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부처꽃과/배롱나무속

765 배롱나무 (백일홍) - 중국 원산의 자미(紫微)

낙은재 2019. 7. 25. 22:05


배롱나무

꽃색상이 자색이 아닌 홍색이 대부분이므로 우리 조상들은 자미화보다는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선호한 것 같다. 


배롱나무

김제 금산사


바야흐로 배롱나무의 계절이 왔다. 부처꽃과 소교목인 이 나무의 우리나라 정명은 배롱나무이며 이명이 백일홍이다. 그리고 그 외 이명은 하나도 없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중국의 중남부 지방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꽃이 귀한 한여름 휴가철에 근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워 백일홍이란 이름이 원산지 중국에서부터 따라왔다. 아마 우리 국민들 중에서 이 꽃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매우 널리 알려진 인기 높은 정원수이며 모두가 가까이 두고 싶어 하지만 내한성이 약하여 중부지방에서는 정원에 심기에 다소 부적합하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운 점이다. 그런데 휴가철에 남도로 여행을 가면 거의 가는 곳마다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서원에도 공원에도 사찰에서도 그리고 묘소에도 심지어는 가로수로도 볼 수가 있다. 그럼 왜 이토록 이 나무가 인기가 높을까? 단지 개화기간이 길고 꽃과 수피가 매끈하게 아름답기 때문만일까?  

  

배롱나무의 학명 Lagerstroemia indica는 1759년 식물분류학의 창시자 린네가 그의 친구이자 스웨덴 동인도회사 책임자이며 식물학자인 Magnus von Lagerstroem(1969~1759)의 이름으로 속명을 명명한 것이며 종소명 indica는 인도를 비롯한 동인도제도를 뜻한다. 이 수종은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표본을 동인도회사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실제로 중국 외에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및 인도령 안다만제도에서도 자생지가 발견된 것 같다. 여하튼 린네의 친구 Magnus Lagerstroem은 아시아에 온 적은 없지만 동인도회사를 통하여 인도나 중국의 식물 표본을 많이 구하여 린네에게 보낸 사람이다. 영어권에서는 이 나무의 꽃이 쪼글쪼글하게 주름이 잡혀 있으며 수피와 잎은 도금양과의 은매화 즉 Myrtus communis를 닮았다고 crape myrtle 또는 crepe myrtle로 부른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이 배롱나무가 내한성이 약하여 주로 남쪽에서 많이 심기 때문에 Lilac of the South 즉 남부 라일락으로 불리기도 한다. 배롱나무속 즉 Lagerstroemia는 인도와 중국 및 오세아니아에 걸쳐 무려 60종이나 되는 수종이 분포하는 꽤 큰 속이다. 배롱나무속은 도금양목(Myrtales) 부처꽃과(Lythraceae)로 분류된다. 


은매화(Myrtus communis)

잎이 배롱나무와 많이 닮았다.


배롱나무 잎

위 은매화(myrtle)와 잎은 많이 닮았지만 꽃이 쪼글쪼글하다고 영어로 crape myrtle로 불린다.


은매화 Myrtus communis

 수피도 아래 배롱나무를 닮았다고 하는데 이건 산수유 쪽이 더 가까워 보인다. 


배롱나무 수피

이렇게 못생긴 수피는 위 은매화 수피와 조금 비슷하기는 하다.



김제 금산사 배롱나무 고목 수피

고목이라서 혹부리가 더러 보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원래의 매끈한 피부가 보여 은매화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은매화 성목 수형


부처꽃

배롱나무는 부처꽃과로 분류 되는데 부처꽃은 초본이다. 식물 분류학에서는 초본, 목본을 구분하지 않는다.


원산지 중국에서는 배롱나무를 자(紫)색 작은 꽃이 핀다고 자미(紫微)라고 한다. 미(微)는 작다는 뜻 외에도 정심오묘(精深奥妙)란 뜻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실제로는 홍색과 남색 그리고 백색 등 다양한 색상의 꽃이 피기 때문에 자홍색 자미(紫微) 외에도 남자색 취미(翠薇), 화홍색 적미(赤薇), 백색 은미(银薇) 등으로 꽃의 색상에 따라서 품종을 구분한다. 중국에서 자미(紫微)가 처음으로 문서에 등장하는 것은 동진(東晉) 왕가(王嘉 :?~390)가 저술한 잡기 습유기(拾遗记)이다. 서진 3대 황제인 회제(怀帝) 말기에 변괴가 생겨 민가의 정원과 채마밭이 쑥대밭이 되어 여우와 토끼가 뛰놀자 천문을 보던 태사령이 형혹(荧惑) 즉 화성이 자미(紫微)를 범하여 생긴 일이므로 그냥 두면 낙양도 없어진다고 주청하자 궁성 안팎은 물론 민가에도 죄다 자미(紫微)를 심어 엽승(厌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저절로 쑥과 가시덤불(蒿棘)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화성의 침범을 받은 자미는 자미성(紫微星)을 말하고 엽승(厭勝)용으로 심은 자미는 자미화(紫微花) 즉 배롱나무를 말한다. 참고로 엽승(厭勝)은 풍수나 주술에서 부족함을 채워주는 비보(裨補)의 반대 개념으로 지나침을 누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5~6세기에는 민가에서도 비록 관상 목적이 아닌 주술 목적이지만 자미화(紫微花) 즉 배롱나무를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은 자색(紫色) 꽃이 핀다고 자미(紫微)라고 한다.

원래 자색이 기본색이지만 홍색 적색 남색 백색 등의 품종이 있다.


그리고 당서(唐书) 백관지(百官志)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서기 713년 중서성(中书省)을 자미성(紫微省)으로 중서령을 자미령(紫微令)이라고 이름을 변경하고 중서성 정원에 자미수(紫微樹)를 많이 심었다." 그래서 당나라 유명 시인 백낙천(白乐天)의 유명한 칠언절구(七言絶句) 시(詩) 자미화(紫微花)가 등장한다. 丝纶阁下文书静(사륜각하문서정),钟鼓楼中刻漏长(종고루중각루장)。 独坐黄昏谁是伴(독자황혼수시반),紫薇花对紫微郎(자미화대자미랑)의역하자면 자미성 즉 중서성 사인(舍人)이 홀로 당직을 서는데 처리할 문서가 없어 지루하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누나. 황혼에 홀로 외롭게 앉아 있는 나와 누가 짝을 할까나? 오직 자미화만이 이 자미랑과 이 적막 속에서 마주하고 있구나. 자미랑이란 중서랑 즉 중서사인(中书舍人)을 말하며 중서성의 관직을 말한다. 실제로 낙천 백거이(白居易)는 821년부터 822년 항주자사(杭州刺史)로 부임하기 전까지 중서사인으로 재직한 바 있다. 이제 자미화는 단지 주술용이 아닌 당대의 유학자들과 마주하는 선비의 나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백낙천(772~846)에 비하여 약간 늦지만 거의 동시대의 사람인 또 다른 유명한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칠언절구(七言绝句) 자미화(紫薇花)를 보면 하나의 꽃나무로서 그 당시 사람들의 배롱나무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晓迎秋露一枝新(효영추로일지신), 不占园中最上春(불점원중최상춘). 桃李无言又何在(도리무언우하재), 向风偏笑艳阳人(향풍편소염양인). "새벽에 가지에 맺힌 가을 이슬을 맞이하네, 이른 봄날 뭇 꽃들과 아름다움을 다투지 않았지. 그 도도하던 도리화는 지금 어디에 가고 없는고? 화창한 봄날에만 뽐내던 꽃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네." 개화 시기가 다르고 개화 기간이 긴 자미화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桃李无言(도리무언)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나오는 "桃李不言(도리불언), 下自成蹊(하자성혜)" 도리화는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감상하려 몰려들어 저절로 아래 길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배롱나무는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온갖 봄꽃들이 모두 지고 난 다음에 홀로 피어 가을 이슬이 내릴 때까지 피어서 짧게 피고 쉽게 져버린 봄꽃들을 비웃는 것이다. 


桃李不言(도리불언), 下自成蹊(하자성혜)라고 뽐내던 복사와 오얏도 여름에는 다 사라지고 자미화만 꽃이 핀다.


이번에는 자미화의 긴 개화기간에 대한 남송 양만리(1127~1206)가 쓴 疑露堂前紫薇花兩株, 每自五月盛開, 九月乃(응로당전자미화양주 매자5월성개 9월내)라는 매우 긴 이름의 유명한 시이다. 似痴如醉丽还佳(사치여취려환가),露压风欺分外斜(노압풍기분외사)。花谁道无红百日(화수도무홍백일),紫薇长放半年花(자미장방반년화) "미친듯 취한듯 곱고도 아름답다. 이슬에도 거짓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누가 백일 동안 붉은 꽃이 없다고 하였나? 자미화는 연 중 반을 꽃을 피우는데." 남북조시대에 민가에 식재되기 시작한 자미화는 이렇게 당송시대에 많은 시인들이 그 아름다움과 개화시기 그리고 개화기간을 칭송할 정도로 사랑을 받아 왔으며 그 후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쳐 오면서도 사랑은 식지 않고 지속이 된다. 운남성 곤명(昆明) 금전(金殿)에 가면 원나라 때 심어진 자미화가 있으며 사천성 성도 백화담분경원이나 곤명 흑룡담에 가면 명대에 심어진 자미화 대형 분재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한다. 


운남성 곤명(昆明) 금전(金殿)의 400년된 자미 두 그루

올해도 지금 현재 꽃이 피었다고 한다.


운남성 곤명(昆明) 금전(金殿)의 400년된 자미

원나라때 심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명나라 말기 1602년에 심은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나라 이름 배롱나무의 유래라는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시를 찾아 보자. 대표적인 것이 명대 문학가 양신(杨慎:1488~1599)이 지은 백일홍(百日红)이라는 시이다. 李径桃溪与杏丛(이경도계여행총),春来二十四番风(춘래이십사번풍). 朝开暮落浑堪惜(조개모락혼감석),何似雕阑百日红(하사조란백일홍). 의역하자면 이른 봄 소한부터 곡우까지 매 5일마다 봄바람에 실려오는 꽃소식의 자두 복사 살구 꽃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 아쉬움이 있어 어찌 난간에 새겨진 듯 백일 동안 피는 백일홍 같을까? 라는 뜻이다. 여기서 개화기간이 긴 백일홍을 칭송한 것이지만 감명이 깊은 것은 중국인들은 일찌기 이렇게 한겨울 1월 5일경인 소한에 피는 매화와 동백 그리고 수선을 시작으로 5월 5일경인 곡우에 피는 모란과 멀구슬나무까지 120일 동안 매 5일마다 피는 24종의 꽃 개화 순서를 미리 기록하여 二十四番花信风(24번화신풍)이라고 하며 꽃을 감상하였다는 사실이다. 내 정원에 있는 꽃의 개화시기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온갖 봄꽃의 개화 정보를 놀랍게도 6세기 전반인 남북조시대 양나라 종름(宗懔)이라는 학자가 쓴 형초세시기(荆楚岁时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백일홍이라는 이름은 출전은 명대 양신이 아니라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송대 문학가 주변(朱弁 1085~1144)이 선한 곡유구문(曲洧旧闻)에 “红薇花(홍미화) 或曰便是不耐痒树也(혹왈편시불내양수야). 其花夏开秋犹不落(기화하개추유불락), 世呼百日红(세호백일홍)." 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간지럼나무라는 이름의 근원이 되는 불내양수(不耐痒树) 즉 간지럼을 참지 못하는 나무라는 뜻의 이름과 여름에 시작하여 가을까지도 피어 있어 백일홍이라고 한다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배롱나무는 수피를 손으로 긁으면 가지와 잎이 요동을 쳐 마치 간지럼을 두려워 하는 것처럼 보여 불내양수 또는 파양화(怕痒花)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명대 왕상진(1561~1653)이 저술한 군방보(群芳谱)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간지럼과 관련된 이명인 양양화(痒痒花)나 양양수(痒痒树)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되겠다. 물론 실제로는 손으로 긁는다고 나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红薇花(홍미화)

국내서는 자색보다는 홍색 즉 홍미화가 더 흔한 것 같다.


그리고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이 저술한 유양잡조(酉阳杂俎)에 보면 "자미는 수피가 매끄러워 원숭이도 오르지 못하므로 후랑체수(猴郎达树)라고도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군방보에 기록된 후자탈(猴刺脱)도 같은 맥락의 이름이다. 이는 일본의 정명 サルスベリ 즉 猿滑り와 상통하는 이름이다. 물론 실제로는 원숭이가 못 오를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 나무를 지칭하는 중국의 여러 이름 중에서 우리나라는 백일 동안 피어 있다는 개화기간에 주안점을 두어 백일홍으로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원숭이와 관련된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역시 원숭이가 많은 나라라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어느 쪽도 중국 정명인 자미를 따르지 않고 있는데 이는 위의 곡유구문에서  보듯이 이미 송나라시대부터 자미(紫微)보다는 홍미(红薇)가 널리 심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붉은색 꽃인데 자미라고 부르기가 어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원명에 충실한 한의학계에서는 배롱나무 꽃과 뿌리 및 잎을 자미화 자미근 자미엽이라고 한다. 그리고 국생정 도감에 배롱나무가 원숭이도 미끌어진다는 일본명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원조는 따로 있다. 이 이름은 당나라 때부터 중국에서 사용하던 이름을 일본이 따라한 것이 분명하다.


명나라 가정년간(嘉靖年间) 소령(苏灵 : 1522-1566)의 저서 분경우록(盆景偶录)에 자미는 매화 석류 나한송 등과 더불어 분경(분재) 18학자로 선정이 된다. 그리고 이 즈음에 흰색 꽃이 피는 은미(银薇)와 남색 꽃이 피는 취미(翠薇) 등 변종 원예품종들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처음 자미에서 송나라 때에 이미 홍미(红薇) 또는 적미(赤薇)가 등장하고 은미와 취미는 명나라 때에 와서 추가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에서는 18세기 초에 와서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래되었다고 하며 18세기 중엽에 동인도회사를 통하여 유럽으로 건너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1759년에 영국에 1799년에 미국에 전래되었다고 한다. 이는 린네가 1759년 배롱나무의 학명을 명명한 것과 년도가 일치한다. 그리고 미국도 1790년대에 프랑스학자에 의하여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턴에 배롱나무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일본도 확실치는 않으나 에도(江戸)시대 초에 중국에서 도입되었다고 하며 1709년에 간행된 대화본초(大和本草)에 처음 등장한다니 중국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은미(银薇)


취미(翠薇)


취미(翠薇)


배롱나무 미국 워싱톤

미국에는 1790년대에 전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내 부산시에 있는 동래정씨 문중 산소에 가면 수령 800년이나 된 고목의 흔적이 있다는 주장이 있어 중국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고려시대에 이미 도입되어 재배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어 혼란스럽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고 있었단 이야기인지 아니면 중국서 몰래 우리나라에 누가 가져와 심었단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이제와서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파악은 해보자. 전라도 함평군 백야산에 있는 함평 이씨 효우공파의 제실 영사재 앞 배롱나무는 500년이 되었다고 한다. 경남 함안군 모곡리 고려마을은 옛날 고려가 망하자 재령이씨 모은공 이오가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낙향하여 은둔한 지역인데 그때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장소를 선정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15세기 초가 되므로 적어도 600년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강릉 오죽헌에도 600년된 배롱나무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고목이라고 주장하는 배롱나무가 한둘이 아니다. 지리99 사이트에 가면 전국의 아름다운 배롱나무 모습을 담은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바로가기 http://www.jiri99.com/bbs/board.php?bo_table=jiri31&wr_id=678



부산 양정동 동래정씨 문중 산소


부산 양정동 동래정씨 문중 산소 - 출처 얼의신님 블로그

가운데 고사한 고목이 800년 전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함평 이씨 효우공파의 제실 영사재

500년 전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경남 함안군 재령이씨 모은공이 은둔했던 고려마을

600년 전에 이미 배롱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위 고려마을에서 분양되어 왔다는 김해 관천재 고목 550년 추정


강릉 오죽헌에도 600년되었다는 고목

중종 때 건립된 오죽헌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강릉 선교장 열화당 뒤뜰에도 고목이 있다. 선교장이 최초 건립될 때 심어졌더라도 수령이 300년 밖에 안된다. 이렇게 배롱나무는 300년이 넘으면 수명을 거의 다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예외적으로 초고령이라고 주장하는 배롱나무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안동 병산서원에도 380년 고목이


경주 서출지 배롱나무의 아름다움


배롱나무 명승지로 담양 명옥현이 빠질 수 없다.


그렇지만 그냥 막연하게 추정한 나무의 나이로는 배롱나무의 정확한 국내 도입시기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국내 몇백 년 되었다는 고목들의 모습을 보니 중국이나 일본의 수령이 적은 고목들에 비하여 더 젊게(?)보여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배롱나무는 수명은 예외적인 경우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약 200년으로 판단하고 있기에 그렇게 오래된 나무가 이토록 국내에 많다는 것을 모두 신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이를 확인하기 어려운 실물 즉 고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고문서에 자미가 매우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미(紫微)는 배롱나무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자미(紫微)는 3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자미성(紫微星) 즉 황제의 별이라는 북극성을 말한다. 둘째는 중국 중서성이 개칭된 자미성(紫微省) 즉 문서를 다루는 부서를 말한다. 나머지 하나가 바로 식물 배롱나무를 지칭하는 자미화(紫微花)를 말한다. 우리 고문서에 등장하는 자미는 자미화보다도 천문 자미성(紫微星)에 관련된 것들이 많고 나머지도 문서의 상징인 중서성 즉 자미성(紫微省)에 관한 것들도 많으므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외에도 심지어는 송강 정철의 '자미화를 읊다'라는 시(詩) 詠紫薇花의 경우는 남원 광한루가 등장하며 워낙 송강이 담양 자미탄(紫薇灘)에서 배롱나무를 노래한 적이 많아서 마치 이 시도 광한루의 배롱나무를 노래한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시에 등장하는 자미는 송강이 사랑한 남원의 동기(童妓) 자미(紫薇)를 배롱나무 즉 紫薇花(자미화)에 비유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자미화의 수령이 200년 정도라는데 예외적으로 수령 800년으로 추정되는 수고 10m의 배롱나무

중국 사천성 금죽 한왕진(四川绵竹汉旺镇)에 있는데 2013년 도난당했다가 회수되는 과정에서 손상을 많이 입었다고 한다.

표시판 : 国家保护古树,编号26号,紫薇,树龄800年,绵竹市人民政府,2005年8月



운남성 곤명(昆明) 금전(金殿)의 400년된 자미화

우리나라 배롱나무 고목의 나이 추정에 참고가 될 듯하다.



운남성 곤명(昆明) 금전 고목의 표시석


중국에서 수령 300년을 추정한다는 자미화이다.


에도 초기에 도입되었다는 일본의 아키타에 있는 수령 200년의 배롱나무


일본의 또 다른 수령 200년 추정 고목


자미원이니 도교 경전에 등장하는 자미두수(紫微斗数)니 하는 것들은 모두 북극성 즉 자미성(紫微星)과 관련된 말이다. 자미성은 북쪽 하늘 가운데 위치하고 그 주위 15개 별로 자미원(紫微垣)을 이루는데 자미원은 동북의 태미원(太微垣)과 동남의 천시원(天市垣)과 더불어 3원이라고 한다. 가끔 원(垣)을 담장이나 울타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는 별자리라는 뜻이다. 즉 자미원은 자미궁(紫微宮)이라고도 하며 자미성을 주축으로 북쪽 하늘에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중궁(中宮)이라고도 하며 황제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 자미원에 황제와 황후 태자 궁녀 등이 거주한다고 하는 중국 고대 신화와 천문학이 결합하여 만든 산물이다. 태미원은 정부 기구와 대신들이 거주하고 천시원은 일반 백성들이 거주하며 시장도 열리는 곳이다. 


자미두수(紫微斗数) - 가운데 반짝이는 별이 자미이다.

紫薇(자미)와 紫金(자금)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북경의 자금성 또한 낙양의 자미성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자미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자(紫)가 바로 자미성 또는 자미원을 지칭하므로 곧바로 황제를 상징하게 된다. 그래서 자미성(紫微星)이 곧 황제이며 자미원(紫微垣) 즉 자미궁(紫微宮)이 곧 황궁이 된다. 그래서 수당시대 수도인 낙양에 있던 황궁의 이름이 紫薇城(자미성)이었으며 명청시대에는 북경에 세워진 황궁을 紫金城(자금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금은 자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낙양의 자미성은 그 규모가 북경 자금성의 6배나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세계적인 황궁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이 망가지고 없다. 이쯤 되면 자(紫)는 자색이라는 의미보다는 황제라는 의미가 강하게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선비들의 뇌리에 박히게 생겼다. 게다가 중국 자미성(紫薇城) 내에 있는 문서를 다루는 부서인 중서성(中书省)에다가 자미화(紫微花)를 많이 심고서 그 이름을 자미성(紫微省)으로 변경하였으니 자미는 황제의 상징에다가 학문의 상징까지도 겸하게 된 것이다. 이때는 나중에 양귀비로 망가진 당현종이 아직 성군소리를 듣던 시절인데 중서성이 자미성이 된 것은 그동안 도교와 명리학 또는 신화 수준에 머물던 자미(紫微)가 유교에까지 그 영역을 넓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紫薇城(자미성)

낙양에 있던 수나라 당나라의 수도로서 자금성의 6배가 된다고 한다.


紫薇城(자미성) 무측천 당시의 모습


紫薇城(자미성) 현재의 모습


사정이 이리하니 조선에서 임금을 비롯하여 고관대신들 그리고 학문을 한다는 선비들 심지어는 종교, 무속인들까지 감히 그 누구가 자미(紫微)를 무시할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세종대왕이 경복궁 동쪽에 전각을 짓고 자미당(紫薇堂)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하늘의 자미성을 따올 수는 없으므로 지상의 자미화를 심고서 나름대로 복을 빌거나 위안을 삼거나 또는 꽃과 수피를 즐기거나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도산서원이나 병산서원 그리고 소쇄원 식영정 오죽헌 등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이름난 서원이나 정자에 유학자들이 많이 심었다. 공주 신원사와 고창 선운사 등 전국 유명 사찰에는 배롱나무가 없는 경우가 드물고 문중 제실이나 산소 등에도 앞 다퉈 심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문인들이 시를 읊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중 과연 실제 자미화 즉 배롱나무를 보고서 노래한 것인지 아니면 상상 속 중국의 자미화를 동경하면서 노래한 것인지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자미는 그 이전의 문헌에도 많이 등장하지만 모두 자미성을 이르는 말이고 자미화(紫微花)로서는 고려말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이나 최자(1188~1260)의 보한집에 최초로 등장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파한집을 찾아보니 李紫薇純祐出鎭關東云, ‘細柳營中新上將, 紫薇花下舊中書.’이란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의 자미화(紫微花)는 아마 간의대부 또는 한림학사를 역임한 자미 이순우를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자미(紫微)는 이순우(李純祐)의 호이다. 또 다른 紫薇雞林壽翁 또한 자미(紫微)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省)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보한집에 등장하는 유보(柳葆)라는 사람이 지었다는 자미화 관련 시 ‘紫薇花下僊毫露, 化出人間萬樹紅. 唯有東門一條柳, 年年虛度好春風.’는 붉은 꽃 색상까지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으로 봐서 홍미를 염두에 두고서 노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최자의 설명에 의하면 성명을 사물에 비유한 것으로 추정되어 자미 이순우를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보한집에 최자의 외조부 김예경이 이순우(李純祐)에게 올린 또 다른 시 ‘詰筆暖霑紅藥露, 朝衣輕颺紫薇風.’ 즉 ‘고필은 따뜻하게 작약의 이슬에 젖었고, 조의는 가벼이 자미의 바람에 나부끼네.’ 또한 자미가 이순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면 즉 13세기 초에 쓰여진 파한집과 보한집에 등장하는 자미화가 실제 배롱나무가 아니라면 좀 허탈해 진다. 그 시대에 국내에 자미화가 도입되었어야 부산시 양정동에 있다는 800년된 배롱나무 고목이 당위성을 얻는다. 하여튼 그 다음은 1392년 고려가 망하자 재령이씨 문중의 모은공(茅隱公) 이오(李午)라는 사람이 함안 산인면 모곡리에 와서 아름다운 자미수를 보고서 마음에 들어 터전을 잡고 마을 이름을 고려동이라고 하고 경작하는 밭을 고려전이라고 하면서 은둔생활을 하였다고 하며 인근 두심동에서 은둔하던 동지를 만나 자미수(紫薇樹) 아래서 술을 나누며 나라 잃은 선비의 한과 슬픔을 노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후손들이 그 자미수 옆에 자미정을 짓고서 그 내막을 기록한 내용에 백이숙제의 고사리에 비유한 자미수(紫薇樹)가 나온다. 재령이씨 명문가에서 배롱나무를 매우 중히 여기고 대대로 재배하여 온 것은 당연히 사실이겠지만 고려말에 야산이거나 농촌 마을에서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 자생종이 아니라면 어려운 이야기같다. 설혹 고려말에 도입되었다고 하더라도 귀한 나무로 대접을 받았을 터인데 그런 시골에까지 퍼져 나갔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후 조선 초기의 성삼문(1418~1456)이나 점필제 김종직(1431~1492) 등의 시에 자미화를 묘사한 것들이 있다. 특히 성삼문은 자미화와 관련 시를 두 편이나 썼다. 아마 붉은 꽃을 자기의 단종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설혹 그 이전에 배롱나무가 국내 도입되었더라도 그의 고향 충청도 홍성이라면 모를까 관직에 올라와 살던 한양에서는 배롱나무를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여하튼 두 번째 시 백일홍에는 계속 지고 피고 하면서 백일을 간다는 배롱나무의 꽃의 생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백일홍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묘사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그가 한글 창제를 위하여 워낙 중국을 여러 번 다녀온 학자라서 어디서 봤는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爛漫紫薇(난만자미) - 성삼문

歲歲絲綸閣 세세연년 사륜각에서 

抽毫對紫微 붓을 거두고 자미화를 대하네 

今來花下飮 오늘도 꽃 아래서 술 마시니 

到處似相隨 가는 곳마다 뒤 따르는 듯하네. 


百日紅(백일홍) - 성삼문

昨夕一花衰 어제 저녁 한 송이 지고

今朝一花開 오늘 아침 한 송이 피어

相看一百日 백일 동안 볼 수 있구나

對爾好衡盃 너를 위해 한잔 기울이리


하지만 성삼문과 같이 집현전에서 한글창제에도 참여한 동시대 인물이며 그림과 글씨 등 다방면에 능한 인제(仁齋) 강희안(1417~1465)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수록된 16종의 식물 중에 자미화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 자미화가 이미 들어와 재배되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 자미화 편에서 이 꽃은 중국은 성안에 많이 심지만 우리나라 성안에서는 본 적이 없고 영남 근해 여러 고을에서 많이 심는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지방 대가에서 많이 심었지만 대부분 얼어 죽었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형상을 표현하기를 "비단 같은 꽃이 노을빛처럼 고운데 뜰을 비추면 사람들의 시선을 어지럽게 빼앗으니, 풍격이 가장 유려하다."라고 되어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고 내한성까지 서울경기 지방에서 심을 수는 있어도 동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이 나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여주 황학산수목원에 가면 양화소록원이 있다.


양화소록이 1450년 전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정황으로 봐서는 파한집과 보한집의 시대인 1200년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고려말이나 조선 초에는 국내에 도입된 것으로 파악이 된다. 따라서 양화소록 즉 세조 이후 조선조 문인들이 쓴 수 많은 자미화나 백일홍에 대한 글이나 그림은 모두 실제 실물에 바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부산 양정동의 고목이나 함안 고려동의 배롱나무 등은 현재 생존 나무의 추정 수령은 위 중국이나 일본의 고목들과 비교할 때 약간은 오차가 있어 보이지만 그 당시 그 장소에 배롱나무가 있었다고 봐도 크게 문제는 없을 듯 하다. 다만 중국에서 이미 14세기에 국내 도입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 어떻게 이 아름다운 나무를 가져가지 않았는지가 궁금하다. 7년 간의 전쟁 동안 이 나무를 보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마 추측컨대 원나라 때 우리나라로 자미화가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나라 기록은 명나라가 의도적으로 폐기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중국에서 원나라 수도인 대도가 정확하게 어디였는지를 아직도 모른다는데 고려 왕실로 시집오는 원나라 어느 공주가 자미화 몇 그루 가져왔다면 그 기록이 남아 있겠는가 싶다.


중국에는 이런 매우 오래된 전설이 있다. 옛날 나이라는 이름의 흉악한 야수가 무수히 많은 사람과 가축을 해친다고 해서 하늘의 자미성이 내려와 깊은 산으로 가두어 넣고 일 년에 단 한 번만 하산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자미성은 야수 나이를 감독하기 위하여 자미꽃으로 변하여 인간 세상에 남아 인간들에게 평안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집 주변에 자미꽃을 심고 꽃을 피우면 자미선자가 평생토록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아! 자미화 때문에 우리가 일 년에 나이를 한 살씩만 먹는 것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그 꽃과 수피의 아름다움과 긴 개화기간 그리고 독보적인 개화시기 때문에 내한성만 해결된다면 당장이라도 심고 싶은 나무가 바로 배롱나무 아니던가?


자미대제와 자미선자

중국인들은 자미화를 심으면 자미선자의 보호를 받아 일생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 나무의 우리 이름 배롱나무는 백일홍이 배길홍으로 다시 배기롱을 거쳐 배롱으로 변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알려져 있으나 어느 지방에서 처음 또는 주로 사용하였는지 이에 대한 어떤 기록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배롱나무라는 이름은 1937년간 정태현 등이 저술한 조선식물향명집에 기재된 것을 1980년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에서 그대로 사용하므로서 우리나라 정명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때 정태현선생 등은 백일홍이라는 이명도 함께 제시하였는데 한편으로는 멕시코에서 온 일년생 화초에도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기에 중복을 피하려 배롱나무가 선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화과 일년생 초본인 Zinnia elegans를 모두 백일초(百日草) 혹은 백일국(百日菊)이라고 하는데 우리만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중복되는 문제를 만든 것이다. 이 초본도 개화기간이 길기는 하지만 딱히 붉은 색 꽃만 피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색상의 꽃이 피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949년 박만규선생은 우리나라식물명감에서 백일초라고 명명한 바 있으나 채택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배롱나무라는 이름이 순수 우리 이름인 줄로만 알았을 때는 매우 정감이 갔지만 백일홍의 발음이 미끄러져 만들어진 가짜 우리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정감이 덜가는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백일홍으로 되돌아 가던가 아니면 우리 선조들이 많이 사용하였던 자미화나 자미수로 부르는 것도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최소한 자미가 이명이라도 등재되어야 마땅하다. 일각에서는 목백일홍을 이야기 하는데 이건 정말 근본없는 멕시코 원산 초본에 밀린 꼴이 되어 달갑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현재 목백일홍은 국표식에 등록된 이명도 아니다. 


이게 멕시코에서 온 백일홍인데 백일초라고 불렀어야 마땅해 보인다.

과거 조선시대부터 조상들이 자미화를 부르던 이름 백일홍을 엉뚱하게 이 초본에다가 붙였다.


인간의 등급이 없듯이 식물의 등급을 정할 수는 없고 알고 보면 어느 풀 한 포기 어느 나무 한 그루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서 우리 인간들이 더 선호하는 식물은 있기 마련이다. 요즘 많은 분들이 강희안이 양화소록에서 식물을 9등급으로 구분하여 자미화를 1품으로 선정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양화소록 부록의 등급은 강희안이 선정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영조시대의 유박(柳璞 : 1730~1787)이라는 분이 화암수록(花庵隨錄)에 그런 화목구등품제를 만들어 각 등급당 5종씩 그리고 등외 12종을 더하여 모두 57종의 화목의 등급을 매긴 자료가 있는데 이게 후세 사람에 의하여 양화소록에 추가된 것 같다. 여기에서 자미화는 1등급이 아닌 6등급으로 분류가 된다. 이는 이 유박이라는 분이 황해도에서 화원을 한 분이라서 기후조건이 적합한 남도의 아름다운 자미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풀이가 된다.


원산지 중국에서도 20세기에 들어와 대규모 여론 조사로 중국의 10대 명화를 선정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자미화는 거기에 들지를 못했다. 이 또한 이 나무를 노지에서 식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화분에서 키우기에는 너무 커 접하기 어려운 중국 북방 지역 주민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중국 류평(刘平)이란 사람이 쓴 자미화 예찬의 내용 일부를 옮겨 본다. 


'오색찬란함'이라는 말이 좀 속된 것 같은데 옛 사람들은 무연경홍(舞燕惊鸿)이라는 말로 자미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는데, 정말 생동감이 넘친다. 자미수는 모양이 아름답고, 꽃가지가 길고, 푸른 잎이 무성하여, 옅은 청초색의 치마처럼, 한 조각으로 된 자주색 수건과 같은 꽃들을 돋보이게 한다. 순박함 속에서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완곡함 속에서 분방함이 드러난다. 맑은 바람이 솔솔 불고, 흔들리며 춤을 추고, 정취가 넘쳐 흐른다. 자미꽃은 흰색, 분홍, 자색, 자홍, 자남색 등으로 현란하고 다채롭게 피어나는 정열이며, 자색 꽃잎은 노을처럼 타올라 구름같기도 하며 노을같기도 하며 여름의 격렬함과 가을의 긴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자미는 鹭鸶花(노사화) 五里香(오리향) 红薇花(홍미화) 百日红(백일홍) 佛相花(불상화) 满堂红(만당홍) 紫梢(자초) 宝幡花(보번화) 紫金标(자금표) 紫兰花(자란화) 紫金花(자금화) 외에도 속칭 怕痒花(파양화) 猴刺脱(후자탈) 蚊子花(문자화) 五爪金龙(오조금룡) 无皮树(무피수) 등 매우 다양한 별명을 가진 낙엽 소교목이다. 나무의 자태가 아름답고, 꽃의 다양한 빛깔이 아름답다. 자색이 기본이라서 자미라고 부르지만 백색의 은미와 남색의 취미를 으뜸으로 친다.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개화기간이 지속되는데 특히 가을 아침 이슬 맞은 자미는 번성하고 경쾌하며 노을이 푸른 잎 사이로 감도는 듯하며 순수한 연보라빛은 조금도 세속의 구애를 받지 않은 것 같다. 그야말로 정결하고 산뜻하고 우아하다.


'광군방보'에서 자미화는 "한 가지에 여러 꽃차례가 한 꽃차례에 여러 송이 꽃이 달리는데 미풍이 불어오면 요염하게 흔들리고 제비가 춤을 추고 기러기가 놀라 날아가는 것 같이 아름다워 어디에 비유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당나라 시절 성에 많이 심고서 그 긴 개화기간과 아름답고 사랑스러움을 즐겼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꽃가지가 흔들리고, 아름답고 요염한 맵시 그리고 자태가 아름다워, 정말 무연경홍(舞燕惊鸿)의 운치를 뽐내고 있다. 자미는 우아하고, 탈속하며, 아름답고, 붉은 꽃송이가 가지 끝에 달려 있어 멀리서 바라보니 공작새가 날개를 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여리여리한 것 같지만 독특한 성격과 강인한 성품을 지녔다. 북풍이 휘몰아치는 가을철에도 시들지 않고 찬 공기에 완강히 견디어 적응력이 매우 강해 남쪽에서는 무성하게 자라고 북쪽 일부에서도 노지월동할 수 있다. 쌓인 눈을 부드러운 가지가 눌리면서도 떠받치는 모습을 볼 때 자미화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고 꿋꿋한 불굴의 정신을 드러낸다.


무연경홍(舞燕惊鸿)은 제비가 춤추듯 기러기가 놀라 날아 오르듯 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저 자색 일색이라서 모란 같은 화려함은 없고 장미와 같은 요염함도 없지만 한여름 땡볕에서도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리고 가을에는 생동하는 자태와 향기를 풍겨 가볍고 부드럽게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모든 생명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인생 하나하나가 하나의 독특한 풍경이며, 다른 사람의 장점을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찬란함을 펼쳐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하는 것이 낫다. 나는 자미화의 이런 특성을 좋아한다. 더운 여름 모든 꽃이 움츠릴 계절에 자미는 조용하게 꽃을 피우고 소슬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와도 묵묵하게 개화를 지속하며 국화가 등장하여 그 아름다움을 다투는 계절이 오면 살며시 물러나는 너 자미화!...

  

인생 40세를 꽃에 비유한다면, 내 생각에 그것은 틀림없이 한 떨기의 자미화일 것이다. 억세게 꿋꿋하고 성숙하여 중후하고 냉정한 긍지를 가진 너 자미화. 누가 화홍무백일이라고 했나 자미화는 반년 동안 꽃을 피우는데. 가을 단풍이 붉어질 때 낙엽이 흩날릴 때 처연하지 말고 감상에 빠지지 말고 고개를 들어 바람에 요염하게 흔들리는 자미화를 보라. 그러면 자미화가 생활의 활기를 되찾게 해 줄 것이다!


등록명 : 배롱나무

이  명 : 백일홍

학  명 : Lagerstroemia indica L.

분  류 : 부처꽃과 배롱나무속 낙엽 소교목

원산지 : 중국, 열대 아시아

중국명 : 자미(紫微), 入惊儿树(입경아수)、百日红(백일홍)、满堂红(만당홍)、紫金花(자금화), 痒痒树(양양수) 등

일본명 : サルスベリ(猿滑り), 백일홍(百日紅)

영어명 : crape myrtle 또는 crepe myrtle

수  고 : 7m

수  피 : 평활, 회색 혹 회갈색

가  지 : 비틀어짐, 소지 섬세, 4릉, 시상

엽  편 : 호생 또는 대생, 지질, 타원형, 모난원형 또는 도란형, 2.5~7 x 1.5~4cm, 정단 단첨 혹 둔형, 약간 오목, 기부 활설형 혹 근원형, 무모 혹 하면연중맥 미유모, 측맥 3~7대, 소맥 불명현, 무병 혹 엽병흔단

화  서 : 7~20cm 정생 원추화서, 담홍색 혹 자색, 백색, 지름 3~4cm

화  경 : 3~15mm, 중축과 화경 유모

화  악 : 장 7~10mm, 외면 평활 무릉, 선시(鲜时) 악통 미돌기단릉, 양면 무모, 열편 6, 3각형, 직립, 무부속체

화  판 : 6, 추축, 장 12~20mm, 긴손톱형

수  술 : 36~42개, 외면 6매 화악상 착생, 나머지보다 훨씬 김

자  방 : 3~6실, 무모

열  매 : 삭과 타원상구형 혹 활타원형, 장1~1.3cm, 유시 녹색 내지 황색, 성숙시 혹 간조시 자흑색, 실배개렬, 종자 날개, 장8mm

화  기 : 7~9월

과  기 : 9~12월

특  성 : 반음생, 비옥습윤토양, 가뭄 및 공해에 강함, 석회질이나 산성 토양 생장 양호

목  재 : 견경, 내부, 농구 건축자재

약  용 : 수피, 잎, 꽃 강사제, 근 수피 각혈, 토혈, 변혈

내한성 : 영하 17도


배롱나무의 내한성이 문제가 된다. 배롱나무는 조선초에 쓴 양화소록에도 나와 있듯이 경기 지방에서 심으면 거의 십중팔구 죽는다. 물론 심은 다음해 당장 죽기보다는 그 다음해에 죽거나 아니면 서서히 몇 년에 걸쳐서 죽는다. 그런데 남향 북벽의 아늑한 장소에서는 겨울에 나무 전체를 볏짚 등으로 두껍게 감싸주고 늦봄까지 풀지 않으면 살아 남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혹자는 대개의 묘목들이 남쪽 농장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경험하지 못하여 약하지만 나무 줄기가 죽더라도 뿌리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온다면 내성이 생겨서 내한성이 강하다고 한다. 그말도 일부는 옳다. 하지만 그렇게 뿌리에서 새로 나온 가지도 오래되어 줄기가 굵어지면 다시 겨울을 못 견디고 죽고 만다. 그래서 결국은 시간 문제이지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양평 전원주택으로 이사오는 분들 거의 대부분은 처음에 배롱나무나 감나무 등을 동사시키는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이들 모두 내한성이 뿌리 기준으로는 영하 23도가 되지만 줄기 기준으로는 영하 17도도 완벽한 월동대책을 세울 경우에 한하기 때문이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매년 양평에서 배롱나무나 감나무를 판매하는 화원이 있다. 물론 일부 구매자들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배롱나무를 사겠다고 한단다. 그만큼 배롱나무가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내에서는 웬만하면 노지 월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강원도이지만 강릉 오죽헌이나 선교장에 배롱나무 고목이 있는 이유는 강릉은 해양성 기후로 경기도보다 온난하여 동백도 석류도 노지월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롱나무는 양평 등 경기도에서는 겨울에 이렇게 두껍게 감싸줘도 노지월동이 어렵다.


배롱나무


배롱나무


배롱나무 꽃망울


배롱나무


배롱나무 열매


배롱나무


배롱나무


배롱나무


배롱나무


배롱나무


배롱나무


배롱나무


배롱나무

단풍마저 아름답다.


배롱나무


배롱나무

변산의 대량 재배 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