고목 


삼청동 총리공관 수령 900년 등나무 고목 


등속 즉 Wisteria는 전세계 7개 속이 분포하며 한중일 3국에 6종이 자생하고 미국 동부에 1종이 자생한다. 속명 Wisteria는 18세기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교수였던 Caspar Wistar (1761-1818)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 자생하는 통합된 학명 Wisteria floribunda는 독일 식물학자 Carl Ludwig Willdenow (1765~1812)가 1802년 콩속으로 분류하여 Glycine floribunda로 명명하였던 것을 1825년 스위스 식물학자 Augustin Pyramus de Candolle(1778~1841)이 등속으로 변경하여 재명명한 것이다. 종소명 floribunda는 꽃이 많이 핀다는 뜻인데 실제로 등속 중에서 꽃차례가 가장 길고 화려하다는 평을 받는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 자생종 등과 지금은 통합되었지만 국내서만 자생한다는 조선등나무의 학명 Wisteria koreana는 국제적으로는 아직 독립종인지 유사종인지 판정이 유보된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비합법명이다. 즉 일본 등과 우리 등이 완전하게 동일한 종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일본 식물학자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가 일본 등과는 다른 별도의 종으로 발표하였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그 이후 더 이상의 진전이 없어서 아쉽다. 


등의 영어 일반명은 Japanese wisteria로서 이 수종이 초창기 일본 고유종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서구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지금 우리가 뭐라고 하겠는가? 일본에서는 이 수종을 후지 즉 등(藤)이라고 부르며 이명으로 노다후지 즉 야전등(野田藤)이라고 한다. 일본 오사카시 노다(野田)지방에 유명한 대규모 자생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이 등 외에도 야마후지 즉 산등(山藤)이라는 자생종이 하나 더 있다. 전세계 등속 7개 수종 중 4개 수종이 자생하는 중국에서는 이 수종이 자생하지 않아서 일본에서 도입하여 재배하는데 이를 다화자등(多花紫藤)이라고 한다. 꽃이 많이 핀다는 뜻인 다화(多花)는 학명 floribunda와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참고로 중국에서 흔한 등나무는 우리가 중국등나무라고 하는 Wisteria sinensis로서 중국에서는 이를 자등(紫藤)이라고 한다. 자등은 꽃차례와 잎이 우리 등나무에 비하여 좀 짧고 꽃잎 중 기판의 끝이 약간 오목하며 만개시 접히는 특성이 있으며 특히 줄기가 등나무와는 반대로 오른쪽감기를 한다. 


중국등나무

꽃차례가 짧고 줄기가 오른쪽감기라서 우리 자생종 등과 차이를 보인다.


등록명 : 등(藤)

이  명 : 참등, 등나무, 조선등나무 외

학  명 : Wisteria floribunda (Willd.) DC.

이  명 : Wisteria koreana Uyeki

분  류 : 콩과 등속 목본성 낙엽 덩굴식물

원산지 : 우리나라, 일본

중국명 : 다화자등(多花紫藤)

길  이 : 20m

수  피 : 적갈색

줄  기 : 왼쪽감기, 가늘고 유연, 분지밀생

잎특징 : 무성, 초기 갈색단유모 밀생, 후 무모

잎차례 : 기수 우상복엽, 20~30cm 길이

탁  엽 : 선형, 조락

소  엽 : 5~9대, 박지질, 난상피침형, 4~8 x 1~2.5cm, 선단점첨, 기부둔혹왜사, 눈시양면평복모, 후점무모

소엽병 : 3~4mm, 후변흑색, 유모

소탁엽 : 자모상, 3mm, 쉽게 탈락

꽃차례 : 총상화서, 당년지 끝, 동일가지 동시개화, 하부지 엽선개전, 화서장 30~90cm, 5~7cm 관, 기부부터 개화

화서축 : 백색단모 밀생

포  편 : 피침형, 조락

꽃길이 : 1.5~2cm

꽃자루 : 1.5~2.5cm, 견모

꽃받침 : 배상, 4~5 x 5~6mm, 견모, 상방 2악치 심둔, 원두, 하방 3치 예첨, 최하 1치 심장, 장달 3mm

꽃부리 : 자색, 남자색

기  판 : 원형, 선단원, 기부 심형

익  판 : 협장원형, 기부 절평, 소첨각

용골판 : 교활, 낫모양, 선단원둔

꽃향기 : 좋음

자  방 : 선형, 융모

화  주 : 위로 휘어짐, 무모, 배주 8과

협  과 : 도피침형, 12~19 x 1.5~2cm, 평탄, 융모, 가지 끝에 숙존

종  자 : 3~6립, 자갈색, 광택, 원형, 1~1.4cm 지름

개화기 : 4월 하순 ~ 5월 중순

결실기 : 5~7월

내한성 : 영하 34도

용  도 : 약용, 방향유, 등가구, 직물(등포)

원예종 : 백색, 담홍색 자색반점 겹꽃 등 다양


(藤)

꽃차례의 길이가 90cm가 되는 경우도 있다.


(藤)


(藤)


(藤)


(藤)


(藤)


(藤)


(藤)


(藤)으로 짠 직물

일본에서는 지금도 토속특산품으로 등포가 생산된다.


오른쪽감기와 왼쪽감기의 정의

덩굴식물은 제 스스로는 서지 못하고 다른 물체나 나무에 의존하는데 대부분 왼쪽이나 오른쪽 어느 한 방향으로만 지지하는 물체를 감으면서 올라가는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에 흔한 다년생 초본인 칡은 항상 지지할 대상을 뒤에서나 밑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올라가면서 감는다. 그래서 오른쪽감기 즉 우권(卷)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쪽 즉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반시계 방향 즉 왼쪽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등(藤)은 뒤에서나 밑에서 보면 왼쪽으로 즉 반시계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감는다. 그래서 왼쪽감기 즉 좌권(左卷)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위 즉 하늘에서 보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좌권(左卷)은 옆에서 보았을 경우 어느 방향에서 보던 항상 보이는 부분 즉 앞면의 좌측이 올라가 있고 우권(卷)은 그 반대로 우측이 올라가 있다. 그래서 등(藤)의 경우 밑에서 보면 왼쪽으로 감기고 옆에서 볼 때 항상 왼쪽이 올라간 경사선을 만드므로 좌우감기 구분이 매우 간단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윗쪽에서 볼 때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계 바늘이 항상 오른 쪽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이를 오른쪽감기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한중일의 식물 도감 대부분이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좌권과 우권에 대하여 누가 규정을 정한 바가 없으므로 그것도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헷갈리기 때문에 용어의 통일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칡은 오른쪽으로 가면서 올라가는 즉 오른쪽감기를 하고 있다.


등은 왼쪽으로 올라가면서 감는 왼쪽감기를 하고 있어 전면에서 볼 때 항상 줄기의 왼쪽이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며 이는 칡과는 반대이다.

하지만 이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도감에서도 오른쪽감기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왼쪽으로 올라가면서 감는 왼쪽감기를 하고 있는 등나무의 또 다른 예


서양에서는 덩굴식물을 비롯한 나선구조의 경우 왼쪽감기와 오른쪽감기를 영어로 left-handed helix와 right-handed helix라고 하며 그 정의를 나사를 드라이버 등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렸을 경우 나사가 전진하면 즉 물체에 박히면 right-handed helix라고 하며 그 반대로 나사가 풀릴 경우는 left-handed helix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중의 나사못 거의 모두는 시계 방향으로 돌릴 경우 전진하는 오른쪽감기로 제조되어 있다. 따라서 위에서 봤을 때 나사선이 감긴 방향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고 드라이버를 오른쪽으로 즉 시계 방향으로 돌렸을 때 전진하여야 오른쪽감기라고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나사선을 옆에서 보면 항상 오른쪽이 높게 올라가 있다. 따라서 이 서양의 기준을 도입하면 칡은 오른쪽감기이고 등은 왼쪽감기가 분명하다. 이는 아래 그림과 같이 플레밍의 법칙을 적용하여 왼손 오른손 법칙으로도 판단할 수가 있다.


왼쪽감기와 오른쪽감기는 이렇게 오른손 또는 왼손법칙을 적용하면 판별이 된다. 


왼쪽감기와 오른쪽감기는 손법칙 외에도 나사선이 어느쪽으로 경사가 있는지로 파악할 수도 있다.

전면에 보이는 나사선의 하나하나의 왼쪽이 높으면 왼쪽감기 오른쪽이 높으면 오른쪽감기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나사못은 모두 오른쪽감기로 제작되어 있다.


어느 식물 도감이던 오른쪽감기나 왼쪽감기 그리고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좌우는 전면에서 볼 때와 후면에서 볼 때가 반대이고 시계방향은 아래서 볼 경우와 위에서 볼 경우가 반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향이나 위치가 다르더라도 항상 일정한 용어로 표현할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S감기와 Z감기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대상에 감긴 모습을 보고서 Z 즉 오른쪽이 올라가면 Z감기라고 하고 왼쪽이 올라가면 S감기라고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칡은 Z감기가 되고 등(藤)은 S감기가 되어 결국 Z감기는 오른쪽감기가 되고 S감기는 왼쪽감기가 되는 것이다. 그럼 결국 등(藤)은 왼쪽감기 즉 좌권(左卷)이며 S감기이며 반시계 방향감기가 된다. 따라서 등이 오른쪽감기라고 설명한 한중일 도감은 모두 현대 국제 기준으로는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영어로 clockwise-twining stem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있다면 이 또한 실정을 모르고 한중일 도감의 표현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판단된다. 


왼쪽으로 가면서 올라가는 S감기와 그 반대인 Z감기라고 표현하면 오해의 소지가 없다.

S감기 = 왼쪽감기 = 반시계방향 감기

Z감기 = 오른쪽감기 = 시계방향 감기


S감기와 Z감기는 좌우를 뒤집던 상하를 거꾸로 하던 항상 일정하다.


갈등(葛藤)의 어원

위에서 덩굴식물의 감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바로 갈등의 어원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함이다. 과거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갈등을 일이 뒤얽힘 또는 서로 불화합이라고 풀이하였는데 최근에 와서는 언제부터인지 갈등을 칡과 등나무의 얽힘에서 유래된 것으로 설명한다. 포털 다음의 사전에서 갈등을 검색하면 마찬가지로 아래와 같이 풀이한다.

1. 칡과 등나무라는 뜻으로, 칡과 등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의지나 처지, 이해관계 따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을 일으킴을 이르는 말

2. 개인의 마음속에 상반되는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이나 의지 따위가 동시에 일어나 갈피를 못 잡고 괴로워함

3. 소설이나 희곡에서, 인물과 인물, 인물과 운명, 인물과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립이나 충돌, 모순을 이르는 말

위에서 2번 심리학적 정의나 3번 문학적 해석은 과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1번 즉 칡 즉 갈(葛)과 등나무 즉 등(藤)을 뜻하며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것과 같은 대립과 모순된 상황을 이른 말이라는 해석은 과연 타당한지 좀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왼쪽 칡 즉 갈(葛)과 오른쪽 등(藤)은 대상을 감고 올라가는 방향이 반대이다.


갈등(葛藤)은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藤)이 합한 한자어이므로 당연히 순수 우리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도입된 말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갓토우(かっとう)라고 발음하는 일본에서의 갈등의 의미는 우리와 거의 동일하지만 칡과 등이 서로 얽히는 것이라기보다는 칡이나 등같은 얽히고설키는 덩굴식물이라는 늬앙스가 강하다. 그리고 등과 칡이 반대 방향으로 감기어 얽힌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같은 한자 갈등(葛藤)으로 쓰고 쯔즈라후지(つづら‐ふじ)라고 발음하면 전혀 다른 식물인 방기과 방기라는 덩굴식물 즉 Sinomenium acutum를 지칭하기도 한다. 중국도 갈등(葛藤)이 메꽃과 Argyreia pierreana인 다른 목질 덩굴식물를 지칭하며 우리나 일본과 같은 이해관계 충돌이라는 뜻으로는 거의 쓰지 않고 칡덩굴(葛的藤蔓)이나 얽히고설킨(纠缠不清的关系)관계에 비유하거나 또는 장황하게 말이 많다(话语噜苏繁冗)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니까 중국의 갈등(葛藤)에는 갈 즉 칡만 있지 등나무의 존재는 없다. 여기서 등(藤)은 덩굴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국에서는 갈등(葛藤)의 출전이 서기 399년 후진(后秦)의 승려 축불념(竺佛念)이 인도 법구보살(法救菩萨)이 쓴 불경을 번역한 출요경(出曜经)이라는 것이다. 그 경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为爱所缠不能去离, 其有众生堕于爱网者,必败正道不至究竟,是故说爱网覆也. 犹如葛藤缠树,至末遍则树枯. 爱亦如是." 이미 국내 불교계에 널리 알려진 불경이므로 번역이 되어 있다. "애욕이 얽어매면 떨어져 나갈 수가 없게 된다. 중생 중에 애착의 그물에 떨어진 자는 반드시 정도(正道)가 무너져 궁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이를 애욕의 그물에 씌었다고 한다. 마치 칡덩굴(葛藤)이 나무를 감아 종말에 이르러 나무를 고사시키게 되니 애욕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인도에는 등은 자생하지 않고 이런 칡이 자생하므로 원전에서 언급한 덩굴식물이 칡일 가능성이 높다.

Pueraria tuberosa


여기서 갈등(葛藤)을 분명 칡과 등이 아니라 그냥 애욕에 비유한 칡덩굴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니까 갈등(葛藤)은 갈(葛)과 등(藤)간의 대립과 모순 또는 충돌이 아니다. 갈등에서의 등(藤)은 등나무라는 뜻이 아니고 그냥 덩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갈등(葛藤)은 덩굴식물의 대표격인 갈(葛)을 말하며 이 덩굴식물을 애욕에 비유하여 구도자의 길로 정진할 것인지 아니면 애욕의 유혹에 굴복할 것인지를 두고서 내면에서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말라고 훈계하는 말이다. 원래 출전인 출요경의 내용도 그렇고 중국의 한자 갈등(葛藤)의 뜻도 그냥 얽히고설킨 칡덩굴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지 그 갈등(葛藤)이라는 말 자체에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모습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기 어려운 욕망의 그물같이 쉽게 풀어헤치고 나올 수가 없는 복잡하게 뒤엉킨 것으로 뜻하는 것이다.


그런 갈등(葛藤)이라는 말을 일본에서는 칡에다가 등나무까지 추가하여 이들 칡과 등이 서로 얽히어 대립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기 시작하였고 그러다 보니 상반된 동기나 욕구 또는 감정 중에서의 하나를 선택하는 고민과 망설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서로 양보없이 대립하는 모습으로까지도 풀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거기에다가 칡과 등나무의 감기(卷) 방식이 반대라는 것까지 더해져 급기야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적대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원래는 구도자가 애욕이라는 갈등(葛藤)에 얽매여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지 아니면 과감하게 벗어나 정진(精進)의 길로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망설이는 것인데 엉뚱하게 갈과 등의 대립인 것처럼 변질된 것이다. 그러니까 갈등(葛藤)이라는 용어의 뜻은 동양 3국이 같은 한자를 쓰지만 어감에는 제법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럼 식물학적으로 접근을 해 보자. 우선 후진(后秦)에서 한자로 번역한 출요경의 인도 원전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 당시 인도에도 칡의 일종은 분명히 자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나무는 한중일 3국과 북아메리카에서만 자생하는 덩굴식물이므로 인도에는 등나무가 없었다. 따라서 원전인 출요경(出曜经)의 갈등(葛藤)이 갈과 등이 아닌 칡덩굴이라는 중국 해석이 타당한 것이다. 그리고 갈등(葛藤)을 갈과 등으로 확대 해석하여 대립관계로 본 일본에서도 칡과 등의 감기방식 차이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일본에서 흔하게 자생하는 등(藤)이 두 종류인데 이들 둘의 감기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후지(フジ)라고 부르는 등(藤)은 왼쪽감기이지만 야마후지(ヤマフジ) 즉 산등(山藤)은 그 반대로 오른쪽감기라서 칡과 동일하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칡과 등의 감기 방식이 다르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데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으로 알고서 매우 흥미로와 한다. 그리고 중국도 그들이 자등(紫藤)이라고 부르는 중국등나무 즉 Wisteria sinensis는 원래부터 칡과 같은 방향인 오른쪽감기를 한다. 따라서 칡과 등의 감기 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런 풀이를 할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왼쪽 일본 등 오른쪽 일본 산등

일본에 자생하는 두 종류 등은 감기 방식이 서로 반대이다.


왼쪽 우리 등 = 다화자등(多花紫藤), 오른쪽 중국등나무 = 자등(紫藤)


그리고 또 하나 칡은 줄기가 매우 길기는 하지만 다년생 초본이라서 겨울에 가끔 줄기의 밑둥치 일부가 목질로 남아서 월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모두 말라죽게 된다. 따라서 굵은 줄기가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등의 경우는 수십 년을 사는 목본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줄기가 매우 굵다. 그리고 등은 우리나라서는 대부분 정원에서 재배되지만 칡은 모두 야산에서 자생한다. 따라서 이들이 함께 줄기를 뻗어 서로 경합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설혹 함께 공존하더라도 굵은 목본 등나무 줄기에 하루 약 20~30cm씩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초본인 칡덩굴이 휙 지나가는 정도이지 그렇게 서로가 얽히고설킬 여건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감기 방식이 다른 칡과 등이 서로 뒤엉켜 그야말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갈등(葛藤)의 상태를 만드는 것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결론적으로 갈등(葛藤)의 어원은 중국 5호16국 시대의 후진(后秦)의 승려가 번역한 불경 출요경(出曜经)이며 원래 뜻은 애욕의 그물망에 비유한 칡덩굴이다. 이 말이 중국에서는 나중에 '얽히고설킨관계'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일본에 와서는 갈등(葛藤)이 갈(葛)과 등(藤)으로 해석되어져 마음속에서 서로 상반된 욕구가 대립하는 관계로까지 확대되어 그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고민하는 모습을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그 상반된 욕구가 반드시 (葛)과 등(藤) 양자의 대립이라고 단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갈등(葛藤)을 완전히 생존방식이 다른 두 덩굴식물간의 심각한 이해충돌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다. 두 식물의 감기방식이 완전히 정반대인 점까지 들먹이며 풀이하므로 매우 그럴듯하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나 원래의 갈등(葛藤)은 구도를 위하여 정진하는 수도자 즉 지지 나무를 덮고 있는 애욕의 그물에 비유된 칡덩굴이므로 원전(原典)에서는 애욕의 그물망에 얽히면 종내 파멸하게 되므로 초기에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벗어나라는 교훈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구도자는 온데간데없고 수도를 위한 정진(精進)과 애욕의 탐닉(耽溺) 양자의 갈림길도 아닌 애욕의 그물망의 소재인 칡과 등의 대립으로 풀이한 현재 우리나라의 해석은 원전에서 벗어나도 너무 많이 벗어나 버렸다. 하지만 원전과는 무관하게 복잡하게 얽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심각한 대립상태를 칡과 등의 감기 방식의 차이를 빗대어 비유한 풀이는 독창적이면서도 매우 기발한 것 같기는 하다. 말이란 뜻만 통하면 쓰는 사람들 마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