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시(詩)/漢詩(한시)

戏题木兰花(희제목란화) - 白居易(백거이), 자목련 백목련

낙은재 2025. 4. 20. 18:39

자목련은 키가 작은 관목이다. Magnolia liliiflora
백목련은 키가 매우 큰 교목이다. Magnolia denudata

 
 
 
매년 봄이 되면 우리 주변에 수많은 종류의 목련이 꽃을 피우지만 우리나라는 뒤늦게 제주도에서 발견된 토종 목련과 초령목 그리고 함박꽃나무 외에는 모두 해외에서 도입된 외래종들이다. 그 중에서 아주 먼 옛날에 도입되어 민가에서 재배하던 종이 바로 중국에서 도입된 백목련과 자목련인데 초창기에는 백목련과 자목련을 구분 없이 목란(木蘭) 또는 신이화(辛夷花) 목필화(木筆花) 북향화(北向花) 향불화(向佛花) 붓꽃 등으로 다양하게 불러 왔다. 백목련과 자목련을 구분없이 부른 것은 우리뿐만은 아니다. 원산지 중국에서도 우리와 비슷하였다. 중국에서는 목련 재배역사가 매우 길어 BC 221년부터 AD 220년까지인 진한(秦漢)시대 중간쯤에 저술된 신농본초경(神农本草经)에서는 이미 임란(林兰)이라고 하였고 약재로 쓰는 꽃망울을 신이(辛夷)라고 하였다. 한나라 말기에 저작된 명의별록(名医别录)에서는 두란(杜兰)이라고도 하다가 지금 현재도 사용하는 목란(木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출전은 남조(南朝, 420~589)시대 조충지(祖冲之)가 저술한 술이기(述异记)이다. 꽃 향기가 난초향을 닮았기 때문인데 기존의 임란(林兰)이나 두란(杜兰)과 거의 같은 맥락의 이름이다. 그 이후 오랫동안 목란(木兰)으로 불려왔기에 우리나라 고문헌에도 거의 목란(木蘭)으로 나오는 것이다. 중국에서 초기 목란을 대상으로 읊은 시로는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52세이던 823년에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희제목란화(戏题木兰花)라는 칠언절구(七言绝句)가 유명하다. 여기서 紫房(자방) 즉 자색 화방과 素艳(소염) 즉 백색 화타를 대비한 것으로 봐서 꽃 색상이 외자내백(外紫内白)인 자목련을 남북조시대 전설같은 이야기 남장 여전사 화목란(花木兰)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 분명하다. 여전사 화목란의 이야기는 최근에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뮬란(Mulan)의 주제이기도 하다. 뮬란(Mulan)은 목란(木兰)의 중국 발음 그대로이며 중국 원제는 화목란(花木兰)이다.
 
戏题木兰花(희제목란화) - 白居易(백거이)
 
紫房日照胭脂拆(자방일조연지탁)
素艳风吹腻粉开(소염풍취니분개)。
怪得独饶脂粉态(괴득독요지분태)
木兰曾作女郎来(목란증작여랑래)。
 
햇살 아래 자색 꽃 연지처럼 아름답고
바람 불자 백색 향분 사방에 날린다.
어쩐지 연지와 백분처럼 곱더니만
목란은 원래 여자로 태어났구나.
 
여기서 보면 백거이가 노래한 목란은 백목련이 아니라 학명 Magnolia liliiflora인 자목련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영화 뮬란의 목란도 백목란이 아니라 자목란이다. 연지처럼 붉고 향기가 사방에 날리고 백분처럼 고운 여전사 목란을 자목란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목란을 여랑화(女郎花)라고도 부른다. 그렇다고 목란이 자목련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으로는 백목련을 지칭하지만 자목련도 구분 없이 지칭하고 있었다는 것을 위 시에서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뮬란의 포스터 - 뒤에 보이는 나무가 바로 중국에서 목란이라고 하는 자목련이다.

 
 
 
그런데 이미 술이기(述异记) 이전에 전국시대 초나라 대시인 굴원(屈原, BC 340 ~ BC 278)의 장편 서사시 중에 “朝饮木兰之坠露兮(조음목란지추로혜)” 즉 “아침에는 목란에 맺힌 이슬을 마시고”라는 대목과 “辛夷车兮结桂旗(신이거혜결계기)” 즉 “신이로 만든 수레에 계화로 만든 기를 걸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굴원은 목란과 신이라는 표현을 함께 썼지만 그 당시 목련은 재질이 양호하고 무늬가 좋아서 목재로 많이 이용되어 木兰舟(목란주)라는 용어가 특히 목서를 뜻하는 桂(계)와 함께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삼국유사에서도 蘭橈桂楫(란요계즙)이란 표현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관목인 자목련으로 실제 수레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굴원이 여기서 말한 목란과 신이는 색상 구분 없이 백목련과 자목련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자목련의 역사도 목련과 마찬가지로 2천여 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 명대 왕상진(王象晋, 1561~1653)이 저술한 식물지인 군방보(群芳谱)에서 백목련의 꽃망울이 터져 나올 때 마치 수백 수천 개의 백옥이 가지 끝에 솟아오르는 모습이라서 옥란(玉兰)이라고 부르자 그것을 근거로 백목련은 목란에서 분리되어 정명이 옥란이 되었고 자목련은 그대로 목란이나 신이라고 불리다가 최근에 옥란속으로 분리되면서 자옥란(紫玉兰)이 확고한 중국 정명이 되었다. 참고로 옥(玉)은 투명하거나 다양한 색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흰색으로 통한다. 그래서 자목련을 그냥 옥란(玉兰)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장미과 관목인 옥매(玉梅)는 흰색 꽃이 피고 붉은 색 꽃이 피는 비슷한 종은 홍매(紅梅)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는 백목련 자목련 무당목련 함박꽃나무 그리고 우리 토종 목련 등 여러 종류 목련의 꽃망울을 말려서 같은 약재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신이(辛夷)를 특히 자목련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지어는 옥란과 목란(신이)의 차이점이라는 제목의 글까지 보인다.
 
그러니까 백목련과 자목련이 함께 목란이나 신이로 불리다가 흰 꽃이 피는 백목련이 특별히 옥란(玉蘭)으로 불리면서 자목련은 자옥란(紫玉兰)으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그냥 그대로 목란이나 신이로 계속 불렸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자목란(紫木兰)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 목란(木兰)이라고 해도 지금은 자목련으로 통한다. 거기에다가 백낙천의 戏题木兰花(희제목란화)라는 시의 영향까지 받아서 그런지 일본에서는 목련 즉 モクレン(모쿠렌)이라고 하면 자목련으로 통하고 한자로는 목련(木蓮)이나 목란(木蘭)으로 쓴다. 물론 일본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분명하게 자목련(紫木蓮)이라고 시모쿠렌(シモクレン)이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학명 Magnolia denudata인 백목련(白木蓮)은 절대 그냥 목련이라고 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쿠모쿠렌(ハクモクレン, 白木蓮)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냥 목련이라고 하면 물론 우리 자생종 목련을 지칭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백목련으로 통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우리 자생종 목련 즉 학명 Magnolia kobus는 목련이라고 부르지 않고 고부시(コブシ)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신이(辛夷) 또는 권(拳)이라고 한다. 열매가 주먹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였지만 결론은 어느 식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목련은 동양 3국의 이름이 한결같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헷갈리고 앞으로도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므로 다 잊어버리더라도 학명 하나만은 기억하고 있으면 될 듯하다. 
 
 

우리 자생종 목련 Magnolia kobus
별목련 Magnolia stellata
자주목련 = 스프렝게리목련 Magnolia sprengeri
접시꽃목련 = 백목련 x 자목련 Magnolia x soulange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