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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능해(老嫗能解) – 노파도 이해하도록 쉽게 시를 쓴 백거이

낙은재 2025. 10. 11. 06:50

 

 

 

가끔 아무리 읽어 봐도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진 시들이 있다. 이런 경향은 이상(李箱, 1910~1937)이나 김춘수(金春洙, 1922~2004) 김수영(金洙暎, 1921~1968) 황지우(黃芝雨, 1952~ ) 김혜순 (金惠順, 1955~ ) 등 특히 우리나라 시인들에서 많이 보이는 경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것은 아니다. 외국어로 쓰여진 난해한 시들은 처음부터 우리 주변까지 오지도 못하기에 유독 우리나라 시인들만 그런 경향이 짙은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모더니스트 시인 중 한명으로 꼽히는 미국계 영국 시인인 T. S. 엘리엇(1888~1965)은 아예 "시인은 우리 문명에서 어렵게 써야만 한다"라고까지 주장하면서 다양한 언어의 방대한 인용을 활용하면서 매우 난해한 시를 썼다고 한다.

 

시를 어렵게 쓰는 것은 시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인의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이는 단순히 독자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깊고 풍부한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려는 시인의 노력인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 특유의 독창적인 시선을 일상 언어와 다른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감정이나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하려는 시도 때문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급변하는 세상에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새로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나치게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붙잡고 씨름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감성이 부족하여 어려운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난해한 시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천이백 년 전에 시는 쉽게 써야 한다며 그러려고 노력을 많이 한 중국의 시인이 있어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잘못 만은 아님을 알게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소개한다. 그 시인은 바로 중국 당나라 3대 시인 중 한명으로 꼽히며 당나라 시인 들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그 유명한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 772~846)이다. 우리 선조들이 무척 좋아했던 대시인이고 특히 식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여 식물을 소재로 한 수많은 시를 남긴 사람이다. 송(宋)나라 승려 혜홍(惠洪, 1071~1128)이 시론(詩論)과 잡기견문(雜記見聞)을 중심으로 저술한 책인 냉재야화(冷斋夜话) 권1에 백낙천의 시작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白樂天每作詩(백낙천매작시)

令一老嫗解之(영일노구해지)

問曰解否(문왈해부)?

曰解則錄之(왈해즉록지)

不解則復易之(불해즉부역지).

 

백낙천은 매번 시를 쓸 때마다

늙은 할머니도 이해하게 썼다.

노파에게 이해하는지 물어보아

이해한다고 하면 그것을 발표하고

못한다고 하면 다시 그것을 고쳤다.

 

이와 같은 내용이 송나라 공평중(孔平仲, 생몰시 미상)이라는 사람이 기록한 담원(谈苑)에도 실려 있는데 특이한 것은 둘의 시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냉재야화(冷斋夜话)에서는 이해하기 쉽게 쓴 백낙천의 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지만 공평중(孔平仲)은 백거이와 같은 당나라 말기 창작 스타일을 비속함에 가깝다고 평가절하하였다고 한다.

 

글쎄 필자는 누가 뭐래도 난해한 시를 억지로 이해하려고 머리를 싸매고 고생할 의향은 없다. 그저 백낙천의 시풍처럼 평이창달(平易暢達)하게 짧은 문장으로 누구든지 쉽게 읽을 있도록 시를 읽기에도 인생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