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를 많이 하는 대표적인 중국 시인으로는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가 있었다면 반대로 그냥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내려가도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자연스러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서는 당나라 천재시인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있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시인 이 두 사람을 비교하면 어릴 적에는 단연 이태백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학창시절에도 빈둥빈둥 이것저것 다 하면서 놀다가 시험만 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학생이 동경의 대상이었지 책이 새카맣도록 줄을 그어가면서 밤을 새워 공부하지만 성적은 결코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던 학생을 동경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그 노력파가 인생에서는 성공할 확률이 더 높기때문이다. 글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타고난 재주로만 버티는 사람들은 글쎄 과거와 같이 짧은 인생에서는 통하였을 지는 몰라도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는 도중에 밑천이 다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반면에 꾸준히 성실하게 차근차근 노력하여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기초가 탄탄하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미 우리 조선시대 선비들도 이태백의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두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 것은 분명하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성종 시대인 1481년 두보(杜甫)의 시 2,284수 전부를 한글로 풀이한 두시언해(杜詩諺解)를 국가적 차원에서 발간하여 시의 교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두보는 어구(語句)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결코 그만두지 않겠다(語不驚人死不休)는 창작 철학으로 글자 하나하나 정교하게 다듬어 후세인들이 글자 하나를 빼거나 바꿀 수가 없는 즉 척촌불역(尺寸不易)의 경지에 이르러 완벽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두보는 스스로 자기가 시성(詩聖)이 아니라 시의 포로가 되었다고 시수(詩囚)라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타고난 천재성보다는 늘 갈고 닦는 즉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자세로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라는 말이다. 공자께서도 生而知之者(생이지지자) 上也(상야) 学而知之者(학이지지자) 次也(차야)라고 말하였지만 본인 스스로 学而知之者(학이지지자)라고 말한 것으로 봐서는 이 세상에는 완벽한 타고난 천재는 없다는 말로 풀이된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모차르트가 바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작곡하는 타고난 천재 작곡가이고 베토벤이 고심참담(苦心慘憺) 노력하는 대표적인 작곡가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모차르트가 이태백급이고 베토벤이 두보급이라고 평가받아야 될 듯하다만 음악의 세계는 조금 다른 건인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기록했고 베토벤은 땅에서 하늘로 닿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라고 평가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두 부류의 작곡가들의 작곡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적 감동은 모두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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