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누가 뭐래도 모란이다. 한 때 매화와 우열을 가린 적이 있었지만 매화 애호가인 손문이나 모택동의 사후에는 점차 모란이 우세를 점하다가 최근인 2019년 중국화훼협회에서 전국 36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압도적인 79.7%가 중국의 국화로 모란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 해 국화로 확정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반대파들의 주장이 강하여 끝내 양회를 통과하지 못하여 불발되었다. 그래서 중국에는 현재 국화가 없다. 참고로 모든 나라가 국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무궁화도 일본의 사쿠라는 물론 국화(菊花)도 공식적인 국화는 아니다. 다만 대통령실 문양으로 무궁화와 봉황을 사용할 뿐이다.
중국인들은 모란 꽃이 色泽艳丽(색택염려), 玉笑珠香(옥소주향), 风流潇洒(풍류소쇄), 富丽堂皇(부려당황), 雍荣华贵(옹영화귀)하다고 꽃이 아름답고 꽃망울이 구슬같고 향기가 뛰어나며 부귀 영화를 가져오는 귀한 꽃이라고 온갖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여태 중국 국화로 지정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줄기가 불상정발(不上挺拔) 즉 굳세고도 우뚝 서는 힘찬 기운이 없이 나약한 데다가 주로 한랭한 북방지역에서 많이 재배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 목단은 원래 대부분이 초본인 작약속으로 분류되는 넓은 의미의 작약의 일종인데 특별히 목본이기 때문에 별도로 불리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작약이나 모란이나 구분 없이 paeony로 통한다. 모란의 학명 Paeonia × suffruticosa의 종소명 suffruticosa도 관목도 아닌 아관목이라는 뜻이다. 아관목이란 관목과 초본의 중간쯤의 형태를 취하는 목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병약한 중국인들 즉 아편으로 찌든 과거가 연상되기 때문에 반대파들이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 강도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눈과 추위를 무릅쓰고 이른 봄에 꽃을 피워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경쟁 수종인 매화와는 그 이미지가 정반대인 것이다.
우리 이름 모란은 중국 이름 牡丹에서 온 것인데 牡(모)는 암수를 지칭하는 牡牝(모빈) 중 수컷을 뜻하며 자웅(雌雄)의 웅(雄)과 같은 의미이다. 모란이 종자번식도 가능하지만 뿌리에서 싹이 돋아 무성 생식으로 주로 번식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고 꽃의 색상이 붉기 때문에 붉을 단(丹) 자를 합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속음화(俗音化) 또는 활음조(滑音調) 현상으로 가끔 ㄷ이 ㄹ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어 모단이 모란으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거란(契丹)의 경우도 글자는 원래 글단인데 거란으로 발음한다. 이는 한글이 반포된 직후인 1448년 세종 때 발행된 동국정운(東國正韻)에 이미 기록하고 있는 오랜 습관이다. 그래서 한자로는 모단(牡丹)으로 쓰고 읽기는 모란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게 바로 목단(牧丹)이다. 여기서는 활음조 현상이 적용되지 않아서 그냥 목단이라고 발음하는데 이 목(牧)은 동물을 치다 또는 기르다라는 뜻이다. 즉 목장(牧場)이나 목동(牧童)과 같은 경우에 쓰인다. 이 목단(牧丹)은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스님이 모단(牡丹)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비슷한 모양의 한자어 목단(牧丹)으로 잘 못 적어서 발생한 오류이다. 그러므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목단(牧丹)은 통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와전(訛傳)된 용어인 것이다. 하지만 목단은 글자 그대로 발음되기 때문에 활음조 현상으로 발음이 달라지는 모란(牡丹)보다 더 정확한 용어인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게 만들어 오히려 더 널리 사용해 왔다. 그래서 이미 굳어져 둘 다 표준어로 인정은 하지만 목단은 처음부터 오기(誤記)에서 출발한 것인만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리고 현재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도 모란만 정명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한자 牡丹(모단)은 반드시 모란으로 읽어야 되고 牧丹(목단)은 반드시 목단으로 읽어야 옳다. 둘을 뒤바꿔 읽으면 틀린 것이다.
워낙 오랫동안 중국인들은 모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수많은 명사들이 이름을 남겼다. 모란 사랑이 지극한 사람으로서는 수나라 양제(煬帝)와 당나라 무측천(武则天)이 있으며 양귀비(楊貴妃)가 있다. 그리고 시인으로는 당나라 유우석(刘禹锡, 772~842))과 송나라 구양수(欧阳修, 1007~1072) 그리고 청나라 포송령(蒲松龄) 등이 있고 이미 당나라 시절 많은 품종을 개발한 유명한 재배가인 송단부(宋单父)가 있다. 그리고 근자에 들어와서도 청나라 말기 서태후라 불리는 자희태후(慈禧太后)와 모택동의 모란 사랑도 누구 못지 않았다. 그 외에도 웬만한 시인들은 모란을 대상으로 수많은 시를 남겼는데 이런 한시를 대상으로 공부한 우리나라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자연히 모란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웬만한 기와집 뜰에 가면 당연히 모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워낙 아름다운 꽃나무들이 많이 보급되어서 그런지 모란 사랑이 예전만은 못한 것 같지만 아직도 여전히 사랑을 많이 받는 정원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번에는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식물을 대상으로 수많은 시를 남긴 당나라 대시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牡丹(모란)이라는 긴 제목의 시 중에서 앞 일부만 소개한다. 그는 여기서 모란을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西施)에 비유하며 꽃 중에서 연꽃을 뛰어 넘어 단연 으뜸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두견화를 서시에 비교하기도 했으며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서시를 연꽃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미인 중에서는 서시가 으뜸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꽃 중에서는 어느 꽃이 최고라고 말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말이다. 시선 이백(李白, 701~762)은 당현종과 양귀비 면전에서 모란을 양귀비에 비유하여 그 아름다움을 예찬한 청평조(清平调)라는 시를 쓰면서 한나라 미녀 황후 조비연(趙飛燕)에 비유하였다가 양귀비를 낮은 급 미녀에 비유하여 모독하였다는 환관의 무고로 쫓겨난 사례가 있는데 백거이는 서시에 비유하였으므로 설혹 당현종 면전에서 시를 썼더라도 파직까지 당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여기서 西子(서자)는 서시를 菡萏(함담)은 연꽃 봉오리를 말하고 琅玕(랑간)은 중국의 이름난 경옥의 하나를 말한다.
牡丹(모란) - 白居易(백거이) 중 일부
绝代祇西子(절대지서자)
众芳惟牡丹(중방유모란)。
月中虚有桂(월중허유계)
天上漫誇兰(천상만과란)。
夜濯金波满(야탁금파만)
朝倾玉露残(조경옥로잔)。
性应轻菡萏(성응경함담)
根本是琅玕(근본시랑간)。
夺目霞千片(탈목하천편)
凌风绮一端(능풍기일단)。
稍宜经宿雨(초의경숙우)
偏觉耐春寒(편각대춘한)。
见说开元岁(견설개원세)
初令植御栏(초령식어란)。
贵妃娇欲比(귀비교욕비)
侍女妒羞看(시녀투수간)。
절세 미인은 오직 서시이고
꽃 중에 오직 모란이 으뜸이다.
달나라에는 계수나무만 있고
천상에는 난초가 가득하다.
밤에 가득한 달빛으로 목욕하고
아침에 옥 같은 이슬 구르는구나
본시 연꽃을 가볍게 뛰어 넘고
근본이 원래 이름난 옥이로세
노을 같은 수많은 꽃잎 눈부시고
바람에 휘날리는 한 폭의 비단
간밤의 비에도 어렵사리 견디고
꽃샘 추위에도 꿋꿋하게 버티도다
듣자니 개원성세가 된 이후에
황실 정원에 처음 심으라 명하여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비교되니
시녀들은 부끄러워 질투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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