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속의 수종들을 부르는 이름은 참으로 많다. 우선 진달래와 철쭉이 있고 두견화가 있으며 영산홍도 있으며 참꽃도 있고 만병초도 있다. 그 외에도 차(茶)라는 이름도 있고 아잘레아라는 서양식 이름도 있다.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 온 이름인데 이 중에서 우리나라 고려시대 이전 문헌에는 두견(杜鵑)화와 철쭉(躑躅)만 보이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진달래를 盡月背(진월배)라는 한자어로 표기한 기록이 등장한다. 그럼 고려 시대 이전의 기록에서 나타나는 두견(杜鵑)과 철쭉(躑躅)이 과연 현재의 어느 수종을 지칭하는지에 대하여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산하에는 진달래와 수달래로 불리는 산철쭉 그리고 연달래라고 불리는 철쭉 등 3종이 주로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 중 산철쭉과 철쭉은 그대로 고대의 철쭉 즉 척촉(躑躅)이고 진달래가 두견(杜鵑)화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도 있다. 실제로 조선 시대인 1690년에 발간된 사서인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 杜鵑花(두견화)를 진달래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역어유해에서는 척촉(躑躅)의 풀이는 없고 그 대신에 映山紅(영산홍)을 철쭉이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전인 조선 초인 1433년에 발간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서 羊躑躅(양척촉)을 盡月背(진월배)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위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산홍은 진달래와 형태가 비슷하고 중국의 양척촉은 철쭉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려 이전의 두견화가 곧 현재의 진달래이고 고려 이전의 철쭉은 현재의 철쭉과 산철쭉일 것이라는 설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진달래속 다양한 수종들을 구분 없이 두루 두견화나 철쭉이라고 불렀다는 말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815년 중국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쓴 山石榴寄元九(산석류기원구)라는 시에서 山石榴(산석류)가 山踯躅(산척촉)이고 또한 杜鹃花(두견화)라고 명시한 것의 영향이 크다.
그래서 신라의 향가 헌화가(獻花歌)의 배경으로 삼국유사에서 설명한 철쭉이나 아래에 소개할 신라시대 시인 최치원(崔致遠, 857~908)의 시 두견(杜鵑)에서의 두견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종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다만 주변 정황을 참고하여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인 최치원이 쓴 두견이라는 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집인 계원필경(桂苑筆耕)에 수록된 것이다. 우리나라서 杜鵑(두견)이라는 용어가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이 아닌가 한다. 杜鵑(두견)과 躑躅(철쭉)은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사용하던 용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견은 최치원의 바로 이 시에서 처음 나타나고 躑躅(철쭉)은 고려사 문종 33년 즉 1079년 7월 송황제가 의원과 약재를 보내오다라는 내용 가운데 西京躑躅(서경 척촉)이 포함된 것이 최초의 기록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현존하는 문헌 중에서는 두견화가 철쭉보다 먼저 등장했다는 말이다. 고려사로만 봐도 두견은 경종 5년 즉 980년 12월에 杜鵑花開(두견화개)라고 기상 이변을 기록한 내용이 있어 철쭉을 앞선다.
杜鵑(두견) - 최치원(崔致遠)
石罅根危葉易乾(석하근위엽이건)。
風霜偏覺見摧殘(풍상편각견최잔)。
已饒野菊誇秋艶(이요야국과추염)。
應羨巖松保歲寒(응선암송보세한)。
可惜含芳臨碧海(가석함방임벽해)。
誰能移植到朱欄(수능이식도주란)。
與凡草木還殊品(여범초목환수품)。
只恐樵夫一例看(지공초부일례간)。
바위틈에 뿌리 내려 잎이 쉬이 마르고
온갖 풍상 견뎌내며 모질게도 자랐구나
가을에 뽐내는 들국화 아름다움 인정하고
겨울에 추위를 버티는 암벽 소나무 부럽구나
아쉽게도 푸른 바다를 향해 향기 머금으니
누가 정원 화단으로 옮겨 심을 수 있을까
평범한 식물과는 다른 특별한 품종이건만
나무꾼이 같은 땔감나무로 볼까 두렵구나
여기서 罅(하)는 틈을 의미하며 摧殘(최잔)은 손상을 주거나 학대한다는 뜻이고 偏覺(편각)은 여기서는 견딘다라는 의미이고 饒(요)는 양보하거나 수용한다라는 의미이며 可惜(가석)은 안타깝거나 아쉽다는 뜻이며 還(환)은 더욱 殊品(수품)은 보기 드문 명품을 말하며 一例(일례)는 하나로 또는 똑같이라는 의미이다. 최치원(崔致遠, 857~908)은 어릴 때인 868년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84년 28살에 귀국하는데 당나라 유학시절 쓴 시문들을 엮어서 886년에 신라 헌강왕에 바친 것이 바로 계원필경(桂苑筆耕)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언급된 절벽에서 핀 두견화는 국내가 아니라 당나라에서 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중국의 杜鵑(두견)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종인지는 알 수가 없다. 진달래속으로 20여 종이 자생하는 국내와는 달리 무려 500여 종이 자생하는 중국에서 최치원이 그 어떤 수종을 보고 정원으로 옮기고 싶다고 감탄하였는지 그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지금 현재 중국에서 관상가치가 높은 두견(杜鵑)이라고 부르는 학명 Rhododendron simsii인 두견(杜鵑)이겠거니 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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