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인문학(人文學) 광장/낙은재 세상이야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어원

낙은재 2026. 7. 14. 08:31

 

중국 역대 사대 미녀



1979년 10.26 사태로 갑자기 찾아온 1980년의 정치적인 봄을 우리는 ‘서울의 봄’이라고 말한다. 그 해 3월 공화당 김종필(金種泌, 1926~2018)총재는 당 출입 기자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 고사를 인용하며 본인의 답답한 심경을 피력하여 일약 유명세를 탔다. 실제로 바로 그 해 5.17 신군부에 의한 비상계엄이 확대되어 그의 말대로 봄은 사라지고 정치적인 기나긴 겨울이 오고 말았다. 그 후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 고사성어를 인용하였기에 우리는 처음부터 이 말은 뭔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 심정을 계절에 비유하여 만들어진 고사이겠거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는 않다. 그냥 북방이 너무 추워서 말 그대로 봄이 왔으나 꽃이 없어서 봄 같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고사성어는 한중일 중에서 유독 우리나라에서 널리 회자되는 용어이다. 

이는 당나라 무측천(武則天) 집권시기(690~705)에 사관이던 동방규(東方虬)가 쓴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제목의 시 제3수에 포함된 아래 구절에서 유래한다. 고국에서 흔히 보던 꽃과 풀도 없는 척박한 북방 땅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몸이 점점 야위어 간다는 말이다. 

 

昭君怨(소군원) - 東方虬(동방규)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왔건만 봄 같지가 않구나
저절로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건 
날씬한 허리를 위함이 아니라네.

여기서 소군(昭君)은 서한(西漢)시대 화친을 위하여 북방 흉노에게 시집 간 후궁 왕소군(王昭君, 52 BC ~ 19 BC)을 말한다.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중국에서는 왕소군을 서시와 초선 그리고 양옥환과 더불어 4대 미인으로 꼽는데 가끔 우리나라서 패왕별희(霸王别姬)로 유명한 우희 즉 우미인을 초선 대신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고대 4대 미녀(中国古代四大美女)라고 하면 이들을 말한다.
서시완사어침수(西施浣纱鱼沉水) 
소군출새안락사(昭君出塞雁落沙) 
초선배월치월은(貂蝉拜月致月隐) 
귀비취주수락화(贵妃醉酒羞落花)

서시가 냇가에서 빨래하면 물고기가 미모에 놀라 가라앉고 
소군이 변방 갈 때 기러기가 미모에 놀라 사막에 떨어졌으며 
초선이 달을 쳐다보면 달이 그 미모에 부끄러워 숨어버리고 
귀비가 취기에 정원에 나서면 꽃조차도 부끄러워 떨어진다.

따라서 항우의 여인 우희(虞姬)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리고 각각의 고사에서 유래된 위 내용을 축약하여 이들 미녀들은 침어낙안지용(沉鱼落雁之容)과 폐월수화지모(闭月羞花之貌)를 가졌다고 묘사하며 그 순위도 서시가 으뜸(首), 왕소군이 다음(次)이고 초선이 그다음(再次)이며 양옥환이 마지막(末)이라고 분명하게 서열까지 정리하고 있다. 미모순일 수도 있겠지만 시대순과 일치한다. 

이렇게 과장되게 미모를 칭송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4대 미녀 모두 불행하게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아 어느 누구 하나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은 없다. 그래서 중국 고대 4대 미녀는 결코 외모만을 기준으로 선정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외모를 그렇게 심하게 숭상하지도 않았고 선망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백낙천이 그의 시 산석류기원구(山石榴寄元九)에서 
花中此物是西施(화중차물시서시), 芙蓉芍药皆嫫母(부용작약개모모)라고
두견화를 최고의 미녀 서시에 비유하면서 연꽃과 작약을 깎아내리려고 비유하였다는 중국 고대추녀 중 으뜸이라는 모모(嫫母)는 실제로는 매우 행복한 삶을 누린 여인으로 오히려 존경을 받는다. 그 이유는 그녀는 중화민족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전설 속 삼황오제 중 한 명인 황제(黄帝)의 넷째 부인으로 용모는 떨어졌지만 품성이 현숙하고 성정이 온유하여 황제가 미모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를 개선하고자 일종의 시범케이스로 맞이한 부인이기 때문이다. 

 

얼굴은 추하지만 존경 받는 황후 모모



황제(黄帝)는 
중미모불중덕자(重美貌不重德者) 
비진미야(非真美也) 
중덕경색자(重德轻色者) 
재시진현(才是真贤)이라고 
미모만 중시하고 덕을 중시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모르고 
미모를 가볍게 여기고 덕을 중시하는 자만이 
진정한 현자이다.라면서 백성들을 계몽하였다는 기록이 사기에 전한다. 

그리고 그 모모는 나중에 황제의 정비가 죽자 내조를 잘하여 황제가 염제(炎帝)를 물리치고 치우(蚩尤)를 죽여 화하(华夏)를 통일하는데 일조를 하였으며 누에에서 뽑은 명주실로 옷을 만드는 법을 발견하여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청동거울도 발명하였다고 한다.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쓰는 요즘 세태에도 귀감이 되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