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콩과에 등록된 목본들 중 마지막으로 족제비싸리속을 탐구할 순서이다. 족제비싸리를 가장 뒤로 미룬 것은 어릴 적 철로변에서 자라는 이들을 건드렸다가 경험한 고약한 냄새 때문에 내키지 않기도 하였지만 이들이 모두 우리 자생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알고 보니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나무라는 선입견에 빠져서 그냥 무시해도 될 만한 수종은 결코 아닌 것 같아서 놀랍다. 전세계 족제비싸리속 즉 Amorpha속은 모두 15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는 이 중 두 종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 미국이나 캐나다 멕시코 등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속명 Amorpha는 1753년 린네가 명명한 것인데 라틴어로 모양이 없는(shapeless) 또는 기형(deformed)이라는 뜻이다. 이 속의 모식종은 바로 족제비싸리 즉 Amorpha fruticosa인데 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들 꽃잎이 달랑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즉 콩과 식물 특유의 기판과 익판 그리고 용골판 등 5장으로 구성된 꽃잎 중에서 기판 달랑 한 장만 있기 때문에 그렇게 기형적인 꽃 모양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 족제비싸리는 김종원교수의 한국식물생태보감에 의하면 1910년대에 사방용 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시나무도 비슷한 목적으로 1880~90년대에 중국을 통하여 도입되었다고 하니 아마 족제비싸리도 중국을 통하여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기도 전인지라 우리나라 산림의 황폐는 일제의 수탈과 벌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을 근간으로 하는 국생정 도감에는 1930년경 만주를 거쳐서 도입되어 전국의 사방지와 황폐지 복구를 위하여 심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정확하게 1912년 관상용으로 우리나라를 통하여 처음 도입하였으며 나중에 황폐지 복구를 위하여 대량 수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1910년 초기 또는 그 이전에 국내 도입되었다는 주장이 옳은 것 같다. 그러니까 북미 원산의 족제비싸리를 중국에서는 그 이전에 가져다 심었고 이를 우리나라에서도 도입하여 심었으며 나중에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왜 이 관목이 무슨 매력이 있길래 한중일 3국이 서로 앞다퉈 도입하여 심었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한중일을 포함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 이유는 족제비싸리가 가뭄에 매우 강하여 연간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한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한성이 강하여 한랭한 온한대 지역에 적합한데다가 염분에도 강하여 해안가에서도 잘 성장하며 뿌리가 넓게 왕성하게 자라 사방목적으로 그리고 줄기가 무성하여 방풍림으로 매우 적합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콩과 식물이므로 질소고정으로 토질 개선에 기여하며 꽃이 좋아서 밀원식물도 되고 잎과 줄기에는 영양분이 풍부하여 가축의 사료로 그리고 심지어는 거습소종(祛湿消肿)의 약효까지 있어 약재로까지 사용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줄기로는 광주리 같을 것을 짜고 열매로는 기름을 짜서 방향유나 윤활유로 사용하며 줄기 껍질에서는 탄닌을 채취한다니 정말 그 다양한 용도에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또한 놀라운 것은 뜻밖에 꽃 향기마저도 매우 강하고 좋다는 것이다. 다만 잎과 줄기에 상처가 나면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가 족제비 항문 주변에 있는 분비샘에서 위험시에 풍기는 냄새와 비슷하다고 족제비싸리라는 우리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족제비도 스컹크와 비슷하게 냄새를 무기로 이용하는 동물 중 하나인 것이다. 우리 이름 족제비싸리는 1966년 발간된 이창복의 한국수목도감에 근거한다. 이 이름은 정말 냄새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면 우리 독창적인 이름인 것 같기는 하다. 일본에서도 우리와 같은 뜻으로 이타치하기(イタチハギ) 즉 유추(鼬萩)라고 하는데 한자 鼬는 족제비 유자이다. 따라서 싸리를 하기(ハギ)라고 하므로 결국 족제비싸리가 된다. 일본에서는 이름 유래를 냄새 때문이 아니고 흑자색 수상화서 꽃차례가 족제비꼬리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결 같이 설명을 한다. 만약 우리이름이 우리가 독창적으로 붙인 것이라면 일본에서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를 도입하면서 우리나라 이름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도 일본에서 그렇게 우리나라 이름을 따랐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일부 아니 대부분은 족제비싸리의 흑자색 꽃차례나 열매가 족제비 꼬리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설명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일본이름을 따랐다고 하고 있다. 일본에서 도입하여 우리나라에 심었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실상은 그 반대로 일본에 우리나라에서 가져다 심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처음에는 이름도 없이 중국에서 도입하여 심었다가 나중에 일본에서 가져가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보고서 따라 불렀다는 말인가? 이런 한심한 사람들을 봤나! 족제비싸리의 이명 중에 미국싸리나 점박이미국싸리는 이해가 간다. 원래 원산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명이라는 왜싸리는 의문이다. 왜가 일본을 뜻하는 倭(왜)라면 우리가 전파한 것을 거꾸로 일본싸리라고 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왜소하다는 뜻의 矮(왜)라고 하더라도 족제비싸리가 싸리보다 더 크게 자라는데 이를 왜 왜소하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래된 순서가 반대인데다가 흑자색인 꽃차례가 실제 족제비 꼬리의 황갈색과는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하여 냄새 때문이라는 설에 더 무게가 실린다. 여하튼 족제비싸리는 경험한 사람들은 그 강한 냄새 때문에 멀리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꽃향기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건드리면 나쁜 냄새가 나지만 꽃향기는 매우 좋은 누리장나무와 매우 흡사한 면이 있다. 조심하여 건드리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으므로 외국에서는 꽃이 특이하고 향기가 좋기 때문에 족제비싸리를 정원수로 심는다고 하며 원예종도 개발되어 있다.
린네가 1753년 명명한 족제비싸리의 학명 Amorpha fruticosa의 종소명 fruticosa는 관목 같은 모양이라는 뜻이다. 워낙 여러 줄기가 나와 높이보다 더 넓게 퍼지면서 왕성하게 자라는 모습 때문에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이를 false indigo라고 부르는데 이는 indigo라고 불리는 땅비싸리와 비교하여 가짜라는 이름이다. 족제비싸리가 Indigo 즉 남색 염색재료로 사용은 가능하지만 그 용량이 너무 미미하여 그다지 상업성이 없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러 도감에서는 이상하게 족제비싸리가 물가에서 잘 자란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습지식물로 인식하게끔 설명하는데 뭐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본말이 전도된 것 같다. 이는 원래 족제비싸리가 건조한 기후에 강하여 사막 등 척박한 지역에 잘 자라는 식물이며 특히 연간 강수량 200mm 내외 지역에서도 거뜬히 견디므로 미국에서는 desert false indigo라고 불리기도 하여 전세계로 널리 보급되어 간 것이다. 다만 이런 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습지에도 강하여 강가나 해안가에서 잘 자라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한 달 가량 침수된 지역에서도 살아남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물가에는 잘 자라는 나무는 버들이나 물푸레나무 등 얼마든지 있으므로 이를 굳이 도입할 이유가 없었다. 신설된 도로변 절개지나 철로 주변에 심으려고 도입한 것인데 여기서 이탈하여 물가에서 많이 서식하므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당초 식재지에서 이탈하여 스스로 자생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이를 재배식물에서 귀화식물로 변경하여 분류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를 자수괴(紫穗槐)라고 자색 수상화서(穗状花序)로 꽃이 피는 회화나무로 부르는 것이다. 중국에서 괴(槐)는 회화나무속뿐만 아니라 아까시나무속 유달회화나무속 개골담초속 등에 두루 붙이는 이름이다. 족제비싸리가 자생종이 아니고 외래종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는 매우 다양한 별명(이명)들이 있다. 이는 그만큼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초조(椒条) 면조(棉条) 면괴(棉槐) 자괴(紫槐) 괴수(槐树) 수화괴(穗花槐) 자취괴(紫翠槐) 판조(板条) 등이 족제비싸리의 별명인데 족제비와 관련된 이름은 하나도 없다. 일일이 그 유래는 다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자(紫)와 수(穗)는 꽃색상과 모양에서 온 것인데 유난히 가지를 뜻하는 조(条)와 솜을 뜻하는 면(棉)이 들어간 이름이 많다. 이는 이 족제비싸리의 가지가 솜같이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여 광주리나 바구니를 짜기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현재도 족제비싸리를 이런 목적으로 대량재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광주리뿐만 아니라 방석 의자 심지어는 탁자도 이렇게 버드나무 등의 가는 가지로 짜는 수공예 가내공업이 발달되어 있는데 이들을 유편제품(柳编制品)이라고 통칭은 하지만 실제로 그 재료는 반드시 버들(柳枝)만은 아니다. 주로 많이 사용되는 재료로는 위성류(柽柳枝)와 뽕나무(桑条) 그리고 목형(荆条)과 족제비싸리(紫穗槐)가 이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족제비싸리의 종자도 팔고 묘목도 판매하는 것이다.
등록명 : 족제비싸리
이 명 : 미국싸리(박만규), 왜싸리(북한명)
학 명 : Amorpha fruticosa L.
분 류 : 콩과 족제비싸리속 낙엽 관목
원산지 : 북미, 귀화식물
영어명 : desert false indigo
중국명 : 자수괴(紫穗槐)
일본명 : 이타치하기(鼬萩), 별명 - クロバナエンジュ(黒花槐)
수 고 : 1~4m, 최대 6m
줄 기 : 소지 회갈색, 모, 후변 무모, 눈지 단유모 밀생
엽 서 : 호생, 기수우상복엽, 10~15cm, 소엽 11~25매
탁 엽 : 선형
엽 병 : 1~2cm
소 엽 : 난형혹타원형, 1~4 x 0.6~2cm, 선단원형, 예첨혹미요, 단만곡 첨자, 기부관설형혹 원형, 상면무모혹 소모, 하면 백색단유모, 흑색선점
화 서 : 수상화서 1또는 수개 정생과 지단 액생, 장 7~15cm, 단유모 밀생
화 경 : 단
포 편 : 3~4mm
화 악 : 2~3mm, 소모 혹 근모무, 악치 3각형. 악통보다 단
화 판 : 기판 심형, 자색, 익판과 용골판 무
웅 예 : 10, 하부합생성초(鞘), 상부 분열, 기판에 싸여 밖으로 돌출
협 과 : 하수, 6~10 x 2~3mm, 미만곡, 정단구소첨, 종갈색, 표면돌기 옹상 선점
화 기 : 5~6월
과 기 : 9~10월
용 도 : 정원수, 사방용, 방풍림, 사료, 광주리 재료, 기름 채취
약 용 : 엽 - 옹종(痈肿) 습진(湿疹) 소탕상(烧烫伤)
내한성 : 영하 34도
특 기 : 왕성한 번식력으로 미국 일부주와 일본 등지에서는 환경위해식물로 지정
'콩과 > 콩아과' 카테고리의 다른 글
982 털족제비싸리와 애기족제비싸리 (0) | 2020.06.11 |
---|---|
980 히말라야낭아초 -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정원수 (0) | 2020.06.08 |
979 낭아초(狼牙草) - 동의보감의 낭아와는 다른 우리 자생종 땅비싸리 일종 (0) | 2020.06.07 |
978 정등싸리의 정체 - 흰꽃땅비싸리의 원종인 중국과 일본 원산 정등(庭藤) (0) | 2020.06.06 |
977 땅비싸리 - 정원수로 개발이 가능한 아름다운 우리 자생 관목 (0) | 2020.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