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함경도 백두산 인근 대택과 장지 그리고 무산군에서 자생한다는 진퍼리꽃나무는 우리 자생종이라고는 하지만 남한에서는 자생하지 않기 때문에 보기 흔한 수종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워낙 한랭한 기후를 좋아하기에 우리나라 북한과 일본 홋카이도 정도가 거의 남방한계선에 가깝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자생하기는커녕 재배하기도 적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소백산의 백두대간수목원이나 양구 DMZ자생수목원에 가면 볼 수는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화원에 가면 가끔은 만날 수 있는 수종인 것 같고 이를 재배하는 애호가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끔 엉뚱하게 분홍색 꽃이 피는 가솔송을 진퍼리꽃나무라고 판매하는 엉터리 화원도 있어 헷갈리게 한다. 여하튼 진퍼리꽃나무는 우리나라 북한 백두산 인근에서만 자생하는 관목은 아니고 일본의 홋카이도와 중국 동북지방과 내몽고에서도 분포한다.
그러니까 한중일 3국의 가장 추운 지방에서만 자생하는데 거의 대부분 늪이나 소택 등 습지 산성 토양에서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를 지계(地桂)라는 정명 외에도 습원철쭉(湿原踯躅)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도 이를 야치쯔쯔지(ヤチツツジ)라고 즉 곡지철쭉(谷地躑躅)이라고 불러 모두 그 서식 환경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부른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습지(濕地)를 곡지(谷地)라고 한다. 우리 이름 진퍼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진퍼리가 바로 땅이 질어 질퍽한 벌 즉 들을 뜻하는 진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서 처음 이 수종이 발견된 장소가 바로 백두산지구인 함경북도 길주군 대택(大澤)과 무산군 장지(醬池)인데 모두 늪(澤)이나 호수(池) 주변이라서 땅이 질퍽한 진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펄에서 자라는 꽃나무라고 진퍼리꽃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진퍼리보다는 진펄이라는 용어가 더 쉽게 와닿는데 그 당시는 반대로 진퍼리가 더 일반적이었는지 우리나라 식물명에 진펄이 들어 간 것은 진펄현호색과 진펄앉은부채 등 고작 두 종뿐이고 진퍼리가 붙은 이름은 진퍼리버들을 비롯하여 진퍼리사초 진퍼리용담 진퍼리고사리 등 10여 개도 넘는다. 그리고 진펄이사초라고 진펄도 진퍼리도 아닌 어중간한 이름도 있다.
그럼 왜 표준말인 진펄을 제쳐두고 진퍼리를 식물계에서는 많이 애용하였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이름들은 대개 일제강점기인 1939년부터 1949년에 발간된 정태현선생 등의 조선식물향명집과 조선삼림식물도설, 조선식물명집 등에 근거하는데 광복 이후 1960~1990년대에 이창복선생과 이우철선생이 새로이 붙인 이름에도 진퍼리가 사용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습지의 질퍽한 땅에서 서식하는 식물들은 습지xxx라는 이름은 거의 쓰지 않고 진퍼리xxx라는 이름을 통상적으로 붙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진펄이 왜 진퍼리가 되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일본학자들이 해당 식물의 우리 이름을 기록할 때 우리말 진펄의 펄을 일본 글자로는 제대로 기록할 방법이 없으므로 ジンパリ(진파리)라고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당시 학자들로서는 진펄보다는 진퍼리가 더 익숙하게 느껴졌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중국에서는 진펄을 주로 소택(沼泽)이라고 하지만 沮洳(저여)라고도 쓴다. 조선 중중 때 역관인 최세진이 1527년에 학동용 한자 학습서로 쓴 훈몽자회(訓蒙字會)에 沮洳(저여)를 즌퍼리라고 번역한 내용이 있고 그 후 숙종 때인 1690년에 신이행 김경중 등에 의하여 편찬된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갈대가 우거진 호숫가 습지를 뜻하는 노탕(蘆蕩)이나 모탕(茅蕩)을 즌퍼리라고 번역한다. 따라서 진퍼리는 진펄의 옛말 즌퍼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펄을 파리(パリ)로 쓰는 일본 글자의 영향으로 일제강점기 우리 식물학자들도 표준말인 진펄보다는 진퍼리에 더 익숙해 져 식물계에서는 굳어진 말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진퍼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뒤에 막연하게 꽃나무라고 붙인 이름은 정말 아마추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펄에서 꽃이 피는 나무가 어디 이 수종 하나 밖에는 없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런지 합리적인 이름을 많이 제시한 것으로 유명한 박만규박사가 1949년에 발간한 우리나라식물명감에서 진퍼리진달래라는 이름을 제시하였으나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진퍼리꽃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인근 소택(沼澤) 외에도 함경남도 차일봉과 연화산, 두류산 해발 1,300m 이상의 누기(漏氣)진 곳에서 자생한다고 북한에서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아주 희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홋카이도에서 자생하는데 그 개체수가 점점 줄어 들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길림성과 요녕성 그리고 내몽고 등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데 정명인 지계(地桂)는 grould laurel을 뜻하는 속명 Chamaedaphne를 직역한 것이고 습원철쭉이라는 이름 외에 동북지방에서 부른다는 전두(甸杜)라는 이름도 있다. 들쭉나무를 전과(甸果)라고 하는 중국에서 전(甸)은 들이라는 뜻으로 들쭉나무는 작지만 동그란 장과가 달리므로 전과라고 할 수 있겠으나 진퍼리꽃나무는 삭과이므로 벌어지는 열매인데 이를 지름 1cm 안팎의 작은 배가 달리는 두(杜)라고 한다는 것은 언듯 이해하기 어렵다. 무슨 다른 연유가 있을 것 같다.
진퍼리꽃나무는 동양에서는 다소 희귀종으로 취급 받지만 들쭉나무나 월귤 등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적으로는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등 북반구 한랭한 기후의 거의 모든 지역에 분포한다. 두터운 잎 때문에 leather leaf이라고 일반 영어로 불리는 이 수종의 열매는 장과가 아닌 삭과이므로 육질이 없어 먹을 수는 없지만 두터운 상록의 잎을 부케 등의 녹색 장식에 사용하여 왔으며 생잎이나 마른잎을 찬 물에 담궈 독성을 제거한 후 냉차로 마시기도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염증 치료용 습포제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일반 영어명 중에 불길한 예언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cassandra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한때 이 cassandra속으로 편입되어 분류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학명 Chamaedaphne calyculata (L.) Moench는 원래 식물분류학이 창설될 당시 린네가 장지석남속으로 분류하여 Andromeda calyculata L.라고 1753년에 명명하였던 것을 독일 식물학자인 Conrad Moench (1744~1805)가 1794년에 진퍼리꽃나무속 즉 Chamaedaphne속을 신설하여 이 속의 유일한 종으로 명명한 것이다. 속명 Chamaedaphne는 낮거나(low) 땅(ground)이라는 의미의 Chamae와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과 시 그리고 음악의 신인 바람둥이 아폴로가 반해서 죽도록 쫓아다닌 요정 daphne(다프네)가 정말 죽어서 변한 월계수(laurel)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그대로 의역하여 지계(地桂)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린네가 붙인 종소명 calyculata는 작은 꽃받침(calyx)을 뜻하는데 이 수종이 특이하게 작은 포편 2개가 꽃받침 바로 위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고로 진퍼리꽃나무의 서식지 장지와 장지석남속의 장지는 같은 것으로 과거에는 함북 무산군이었던 지금의 양강도 백암군 해발 1,740m 진펄에 위치하는 둘레 1.3km 최대 깊이 7m인 천연 호수를 말한다. 가을에는 물빛이 맑으나 봄과 여름에는 간장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간장늪이라고 불리며 한자로는 장지(醬池)라고 한다. 주변에 희귀식물이 많이 서식하므로 호수 자체를 북한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하여 관리한다고 한다.
진퍼리꽃나무는 이 속의 유일한 종이므로 근연관계에 있는 식물이 없다. 진달래과를 세분할 경우 이 속은 산앵도나무아과 가울테리아족으로 분류가 된다. 그래서 같은 가울테리아족으로 분류되는 가울테리아와 레우코토이 및 유보트리스속 수종들이 그래도 가장 가까운 근연관계에 있는 것이다. 당초 린네가 명명하였던 장지석남속은 제노비아속과 더불어 장지석남족으로 따로 분류되므로 이 수종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상태이다. 열매가 삭과이고 잎과 줄기 등에 인편이 많고 화서축에 잎 모양의 포편이 있으며 꽃받침 바로 위에 소포편이 붙어 있다는 점 등에서 여타 수종들과 구분이 된다.
등록명 : 진퍼리꽃나무
이 명 : 진퍼리진달래
학 명 : Chamaedaphne calyculata (L.) Moench
분 류 : 진달래과 진퍼리꽃나무속 상록 관목
원산지 : 함경도 , 홋카이도, 중국 동북, 북반구 한랭지
영어명 : leatherleaf, cassandra,
중국명 : 지계(地桂), 습원철쭉(湿原踯躅) 전두(甸杜)
일본명 : ヤチツツジ(谷地躑躅)
서식지 : 한랭한 산성토양의 습지
수 고 : 0.3~1.5m
가 지 : 소지 황갈색, 소인편과 단유모 밀생
잎크기 : 1~4 x 0.5~1.5 cm
잎특징 : 근혁질, 장타원형, 전면 미세한 은색 인편, 후면 인편 다수, 연녹갈색
꽃차례 : 총상화서 정생, 12cm, 총축 엽상 포 장원형, 6~12mm, 포액생, 처짐, 편향 1측, 화악에 소포편 2개
꽃부리 : 항아리형 백색 5~6mm, 열편 미반권
열 매 : 삭과 편구형 지름 4mm, 종자 다수 재실 중 2배열
개화기 : 6월
결실기 : 7월
내한성 : 영하 40도
원예종 : 키가 작은 왜성종인 'Nana'라는 품종도 우리 국표식에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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