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장미과 벗나무속/벚나무아속

1864 제주왕벚나무 - 원산지연구 이제 시작

낙은재 2023. 6. 30. 11:34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봉개동 자생지

 

 

다겟신부가 처음 발견한 소메이요시노의 변종

제주왕벚나무는 최근인 2022. 3. 28일 학명 Prunus × nudiflora (Koehne) Koidz.로 새롭게 등록된 우리 자생종이다. 이 수종은 1898년 조선에 도착하여 1902년부터 1915년까지 제주도 남제주군 서흥리 성당에서 재직하는 등 우리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대구교구로 옮겨서 거기서 생을 마감한 한국명이 엄택기인 프랑스선교사 겸 식물채집가인 에밀 다겟(Émile Taquet, 1873~1952)신부가 제주도 성당 재직 당시인 1908년 제주도 관음사 인근 해발 600m 지점에서 일본의 소메이요시노와 매우 비슷한 벚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을 타케라고 하지만 천주교측에서 다겟으로 부르기를 원한다기에 여기서는 다겟으로 한글 표기한다. 그가 채집하여 보낸 표본을 대상으로 독일 베를린대학의 식물학자 Bernhard Adalbert Emil Koehne(1848~1918)박사가 1912년 일본왕벚나무 즉 소메이요시노의 변종으로 분류하여 Prunus yedoensis var. nudiflora Koehne라고 명명한다. 여기서 변종명 nudiflora는 민꽃 즉 나화(裸花)라는 뜻으로 잎이 나오기 전에 꽃만 피거나 아예 꽃받침이나 꽃잎이 없는 특이한 꽃을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원종인 일본왕벚나무 즉 소메이요시노와 비교하여 꽃자루와 꽃받침에 털이 없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쾨네교수는 그 당시 일본왕벚나무에 비하여 개화기에 잎이 많이 전개되고 꽃자루도 길며 꽃받침 열편은 중간 부분에서부터 갈라지고 꽃잎의 길이는 짧지만 수술은 오히려 길고 암술대는 밑부분 1/4까지에만 털이 있어 중간부분까지 털이 있는 일본왕벚나무와 차이를 보인다고 아주 세밀하게 비교하여 발표했다.  

 

개화기에 잎이 많이 전개되지만 일정하지 않다.
제주왕벚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그 당시 일본 학자들은 다겟신부에 의하여 제주도에서 발견된 변종을 에이슈우자쿠라(エイシュウザクラ) 즉 영주앵(瀛州桜)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영주(瀛州)는 봉래(蓬萊) 방장(方丈)과 더불어 중국에서 옛날 동해속에 신선이 살았다는 상상속의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로서 흔히들 제주도를 이른다. 그러니까 제주벚나무라는 뜻으로 부른 것이다. 그런데 원종이라는 일본 소메이요시노는 일본에서 자생지를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그 변종인 제주왕벚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지가 발견된 어색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는 거꾸로 제주왕벚나무가 원종이 되고 일본 소메이요시노가 변종이라야 제대로 된 모양새가 된다. 결국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원산지라고 주장할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에서 발견된 것이 원종과는 차이점이 많은 변종이라고 쾨네박사가 분명하게 분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가 제주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설이 서양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도 널리 퍼지게 된다.

 

국내서는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의 이명처리

실제로 우리나라 식물분류학의 기초를 다진 일본 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은 그가 1916년에 발간한 조선삼림식물편 5집에서 이 변종을 글쎄 무슨 이유인지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학명 Prunus yedoensis의 이명으로 처리하고 있다. 즉 둘을 같은 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카이가 직접 왕벚나무에 대하여 깊이 조사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거나 한 흔적은 안 보이지만 둘의 관계가 원종과 변종의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둘이 각각 별개의 독립된 종도 아니고 아예 둘을 하나의 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럼 결국 나카이는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제주도 원산지설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이후 국내 학자들은 제주에서 발견되어 1912년에 학명 Prunus yedoensis var. nudiflora로 명명된 제주 자생종을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변종으로 인정하지 않고서 일본에서 발견되어 1901년에 동경대 마츠무라 진조(松村 任三, 1856~1928)교수에 의하여 학명 Prunus yedoensis로 명명된 소메이요시노와 완전히 동일종으로 인식하여 최근까지 쭉 동일한 학명 Prunus yedoensis Matsum.로 표기하며 국명도 왕벚나무 하나로 통합하여 불렀던 것이다. 그러니까 2022년에 둘을 분리하여 제주 자생종을 처음으로 제주왕벚나무라는 국명에 학명 Prunus × nudiflora (Koehne) Koidz.로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새로이 등록되기 전까지 말이다. 뚜렷한 이유나 아무런 연구 조사 결과의 뒷받침도 없이 제주에서 발견된 자생종을 일본 재배종과 동일시한 바로 이 이해할 수 없는 식물분류 방식 때문에 이후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음에도 아무도 이점을 주시하지 않는다.

 

나카이는 일본어로 된 이 책에서 왜 제주왕벚을 이명처리 했는지 의문이다.

 

 

여기서 둘의 명칭의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말기에 나타나 1885년 일본 학자에게 발견되어 소메이요시노라는 이름을 얻고 1901년 Prunus yedoensis라는 학명이 부여된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벚나무 품종이 있는데 아직 그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재배종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처음에는 사꾸라라고 부르다가 1949년부터는 쭉 왕벚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1908년 다겟신부에 의하여 발견된 새로운 자생종이 있는데 1912년 Prunus yedoensis var. nudiflora Koehne라는 학명이 부여되었으나 현재는 1932년 명명된 Prunus x nudiflora (Koehne) Koidz.로 표기하고 있다. 이 종을 처음 일본에서는 에이슈우자쿠라(エイシュウザクラ) 즉 영주앵(瀛州桜)이라고 불렀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부터 사꾸라라고 불리던 일본 왕벚나무에 통합되었기에 별도의 정명은 없었지만 식물학자들간에는 제주벚나무 한라벚나무 또는 민벚나무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022년부터 독립하여 제주왕벚나무라는 정명으로 불린다.     

 

일본 재배종

원산지 : 1720~1735년 일본 유통시장에 등장

학    명 : Prunus x yedoensis Matsum.

일본명 : 소메이요시노(ソメイヨシノ, 染井吉野)

국    명 : 사꾸라→왕벚나무

이    명 : 재배종 왕벚나무

 

제주 자생종

원산지 : 1908년 제주에서 자생지를 발견

학    명 : Prunus × nudiflora (Koehne) Koidz.(1932)

당초명 : Prunus yedoensis var. nudiflora Koehne(1912)

과거명 : Prunus yedoensis Matsum.(통합 당시)

국    명 : 사꾸라→왕벚나무(통합 당시)→제주왕벚나무(분리 후)

이    명 : 제주벚나무, 한라벚나무, 민벗나무, 자생종 왕벚나무

일본명 : 에이슈우자쿠라(エイシュウザクラ) 즉 영주앵(瀛州桜)

 

 독립종으로 승격 및 소메이요시노 자생지 발견

일본 식물분류학의 기초를 구축한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카이와 동시대에 일본을 대표하던 저명한 식물학자인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 1883~1953) 교토대 교수가 1932년에 소메이요시노의 제주도 원산지설을 규명하기 위하여 직접 제주도 탐사에 나선다. 그는 개인적으로 1901년 일본왕벚나무의 학명을 부여한 마츠무라 진조(松村 任三)교수에게 동경대 재학시절 직접 사사받은 관계인 데다가 그가 근무하는 교토대학에 다겟신부가 1908년에 채집한 제주왕벚의 표본 중 하나가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 신부인 다겟에 의하여 소메이요시노와 유사한 벚나무가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것이 1908년 발견된 후 일본에서도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를 찾으려고 이즈제도를 조사하였지만 이즈제도에서는 자생할 수 없다는 실망스러운 결론이 1912년 3월에 동경식물학지에 발표된 바가 있었기에 일본 학자들에게는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가 매우 궁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이즈미는 제주도에 변종이 자생한다면 분명 원종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20년동안 품은 의문점을 풀기위하여 직접 제주도 탐사에 나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1932년 4월 20일 제주도에 도착하여 제주 영림서장(營林署長)과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4일 후 한라산 남쪽 기슭 해발 600m 지점에서 벚나무 두 그루를 발견하게 된다. 그 중 하나는 다겟신부가 발견한 것과 같은 에이슈우자쿠라(エイシュウザクラ) 즉 영주앵(瀛州桜) 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일본 왕벚나무인 진짜 소메이요시노자쿠라이었기에 그 자생지를 발견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漢拏山の南山腹六百米突の山地に 眞の ソメヰヨシノザクラ 及び エイシウザクラの 天生せるを 發見したり.” 그리고 그는 “現今 ソメヰヨシノザクラの 原産地は 濟州島なり.”라고 기록했다. 즉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영어로는 "Prunus yedoensis Matsum. is a native of Quelpaert."라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제주 자생종 에이슈우자쿠라(エイシュウザクラ) 즉 제주왕벚나무의 학명을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변종 신분에서 독립된 원종으로 승격시켜 Prunus nudiflora (Koehne) Koidz.로 재명명한다. 이 학명이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아 현재 우리나라 국표식에도 등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겟신부는 한라산 북측 기슭에서 최초로 제주왕벚나무로 추정되는 한 그루를 발견하였지만 고이즈미는 남쪽 기슭에서 두 그루를 발견하였는데 하나는 일본 소메이요시노 그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다겟신부가 발견하였다는 제주왕벚나무였던 것이다. 그는 제주왕벚나무를 관찰한 결과 일본 소메이요시노와는 차이점이 많은 다른 종이기에 별도의 독립된 종으로 학명을 재명명한 것이다.

 

제주도가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임을 천명한 고이즈미 논문

 

고이즈미박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일본 최고의 벚나무 전문 학자인 미요시 마나부(三好 学, 1862~1939)교수까지 들먹이며 이들 두 종의 이동 경로에 관한 가설을 추가한다. 일찍이 제주도에서 두 종의 왕벚나무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奈良)의 요시노야마(吉野山)에 있는 사찰인 장왕당(藏王堂)에 헌목(獻木)되었는데 그 중 하나인 제주왕벚나무는 일본 요시노야마에 수령 60년 된 백롱앵(白瀧櫻, P. nudiflora f. longipes Koidz.)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고 소메이요시노는 에도로 퍼져나간 후 요시노야마에 있던 어미목은 고사하여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이즈미박사는 이듬해 요시노야마에 있는 백롱앵이 제주왕벚나무와는 무관한 다른 종이라고 그의 앞선 주장을 번복 수정한다. 괜히 사족을 달아서 안 그래도 소메이요시노의 제주도기원설을 부정하고 싶던 일본인들에게 그의 주장을 무시할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90년이 더 지난 지금에 와서 봐도 그가 제주도 남쪽 기슭에서 1932년에 두 그루의 벚나무를 발견하고 동정하여 발표한 것이 왕벚나무 원산지설에 대하여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거의 완벽한 결론이 아닌가 한다. 그는 두 그루 중 하나를 독립된 종으로 명명하였는데 이는 현재까지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학명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늦었지만 지난 2022년에 와서 일본왕벚나무와 분리된 별개의 종으로 제주왕벚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서 독립시켰으므로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다음은 논란의 중심이 되는 바로 그 문제의 나무인데 그가 진짜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를 발견하였다고 주장한 일본왕벚나무이다. 후세 학자들은 그 나무를 찾아서 재확인하고 그 나무가 진짜 소메이요시노라면 어떻게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등을 추가연구하면 될 것인데 놀랍게도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왕벚나무 원산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연구하였지만 아무도 고이즈미가 발견하였다는 이 중요한 나무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세금을 들여서 원산지를 규명한답시고 학자들이 여러 차례 연구했는데 도대체 문제의 핵심인 이 일본왕벚나무를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처음부터 우리나라가 원산지라는 제주왕벚나무의 유전자만 수 차례 분석하고 있어 기가 막힌다. 기껏 제주왕벚나무가 일본왕벚나무인 소메이요시노와 다르다는 것을 이런 짓 저런 짓을 해서 밝히고만 있지 정작 우리나라 제주도에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가 있다고 일본학자가 발표한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다른 목적의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분석대상 제주왕벚나무 그룹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엉뚱하게 튀어나와도 애써 무시하고 있는 행태까지 보인다. 이게 정말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제주도가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라는 것을 밝히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덮으려는 것인지 모를 연구에 세금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에 근무하던 식물유전학자인 다케나카 요(竹中要, 1903~1966)라는 인물이 조금 의심스럽다. 벚나무 종류의 분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나중에 직접 교배실험을 통하여 일본왕벚나무가 일본 자생종 올벚나무와 일본 이즈제도 고유종인 왜벚나무의 교잡종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밝힌 사람이다. 그가 고이즈미박사가 제주도에서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를 발견했다는 발표를 보고 곧바로 이듬해 그 장소를 찾아간다. 거기서 당연히 두 그루를 발견하였을 터인데 어쩐지 한 그루만 발견하였는데 그 나무는 꽃받침 열편과 잎 뒷면 맥위에 털이 거의 없고 화서축이 짧다는 이유로 소메이요시노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가버린다. 글쎄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풀이하자면 소메이요시노는 찾지 못하고 제주왕벚나무 한 그루만 찾았는데 살펴보니까 소메이요시노와는 다르더라는 말 같은데 학자라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고이즈미가 독립된 종이라고 명명까지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발표하니까 마치 고이즈미박사가 소메이요시노라고 밝힌 나무를 찾아서 관찰해보니 아니더라는 뜻으로 애매하게 들린다. 그럼 나머지 한 나무는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누가 그 사이 베어버리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 당시가 일제강점기 시절이니까 충분히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여하튼 젊은 학자 다케나카가 와서 그 따위로 조사하고서도 선배 학자 고이즈미의 주장을 반박하며 망신을 주니 더 이상 고이즈미가 찾았다는 일본왕벚나무를 찾으려는 노력은 일본 학자들은 물론 우리나라 학자들도 없었던 것 같다. 이게 말이 되나?

 

그 후 일제 막바지인 1937년에 발간된 최초의 우리말 식물목록인 조선식물향명집에 제주왕벚나무는 쾨네가 명명한 변종으로도 고이즈미가 명명한 독립된 종으로도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아마 그 당시 우리나라 식물분류학계를 주도하던 나카이가 이미 1916년에 제주왕벚나무를 Prunus yedoensis의 이명으로 처리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동일종으로 피흡수 통합되었으므로 별도로 등재되지 않았고 일본 왕벚나무인 소메이요시노는 국명이 사꾸라로 등재된다. 그러니까 제주왕벚나무도 우리말로 된 최초의 이름이 사꾸라였던 것이다. 그 후 해방이 되자 박만규(朴萬奎, 1906~1977)박사가 1949년에 펴낸 우리나라식물명감에서 사꾸라를 왕벗나무로 바꾸고 그 이명으로 민벗나무를 기재하고 있는데 이 민벗나무가 아무래도 일본명 에이슈우자쿠라(エイシュウザクラ)인 학명 Prunus × nudiflora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맞춤법에 따라서 왕벗나무가 왕벚나무가 되어 최근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해방 전에는 사꾸라로 해방 후에는 왕벚나무로 제주에서 다겟신부에 의하여 발견된 민벗나무가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함께 불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겟신부가 1908년에 처음 발견하고 1912년 독일 학자 쾨네에 의하여 일본 소메이요시노자쿠라의 변종으로 명명되고 1932년 일본 학자 고이즈미에 의하여 독립된 종으로 승격되었으며 다음 해 일본 학자 타케나카에 의하여 거듭 그 실체가 확인된 민벚나무(제주왕벚나무) 즉 Prunus × nudiflora를 국내서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독립된 종이나 변종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본왕벚나무인 소메이요시노와 동일종으로 분류하여 이명처리하기를 지속하였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왕벚나무 즉 Prunus yedoensis의 자생지가 제주도이며 나아가서는 우리나라가 Prunus yedoensis의 원산지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었지만 식물분류학적으로는 누가 봐도 이해할 수가 없는 억지주장으로 보인다.

 

진정으로 우리나라가 일본 왕벚나무의 원산지라는 것을 주장하려면 이미 1932년에 고이즈미가 발견하였던 그 나무를 찾던가 아니면 다른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를 제주도에서 찾으면 될 것을 누가 봐도 다름이 인정되는 민벗나무(현 제주왕벚나무)가 일본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와 같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었던 셈이 된다. 여하튼 그러는 사이에 해방 후 반일감정에 의하여 마구 베어낼 처지에 놓였던 일본 사꾸라가 우리나라가 왕벚나무의 원산지라는 이상한 명분 아래 벌채 위기를 면하게 된다. 나아가서는 위기모면 수준을 지나서 적극적으로 전국각지에 대대적으로 심게되어 이제는 삼천리 방방곡곡이 그야말로 일본왕벚나무 천지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온 세상이 다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인정하는 민벗나무(현 제주왕벚나무)를 그동안 독립된 종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왕벚나무 제주 원산지설에 이용만 실컷 하고서는 정작 제주왕벚나무 실물의 홍보나 보급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어 우리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수목원에 가더라도 제주왕벚나무를 보기가 어렵다. 이렇게 되니 너도나도 꽃이 아름다운 일본 원산의 소메이요시노만 죄다 심어 벚꽃명소인 진해의 여좌천이나 경화역에도 일본식 이름인 윤중로(輪中路)로 불리던 여의서로에도 거의 모두 일본산 왕벚나무로 채워졌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사당에도 청와대에도 주요 관공서나 학교에도 주변 공원이나 도로에도 심지어는 제주도의 가로수를 비롯한 전국의 가로수도 일본왕벚나무 일색이 되었다. 어차피 일본 왕벚나무 즉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는 우리나라 제주도이니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때까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였으면서 말이다.

 

국내학자는 1962년에 가서나 자생지 찾아

경상남도 진해시와 해군이 공동으로 일본에서 소메이요시노 2천 그루를 수입하여 열심히 심던 1962년 국립과학관장이던 박만규(朴萬奎, 1906~1977)박사와 제주도의 재야 식물학자인 부종휴(1926~1980)선생 등이 한라산 탐사에 나서 제주왕벚나무의 남쪽 자생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들은 제주도 남쪽 기슭에서 3그루를 발견한다. 그러고는 1962년 4월 17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벚꽃은 우리꽃이라는 제목에 한라산이 원산지라는 부제를 달아서 기고하고 있다. 그는 이 긴 칼럼에서 “왕벚나무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총애를 받았고 미국에까지 시집을 가서 귀염을 받고 있다.”라며 1908년 프랑스 신부 다겟과 1932년 일본인 학자 고이즈미가 한라산에서 왕벚나무를 채집해 자생지를 확인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나름대로 사정은 있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봐도 참으로 기가 막힌다. 국내 식물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박만규박사가 제주왕벚나무의 자생지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이 팀이 제주도에서 발견한 것은 모두 일본 왕벚나무인 소메이요시노가 아닌 제주 자생 민벚나무 즉 현 제주왕벚나무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겟신부가 발견한 것은 소메이요시노의 변종으로 명명되었고 고이즈미가 발견한 제주왕벚나무는 별개의 독립된 종으로 명명되었는데 이걸 원산지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리고 고이즈미가 발견하였다는 진짜 소메이요시노에 대하여는 그 어떤 언급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미 일본 학자들이 이 제주왕벚나무는 한국 고유종이라고 인정하고 학명까지 부여한 것을 뭔 대단한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다. 일종의 대국민 사기인 것이다. 여하튼 박만규박사는 이듬해인 1963년에도 남쪽 기슭에서 3그루를 더 발견하고 그 다음해인 1964년에는 북쪽 기슭에서도 3그루를 더 발견한다. 그리하여 다겟신부가 발견하였다는 북쪽 기슭과 고이즈미가 발견하였다는 남쪽 기슭 모두에 제주왕벚나무가 자생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진정으로 일본왕벚나무의 한국기원설을 주장하려면 고이즈미가 발견하였다는 진짜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를 찾던가 아니면 다른 개체라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밋션(?)은 실패하고 민벗나무(현 제주왕벚나무) 자생지만 발견한 것이다. 그러고서도 대대적인 성과를 거둔 것처럼 홍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진짜 소메이요시노를 찾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생 제주왕벚나무를 찾아서 대대적으로 거짓 홍보할 속셈이었을 수도 있다. 정부수립 후 당시 통합되어 사꾸라라고 불리던 이들을 왕벚나무와 민벗나무라는 우리 이름을 각각 붙인 장본인인 박만규박사가 그런 사정을 모를 리가 없었는데도 이렇게 한 것은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학자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는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의 진행을 반대하는 데모가 한창이던 시절이라서 일본 사꾸라에 대한 반감이 컸었다.

벚꽃은 우리꽃 - 한라산이 원산지라는 제목의 1962년 4월 동아일보

 

 

소메이요시노의 부모종  

이와 같이 우리나라 고유종의 자생지를 추가로 발견한 것을 마치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를 발견한 양 언론에서 떠들자 일본의 국립 유전학연구소의 다케나카 요(竹中要, 1903~1966)가 발끈하여(?) 일본왕벚나무 즉 소메이요시노는 일본 원산 올벚나무와 이즈제도 특산 왜벚나무의 교잡종임을 실제 교배실험으로 확인했다고 1963년 발표한다. 그는 40여 년 전인 1916년에 미국의 어네스트 윌슨(1876~1930)박사가 일본내에서 자생지를 찾지못하자 제기하였던 올벚나무와 왜벚나무의 교잡종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동안 꾸준히 이들 둘을 실제 교배시키는 실험을 하였는데 그 교잡종들 중에서 소메이요시노와 비슷한 개체를 일부 얻을 수 있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참고로 올벚나무와 왜벚나무를 교잡시킨다고 무조건 소메이요시노와 같은 특징을 가진 후세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하튼 다케나카박사는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 원산지설을 부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왜벚나무가 분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후 한동안 조용하게 30여 년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1995년에 일본 교토대 테라우치 료헤이 (寺内 良平)교수 등이 유전자 지문감식법에 의하여 일본 소메이요시노는 올벚나무와 왜벚나무의 교잡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 외에 매우 중요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모든 소메이요시노가 하나의 개체에서 무성생식으로 번식된 복제라는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메이요시노는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번식이 불가능한 수종이라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후로도 쭉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본왕벚나무와 제주도 자생왕벚나무를 하나로 묶어서 그냥 왕벚나무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으며 그러려니 어쩔 수 없이 학명 표기도 Prunus x yedoensis로 하고 있었다. 뭘 얻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전세계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인 제주왕벚나무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고 일본 소메이요시노에 피흡수 통합시킨 꼴이었던 것이다.

 

그후 21세기가 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 우리나라 젊은 학자들이 왜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우리 제주왕벚나무가 다름에도 하나로 묶여져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죄다 일본 원산의 소메이요시노를 방방곡곡에 심어놓고서는 우리나라 제주도 원산의 자생종인 왕벚나무라고 떠드는 이상한 행태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포문은 2005년 제주대 오문유교수와 정용환박사에 의하여 열렸다. 그들은 제주 자생 왕벚나무와 일본에서 도입하여 제주도 가로수로 심은 일본왕벚나무는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종이므로 그 둘의 명칭을 분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제 DNA 분석에 의한 혈통검사 앞에서는 둘을 더 이상 하나의 이름인 왕벚나무로 묶어둘 수는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2007년에는 미국 국립수목원 연구원인 Mark S. Roh와 서울대 최익용교수 등이 ISSR분석법으로 제주왕벚나무와 소메이요시노는 별개의 종이며 워싱턴 DC에 심어진 왕벚나무는 한국 일부 언론의 주장과는 달리 제주왕벚나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2014년 1월 일본에서는 동경도립대학 연구자들이 DNA 핑거프린트법보다 정밀도가 높다는 핵SSR(Simple Sequence Repeat)법을 이용한 DNA 해석법에 의해 일본 왕벚나무의 교잡 비율이 올벚나무 47%, 왜벚나무 37% 벚나무 11% 기타 5%임을 밝혔다. 그리고 2014년 4월 일본 삼림총합연구소의 토시오 카츠기(勝木俊雄)박사는 일본 왕벚나무의 한 부모는 올벚나무이지만 다른 한 부모는 왜벚나무와 벚나무의 교잡종일 것이라는 복합교잡설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민가 주변에 흔한 교잡 원예품종과 올벚나무의 교잡으로 탄생한 것이므로 자연교잡보다는 인위적인 교잡설에 무게를 실었다.

 

제주왕벚나무의 부모종

2014년 11월 우리나라 성균관대 조명숙, 김승철교수와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박사 등은 제주 왕벚나무가 제주에서 자생하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형성된 자연교잡종이라는 연구결과를 미국 식물학회지에 기고한다. 김승철교수팀은 제주 왕벚나무의 혈통을 밝힌 것이지 일본 왕벚나무의 혈통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제주왕벚나무는 개체변이 범위가 넓어서 유전 다양성이 풍부하므로 그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참고로 이 말은 한라산에는 전형적인 제주왕벚나무 유형도 있지만 소메이요시노와 유사한 유형도 자생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이즈미는 단 두 그루를 발견한 후 하나는 제주왕벚이고 하나는 소메이요시노라고 판단했지만 여러 개체를 유전자 분석하면 제주 한라산에는 일정하지 않는 매우 다양한 유형의 개체가 자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재배종 소메이요시노도 그 다양성의 범주안에 포함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자 곧이어 2017년 1월 일본 삼림총합연구소와 오카야마(岡山)이과대학이 공동연구를 통해 제주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산벚나무의 교잡종이므로 일본왕벚나무와는 혈통이 다르다는 것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국립수목원의 지원 아래 명지대와 가천대 연구자가 참여해 왕벚나무의 전체 유전체(게놈)를 해독한 연구 결과를 2018년 9월 발표하였다. 그 발표에 의하면 제주의 왕벚나무와 인접 종은 물론 일본에서 최초로 왕벚나무가 기록된 도쿄대 부속 식물원 즉 고이시카와 식물원의 왕벚나무 표본을 확보해 완전한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뒤이어 일본에서도 2019년 4월 가즈사(上総) DNA연구소와 시마네(島根)대학, 교토부립(京都府立)대학이 공동으로 왕벚나무 게놈 정보(전체 유전체) 해독을 완료했다고 발표하면서 통설대로 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왜벚나무를 조상으로 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들 두 조상은 552만 년 전에 다른 종으로 나뉘어졌고 백수 십 년 전에 교잡으로 왕벚나무가 탄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러한 한일 학자들의 마치 짜 맞춘 듯한 일련의 유전자분석에 의하여 일본 재배종 왕벚나무와 제주 자생종 왕벚나무가 더 이상 같은 나무라고 주장할 근거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하나 의문점은 처음 다겟신부에 의하여 발견되어 독일학자에 의하여 명명될 때도 그리고 일본 식물학자 고이즈미가 와서 재차 확인할 때도 둘은 같은 종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었는데 왜 누가 이들 둘을 하나로 묶었다가 이러한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둘의 다름을 검증하느라 부산을 떨었느냐는 것이다.

 

제주왕벚과 일본왕벚의 염기서열 - Jeju5는 일본과 미국서 채취한 소메이요시노 시료와 같은 그룹을 형성한다.

 

 

 

제주왕벚나무와 왕벚나무의 분리

이렇게 되자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도 더 이상 버틸 명분이 없었던지 이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그동안 쭉 왕벚나무 하나로 통합되었었던 일본 재배종 소메이요시노와 제주 자생종을 분리하여 일본 소메이요시노는 Prunus x yedoensis라는 기존의 학명에 왕벚나무라는 국명을 그대로 쓰게 하고 제주 자생종에는 제주왕벚나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 학명 Prunus × nudiflora (Koehne) Koidz.로 신규등록한 것이다. 이러고 나니 그동안 구분없이 모두 왕벚나무로 불렀는데 왜 왕벚나무라는 이름을 일본 재배종에다가 양보하고 우리 자생종은 제주왕벚나무라고 하느냐고 국내서 항의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누가 생각해도 이제까지 기자들은 지상에서 학자들은 논문에서 제주 자생 왕벚나무를 왕벚나무라고 쓰고 불러왔는데 이제와서 왕벚나무라는 명칭을 일본 재배종 소메이요시노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국립수목원에서는 그동안 국내서 왕벚나무라고 심어진 수종이 실질적으로는 모두 일본 소메이요시노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 제주 자생종을 왕벚나무라고 하겠느냐는 논리를 편다. 실제로 국립수목원의 변명대로 그렇게 되면 실무 현장에서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연도에 따라서 구왕벚나무 신왕벚나무로 구분하여 불러야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 원산 재배종을 마치 우리 자생종 왕벚나무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어 마음놓고 사서 심도록 하고서는 이제 와서 그걸 핑계로 명칭 변경이 어렵다는 논리는 말도 안된다. 우리 자생종을 제주왕벚나무라고 부르려면 일본 재배종에는 그냥 왕벚나무가 아니라 최소한 일본왕벚나무라고 불러야 마땅해 보인다.  

 

이와 같이 한일 학자들이 대단히 부산하게 무척 연구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실상은 1912년 독일 쾨네박사와 1932년 일본 고이즈미박사가 이미 결론을 내린 제주왕벚나무와 일본 소메이요시노가 다르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다만 그 부모종이 제주왕벚나무는 올벚나무가 모종이고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가 부종이며 일본왕벚나무는 올벚나무가 모종이고 왜벚나무가 부종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 성과라면 성과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모종이 둘 다 올벚나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부종에 관하여는 둘다 명확하지 않다. 제주왕벚나무도 벚나무인지 산벚나무인지 명확하지 않고 일본 소메이요시노도 왜벚나무라고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진짜 궁금한 점은 고이즈미박사가 1932년에 남쪽 기슭에서 발견하였다는 진짜 소메이요시노의 정체인데 아무도 거기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일본과 왕벚나무 원산지 논쟁을 하려면 진짜를 찾아서 밝혀야지 왜 처음부터 다른 점이 많다고 알려진 제주왕벚나무를 가지고 DNA분석을 해대냐는 것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례리 자생지
관음사와 해남 대둔사 자생지

 

 

제주대 일본왕벚 속 제주왕벚이

그러나 거의 쓸데없는 시간 낭비 수준으로 보이는 유전자 분석에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사실이 몇 가지 발견된다. 첫 째 2014년 성균관대학 조명숙 연구원 등 김승철교수팀이 연구할 당시 확실하게 일본에서 도입하여 심었다는 기록이 있는 진해와 서울대 그리고 제주대학에서 일본왕벚나무 샘플을 채취하였는데 그 중 제주대학에서 채취한 두 개의 샘플 중 하나가 일본왕벚나무가 아닌 제주왕벚나무의 엽록체 DNA 반수체형(haplotype)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 연구진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도대체 1970년대에 심어진 일본왕벚나무 속에 왜 제주왕벚나무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나타난 것인지에 대하여는 아무도 시원한 답을 못한다. 그 논문의 일부를 발췌한다. “In addition, one individual of cultivated P. yedoensis at the Jeju University has an identical cpDNA haplotype (F) to some wild ones from the western part of Mt. Halla, further suggesting the likelihood of this possibility.”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임을 널리 알리려고 제주대학 진입로에 소메이요시노를 심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제주 자생종으로 밝혀졌다.

 

 

다겟신부의 대구교구에 일본 소메이요시노가

그리고 2016년 5월 성균관대 조명숙 연구원과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박사 등이 발표한 [Taquet 신부의 왕벚나무: 엽록체 염기서열을 통한 야생 왕벚나무와 재배 왕벚나무의 계통학적 비교]라는 제목의 논문에는 놀랄만한 사실이 밝혀진다. 여기서 그 논문 중 일부를 소개한다. “관음사 일대에서 채집된 야생 왕벚나무 한 개체는 본 분석에 포함된 다른 야생 왕벚나무와는 달리 왕벚나무 재배품종의 반수체형을 보유함으로써, 과연 이 개체가 진정한 야생 왕벚나무인지, 아니면 재배 왕벚나무인지에 관한 분류학적 의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만약 재배 왕벚나무의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유전자형을 가진 이 개체가 야생 왕벚나무의 다양한 유전자형 중의 1개 유전자형이라면, 일본의 Somei-yoshino cherry의 기원에 제주도의 야생 왕벚나무가 기여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결과를 밝히면서도 누가 오래 전에 일본 소메이요시노를 관음사 주변에다가 심었겠지 하면서 얼버무리며 덮어 진다. 내부적으로 연구결과에 대한 서로 다른 이견이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1908년 최초로 관음사 주변에서 자생 왕벚나무를 발견하여 독일로 보낸 다겟신부가 근무하였던 카톨릭 대구교구에 제주도에서 이식하여 심었다는 오래된 왕벚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그동안 모두들 제주왕벚나무로 알고 있었으나 유전자 검사 결과 재배 왕벚나무인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유사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다음은 논문 내용 중 일부이다. “대구에서 채집된 왕벚나무 5개체는 모두 재배 왕벚나무의 고유 반수체형인 haplotype C에 포함되었으며, 엽록체 DNA 계통수 상에서도 다른 재배 왕벚나무들과 함께 두 번째 분계조(Clade B)에 속하였다. 이와 같이, Taquet 신부가 제주도로부터 대구교구청으로 옮겨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던 수령이 오래된 왕벚나무 두 그루는 대구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식재된 재배 왕벚나무나 실험에 포함된 다른 재배 왕벚나무와 유전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 개체들은 그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재배 왕벚나무들로서 Taquet 신부가 발견했던 제주도의 야생 왕벚나무와의 관련성은 매우 낮다고 추정된다.” 놀라운 결과이다. 에밀 다겟(Emile Taquet, 1873~1952)신부가 1922년 대구교구 성유스니노신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가져와 심었다니 그 당시는 기록상으로는 제주도에 일본왕벚나무가 도입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는 1935년 서귀포면장이 일본에서 소메이요시노를 대량으로 들여와 심은 것이 최초 기록이라고 한다. 따라서 다겟신부가 가져다 심은 것이 일본왕벚나무일 가능성은 낮으며 거의 식물학자 수준의 전문가인 다겟신부가 엉뚱하게 일본산 왕벚나무를 기념으로 대구까지 가져다 심었을 리도 만무하다. 그래서 이게 매우 궁금한 것이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대구교구에서는 매우 실망하여 다시 영남대 박선주교수에게 의뢰하여 재감정을 하게 된다. 그 결과는 그들이 바라는대로 천연기념물 159호인 봉개동 제주왕벚나무와 동일하다는 답을 얻었다고 한다. 이건 뭔 소리인지 그러니까 DNA 분석도 그 해석방법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겟신부의 제주도 근무지인 서귀포 서홍리 왕벚나무와 대구교구의 왕벚나무 고목 
대구교구의 왕벚나무 두 그루가 일본 소메이요시노 유전자라고 한다.

 

 

이승만박사가 아메리칸대학에 심은 소메이요시노

이와 유사한 사례가 또 있다. 미국 워싱턴의 아메리칸대학에 가면 1943년 이승만박사가 심었다는 제주도 자생벚나무가 3그루가 있다.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이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폴 더글러스 당시 아메리칸대 총장과 함께 한국 독립을 원하는 지성인들의 의지를 담아 국제관계대학 건물 옆에 네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미국인들의 반일 감정이 고조돼 곳곳에서 벚나무를 베어 내거나 불태우는 소동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벚나무라는 이름을 달고서 심어진 것이다. 이 중 한 그루는 고사하고 현재 세 그루가 남아 있다는데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2009년 미국 농무부 산하 식물과학연구소에 근무하던 재미 식물학자인 정은주박사가 유전자 분석으로 제주산임을 확인하고 표본을 국립산림과학원 제주분원에 보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2011년 동 대학 내에 한국정원을 조성하면서 우리나라 언론에서 발표한 바 있다. 글쎄 1943년이라면 국내 식물학계에서는 제주왕벚나무의 자생지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인데 일제강점기하에 무슨 수로 이승만박사가 제주왕벚나무를 구하여 거기에다 심었는지 의아하다. 2017년 바로 그 미국의 정은주박사와 성균관대 조명숙, 김승철교수 그리고 국립산림과학원의 김찬수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아메리칸대학의 그 벚나무 세 그루는 일본 재배종인 소메이요시노로 밝혀졌으며 조사 결과 이승만박사가 심은 그 나무는 미국내 상업농장에서 재배한 것이라고 한다. 심을 당시 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24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호놀룰루 한인부인회가 4그루의 한국벚꽃나무를 아메리칸대에 기증했는데 이 나무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이승만박사나 그 당시 한인부인회의 실수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당시는 일본 식물학자 고이즈미박사가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천명한 상태이지만 워싱턴 DC에 심어진 왕벚나무를 모든 사람들이 일본벚꽃이라고 부르므로 그걸 한국벚꽃이라고 바로잡고 싶었던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이제 와서 부질없이 제주왕벚나무와 같은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유전자분석을 시도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워싱턴대학에 이승만박사가 심었다는 왕벚나무도 소메이요시노

 

 

관음사 주변 150년 된 제주왕벚 어미목이 소메이요시노

놀라운 사실은 이게 다가 아니다. 진짜 놀라운 결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국립수목원 지원 아래 명지대와 가천대 연구자가 참여해 왕벚나무와 인접 종은 물론 일본에서 최초로 왕벚나무가 기록된 도쿄대 부속 식물원 즉 고이시카와 식물원의 왕벚나무 표본을 확보해 왕벚나무의 완전한 유전체(게놈)를 해독 비교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2018년 9월 밝힌 논문에서 말이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Interestingly, one accession of Pyn (Pyn-Jeju5) was tightly grouped with Pxy in both the MDS plot and the ML tree. Although this accession grows in a natural forest on Jeju Island, we assume that Pyn-Jeju5 is an accession of Pxy that escaped from the cultivated area. Considering the fact that Pyn-Jeju5 has been taxonomically classified as Pyn based on morphological characters, highly precise tools such as molecular markers should be utilized to correctly identify Pyn for evaluation and conservation of this taxon in nature.” 요지만 번역하자면 관음사 주변에서 채취한 제주왕벚나무 실험표본 Jeju5는 한라산 숲에서 자생하지만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밀접하게 그룹화 되었다. 그래서 민가에서 재배하던 소메이요시노가 어떤 이유로 탈출하여 산으로 올라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겉모습 즉 형태학적 특성이 제주왕벚나무로 보이더라도 평가하고 보전하기 위해서는 분자 마커 등의 방법을 활용해야 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관음사 주변 제주왕벚 어미목과 2015년 지정당시 후계목 기념식수 장면

 

 

한편에선 어미목의 보급 사업 진행

이게 뭔 소리인가 하면 이 나무가 2015년 국립산림과학원과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원화의 기준이 되는 ‘어미나무’로 지정한 밑동 둘레 3.45m인 수령 약 150년 된 거목으로 나무의 모양과 개화 형질이 뛰어난 바로 그 제주왕벚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겉모습만 보지 말고 제대로 유전자 분석을 한 다음 어미목으로 지정하던 후계목을 양성하던 하라는 다소 감정이 섞인 노골적인 충고로 보인다. 연합뉴스 자료를 뒤져보니 2015년 4월 9일 자로 국립산림과학원과 제주도 그리고 한국식물분류학회가 해발 500∼900m인 한라산국립공원 관음사지구 자생지(제주도 향토유산 제3호)에 있는 수령 140년의 왕벚나무를 자원화의 기준이 되는 어미나무로 지정하고 이 어미나무에서 나온 후계목 1그루를 인근에 심는 행사를 가졌다고 기사로 전하고 있다. 이 어미목이 1908년 다겟신부가 발견한 그 나무라는 증거는 없지만 그가 최초로 발견한 지역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립산림과학원은 2011년부터 기준 어미나무를 포함한 두 그루에서 가지 등 삽수를 채집해 접목하는 방식으로 2017년까지 후계목 9,778본을 키워냈다. 2015년엔 자생 왕벚나무 종자 1,000립을 파종하기도 했다. 현재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서귀포시험림과 한남시험림 등 2곳에 17만㎡(2678본) 규모의 왕벚나무 후계림이 조성돼 있다. 그랬는데 그게 우리 자생종 제주왕벚나무가 아니고 일본 재배종 왕벚나무가 어떤 경로로 자연으로 탈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같은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 주도의 연구결과에서 발표한 것이다. 그동안 제주왕벚나무 중에서 나이도 적당하고 꽃도 화려하게 피우기 때문에 열심히 후계목을 양성하여 보급하겠다는 국립산림과학원의 입장이 난처하게 된 것이다.

 

국립수목원 조치에 반발 움직임

그리고 2022년 3월 국립수목원은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왕벚나무를 재배식물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국명으로 하고 제주 자생종은 분리하여 제주왕벚나무라는 국명으로 신규 등재한다. 그러자 2022년 4월 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 소장이었던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립수목원의 결정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일본 소메이요시노는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아직 종이 아니며 반면에 제주왕벚나무는 한라산에서 현재까지 235그루가 자생하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그 유전다양성이 매우 풍부하여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유사한 유전형도 있고 다소 이질감이 있는 유전형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소메이요시노가 일본에서 인위적으로 교잡되었다는 설도 근거가 없다며 결국 우리나라에서 건너갔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과거 일본학자 고이즈미는 제주왕벚나무와 일본왕벚나무 둘이 한라산에 자생하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했는데 김찬수소장은 제주왕벚나무의 유전다양성이 풍부하여 이런 저런 유형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국립수목원은 한라산의 235그루 중에서 겨우 5그루만 분석하여 4그루는 제주왕벚나무이고 1그루가 일본왕벚나무라고 발표했는데 그 나무는 수령이 약 150년으로 제주도에 일본 소메이요시노가 처음 심어진 1935년보다 무려 60년이나 앞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한라산 중턱으로 이동할 수가 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아닌가 아니라 한라산에 자생하는 제주왕벚나무 235그루 전부를 유전자 분석하면 그 중에서 얼마나 많은 개체가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유사한 것으로 나올지 궁금하다. 그때마다 막연하게 재배종이 탈출하였다고 할 것인가?

 

국립수목원 조치에 반박하는 제주출신으로 국내 최고의 왕벚전문가인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본격적인 원산지 연구는 지금부터

이 정도면 여건은 충분히 조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 1912년 일본학자 고이즈미박사가 헛것을 본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증거가 많이 나온 것이다. 첫째가 수령 150년이 된 관음사 주변 어미목이 소메이요시노라면 이는 일본 후쿠시마현 개성산공원에 1873년에 심었다는 일본 최고령인 왕벚나무와 비슷한 나이이다. 그리고 시료로 채취하여 비교하였다는 1875년 일본 동경대 부속 고이시카와식물원이 개원할 때에 심었다는 일본왕벚나무의 표준목 행세를 하는 그 나무와도 비슷한 나이이다. 이 하나만 봐도 절대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의 주장대로 종자번식이 안되고 삽목이나 접목으로만 번식하는 소메이요시노가 등장 초창기 일본에서도 몇 그루 없던 시절에 어떻게 제주도 관음사까지 탈출하여 왔겠느냐 말이다. 그리고 제주왕벚나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에밀 다겟신부가 대구로 옮기면서 가져가 대구교구에 심었다는 왕벚나무가 일본 소메이요시노로 판명되었는데 과연 이게 정말 재배종을 심었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제주도 한라산에는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더 많이 자생하고 있을 듯하다. 이미 고이즈미박사가 확인하였고 대구교구에서 확인되고 관음사 주변에서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제주왕벚나무도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마찬가지로 자가불화합성이라서 종자번식은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국립산림과학관에서 2015년 종자 1,000립을 파종한 것은 부모종 중 한 종과의 역교잡에 의한 번식일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2018년 국립수목원과 명지대 가천대 연구결과에 의하면 제주 자생종의 81%가 올벚나무와 벚나무(산벚포함)와의 교잡 1세대이고 나머지는 역교잡종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직 키가 4~6m에 불과한 개체도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현재도 계속 번식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개체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고령 제주왕벚나무의 나이가 무려 265년이라니까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약 150년에 비하면 매우 길다. 그리고 혹시 일본 왜벚나무(오오시마벚나무)와 유사한 유전자 구조를 가진 한라산 자생종은 없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그동안의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진정으로 왕벚나무 제주도 원산지설을 밝히려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답을 찾을 수 있어 보인다. 다행히도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올해부터 3년간 왕벚나무 전문가와 산림 및 식물분류와 유전체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연구자문단을 구성하여 제주 왕벚나무 기원과 자생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 사업을 실시한다고 2023년 3월 26일 밝혔다. 앞으로 크게 기대가 된다.

 

등록명 : 제주왕벚나무

이    명 : 제주벚나무, 한라벚나무, 민벗나무, 자생종 왕벚나무

학    명 : Prunus × nudiflora (Koehne) Koidz.

이    명 : : Prunus yedoensis var. nudiflora Koehne

분    류 : 장미과 벚나무속 낙엽 교목

원산지 : 우리나라 제주도, 해남

일본명 : 에이슈우자쿠라(エイシュウザクラ) 즉 영주앵(瀛州桜)

영어명 : King Cherry

 

결    어 : 제주왕벚나무는 1908년 처음 발견되고 1932년 독립된 종으로 학명이 부여되었고 2018년 연구 등으로 일본 소메이요시노와는 부모종이 다른 자연교잡으로 탄생한 우리 자생종임이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 유전다양성이 풍부하고 실제로 형태학적인 특성이나 유전적 특성이 일본 소메이요시노와 거의 동일한 관찰결과나 분석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과연 일본 소메이요시노를 포함하는 하나의 종인지 아니면 별개의 또 다른 종이 한라산에 자생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일본 소메이요시노와는 완전 무관한 별개의 종인지에 대한 추가 연구를 진행한다니까 앞으로 그 결과를 기다려야 될 듯하다.  

 

 

소메이요시노와 구분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생 왕벚나무의 분포도 및 개체 사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