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나무는 2016년 제155번 게시글에서 다룬 바 있었는데 그 당시 나름대로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정리하였기에 정보면에서는 크게 보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사이 비파나무속과 다정큼나무속을 통합하여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바로 원산지 중국에서 나와서 세계 식물학계에서 논란 중에 있다는 것이다. 비파나무의 어원은 악기 琵琶(비파)에서 왔는데 그 현악기는 고대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것이다. 한나라 유희(刘熙)라는 사람이 악기 이름을 풀이한 석명 석악기( 释名 释乐器)라는 기록이 있는데 거기에 비파는 서역에서 왔으며 말 위에서 타는 악기로 앞으로 내밀면서 타는 것을 비(批)라고 하고 뒤로 당기면서 타는 것을 파(把)라고 하는데 양쪽으로 연주하기에 비파(批把)라는 이름을 붙였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다가 두 개의 옥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고 위에 쌍옥을 뜻하는 珏(각)을 붙여서 현재의 글자 琵琶(비파)로 변했다고 한다. 중국에 최초로 악기 비파가 도입된 시기는 진나라(秦, BC.220 ~ BC.207) 시대이고 비파(琵琶)로 표기가 바뀐 시기는 최소한 남북조(南北朝, 420~589)시대 이전인 것으로 보인다. 남조 송나라와 제나라 대신인 왕승건(王僧虔, 426~485)의 기록에 조비의 황후인 위나라 문덕왕후가 비파(琵琶)를 잘 탄다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파나무와는 무관한 악기 비파의 어원을 장황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비파나무의 이름이 바로 그 잎이 이 악기를 닮았다고 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악기는 비파(批把)이고 나무는 비파(枇杷)라서 글자가 매우 비슷하였다. 그래서 둘의 혼동을 방지하고자 위진(魏晋, 220~420)시대에 악기 비파의 한자표기를 비파(琵琶)로 변경하였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비파나무가 기록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서는 한나라 사마상여(司马相如, BC.179~BC.118)의 상림부(上林赋)이다. 상림은 한나라 궁중 정원을 말한다. 거기에 비파십과(枇杷十棵)라고 비파가 10대 과일나무 중 하나로 기록된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비파는 “秋萌(추맹) 冬花(동화) 春实(춘실) 夏熟(하숙) 备四时之气(비사시지기)라고 즉 가을에는 꽃망울을 보고 겨울에는 꽃이 피고 봄에 열매가 달리고 여름에 성숙하여 사계절 기운을 두루 갖춘 나무이며 앵도(중국 체리)와 양매(소귀나무)와 더불어 초여름 과일 세자매로 꼽고 있다. 이후에 남북조시대 양무제 시절 학자 주흥사(周興嗣, 470~521)가 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자문(千字文)에도 비파만취(枇杷晚翠) 오동조조(梧桐早凋)라고 즉 ”비파는 늦게까지 푸르고 오동(벽오동)은 일찍 시든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일년내내 푸른 상록수와 가장 먼저 잎이 떨어져 가을을 알린다는 오동나무를 대비한 것이다. 그래서 천자문을 기본적으로 공부한 우리 선조들은 비파나무를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내한성이 충분하지 못하여 중부지방에서는 실물을 보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중국문화의 융성기인 당나라와 송나라에 들어와서는 수많은 시에 비파가 등장하게 된다. 우선 성당(盛唐)시대의 대시인이자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 712~770)의 시골집이라는 뜻의 전사(田舍)라는 시가 비파 관련 시로 유명하다.
田舍(전사) - 杜甫(唐)
田舍淸江曲 (전사청강곡)
柴門古道旁 (시문고도방)
草深迷市井 (초심미시정)
地僻懶衣裳 (지벽라의상)
櫸柳枝枝弱 (거류지지약)
枇杷樹樹香 (비파수수향)
鸕鷀西日照 (노자서일조)
曬翅滿魚梁 (쇄시만어량)
굽이 도는 강가에 오두막을 짓고
사립문은 낡은 길 쪽으로 내었네
마을 가는 길 풀이 자라 무성하고
벽지라 옷차림이 자유롭다네
굴피나무 긴 가지 가냘프게 드리우고
비파열매 나무마다 향기를 풍긴다.
가마우지는 서녘 해가 비추는
어량에 가득 모여 날개를 말리네
당나라 초기 대표적인 시인인 이백(李白, 701~762)과 두보(杜甫, 712~770)가 사망한 다음에 태어난 또 다른 유명한 당나라 시인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쓴 초하선과제일지(初夏鲜果第一枝)라는 시 중 다음 문구를 많은 사람들이 인용한다. “淮山侧畔楚江明(회산측반초강명) 五月枇杷正满林(오월비파정만림)” 회산을 지나면서 주변 초강에 비친 달빛과 오월에 한창 노랗게 무르익은 비파가 주렁주렁 달린 비파나무숲을 묘사한 것이다. 이걸 보고 중국에서는 그 당시에 이미 비파를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백낙천은 그를 대시인으로 만든 유명한 비파행이라는 612자로 구성된 장편대서사시를 816년 짓는데 여기서의 비파는 현악기 비파(琵琶)를 말한다. 그래서 백낙천은 비파(琵琶)와 잎이 그 비파(琵琶)의 모습을 닮았다는 비파(枇杷)나무 둘에 대한 유명한 시를 남긴 시인이다. 그 후 송나라에 와서 대시인 동파거사(東坡居士) 소식(蘇軾, 1037~1101)이 1094년 영원군절도부사(宁远军节度副使)로 영남 혜주로 좌천되어 가서 그 지역 여지와 양매 그리고 비파를 맛보고서 1096년 지은 惠州一绝 - 食荔枝(혜주일절 식여지)라는 시가 있는데 여기서는 주인공이 리치 즉 여지이다. 하지만 소동파때문에 비파의 또 다른 이름인 노귤(芦橘)이 생겨나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는 리치에 관한 458번 게시글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노귤은 미숙할 때는 갈대(芦)와 같은 청색이고 성숙하면 금색이 되는 금귤(金橘)의 풋과일 이름인데 소동파가 이 시에서 쓰는 바람에 비파를 지칭하는 별명이 되었다. 이렇게 유명인사가 한 마디하면 없던 말도 생겨서 그게 표준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는 비파를 노귤이라고 불러서 나중인 1787년 영국 왕실정원 큐(Kew)의 책임자였던 Joseph Banks에게 영국 최초로 비파가 건너갈 때 노귤(芦橘)의 광동어 발음이 그대로 따라가 현재 비파의 영어 일반명 로콰트 즉 Loquat가 된 것이다.
惠州一绝 - 食荔枝(혜주일절 식여지) - 소동파
罗浮山下四时春(나부산하사시춘)
芦橘杨梅次第新(노귤양매차제신)
日啖荔枝三百颗(일담여지삼백과)
不辞长作岭南人(불사장작령남인)
나부산아래는 사계절 봄이라서
비파와 양매가 차례로 열리네
하루에 여지를 300개씩 먹으니
영남인으로 살라해도 사양하지 않으리
그 후 중국 복건성 포전시의 과거 기록인 포전현지(莆田县志)에 枇杷(비파) 夏初成熟(하초성숙) 色黄味酸(색황미산)이라는 1192년 기록이 발견되어 중국에서 농업용으로 비파나무를 대량 재배한 기점을 송나라시대로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다. 중국이 재배역사에 자꾸 집착하는 이유는 한 때 일본이 자기들이 비파의 원산지라는 주장을 하여 중국과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논쟁 때 중국측에서 실제 재배 현장의 기록으로 송나라때의 포전현지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측 주장에 의하면 이 논쟁은 일단락되어 일본에서도 중국이 원산지임을 2006년에 인정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말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시코쿠와 규슈지방에서도 자생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가운데 위치하는 우리나라만 빠졌다. 중국 중남방과 일본 서쪽에서 자생한다면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제주도쯤에는 충분히 자생했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기록에 비파가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말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이다. 포은선생 후손과 유생들과 함께 나중에 엮은 중판집에 다음과 같은 양주식비파(楊州食枇杷)라는 시가 있다.
양주식비파(楊州食枇杷) – 정몽주작 박대원역
稟性生南服(품성생남복)
貞姿度歲寒(정자도세한)
葉繁交翠羽(엽번교취우)
子熟蔟金丸(자숙족금환)
藥裹收爲用(약과수위용)
冰盤獻可飡(빙반헌가찬)
嘗新楚江上(상신초강상)
懷核種東韓(회액종동한)
타고난 성품이야 남방에 자라는 것이나
곧은 자태는 추운 겨울도 지낼 수 있네
잎이 무성하여 물총새 깃 섞인 듯하고
열매가 익어서 금 탄환이 모인 듯하네
약봉지에 넣어 두면 소용이 있을 테고
얼음 쟁반에 담아 올리면 먹을 만하리
초나라 강가에서 새 비파를 맛보고는
씨를 품고 가서 동한에다 심어 보려네
그런데 이 시의 배경은 우리나라가 아니고 중국 상해 인근에 있는 양주이다. 비슷한 시기인 조선초에 재상을 지낸 이직(李稷, 1362-1431)이란 분이 쓴 비파라는 시도 있지만 그 또한 명나라에 여러 차례 사신으로 다녀온 사실로 봐서는 중국에서 본 비파를 말하는 것 같다.
비파(枇杷) – 이직(李稷)작 하정승역
嘉果纏枝萬顆團(가과전지만과단)
摘來盤上累金丸(적래반상루금환)
傍人莫怪囊盛去(방인막괴낭성거)
種向鄕山晚歲看(종향향산만세간)
얽힌 가지에 아름다운 실과가 많이도 달려 있구나
따 와서 소반 위에 금구슬처럼 쌓았네
옆 사람아 주머니에 가득 담아 가는 것 괴이하게 여기지 마소
고향 산에 심어 놓고 늘그막에 바라보리라
그런데 그로부터 머지않은 시기에 실제 우리나라에서 비파를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이 나온다. 전라도 순천에 가면 오림정(五林亭)이란 정자가 있다. 연산군때 목사를 지낸 신윤보(申潤輔, 1483~1558)란 분이 1545년 을사사화 후 낙향하여 부근에 松梅枇柚竹(송매비유죽) 즉 소나무와 매실나무, 비파나무, 유자나무 그리고 대나무 등 5종류의 나무를 심어 오림정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정조때인 1784년 문신인 조현범(趙顯範, 1716~1790)이 지은 악부인 강남악부(江南樂府)의 오림사(五林詞)편에 있다. 비파는 내한성이 영하 12도로 예상외로 강하지만 개화기인 겨울에 영하로 내려가면 개화가 어렵고 영하는 아니더라도 영상 10도 이하로 자주 내려가는 지역에서는 결실 상황이 좋지않기 때문에 비파를 심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열매가 제대로 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라도 순천이라면 노지 월동은 충분하였으리라 짐작간다. 요즘은 거제나 완도 등지에서 비파나무를 특화작물로 많이 재배하고 있다. 물론 하우스재배이므로 얼마든지 기후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학명 이야기를 해보자. 원래 비파는 동양 식물을 조사하기 위하여 린네가 일본으로 파견한 제자이자 스웨덴 식물학자인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가 일본에서 머물던 중에 발견하여 당초에는 앞 게시글에서 탐구하였던 서양모과속으로 분류하여 1784년 Mespilus japonica Thunb.라는 학명을 부여한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790년 포르투갈 선교사이자 식물학자인 João de Loureiro(1717~1791)가 지금의 베트남에서 발견하여 산사나무속으로 분류하여 Crataegus bibas Lour.라고 명명한다. 여기서는 종소명이 枇杷(비파)의 현지어이다. 나중이 둘이 같은 종임이 밝혀져 후자는 서명(庶名)이 되어 전자의 이명으로 처리된다. 그러다가 영국 식물학자인 John Lindley(1799~1865)가 비파나무속을 신설하면서 그 모식종으로 삼아 1821는 발표한 Eriobotrya japonica (Thunb.) Lindl.이라는 학명을 여태까지 전세계가 따랐다. 그런데 2020년 중국의 과학원식물연구소(科学院植物研究所) 연구원인 유빈빈(刘彬彬 : Bin-Bin Liu, 1987~ )박사와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교수이자 식물 큐레이터인 중국계 문군(文军 : Jun Wen, 1963~ )박사가 공동으로 유전자분석 결과 비파나무속과 다정큼나무속이 동일하다는 것을 발표하여 둘의 통합을 주장하게 된다. 둘 중에서는 선순위인 다정큼나무속 즉 Rhaphiolepis로 통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Eriobotrya japonica인 비파나무를 Rhaphiolepis japonica로 변경하여야 하는데 이미 그런 학명이 다른 종에게 과거에 부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일반 영어명이자 광동어로 비파를 이르는 말을 종소명으로 하여 2020년 Rhaphiolepis loquata B.B.Liu & J.Wen라는 학명을 발표한다. 그런데 그 사이 이탈리아 밀라노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이자 식물학자인 Gabriele Galasso(1967~ )와 Enrico Augusto Banfi (1948~ )가 1790년 루레이로가 산사나무속으로 발표한 학명을 근거로 삼아 재명명하는 형식으로 Rhaphiolepis bibas (Lour.) Galasso & Banfi라는 학명을 발표하여 당연히 적명(嫡名)이 되었다. 헐! 이거야 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이 경우는 거꾸로 고생은 중국인들이 다 하고 가장 중요한 비파나무의 학명은 이태리인들이 명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후 다른 학자의 유전자분석 결과는 유빈빈박사들의 결과와 다르다며 비파나무속과 다정큼나무속의 통합을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서 이를 따르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도 따르지 않고 있으며 중국도 그렇고 서양 일부도 그렇다. 반면에 일본과 서양 일부에서는 다정큼나무속으로의 통합론을 따르고 있어 현재 양분된 상태이다.
등록명 : 비파나무
학 명 : Eriobotrya japonica (Thunb.) Lindl.
신학명 : Rhaphiolepis bibas (Lour.) Galasso & Banfi
분 류 : 장미과 비파나무속 상록 소교목
신분류 : 장미과 다정큼나무속 상록 소교목
원산지 : 중국 베트남 미얀마 태국 일본
중국명 : 비파(枇杷) 노귤(芦橘)
일본명 : 비와(ビワ : 枇杷)
영어명 : loqu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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