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인문학(人文學) 광장/낙은재 세상이야기

다방(茶房)과 잔업(殘業)의 조선시대 용례

낙은재 2026. 7. 15. 17:20

 

심사정(沈師正, 1707~1769) 송하음다(松下飮茶)도

 
 
서울시 중구 다동(茶洞)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궁중의 차와 다례를 관장하던 '사옹원 다방'이 있어 다방골로 불리던 곳이 변하여 현재의 다동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관청에서 다과(茶果)를 준비하던 관청이라는 다방(茶房) 외에도 차를 파는 가게라는 의미로 쓴 문서의 사례도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동화(東華) 이해응(李海應) 선생이 1803년(순조 3년) 청나라를 다녀온 후 남긴 연행록(燕行錄) 계산기정(薊山紀程)이 바로 그 것이다. 그 당시 청나라에는 다방이 있었던 것이다.
 
鳳城高百雉(봉성고백치)
門遠小於輪(문원소어륜)
草店如宮室(초점여궁실)
茶房總貨珍(다방총화진)

 
봉황성 높이가 백 치나 되는데
문은 멀어 수레바퀴 보다 작다
하찮은 객주집이 궁궐과 같으며
다방의 물건은 모두가 진귀하네
 
그리고 잔업(殘業)이라는 단어는 매우 많이 보이지만 여기서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인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 선생의 문집 성재집(省齋集)에 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重敎自師友禍故以後(중교자사우화고이후)。

引罪共廢(인죄공폐)。

挈家入關東山中(설가입관동산중)。

掩戶養痾(엄호양아)。

苟延時日(구연시일)。

尋數殘業(심수잔업)。

不成次第(불성차제)。


저는 사우들이 화를 당한 이후로

죄를 자책하며 함께 폐기되어

식솔들을 데리고 설악산 산중을 들어가

문을 잠그고 고질병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구차스럽게 세월을 보내면서

마치지 못한 학업을 계속 하고 있지만

두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