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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6 호두나무 - 호도(胡桃) 당추자(唐楸子)

낙은재 2024. 12. 3. 19:03

                       

호두나무는 수관이 넓게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호도와 호두 그리고 호두나무

호두나무는 호두라는 열매가 맺히는 나무이다. 감이 달리면 감나무라 하고 사과가 열리면 사과나무라고 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하면 목본 수종의 이름에 나무라는 접미사를 당연한 것처럼 붙인다. 하지만 과일 나무 이름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 한자어에서 유래하는데 중국에서는 원래 열매와 나무를 같은 단어로 쓴다. 예를 들면 호도(胡桃)는 그 열매를 뜻하지만 그 나무 자체도 뜻한다. 원래 한자가 생성될 때 나무 목(木) 변(邊)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열매라기보다는 나무 그 자체를 표기하기 위한 글자인 것이다. 즉 호도(胡桃)에서는 도(桃) 자에 나무를 뜻하는 목(木)이 이미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에 와서 열매와 나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나무를 의미할 때는 거의 철저하게 끝에 --나무라는 접미사를 붙이려고 애쓴다.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열매 뒤에 –열매라는 접미사를 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매 자체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서 그런지 원래 나무를 지칭하기 위하여 만든 글자가 이제는 열매가 차지하고 나무는 끝에 접미사 즉 혹을 달게 된 것이다. 이런 습관이 우리나라에서 비롯되어 점차 일본과 중국으로 전파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호도(胡桃)에서는 아직 우리나라 외에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에서는 호도수(胡桃樹)나 호도목(胡桃木)이라는 말보다는 열매에다가 접미사를 붙이는 호도과(胡桃果)나 호도실(胡桃の実)이라는 단어가 더 흔하다. 그대신 우리나라에서는 호두열매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호두는 원래 한자 호도(胡桃)에서 온 말이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음운변화를 일으켜 호두로 변했다. 이는 자도(紫桃)가 자두가 되고 앵도(櫻桃)가 앵두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모두 두로 변한 것을 표준어로 삼는다. 그래서 식물학계에서도 호도(胡桃)는 호도나무가 아닌 호두나무를 정명으로 하고 자도(紫桃)는 자도나무가 아닌 자두나무를 정명으로 삼는다. 하지만 앵도(櫻桃)는 아직도 앵도나무라고 등록하여 표준말에 어긋나게 쓰고 있다.

 

호두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호두는 워낙 오래 전부터 열매를 먹기 위하여 인류가 널리 재배하던 수종이므로 그 원산지가 명확하지 않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또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좀 더 넓게 서쪽으로 페르시아를 지나 튀르키예까지 동으로는 중국 신강성 즉 서역까지를 원산지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기원전 300년대 인물인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에서 귀국하면서 가져왔다고 Persian walnut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walnut라는 영어 자체가 외국 즉 foreign을 뜻하는 wealh와 nut의 합성어라고 한다. 왜냐하면 영국 입장에서는 호두가 로마 즉 이탈리아를 거쳐서 그 당시 Gaul로 불리던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을 통하여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서역(西域)에서 온 복숭아를 닮았다고 호도(胡桃)라는 이름을 붙였다. 胡(호)는 중국에서 고대 서역과 북변(北邊)에 살던 소수민족들을 일컫는 말이다. 나중에 중국 영토에 포함된 신강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전체를 서역이라고 했다. 따라서 정확하게 어디서 도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중국 신강(新疆)이 파키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중국도 호두의 원산지라고 주장할만한 근거가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호두가 중국 원산으로 오래 전에 중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서방에서는 중국 원산지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호도(胡桃)의 호(胡)를 서역이 아닌 이상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우선 호(胡)를 단단하다는 뜻으로 풀이하여 단단한 복숭아라는 뜻으로 호도(胡桃)라고 엉뚱하게 설명하는 주장이 있다. 또 다른 설은 녹색 껍질 속의 단단한 핵(核)을 과일로 식용하므로 핵도(核桃)라고 하다가 신강어로 核(핵)과 발음이 같은 胡(호)로 변하여 胡桃(호도)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글쎄 후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명대 본초학자인 이시진(李时珍)이 본초강목(本草纲目)에서 언급한 내용이라서 웬만하면 긍정적으로 따르려고 해도 이것만은 수긍하기 어렵다. 하지만 원산지 중 하나이든 아니든 중국이 전세계 호두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어 압도적인 세계 최대 호두 생산국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녹색이 호두나무의 자생지이고 자색이 분포지인데 여기서는 중국은 자생지에 포함하지 않았다.
인력으로 수확하는 중국과 기계로 작업하는 미국 캘리포나아 - 하지만 중국의 생산량이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고귀한 뜻을 가진 학명

호두의 학명 Juglans regia L.는 린네가 식물분류학을 창설하면서 직접 명명한 학명이다. 린네가 1753년 그의 저서 식물의 종에서 엄청난 숫자인 약 5,000종의 식물들에게 학명이라는 새로운 2명법 체계의 이름을 붙였지만 대부분 기존에 유럽에서 널리 불리던 이름으로 붙였다. 하지만 이 속명은 기존 이름을 제쳐두고 그가 특별히 만들어 붙였다는 것이 후문이다. 종전에 있던 이름을 사용하였다면 아마 속명이 Juglans가 아닌 Nut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로마 신화의 신들의 왕인 주피터의 Ju에다가 견과 즉 nut라는 뜻의 라틴어 glans를 합하여 만든 신조어인 것이다. 린네 또는 그 당시 유럽인들이 호두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특히 전세계에 호두나무속 21개 수종 중에서 식용으로 가장 적합한 수종인 이 호두나무에는 국왕 또는 왕족을 뜻하는 영어 royal에 상응하는 라틴어 regia를 종소명으로 썼다. 그렇게 하여 하늘의 왕을 속명으로 지상의 왕을 종소명으로 한 학명이 탄생한 것이다. Juglans regia! 세상에 이보다 더 고귀한 학명이 있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 이 호두나무는 북위 30~50°에서 남위 30~40°까지 그러니까 극한지역을 제외한 지구 전 지역에서 재배하고 있어 그만큼 전인류에게 사랑을 받는 인기 높은 소중한 유실수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게 바로 신들의 왕과 지상의 왕들이 먹는 과일 호두라는 말이다.

 

 

 

 

중국의 호도(胡桃)

중국에서는 한나라 시대 실크로드를 개척한 탐험가인 장건(张骞. 164~114 BC.)이 서역에서 돌아올 때 호도를 가져왔으며 한(漢, 202 BC~220 AD)나라 때 편찬된 서경잡기(西京杂记)에 汉武帝修建的“上林苑”中就有“金城桃、胡桃,出西域,甘美可食.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무제시절 건립한 황실 정원인 상림원에 금성도와 호도가 있는데 맛이 좋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서진시대 문학자인 장화(张华, 232~300)가 쓴 박물지에 호도에 대하여 汉时张骞使西域,始得种还,植于秦中,渐及东土。故名之.”라고 ‘한나라 때 장건이 서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진나라에 심어 점차 동쪽으로 퍼졌기에 호도라 한다.’라고 장건이 가져왔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중국 사료에 의하면 서기 319년 진(晋)나라 대장 석륵이 중원을 점령하고 후조(後趙)를 건립하였는데 그가 호(胡) 자를 싫어하여 호도(胡桃)가 핵도(核桃)로 바뀌었다고 한다. 胡(호)는 서역 오랑캐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후세 이시진이 설명한 것과는 다른 뉘앙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 신강남부 파초현(巴楚县) 유적지에서 1,500년 된 탄화 호두 껍질이 발견되어 중국의 오랜 재배역사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꽃이 아름다운 다른 과일나무들과는 달리 호도에 대한 중국 문인들의 예찬 시는 많지 않다. 다만 민간에서 호도를 개암(榛子, 헤이즐넛)과 캐슈너트(腰果) 그리고 살구씨(杏仁) 또는 아몬드(扁桃)와 더불어 세계4대견과라 칭한다. 특히 호도는 다양한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두루 건강에 좋다고 만세자(万岁子) 또는 장수과(长寿果)로도 부른다.

 

또한 중국에서는 호두를 손에 쥐고 굴리면 혈액순환이 왕성해져 건강장수에 크게 도움된다고 다음과 같은 민간 속설이 있다. 核桃不离手(핵도불이수) 能活八十九(능활팔십구) 超过乾隆爷(초과건륭야) 阎王叫不走(염왕규부주) 즉 ‘호두를 늘 손에 쥐고 있으면 능히 89세까지 살 수 있고 건륭황제를 넘어서면 염라대왕이 불러도 못 간다.’라는 뜻이다. 건륭황제는 호두굴리기 즉 유수핵도(揉手核桃)를 매우 즐긴 황제로 무려 89세까지 장수하였기에 이런 민요가 등장한 것이다. 그 당시 문인들은 사아(四雅)라면서 아름다운 문양의 호도(胡桃)와 예쁜 새장인 조롱(鳥籠) 그리고 부채(扇子) 및 호로(葫芦) 즉 작은 조롱박 또는 그 유형의 술병 등을 애장품으로 수집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호두는 손에 쥐고 굴리면 건강에 좋다고 이런 풍속이 일찍이 한나라와 수나라시절에 개발되어 당송시절에 유행하였고 명청시대에 와서 극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문인들이 완구로 사용하는 호도라고 문완핵도(文玩核桃)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특히 장수한 건륭황제는 이를 무척 즐겨 다음과 같은 시까지 남겼다. “掌上旋日月(장상선일월) 时光欲倒流(시광욕도류) 周身气血涌(주신기혈용) 何年是白头(하년시백두)?” 풀이하자면 "손에 해와 달을 돌리면 시간이 거꾸로 간다. 온몸에 혈기가 넘쳐흐르는데 언제 백발이 되겠는가?” 즉 그 당시 호두는 건강에도 좋고 애장품으로 소장가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 풍속이 우리나라도 전해져 과거에는 우리나라 노인들이 실제로 호두 두 알을 손에 잡고서 굴리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잘 생긴 호두는 애장품으로 또는 손바닥 건강 보조기구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의 호두나무

우리나라에서는 호두가 도입되기 이전에 이미 자생종 가래나무가 있었다. 이 가래를 추자(楸子)로 알고 그렇게 불렀기에 호두가 도입되자 당나라 추자라는 의미에서 당추자(唐楸子)라고 불렀다. 그 기록이 고려 고종 때인 1216∼1230년 사이로 추정되는 시기에 한림의 여러 유학자들이 지은 경기체가인 한림별곡의 唐唐唐(당당당) 唐楸子(당추자) 皂莢木云云(조협목운운)이라는 대목에 당추자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이건 누가 봐도 중국에서 본 호두나무가 아니라 국내서 자라는 호두나무를 두고서 노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후 고려말 대유학자인 목은 이색(李穑, 1328~1396)의 문집인 목은집(牧隱集)에서는 호도(胡桃)가 나오지만 이건 원나라에서 유학하고 벼슬까지 한 목은선생인지라 아무래도 중국에서 본 호도로 판단된다. 1349년 원나라시절 작시한 것으로 보이는 敬僮索胡桃(경동색호도)라는 제목의 시와 서천(西天) 제납박타존자(提納薄陁尊者)의 부도명(浮屠銘)이라는 문장에 大理國(대리국) 吾却衆味(오각중미) 但食胡桃九枚度日(단식호도구매도일)이라고 즉 ‘대리국(大理國)에서는 내가 모든 음식을 물리치고 호두[胡桃] 알 아홉 개만 먹으면서 하루를 보냈다.’라는 내용이다. 둘 다 배경이 고려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천안시에 있는 광덕사라는 절에 가면 수령 약 400년의 천연기념물 호두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간 무신 류청신(柳淸臣)이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나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호두나무의 수명은 대개 100~200년으로 400년이라면 최대치이다. 글쎄 한림별곡에서는 이미 그 이전에 당추자라고 노래하고 있으므로 그 당시 류청신선생이 광덕사에 호두나무를 심었다는 것이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만 고려 최초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지금의 광덕사 나무는 그 후손이겠지만 말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에 호두가 당나라와 교류가 빈번하였던 신라시대에 도입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여하튼 그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초기에는 당추자(唐楸子)와 호도(胡桃)가 함께 보이다가 점차 당추자(唐楸子)는 사라지고 호도(胡桃)로만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와서 호도가 호두로 변하여 오늘날의 표준말이 된 것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광덕사 호두나무 - 천안신문

 

 

 

일본 학자 모리에 의하여 1921년 발간된 조선식물명휘에는 호도나무라며 학명을 Juglans regia var. sinensis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그 후 1937년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국명은 그대로 호도나무이지만 학명은 Juglans sinensis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그 이후는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모르지만 2007년 당시 국표식에는 Juglans regia var. orientis (Dode) Kitam.라고 일본학자가 명명한 비합법명으로 등재되어 있었으나 국명은 호두나무로 변했다. 최종적으로 지금 현재는 호두나무에 린네가 명명한 Juglans regia L.로 되어 있어 그동안 수시로 학명이 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현재 호두나무를 표기하는 학명은 정명 외에 이명으로 편입된 학명이 무려 50개가 넘을 정도로 무수한 학명들이 통합된 것이다. 따라서 같은 호두나무라고 하더라도 그 특성 즉 잎 모양이나 열매의 모양 또는 껍질 두께나 나무의 크기 등이 다르며 내한성 또한 다른 매우 다양한 종류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의 호도

일본에서도 가래나무속 몇 개 수종이 자생하지만 이 호두나무는 자생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조선을 거쳐서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胡桃를 구루미라고 읽는다. 하지만 왜 구루미(グルミ)라고 발음하는지에 대한 정설은 없다. 다만 여러 설 중에 일찍이 중국 오(吳)나라에서 건너왔기에 오실(吳実)이라고 한 것이 구루미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 중기인 928년 편찬된 법령집인 연희식(延喜式)에도 오도(吳桃)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였던 마키노 토미타로(牧野 富太郎, 1862~1957)가 1953년 발간한 식물일일일제(植物一日一題)라는 제목의 수필집에서 쿠루미의 어원은 오과(吳果)이며 오(吳)를 조선어로 쿠루라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글쎄 이게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하다. 단순한 착오인지 아니면 뭔가 우리가 모르는 옛날 이름이 있었는지 말이다. 혹시 누가 그 내막을 알지도 모르므로 일본어로 된 그 원문 일부를 소개한다. クルミの語原は呉果クルミであって、呉は朝鮮語でクルというといわれ、それでクルミになるのである. 일본에서는 호두를 이르는 말이 많다. 우선 카시구루미(カシグルミ)라고 하고 한자로는 과자호도(菓子胡桃)라 쓴다. 과자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천안 명물 호두과자와 같은 것은 일본에는 없다. 그 다음 가래와는 달리 껍질이 상대적으로 연하여 손으로도 깨트릴 수 있다고 테우치구루미 (テウチグルミ, 手打胡桃)라고도 하는데 이는 박피호도(薄皮胡桃)와 맥을 같이 한다. 바로  조선식물명휘와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이 이름이 일본명으로 기재되어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나가노현에 있는 주요 생산지의 이름을 따라서 시나노구루미(シナノグルミ, 信濃胡桃)라고도 한다. 품종이 좋은 이 지방 수종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신농호두라는 이름으로 한 때 농가에 보급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호두를 우리나라에서 건너 갔다고  조선호도(チョウセングルミ, 朝鮮胡桃)라고도 부른다.

 

호두나무의 교잡종설

우리나라 국립수목원에서 관리하는 식물도감인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의 호두나무 편을 보면 호두나무는 박피나무(Juglans nigra var. orientis Kitamura)와 가래나무(Juglans mandshurica Max.)의 교잡종이라고 엉뚱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뭔지 지금에 와서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박피나무라니 이런 이름을 가진 수종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박피핵도(薄皮核桃)는 중국에서 호두 겉껍질이 얇은 품종을 이르는 말로서 주로 신강성이나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호두 품종이다. 껍질이 종이처럼 얇다고 지피핵도(纸皮核桃)라고도 불리는 이 품종을 국내에 도입하여 보급하면서 박피호두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에는 박피(薄皮)에다가 왜성(矮性)이며 조기에 결실하는 조생(早生) 품종도 개발되어 있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8518核桃(핵도)라고 한다. 1985년에 산동성 제남(济南)시에서 선종한 18호 품종이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보급한 이 품종도 국내에 도입되어 조실성 박피호두라는 이름으로 보급되고 있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박피나무가 그 박피호두를 이르는 말이라면 학명을 Juglans regia로 표기해야 옳다.

 

국립수목원 도감에 있는 맨 아래 줄 내용이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호두(좌)와 박피호두(우)의 비교

 

 

 

그런데 위 일본학자가 명명하였다는 북미 원산 흑호두나무의 변종이라는 학명은 도대체 뭐라는 말인가? 이런 학명 즉 Juglans nigra var. orientis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북미 원산 흑호두나무 즉 Juglans nigra에는 orientis라는 변종이 없으며 북아메리카 외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건 아무래도 학명 Juglans regia var. orientis (Dode) Kitam.의 오류인 것으로 판단된다. 한때 우리나라 호두나무를 이 학명으로 표기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국내서 호두나무를 표기하였던 학명 Juglans sinensis가 Juglans x sinensis로도 표기되면서 페르시아호두(현 호두나무) 즉 Juglans regia와 가래나무 즉 Juglans mandshurica의 교잡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토종 가래나무와 오래 전에 중국에서 도입된 호두나무 사이에 자연교잡이 발생하여 교잡종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즉 국내는 호두나무와 가래나무 그리고 둘 사이의 교잡종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언급한 국생정 문제의 문구는 일단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형식적으로라도 성립이 된다. 한국호두(Juglans regia var. orientalis (Dode) Kitam.)는 박피호두(Juglans regia L.)와 가래나무(Juglans mandshurica Max.)의 교잡종이다. 물론 일본 식물학자인 기타무라 시로(北村四郎, 1906~2002)가 명명하였다는 학명은 출판 여부가 의심되는 인정받지 못하는 학명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호두나무 즉 Juglans regia가 미국계 흑호두나무 즉 Juglans nigra와 아시아계 가래나무 즉 Juglans mandshurica와의 교잡종이라는 설이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최근인 2017년 중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득한 먼 옛날 실제로 두 종간의 교잡에 의하여 탄생한 것으로 규명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미에 자생하는 흑호두나무가 어떻게 멀리 떨어진 극동아시아에서 자생하는 가래나무와의 자연교잡이 가능하였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현재는 둘 다 유럽에서는 멸종된 상태이지만 아득한 옛날인 신생대 제3기 마지막 시기인 선신세(鮮新世) 즉 345만년 전 유럽에서 교잡이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화석이 증명한다는 말이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그 시대의 일까지도 규명이 가능하다니 놀랍기는 하지만 이렇게 파고들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식물이 몇 종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결국 이 교잡설은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들으면 될 듯하다.

 

호두나무와 가래나무의 차이점

가래나무와 호두나무는 다른 점이 매우 많다. 우선 열매가 1~3개씩 달리는 호두나무와는 달리 가래나무는 5~7개씩 많이 달린다. 그리고 아래로 축 처지는 수꽃차례의 길이가 호두나무는 5~10cm에 불과하지만 가래나무는 9~20cm에 달하며 반면에 수술은 호두나무가 6~30개로 가래나무의 수술 12~14개보다 더 많다. 같은 기수 우상복엽이지만 호두나무의 잎은 25~30cm 길이에 소엽이 5~9매이지만 가래나무는 잎은 최대 80cm로 매우 길며 소엽편도 15~23매에 달한다. 그리고 호두나무 잎은 가장자리에 거치가 없지만 가래나무는 세거치가 있다는 점도 다르다. 호두나무는 가지와 잎 앞면 그리고 열매에 털이 없지만 가래나무는 어린 가지와 잎 앞면 그리고 열매에 단유모가 있어 전반적으로 털이 많은 편이다. 동아의 색상도 가래나무는 황갈색이지만 호두나무는 흑색으로 다르며 암술머리는 가래나무는 선홍색으로 눈에 확 띄지만 호두나무는 옅은 녹색이라서 뚜렷하게 구분된다. 그리고 실생 묘목의 경우 호두는 8~10년이면 결실하지만 가래나무의 경우는 거의 20년이 걸려 훨씬 길다고 하며 무엇보다도 호두는 내한성이 약하여 우리나라 중부 이북에서는 결실하기 어렵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점이 된다. 따라서 중부지방에서는 호두나무를 재배하려면 내한성이 강한 품종들을 선별하여 심어야 한다는 말이다. 호두나무는 습기가 적고 연평균기온이 12도 이상인 비옥한 토양 지역이 적합한데 중부지방에서는 서울과 인천 정도가 그 기후 조건을 겨우 충족시키고 나머지 경기도 지역은 거의 재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하나의 꽃차례에 열매가 여럿 달린 가래나무(좌)와 1~3개씩 달리는 호두나무(우)
소엽이 최대 23장인 가래나무(좌)와 5~9장인 호두나무
12~14개인 가래나무(좌) 수술과 최대 30개인 호두나무 수술
최대 20cm인 가래나무(좌) 웅화서 최대 10cm인 호두나무(우) 웅화서
새빨간 가래나무(우) 암술머리와 연녹색인 호두나무(우) 암술대
황갈색인 가래나무(좌) 동아와 흑색인 호두나무(우) 동아
엽흔 가래나무(좌) 호두나무(우)
열매 비교 가래(좌) 호두(우)

 

 

 

 

 

등록명 : 호두나무

학   명 : Juglans regia L.

이   명 : Juglans regia var. sinensis

이   명 : Juglans sinensis

이   명 : Juglans regia var. orientis (Dode) Kitam.

분   류 : 가래나무과 가래나무속 낙엽 교목

원산지 : 서아시아에서 히말라야까지

중국명 : 호도(胡桃) 핵도(核桃)

일본명 : 카시구루미(菓子胡桃) 테우치구루미(手打胡桃)

영어명 : common walnut, Persian walnut

수   고 : 20~25m

줄   기 : 왜소한 편, 수관 광활

수   피 : 유시회록색 노시회백색 종간천렬

소   지 : 무모 광택 순상선체착생 회록색 후 대갈색

엽   편 : 기수우상복엽 길이 25~30cm, 엽병과 엽축 유시 극단 선모 혹 선체

소엽편 : 통상(3)5~9매, 타원상란형 장타원형, 정단둔원 급첨 단점첨 기부왜사 근원형

잎크기 : 소엽편 6~15 x 3~6cm

잎거치 : 전연 혹 유시상자 희소 세거치

잎색상 : 상면심록색 무모 하면담록색

잎면맥 : 측맥 11~15대 액내단유모 족생

잎자루 : 측생소엽 극단 혹 무병, 하단자 교소, 정생소엽병 3~6cm

웅화서 : 유제화서 하수 5~10cm 최대 15cm, 포편 소포편 화피편 선모 풍매화

수   술 : 6~30매 화약 황색 무모

자화서 : 수상화서 통상 1~3(4)송이 총포편 단선모 주두 담록색

과   서 : 단 처짐 1~3과

열   매 : 근구형 지름 4~6cm 무모

과   핵 : 초추곡, 2조종릉, 정단단첨두 격막교박 내리무공극 내과피벽내 불규칙공극 혹 무공극 근추곡

개화기 : 5월

결실기 : 10월

내한성 : 영하 23도

 

호두나무의 묘목인데 어린 잎에서는 톱니가 있다.
호두나무
호두나무 잎 기부가 비대칭이다.
호두나무 웅화서 - 풍매화이다.
호두나무 자화서 수정 전후 모습
호두
호두나무 고목 수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