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수국과 수국속/산수국 Serrata

525 탐라산수국 꽃산수국 떡잎산수국 그리고 비합법명의 정의

낙은재 2018. 9. 11. 16:47

탐라산수국

장식화에 꽃잎과 암수술이 달려 별도 품종으로 발표하였으나 이는 여러 종류의 수국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약칭 국표식)에는 산수국 원종 외에도 국내 자생하는 산수국의 변종이 3종이나 등록되어 있다. 원종과는 달리 장식화가 양성화이며 제주도에서 자생한다는 탐라산수국과 장식화에 톱니가 있다는 꽃산수국 그리고 잎이 두껍다는 떡잎산수국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구분을 정명이나 이명이 아닌 비합법명이라고 국표식에서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비합법명이라면 얼핏 들으면 합법적이지 않은 이름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목록에 당연히 등록되지 말아야 할 것이 왜 올려져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그래서 알아보고 가자. 그 명칭이 '비합법명'이라서 마치 '엉터리 이름'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국제명명규약에 따라 격식을 제대로 갖춰서 발표된 이름이지만 주로 그 식물에 이미 다른 사람이 명명한 이름이 있거나 또는 이 이름을 다른 사람이 다른 식물에 먼저 사용한 경우의 학명'을 말한다. 


그러니까 신종을 발견한 식물학자가 신이나서 허겁지겁 요건을 구비하여 학명을 발표하였으나 한발 늦었거나 또는 남이 쓴 이름을 또 쓴 낭패를 본 경우이다. 남이 다른 식물에 붙인 이름을 또 사용하는 것 즉 동명이종(同名異種)을 방지하려고 국제적인 식물 명명규약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복 방지를 위하여 금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국제 분류체계에서는 식물의 학명을 명명(命名)할 때에는 철저하게 적장자(嫡長子)가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 즉 먼저 명명한 이름이 거의 무조건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 설혹 엄청난 실수나 착각에 의하여 잘못 붙여진 이름이라도 한번 정해지면 폐지나 수정되는 법이 거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중해 연안 스페인이나 포루투칼이 원산지인 무릇이 페루호라는 이름의 선박에 실려왔으므로 페루산으로 착각하여 Scilla peruviana라는 이름을 린네가 1753년에 붙였는데 나중에 오류를 발견하였지만 여태 수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무릇(Scilla)을 실라 페루비아나(구명 페루비아나 무릇)로 부르는  것이다. 


비합법명의 정의

왜 갑자기 적장자 타령이냐 하면 바로 우리가 비합법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원래 Nomen illegitimum이라는 라틴어로서 영어로는 Illegitimate Name인데 이 illegitimate라는 단어가 불법적이라는 뜻도 있지만 원래는 사생아를 뜻하기 때문이다. 사생아란 겉모습은 구분이 안가지만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비합법명은 제대로 요건을 갖춰 발표는 되었지만 국제 명명 규칙에 부합되지 않는 학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제대로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요건이 미비된 채 발표된 학명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가끔 우리나라 국표식에 이런 학명들이 등장한다. 이들 즉 특정한 유형이 지정되지 않았거나 정해진 언어로 기재된 문구나 묘사문이 없는 등 요건이 미비된 학명을 영어로 invalid name이라고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우리 이름은 안 보인다. 이를 일본에서는 비정식명(非正式名)이라고 부르며 중국에서는 무효명칭(无效名称)이라는 것 같다. 이들은 쉽게 이야기 하면 검토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그 내용의 타당성이나 기존 식물과의 유사성 판단 등은 하지도 못한 것이다. 


더 쉽게 비유를 하자면 합법명은 적장자이고 비합법명은 사생아이고 무효명칭은 유산된 낙태인 것이다. 따라서 식물의 name 즉 명칭이라는 개념에는 합법명 뿐만 아니라 격식을 갖춰 발표된 비합법명도 포함되고 있다. 그러므로 웬만한 도감에서는 합법명 외에도 비합법명도 게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국제식물명명규약 즉 International Code of Nomenclature의 illegitimate name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illegitimate name 

A validly published name that is not in accordance with specified rules (Art. 6.4), principally those on superfluity (Art. 52) and homonymy (Art. 53 and 54).

그러니까 비합법명은 쓰잘데기없이 남아돌거나(superfluity) 동명이종(homonymy)이 되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서양에서 스웨덴사람 린네가 창시한 식물분류체계는 많은 점에서 동양의 옛날 스타일과 닮은 점이 있다. 우선 상위 분류군인 속명이 하위 분류군인 종명에 앞 서는 것이 이름을 가문의 성보다 앞세우는 개인주의가 우세한 서양 스타일과는 달리 성을 이름에 앞세우는 가문 중심적인 동양식인데다가 적장자가 아무리 흠결이 많아도 사생아나 서자가 가문을 계승하지 못하듯이 맨 처음 발표된 이름이 명백한 오류나 착각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등장하는 아무리 보편타당성이 높은 이름에게도 결코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러니 일속일종인 우리나라 고유종 금강초롱에 Hanabusaya asiatica라는 못마땅한 이름이 붙어 있어도 지금와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자생 산수국 품종(f.)으로 등록된 3종은 국표식에서 분명하게 비합법명이라고 딱지를 붙인 것으로 보나 국제적으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나 이들 3종은 없어도 되는 것으로 판단되어 거절된 이름이 분명하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합법명은 산수국 Hydrangea serrata이다. 그러니까 별 변별력도 없는 차이점을 찾으려고 장식화를 들여다 보거나 잎의 두께를 가늠할 필요가 없이 모두 산수국이라고 분류하면 되고 다만 산수국 중에 그런 형태의 장식화와 잎도 있다고 인식하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우리보다 더 다양하게 10여 종의 아종과 변종으로 세분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모두 산수국의 유사종으로 분류하거나 그 중 홋카이도 원산 Hydrangea serrata var. yesoensis 단 하나만 변종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Hydrangea serrata로 학명 표기되는 산수국은 무려 45개의 유사 학명을 가지고 있다.


등록명 : 탐라산수국

학  명 : Hydrangea serrata f. fertilis Nakai

특  징 : 장식화가 무성화가 아니고 양성화임

종소명 fertilis는 종자가 많다는 fruitful의 뜻이다.


장식화가 양성화라고는 하나 엄밀하게 말하면 양성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지 온전한 양성화는 아니라서 암수술의 기능이 퇴화하여 결실을 하지 못한다. 극히 일부가 결실한 특이한 사례도 있다고는 하나 그런 모습의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장식화가 이렇게 꽃잎과 암 수술을 갖춘 사례는 탐라산수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탐라산수국에서 그런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장식화의 모양은 종내 변이로 보고 원종인 산수국에 통합 분류하는 것이다. 결국 1926년 일본학자 나카이가 헛고생을 한 것이다. 특이 일본에 가면 산수국은 물론 수국 또는 나무수국 등 거의 모든 수국의 장식화에도 암술과 수술이 발달하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원래 비합법명이란 rejected name 즉 폐기되어야 마땅한 이름이므로 더 이상 우리나라 국표식에서도 산수국에 통합 그 이명으로 등재하고 탐라산수국 등 3종은 삭제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탐라산수국


탐라산수국

수분이 끝나면 임무완수가 되어 장식화는 뒤집어 진다.


탐라산수국


탐라산수국


탐라산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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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수국의 장식화에도 양성화 모습이 보인다.


일반 산수국에도 양성화 모습이 보인다.


산수국에도 양성화 모습이


일본에서 차로 마시는 산수국의 일종인 아마차에도 양성화 모습이


일본 수국의 일종인コガクウツギ에도 장식화에 암수술이


일본 수국의 일종인コガクウツギ(小額空木)


일본 등수국 ガクウツギ(額空木)에도 장식화에 암수술이


일본 등수국 ガクウツギ(額空木)의 장식화


등록명 : 꽃산수국

학  명 : Hydrangea serrata f. buergeri Nakai

특  징 : 무성화의 꽃받침에 톱니가 있다.


꽃산수국 또한 일본학자 나카이가 1926년 지볼트의 조수 독일 식물학자 Heinrich Buerger(1804~1858)의 이름을 기려 명명한 것으로 장식화의 꽃받침에 거치가 있다는 것인데 한라산이나 지리산 등에서 현재도 자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거치가 있는 장식화의 꽃받침 또한 이 품종에만 보이는 변이가 아니고 일본의 많은 품종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이다. 특히 일본의 베니가쿠(べにがく: 紅額)라는 변종은 우리 꽃산수국과 매우 흡사해 보이지만 꽃색상이 백색에서 나중에 붉게 변한다. 학명 Hydrangea serrata var. japonica로 표기되는 이 변종과 우리 꽃산수국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이 베니카쿠는 우리나라 국표식에는 산수국 '베니가구'라는 국명의 원예종으로 학명 Hydrangea serrata 'Beni-Gaku'로 등록되어 있다. 


꽃산수국



일본 산수국 일종인 베니가쿠(ベニガク : 紅額)

Hydrangea serrata 'Beni-Gaku'


베니가쿠(ベニガク : 紅額)

Hydrangea serrata 'Beni-Gaku'


베니가쿠(ベニガク : 紅額)

Hydrangea serrata 'Beni-Gaku'


나데시코(ナデシコ : 撫子)


이리노시보리(入野 絞り)


미사토유카리(美里紫)


모모이로(モモイロ桃色)



등록명 : 떡잎산수국

학  명 : Hydrangea serrata f. coreana (Nakai) T.B.Lee

특  징 : 잎이 두껍고 제주도에서 자생한다.


1939년 일본학자 나카이가 변종으로 발표한 것을 우리나라 이창복박사가 품종으로 고쳐서 1966년 발표하였지만 모두 산수국에 통합되어 그 유사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왜 1957년 강원도에서 채집하였다는 표본하나 밖에는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여하튼 국제적으로는 산수국에 통합되었다. 


떡잎산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