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매화나무를 들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국보인 구례 화엄사 각황전 옆 수령 300년이 넘었다는 홍매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매화는 붉다못해 검은 색을 띠고 있어 흑매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다. 천년 고찰 화엄사 대웅전 옆 빛바랜 목조건물인 각황전과 구불구불 아름답게 휘어져 올라간 나무 줄기의 가지마다 검붉은 매화가 잔뜩 핀 모습은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너도나도 대한민국 최고의 매화라고 칭송하는 것이다. 마침 저녁예불 무렵에 그 자리에 있다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와 그윽한 범종 소리가 더해져 매화의 멋과 향에 깊이 빠져 헤어나기 어렵게 된다. 이런 순간을 만나게 되면 그 꽃나무는 인생의 나무가 되는 것이다. 매화라고 하면 창덕궁의 만첩홍매화와 같이 여러 겹으로 붉게 풍성하게 피는 것도 물론 화려하지만 겨우 꽃잎 5장인 외겹으로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결코 부족하지도 않게 아름답게 피는 화엄사 홍매화를 한번 본 사람이라면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화엄사 홍매화와 같은 품종을 구입하여 내 정원에 심고 감상하고 싶어도 도대체 품종명을 모르고 그렇다고 딱히 화엄사 홍매라고 판매하는 품종도 안 보인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화엄사 홍매화에 대하여 한번 파악해 보자. 다만 최근에는 이 홍매화를 직접 관찰한 바가 없기에 실물 정보의 한계성이 있음을 미리 언급하고 간다.
일단 구례 화엄사는 백제 성왕시절인 544년에 연기조사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이라는데 나중에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 자장율사가 증축하였으며 신라고승 원효대사가 화랑도들을 가르치고 의상대사가 장육전과 석등을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삼국통일 이전에 이 지역이 이미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말인가? 여하튼 그 이후에도 통일신라 말기 도선국사 그리고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등 유명한 스님들이 두루 거쳐간 신라 화엄 10대 사찰 중 하나로서 그야말로 천오백 년의 역사를 가진 조계종 고찰이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거의 대부분 불타 조선 인조때인 1630년대에 대웅전 등 일부를 중건하고 숙종때인 1702년에 계파선사(桂波禪師)가 왕실의 도움으로 장육전(丈六殿)이 있던 자리에 2층 건물을 다시 짓자 왕이 각황전(覺皇殿)이라는 이름의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현존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목조건물인 각황전이 탄생한 것이다. 각황전은 건물이 웅장하고 건축기법이 뛰어나 1962년 각황전 앞 석등과 함께 각각 국보로 지정된다. 바로 그 각황전 옆에 각황전을 중건한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홍매화 한 그루가 있는데 이른 봄 아름답기 그지없는 새빨간 꽃을 피워 매년 봄이면 전국에서 탐매객(探梅客)들이 몰려 드는 것이다. 정말 계파선사가 심은 매화라면 족히 330년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에서 2007년 우리나라 전역에서 고매화 4개 군 선정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바있다. 이래서 일반인들이 이들을 우리나라 4대 매화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바로 화엄사 매화 즉 화엄매(천연기념물 제485호)와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 그리고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이다. 따라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엄사 매화가 바로 이 각황전 옆 홍매화를 말하는 것이라고 당연히들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엄사 매화는 각황전에서 약간 떨어진 구층암을 지나야 있는 대나무 숲 속에서 자라는 백매화를 말한다. 이 백매화 또한 고목으로 400년이 넘은 야매(野梅)라고 알려져 있다. 야매(野梅)란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야생하는 매화 즉 인간들이 품종을 개량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재배도 하지 않는 매실나무를 말하는 것 같다. 중국은 송나라때 매화 애호가인 전원시인 범성대(范成大, 1126~1193)가 저술한 최초의 매화재배서인 범촌매보(范村梅谱)에서 야매(野梅)는 야생하는 매로서 강매(江梅) 또는 직각매(直脚梅)로도 불리며 꽃은 약간 작고 듬성듬성 피지만 운치가 있고 향기가 강하며 열매는 단단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범촌매보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야매(野梅)라는 용어가 도입되었는데 중국의 야매는 들에서 자란 매화가 아니고 인간에 의하여 재배되는 것은 물론 꽃의 모양이나 색상 등이 지속적으로 선별되는 정도의 품종개량은 되었지만 원종의 특성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품종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들에 자라면 야매 강가에 자라면 강매라는 해석은 적절하지 않다.
일본에서도 매화의 품종을 분류할 때 야매계(野梅系)와 비매계(緋梅系) 그리고 풍후계(豊後系)로 3분하는데 야매계란 원종에 가까운 품종들로서 가지와 꽃 그리고 잎이 작지만 아주 좋은 향기가 나는 특성을 가진 원예품종들을 말한다. 야매계를 다시 원종에 가까운 야매성(野梅性) 품종과 가지가 왜소하며 가시가 없고 잎이 둥근 난파성(難波性) 품종 그리고 꽃망울 끝이 붉고 뾰족한 홍필성(紅筆性) 품종 및 가지와 꽃받침이 녹색이고 꽃망울이 녹백색을 띠며 청백색 꽃이 피는 청축성(青軸性) 품종 등 4종류로 분류한다. 그러면 화암수록(花庵隨錄)을 저술한 조선시대 저명한 원예가인 유박(柳璞, 1730~1787)선생이 최고 품격의 매화로 지칭하였다는 녹악백매(綠萼白梅)도 야매계(野梅系) 청축성(青軸性) 품종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백색에서 분홍색 홍색 등 색상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양한 많은 품종들이 야매계로 분류되므로 야매를 단순하게 들에서 자라는 매실나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면 안된다. 글쎄 화엄사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매화는 어떤 의미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우리나라가 매실나무 자생지도 아닌데 야매라고 해 봐야 매실나무 원종과는 거리가 멀고 결국 중국에서 도입된 품종 중 하나일 것인데 그게 무슨 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여하튼 화엄사 들매화는 관상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백매화를 본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매화에 불과하고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다고 한다. 다만 나이가 일반적으로 400년 이상이라고만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른 것은 몰라도 나무의 나이에 관한한 과장이 좀 심한 편이다. 전에 다룬 배롱나무의 경우는 일반적인 수명이 약 300년이라는데 우리나라는 웬만한 나무들은 모두 4~500년이 되며 심지어는 800년된 고목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나무 나이를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도 있을 터인데 왜 이렇게 마음대로 나이를 매기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매실나무도 그럴까? 일본에서는 매실나무의 수명은 70~100년이며 길어야 200년 정도라고 한다. 그러면서 임진왜란(1592~1598)에 참전한 일본장군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우리나라에서 가져가 미야기현(宮城県) 센다이(仙台)시에 심었다는 백매화가 400년이 넘었다고 일본에서 나이가 확인된 최고령 매화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원목은 죽고 그 후손이 남았는데 현재 나무는 수령이 220~36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팻말에는 최소치인 약 200년이라고 붙이고 있다. 참 양심적인지 소심한 것인지 모르겠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우리와는 다르다. 그런데 그 정도 나이인데도 나무 가지가 무너져 내려 거의 누워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조선매(朝鮮梅)라는 이름 외에 와룡매(臥龍梅)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는 여말선초의 학자인 강회백(姜淮伯, 1357~1402)이 산청 단속사에 심었다는 정당매(政堂梅)는 손자인 양화소록의 저자 강희맹에 의하여 널리 알려져 유명하게 된다. 그 후 강희맹의 아들인 강귀손이 정당매가 고사한 것을 확인하고 새로이 심었다고 말하여 그런 내용이 생육신 중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의 지리산기행기인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후손인 강항(姜沆, 1567~1618)도 정당매는 그 후에도 여러 번 죽어서 계속 다시 심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도 정당매의 나이는 최초에 강회백이 심은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우리나라 계산법이다. 강회백 집안에서 후손들이 이렇게 새로이 심은 것이라고 스스로 들춰내니까 우리가 알 수 있지만 다른 집안에 심어진 다른 유명한 나무들은 영락없이 최초 심은 년도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사 각황전 홍매화는 각황전을 중건할 당시에 계파선사 성능(性能)이 심은 것이므로 나중 일은 알 필요가 없다. 각황전이 중건된 1702년에 어린 나무를 심었더라도 현재 수령이 320년은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새나 쥐 등 동물에 의하여 언제 심어진 것인지도 모르는 들매화보다는 각황전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은 나 혼자만인가?
그런데 중국에서 보는 매화의 수명은 일본과는 전혀 다르다. 일본에서는 매의 수명이 짧다고 하는데 반하여 중국은 원산지라서 풍토가 적합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매의 수명이 매우 길다고 한다. 100년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1,000년도 넘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진(東晋, 317~420)시절에 심었다는 수령 1,600여년이 된 진매(晋梅)가 아직 있고 수(隋, 581~619)나라 때 심어진 수매(隋梅)가 있고 당(唐, 618~907)나라 시절 심은 당매(唐梅)도 있고 송(宋, 960~1279)나라의 송매(宋梅)가 남아 있다고 한다. 여기에 초나라(楚, ~260 BC)시절 심었다는 수령 2,500년이 된 납매(臘梅)를 포함하여 중국5대고매(中国五大古梅)라고 부르며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납매는 그 이름이 매(梅)인 데다가 범촌매보에도 실려 있어 가끔 매화로 취급받지만 실제로는 벚나무(Prunus)속은 커녕 장미과(科)도 아니므로 매실나무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납매를 제외한 실제 매화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1600년 수령의 진매(晋梅)가 안타깝게도 1990년대에 지상부가 고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뿌리에서 다시 가지가 돋아나 현재 다시 꽃이 피우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일년에 두 번씩 피는 매화로 유명하였는데 새로난 가지에서는 일년에 한 번씩만 핀다고 한다.
화엄사 홍매는 조선 숙종시절이므로 아마 중국에서 홍매라고 도입한 품종을 계파선사가 심은 것 같은데 그 비슷한 품종을 현재 중국에서 찾아보아도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는 비슷한 품종이 몇 개 있어 소개한다. 결론적으로 화엄사 홍매화와 같은 꽃모양으로 피는 품종은 어디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특히 구불구불하게 마치 운용매와도 같이 자라는 줄기의 특성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줄기는 혹시 노화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작은 가지들마저 비틀리면서 자라는 특성이 유전적이라면 정말 하나의 새로운 매우 독특한 품종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운용매(雲龍梅)는 흰꽃만 피고 줄기도 이와 같이 아름답지 않으며 키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특이한 품종으로 화엄홍매라는 품종명을 붙여도 충분할 것 같다. 아래는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촬영된 화엄사 홍매의 꽃 모습인데 외국 품종들과 비교하기 위하여 올린다.
다음은 중국의 홍매의 일종인 주사매의 모습이다.
다음은 일본의 진홍색 외겹 품종들이다. 직접 화엄사 홍매의 작은 꽃가지를 관찰하지 못하여 야매성인지 비매성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확인 후 수정할 계획이다.
품종명 : 일중한홍(一重寒紅) 히토에칸코우(ひとえかんこう)
계 통 : 야매계 야매성
꽃특징 : 홍색 중간 크기 외겹
개화기 : 1월 중순 ~ 2월 상순(일본 기준)
품종명 : 대배(大盃) 오사카즈키(オオサカズキ)
계 통 : 비매계 홍매성
꽃특징 : 도색, 중대륜, 외겹
개화기 : 1월 중순 ~ 2월 하순(일본 기준)
특 징 : 수세 강건, 분재로도 인기
품종명 : 좌교홍(佐橋紅) 사바시코우(サバシコウ)
계 통 : 비매계 홍매성
꽃특징 : 진홍색, 중륜, 둥근 꽃잎, 긴 수술, 긴 꽃자루
개화기 : 2월 하순 ~ 3월 상순(일본 기준)
특 징 : 에도시대 재배
품종명 : 비매(緋梅) 히바이(ヒバイ)
계 통 : 비매계 비매성
꽃특징 : 진홍색, 소륜
개화기 : 1월 하순 ~ 2월 중순(일본 기준)
특 징 : 비매성 대표품종, 수세가 약한
품종명 : 홍천조(紅千鳥) 베니치도리(ベニチドリ)
계 통 : 비매계 홍매성
꽃특징 : 홍색, 중륜
개화기 : 3~4월(일본 기준)
특 징 : 수술 끝에 기판 생성, 강건
'장미과 벗나무속 > 자두아속살구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99 설중매(雪中梅)라는 매화 품종은 없다. (1) | 2023.03.25 |
---|---|
1798 망매지갈(望梅止渴)은 매실(梅實)이 아닌 양매(楊梅)이다. (0) | 2023.03.24 |
1796 미인매(美人梅) – 자두와 매화의 교잡종 (2) | 2023.03.21 |
1795 행매(杏梅) = 풍후매(豊後梅) (0) | 2023.03.20 |
1793 매실나무 '토투우스 드래곤' = 운용매, 용유매 (2) | 2023.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