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을 적어 본다. 어릴 적 양부로부터 학대받으면서 자라 정신적으로 결함을 가진 수학 천재 윌 헌팅이 훌륭한 심리학 교수를 만나서 내면의 상처를 치료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훌륭한 영화이다. 그런데 저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비단(非但) 이 영화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왜 할리우드 영화는 노골적인 섹스장면이나 대사가 많으냐는 것이다. 이 영화는 무려 30년 전에 개봉된 작품이라는 데도 나이 든 지금에 와서 봐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6~7년 전 본 히스토리 채널에서 제작한 사극 드라마 바이킹스가 저절로 회상되다. 그 당시 그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서양인들은 정말 거의 개(犬)와 마찬가지로 성적 욕구가 생기면 그냥 마당이고 들판이고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바로 사랑의 행위를 하는 야만인이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인간들의 후예들을 오늘날 우리보다 문명적으로 우월한 인종으로 인정하고 따르려고 노력해 왔단 말인가 하면서 혼자 개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제 무려 30년 전에 제작된 명작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이라는 영화를 보니 역시 동네 친구들이나 여자 친구와 나누는 거칠고 노골적인 성적 농담이나 대사들은 나이가 든 지금 봐도 당혹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유독 심한 것은 아니지만 꼭 저런 장면이 필요했나 말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원래 성에 집착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아니 제가 유교 문화 때문에 과도하게 조심스러운가? 하는 의문이 생겨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인류학과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으면서도 각자 성(性)을 다루는 방식과 영역이 달랐던 것에 가깝다고 한다.
1. 서양의 성(性)은 과거 금기였기에 오히려 '수다'의 대상이 되었다.
서양 문화가 원래부터 성에 개방적이고 집착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중세 유럽과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19세기)는 역사상 가장 성적으로 억압되고 보수적인 시기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저서 성(性)의 역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말할 수 없던 것에 대한 반작용: 서양 사회는 기독교적 윤리관 아래에서 오랫동안 성을 죄악시하고 통제했다. 그런데 인류는 무언가를 강력하게 금지하면, 뒤에서 그것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담론의 폭발: 20세기 중반 '성 혁명(Sexual Revolution)'과 프로이트 심리학의 대중화 등을 거치면서, 억눌렸던 성적 에너지가 사회적 문화적 담론으로 폭발했다. 즉,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다 까놓고 말하자"는 문화가 대중문화 즉 영화, 코미디, 문학의 주류 어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굿 윌 헌팅에서 청년들이 나누는 저급한 농담도 서양 기준에서는 '성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우리 사이에 숨길 것 없다"는 하층민 마초 청년들의 유대감과 가식 없는 솔직함을 표현하는 방식(Street Culture)에 가깝다고 한다.
2. 동양의 성은 사적(私的) 영역의 자연스러움과 공적(公的) 영역의 엄숙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교 문화 때문에 너무 얌전한 척하는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흔히 '유교' 하면 성을 무조건 죄악시했을 것 같지만, 조선 시대의 성 관념을 들여다보면 의외의 면이 있다고 한다.
사적 영역에서의 솔직함: 우리 조상들도 사적인 공간이나 민중 문화에서는 성적인 해학과 농담을 즐겼다. 조선 시대 판소리(예: 가루지기타령, 춘향가 중 사랑가), 사설시조, 탈춤, 그리고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면 성적 묘사가 매우 대담하고 유쾌하다.
공적 영역의 ‘예(禮)’: 다만 유교는 '체면과 예의(공적 질서)'를 극도로 중시한다. 성(性)은 부부간의 자연스럽고 중요한 행위이지만, 그것을 길거리나 지식인들의 공식적인 대화, 즉 '공적 영역'으로 끌고 나오는 것은 무례하고 격이 떨어지는 행동 즉 비례(非禮)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 영화의 농담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유교적 엄숙주의의 영향도 있지만 "저런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를 왜 저렇게 공공연하게, 스크린을 통해 만천하에 떠드는가"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에 가깝다.
3. 결론은 집착의 문제가 아닌 영역의 차이라고 합니다.
결국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성에 대한 집착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의 차이이다. 서양은 성을 공적 영역(영화, 예술, 대화)으로 끌어내어 투명하게 소통하고 유머로 소비하는 것이 '건강하고 솔직한 것'이라 믿는 문화로 발전했다. 한국(동양)은 성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것을 공적인 장소에서 입 밖에 내지 않고 사적인 영역에서 품격과 비밀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따라서 관람자에게 영화 속 거친 대사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수십 년간 쌓여온 우리의 문화적 정서와 격조(格調)의 기준이 서양 하층민 청년들의 날것 그대로의 거친 어법과 부딪히며 생기는 정당한 문화적 반응이라고 한다. 글쎄 그래서 앞으로 이런 문화에도 적응하려고 노력을 해야 할까? 아니면 서양인들의 저급함을 비난하고 계속 외면해야 되나? 여전히 답은 찾지 못한 아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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