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달래과의 학명은 Ericaceae(에리케이시아)인데 이는 유럽에서 자생하는 Erica(에리카)속을 모식속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 3국에서는 에리카속이 자생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 흔한 Rhododendron속을 대표속으로 삼는다. 같은 속인데도 우리는 진달래과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두견화과(杜鹃花科)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철쭉과(躑躅科)라고 각각 속명에 따라서 다르게 부른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Rhododendron속을 두견속이나 철쭉속이라고 불러도 아무런 이질감이 없지만 우리는 이 방대한 속을 진달래속으로 부르기에는 다소 어색한 면이 있다. 우리 진달래속에는 진달래 외에도 철쭉이나 영산홍, 참꽃 그리고 만병초와 차(茶) 및 아잘레아(azalea)라고 부르는 종들도 마구 섞여 있기 때문이다. 모두 목본으로 구성된 진달래속은 진달래과에서 가장 큰 속으로 전세계에 무려 1,100여 종에 이르는 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 등록된 수종은 원종 기준 74종이고 아변종과 원예종을 합하면 320종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을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일관성 있게 xx두견이나 xx철쭉이라고 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무려 7가지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므로 이들을 진달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칭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비록 진달래가 금수강산 어디서나 흔하게 자생하는 꽃이며 특히 민족의 대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 때문에 우리 국민 모두가 매우 친숙하게 느끼는 봄 꽃의 대명사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참꽃이라고 하며 꽃을 따서 먹을 수 있는 특정 수종에 한하는 것이지 진달래속 여러 수종들을 아우르는 용어로서는 쓰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달래라는 이름은 진달래속 320종 중에서 겨우 9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 Rhododendron속을 하나로 대변할 만한 다른 이름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이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국표식에서도 수많은 교잡 원예품종을 등록하면서 일반적으로는 속명을 따라서 진달래 ‘xxx’라고 하여야 하지만 그게 어색하였던지 상록 혁질은 대부분 만병초(萬病草)라고 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아예 아잘레아(Azalea)라는 외래어로 이름을 붙여 그야말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진달래(Rhododendron)속 명칭별 현황
진달래속 |
원 종 |
아변종 |
원예종 |
합 계 |
(자생종) |
만병초 |
46 |
2 |
131 |
179 |
(3) |
철 쭉 |
20 |
5 |
2 |
27 |
(5) |
진달래 |
3 |
5 |
1 |
9 |
(8) |
참 꽃 |
4 |
3 |
0 |
7 |
(7) |
영산홍 |
0 |
0 |
3 |
3 |
(0) |
차 |
0 |
1 |
0 |
1 |
(1) |
아잘레아 |
1 |
0 |
93 |
94 |
(0) |
합 계 |
74 |
16 |
230 |
320 |
(24) |
속명은 린네가 붉은 만병초를 대상으로 명명
그럼 우선 이 속의 학명 Rhododendron에 대하여 알아보자. 린네가 1753년 명명한 이 속명은 장미 같은 붉은 색이라는 뜻의 Rhodo와 나무를 뜻하는 dendron의 합성어로서 결국 rose tree라는 뜻이 되어 결국 장미 같은 붉은색의 꽃이 핀다는 뜻이다. 그 당시 유럽 알프스산맥에서 자생하는 Rhododendron ferrugineum을 모식종으로 삼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고산애기만병초로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때 모식종 외에 3종을 함께 명명하였는데 우리나라 북단과 제주도에서도 자생하는 산진달래 즉 Rhododendron dauricum이 몽고 다우린에서 발견되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산진달래를 제외한 나머지 2종은 모두 우리가 만병초라고 부르는 종들로서 Rhododendron hirsutum 즉 알프스만병초와 Rhododendron maximum 즉 미국만병초인데 이들 4종 모두 비슷한 붉은 색상의 꽃이 핀다. 진달래속에 백색과 황색 꽃이 피는 종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린네가 달리 이름을 붙였을지도 모르는 Rhododendron속은 꽃이 크고 종모양에 끝이 나팔형이며 동아가 인편에 싸여 있으며 상위 씨방에 열매는 삭과(蒴果)이고 수술의 꽃밥에는 부속체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잎의 모양은 다양한데 줄무늬는 없으며 가장자리가 살짝 말리고 거치는 없으며 염색체 수는 13이다.




철쭉(躑躅)
이와 같이 다소 이질감이 있는 수종들이 모여서 Rhododendron속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들을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모두 하나로 통일하여 불렀으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려 7가지의 이름으로 등록하고 부르고 있는데다가 비록 등록명은 아니지만 과거에 많이 불렀던 두견화라는 이름도 있으며 최근에 일부 원예종들을 왜철쭉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있어 이들을 모두 합하면 9개 부류가 된다. 이제 이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과거 우리 민족이 가장 오랫동안 쓰던 이름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철쭉(躑躅)이다. 신라 33대 성덕왕(691~737) 때 견우노인이 헌화가를 부르면서 수로부인에게 바친 꽃이 바로 철쭉(躑躅)이라고 삼국유사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미 그 당시 중국에서 철쭉(躑躅)이라는 용어가 도입되어 사용하였다면 아마 지금의 진달래 산철쭉 연달래 참꽃나무 등을 따지지 않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두루 철쭉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 온 한자어인 척촉(躑躅)이라는 말은 원래 깡총깡총 뛰거나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말하므로 족(足)변이 글자마다 붙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모습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이 관목을 뜻하게 된 이유는 이 나무 전체에 독성이 있어 양(羊)이 꽃이나 잎을 먹고 그 독성의 고통으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죽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양이 발을 동동 구른다고 양척촉(羊踯躅)이라고 하였으며 양이 먹으면 안 되는 식물이라고 양불식초(羊不食草)라고도 하고 양이 이를 먹으면 고통스러워 울부짖는다고 요란스럽다는 뜻의 요양화(闹羊花)라고도 했다. 이런 내용이 중국의 본초학의 고전인 신농본초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식물의 꽃과 잎 그리고 뿌리 등에 있는 독을 잘 다스려 풍습성관절염(风湿性关节炎)이나 타박상 등의 치료제로 썼기 때문이다. 신농본초경은 최소한 기원전에 쓰여진 본초서이므로 중국에서 척촉(躑躅)이라는 식물명이 사용된 것은 2000년이 넘는 역사가 된다. 그래서 이와 비슷한 수종 모두를 척촉(躑躅)이라고 불러오다가 나중에 정원수로 재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학작품에도 등장하게 되는데 최초로 척촉(躑躅)이 등장한 시로는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시 제원18계거(题元十八溪居)에 나오는 이 대목이 있다. “晚叶尚开红踯躅(만엽상개홍척촉), 秋芳初结白芙蓉(추방초결백부용)”. 원래 한자어 躑躅의 우리나라 발음은 척촉이지만 식물을 지칭할 때는 옛날 발음 텩튝이 철쭉으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주저한다거나 깡총깡총하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당연히 척촉으로 읽어야 한다.

신라시대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철쭉이라는 용어는 오늘날까지 쭉 사용되어 온다. 현재 철쭉은 우리가 연달래라고 부르기도 하는 학명 Rhododendron schlippenbachii인 특정 식물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로 진달래속 원종과 아변종 그리고 원예종까지 모두 27개 종의 이름으로 나름대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으나 전체 320종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여 대표성을 가졌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두견화(杜鹃花)
중국에서 진달래속을 이르는 또 다른 이름인 두견화(杜鹃花)가 고려초의 기록에서 등장한다. 서기 980년인 고려 경종 5년 12월에 때아닌 두견화가 피었다는 기록이 ‘景宗五年十二月 杜鵑花開.’라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경종은 고려 5대 왕으로 태조 왕건의 손자이다. 때이른 음력 12월에 꽃이 피니 놀라서 기록한 것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시중(侍中)을 지낸 최승로(崔承老, 927~989)가 쓴 금중잡저시고(禁中雜著詩藁)에 있는 4운 절구 4수가 나중에 편찬된 보한집(補閑集)에 실려 있는데 그 응제시(應製詩)의 제목이 ‘長生殿後百葉杜鵑花’ 즉 ‘장생전 뒤뜰 잎 무성한 두견화’이다. 최승로는 경종 때와 그의 후임인 성종 때도 시중을 지냈기에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후자는 나중인 1254년 경에 고려 후기의 문인인 최자(崔滋, 1188~1260)가 편집한 것이므로 고려사에 실린 기록이 앞선다고 해도 될 듯하다. 중국에서 두견화(杜鹃花)라는 이름의 역사도 철쭉(躑躅) 못지않게 길다. 촉나라 임금 두우가 선위 후 은거하다가 죽어서 새가 되어 고향인 촉을 그리워하면서 밤낮을 울어서 피를 토하여 온산을 붉게 물들인 자규제혈(子规啼血)이라는 고사에서 두견화라는 이름이 유래되고 그 새의 이름은 두견 또는 자규(子規)나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 등으로 불린다는 전설이 있다.
이런 내용은 한나라 양웅(扬雄, BC53~ AD18)이 편찬한 사기 촉왕본기(史记·蜀王本纪) 등에 수록되어 있다. 이 두견화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면서 슬픈 전설까지 내포하고 있어서 후세 시인들이 이래저래 많이 노래를 하였는데 당나라 시인 이태백(李太白, 701~762)은 755년에 쓴 선성견두견화(宣城见杜鹃花)라는 짧은 시에 두견화가 등장한다. “蜀国曾闻子规鸟, 宣城还见杜鹃花。一叫一回肠一断,三春三月忆三巴。” 뒤이어 또 다른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도 815년에 쓴 산석류기원구(山石榴寄元九)라는 제법 긴 시 가운데 두견화에 대한 최상급 찬사가 있다. “花中此物是西施,芙蓉芍药皆嫫母” 풀어서 해석하면 꽃 가운데 두견이야말로 서시(西施)에 비유할 수 있고 연꽃과 작약은 이에 비하면 모모(嫫母)에 불과할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서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인이고 모모는 가장 추한 여인으로 비유되는 인물이다. 바로 이 문구를 활용하여 나중에 우리나라 강희안이 왜철쭉에다가 그대로 적용하여 칭송하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는 철쭉(踯躅)과 두견화(杜鹃花)라는 이름이 등장하였는데 현재 중국 식물계에서는 정명을 두견화(杜鹃花)로 지정하고 Rhododendron속을 두견속이라고 하며 중국에 자생하는 500여 개 수종들을 거의 대부분 xx두견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1987년 상해에서 실시한 약 15만 명이 참가한 국민투표에서 두견화는 당당 6번째로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으로 선정된다.
여하튼 우리 고서에 나오는 두견화(杜鹃花)를 사학자들이나 문학자들은 거의 모두 진달래로 해석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수로부인의 철쭉(躑躅)도 진달래라는 주장도 있다. 글쎄 우리나라가 워낙 진달래가 흔하므로 개연성은 높겠으나 중국의 두견이나 철쭉은 그런 것은 아니다. 앞에 수식어가 없으면 특정 수종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진달래속 전체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응제시란 임금이 제목을 주고 시를 쓰라고 하는 것인데 흔해빠진 진달래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최소한 궁궐 장생전 후원에 심은 꽃나무인데다가 임금이 시를 지으라고 할 정도인 것으로 보면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잎이 무성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는 만병초는 아니더라도 연달래인 철쭉이거나 만첩산철쭉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수로부인이 탐낸 철쭉도 진달래일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 그 흔하디 흔한 진달래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꺾을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진달래는 잎이 나오기 전에 줄기만 쭉 길게 나와서 그 끝에 꽃이 피므로 하나하나 뜯어 보면 특별히 아름다운 가지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철쭉은 곡선으로 자라서 그 수형이 매우 아름다워 오죽하면 철쭉이 자생하지 않는 일본에서조차 ‘쯔쯔지(철쭉속)의 여왕’이라고 칭송을 하겠냐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이 철쭉을 Royal Azalea로 부르면서 그 차체로 완벽하게 아름다워 더 이상 원예종 개발이 필요없는 품종이라고 한다. 지금 현재도 진달래는 특이한 색상의 변종이 아니라면 정원에 심지도 않고 국내 화원에서 팔지도 거의 않는다. 이런 진달래를 과거 왕궁에서 아니면 거의 신격화되어 있는 수로부인이 목매었다고 추정하는 것은 선인들의 수준을 너무 얕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현재 우리나라에는 두견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은 없다. 두견화는 철쭉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하여 조선조 정조시대의 기록에까지 남아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 현재 우리나라 국표식에는 두견화라는 말이 한 마디도 없이 사라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멸종된 식물도 아닌데 우리 조상들이 즐겨 쓰던 이름을 깡그리 지우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셈이다. 정작 걷어내야 할 것은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답습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식물 사랑에 대한 자취와 식물관련 지식은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식물계의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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