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장미과 벗나무속/벚나무아속

1852 벚나무 - 야생 벚나무의 대표종

낙은재 2023. 6. 5. 11:49

일본의 벚나무 고목 - 벚나무 중에서는 수명이 길다.

 

 

벚나무의 정의

벚나무의 정의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눌 수 있다. 넓은 의미의 벚나무는 왕벚나무 산벚나무 잔털벚나무 올벚나무 분홍벚나무 처진벚나무 등 모든 벚나무 종류의 수종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식물분류학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장미과 벚나무속 중에서 벚나무아속으로 분류되는 수종들을 통칭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벚나무속의 학명 Prunus는 원래 자두나무를 의미하므로 벚나무 외에도 자두는 물론 살구 복숭아 매실 이스라지 귀룽나무 앵두 풀또기 등 다양한 수종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까지도 모두 벚나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록된 수종들 중 벚나무아속으로 분류되는 우리 자생종 11종과 원예품종을 포함한 58종을 벚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벚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자생하는 학명 Prunus serrulata f. spontanea로 표기하는 키가 20m까지 자라는 낙엽 교목인 특정 수종을 말한다. 

 

벚나무를 탐구하면서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첫 번째가 우리나라에 정식 명칭이 벚나무인 특정 수종이 오래 전부터 별도로 있었는데도 왜 여태 잘 알려지지 않았냐는 점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매년 봄 여의도 등 벚꽃축제가 개최되는 벚꽃명소에 가서 감탄하는 화려하게 꽃이 피는 나무는 거의 대부분 좁은 의미의 벚나무가 아니라 왕벚나무라는 사실이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벚나무 중 약 20%는 좁은 의미의 벚나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흔히 접하면서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네 번째 놀라운 점은 바로 이 벚나무가 외래종이 아니고 고래로 이 땅에서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 거의 전역에서 자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 의문점은 벚나무가 엄연한 우리 자생종으로서 희귀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의 벚나무와 관련한 문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중일 모두 벚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벚나무 관련 시나 그림이 거의 없는데 왜 유독 일본에서만 벚꽃놀이 문화가 그토록 성행하였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지금부터 차근차근 탐구해 보자.

 

우선 벚나무는 그 열매인 버찌가 달리는 나무이라서 벚나무로 불린다. 하지만 과거 ‘벗’이나 ‘벋’으로 표기되었던 버찌의 어원은 아직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한다. 여하튼 벗나무는 1937년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 학명 Prunus donarium Siebold에 일본명 ヤマザクラ(야마자쿠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맞춤법에 따라서 벗이 벚으로 변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학명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요즘은 쓰지 않는 Prunus donarium이라고 표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학명은 독일 식물학자인 지볼트가 1830년에 겹꽃이 피는 교잡종을 대상으로 명명한 학명으로 같은 시기에 홑꽃이 피는 수종을 대상으로 이름을 붙인 나명(裸名)인 Prunus jamasakura Siebold와 대비되는 학명이기 때문이다. 마치 중국에서 건너온 겹꽃을 대상으로 영국 학자가 명명한 벚나무의 원종인 꽃벚나무의 학명 Prunus serrulata와 일맥상통하는 학명이다. 글쎄 초창기에는 국내서도 겹꽃이 아름답게 피는 교잡종들을 벚나무라고 칭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종소명 donarium은 영어로 sanctuary 즉 신성시 되는 장소를 말한다. 일본의 ヤマザクラ(야마자쿠라)가 주로 사찰이나 신사에 많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붙인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야마자쿠라(山桜)를 넓게는 왜벚나무와 산벚나무 그리고 잔털벚나무 분홍벚나무 등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쓰기도 한다. 여하튼 교잡종임을 명시한 Prunus x donarium이라고도 표기하는 이 애매한 학명을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이 벚나무의 이명으로 처리 하는데 일부 학자들은 왜벚나무 교잡종인 사토그룹으로 통합시키고 있어 흥미롭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벚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특정수종은 처음부터 헷갈렸던 것이다. 즉 초기에는 겹꽃이었다가 나중에 그 겹꽃의 원종으로 추정되었던 현재의 야생 벚나무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학명 Prunus donarium은 위와 같은 겹벚꽃을 대상으로 명명된 학명이다.

 

벚나무 종류의 수종들 중에서 그 대표성을 가진 그냥 벚나무라는 이름을 특정수종에 붙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시점에서 보면 과거 오랫동안 식물 정보를 의존하였던 중국에서도 그리고 그 당시 한반도를 강점 통치하는 일본에서도 이 수종을 그냥 벚나무가 아닌 산벚나무 즉 산앵(山櫻)이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한자로 벚나무를 표현할 마땅한 글자가 제대로 없었던 것이다. 원래 중국에서는 관상용보다는 식용 벚나무를 중시하여 중국 체리로 불리는 학명 Prunus pseudocerasus Lindl.로 표기되는 벚나무 수종을 앵도(櫻桃)라고 처음 불렀다. 그런데 내한성이 다소 약한 이 수종이 국내에 도입되지 않고 비슷한 열매가 달리지만 벚나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한성이 강한 모앵도(毛櫻桃)가 도입되면서 앵도(櫻桃)라고 알려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옥편에 앵(櫻)은 원래 앵두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벚나무는 산앵(山櫻)이나 야앵(野櫻) 또는 흑앵(黑櫻)이라고 표기했지만 앵두와는 많이 다르다고 판단하였던지 일부에서는 산도(山桃)라고 하거나 엉뚱하게 중국에서 자작나무를 뜻하는 樺木(화목)이라고 하거나 중국에서 과거에는 능금나무를 뜻하다가 지금은 자두나무를 뜻하는 柰(내)라고도 표기했다. 자작나무와는 목재의 쓰임새가 비슷하고 능금나무와는 작은 열매가 달리는 것이 유사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게 모두 벚나무의 일종인 중국 앵도(櫻桃)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발생한 혼란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사쿠라 즉 벚나무를 앵(桜)으로 표기하자 앵두의 앵(櫻)과는 다른 별도의 한자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만든 한자 桜(앵)은 櫻(앵)의 약자(略字)일 뿐이다. 중국의 한자 앵(櫻)은 원래부터 벚나무를 칭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글자이지 앵두를 지칭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벚나무를 앵(桜)으로 표기하는 것은 결코 그들 독자적인 한자 표기가 아니고 중국에서 벚나무를 뜻하는 한자어 앵(櫻)을 가져다 독자적으로 간략하게 만들어 쓴 것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은 중국에서도 이 桜(앵) 자를 간체자로 인정하고 있다.

 

벚나무의 학명

벚나무는 한중일 3국에서 자생하지만 이를 표기하는 학명은 제각각 다르다. 그만큼 국제 식물학계에서 통일된 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벚나무는 식물분류학적으로 나라마다 시대마다 학명이 다르다는 것이 특징 아닌 특징이 되었다. 그래서 영어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The classification of cherry blossoms varies from country to country and from period to period. 우선 산벚나무가 아니라 그냥 벚나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는 서울대 장진선교수가 2007년에 발표한 Prunus serrulata f. spontanea (E. H. Wilson) Chin S. Chang이라는 학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서양인으로서는 가장 먼저인 1828년에 영국 식물학자인 John Lindley(1799~1865)가 명명한 꽃벚나무 즉 Prunus serrulata Lindl.의 하위 품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꽃벚나무가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겹벚꽃이 피는 원예품종을 대상으로 명명하였기에 국내 벚나무와는 부합하지 않으므로 홑꽃이 피는 야생종을 대상으로 야생이라는 뜻의 종소명 spontanea를 써서 재명명한 것이다. 이는 장진선교수가 처음 쓴 종소명이 아니고 E. H. Wilson의 학명을 인용한 것이다. 영국 출신으로 미국 식물학자이자 20세기 최고의 식물채집가인 어네스트 윌슨(1876~1930)이 1916년에 재명명한 학명 Prunus serrulata var. spontanea (Maxim.) E. H. Wilson에서 변종(var.)을 품종(f.)으로 바꾸어 재명명한 것이다. 어네스트 윌슨 또한 훨씬 전인 1883년에 러시아 식물학자인 Carl Johann Maximowicz(1827~1891)가 홑꽃이 피는 야생 벚나무를 대상으로 중국 앵도의 변종으로 분류하여 명명한 Prunus pseudocerasus var. spontanea Maxim.라는 학명에서 종을 serrulata로 변경하여 재명명하였던 것이다. 이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벚나무 학명의 역사

1828 Prunus serrulata Lindl. 벚나무 겹꽃 원예품종

1883 Prunus pseudocerasus var. spontanea Maxim. 벚나무 외겹 야생종

1916 Prunus serrulata var. spontanea (Maxim.) E. H. Wilson 벚나무 외겹 야생종

2007 Prunus serrulata f. spontanea (E. H. Wilson) Chin S. Chang 벚나무 외겹 야생종

 

벚나무를 산앵화(山櫻花) 또는 산앵도(山櫻桃)라고 부르는 중국에서는 1828년 영국 학자 린들리가 명명한 학명 Prunus serrulata Lindl.를 그대로 쓴다. 당초 겹꽃이 피는 원예품종을 대상으로 명명한 것은 맞지만 이 학명을 그대로 홑꽃이 피는 야생 원종에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산앵도는 꽃이 홑인지 겹인지 명시하지 않는다. 중국은 Prunus속을 여러 속으로 분리하여 분류하였으므로 중국식물지에는 벚나무전용 속으로 1830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식물학자인 John Claudius Loudon(1783~1843)이 재명명한 Cerasus serrulata (Lindl.) Loudon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최근에는 국제추세를 따라서 Prunus serrulata로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벚나무를 ヤマザクラ(야마자쿠라) 즉 산앵(山桜)이라고 부르는 일본은 1823부터 1829까지 7년간 일본 데지마에 체류하면서 동양 식물을 탐사하였던 독일 식물학자인 Philipp Franz von Siebold(1796~1866)가 1830년에 명명하였지만 제대로 발표되지 못하였던 나명(裸名)을 일본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 1883~1953)가 정리하여 1911년 발표한 학명 Prunus jamasakura Siebold ex Koidz.를 기반으로 하여 일본의 저명 식물학자인 동경대학 명예교수인 오오바 히데아키(大場秀章, 1943~ )가  1992년 재명명한 Cerasus jamasakura (Siebold ex Koidz.) H.Ohba를 정명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종소명 jamasakura는 일본명 야마자쿠라(山桜)를 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오바교수의 주창에 따라서 벚나무를 기존의 Prunus속에서 별도 분리하여 벚나무 전용인 Cerasus속으로 독립시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선순위인 린들리가 명명한 Prunus serrulata를 인정하지 않고 지볼트가 명명한 Prunus jamasakura를 사용하는 것은 일본 산벚나무는 우리나라의 벚나무나 중국의 산앵도와 다른 일본 고유종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중일 삼국에서 자생하는 벚나무는 모두 동일한 종으로 보기 때문에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학명 Prunus serrulata f. spontanea도 나름대로 문제점은 있다. 그게 바로 원종인 꽃벚나무가 야생종이 아닌 원예품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잘못 명명된 원종의 하위 품종 형식으로 명명된 학명이 과연 계속 사용될 것인지 불투명한 것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벚나무는 학자들이 나름대로 판단하여 매우 다양한 학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개가 난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데 편의상 국가명을 표시하였지만 실제로 해당 국가가 공식적으로 학명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벚나무를 표기하는 각국의 다양한 학명

한국 Prunus serrulata f. spontanea (E. H. Wilson) Chin S. Chang

중국 Prunus serrulata Lindl.

중국 Cerasus serrulata (Lindl.) Loudon (중국식물지)

일본 Cerasus jamasakura (Siebold ex Koidz.) H.Ohba

미국 Prunus jamasakura (Makino) Nakai

영국 Prunus jamasakura (Makino) Siebold ex Koidz.

 

중국에서 벚나무를 산벚나무라는 의미로 산앵도(山櫻桃)라고 부르는 이유는 중국에는 재배 역사가 매우 오래된 앵도(櫻桃)로 불리는 과실용 벚나무 수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산앵(山桜)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예로부터 교토(京都)의 아라시야마(嵐山)나 나라(奈良)의 요시노야마(吉野山)에서 피는 대표적인 벚꽃이므로 야마자쿠라 즉 산앵(山桜)으로 불렸는데 이는 겹꽃 등 마을(里) 주변에 식재되는 원예품종들이 사토자쿠라(さとざくら) 즉 이앵(里桜)으로 불리는 것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에도시대 말기에 개발된 교잡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소메이요시노(ソメイヨシノ, 染井吉野) 즉 왕벚나무라는 품종 일변도로 심었지만 왕벚나무가 개발되기 이전부터 민가 주변에는 원예품종들이 심어져 왔던 것이다. 사토자쿠라의 대표적인 품종이 바로 후겐조우(フゲンゾウ) 즉 보현상(普賢象)이라고 불리는 겹벚꽃으로 이 품종은 이미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36~1573)에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 수종을 산벚나무라고 부르지 않고 벚나무라고 부를까? 그 이유는 우리는 보다 더 깊은 산에서 자생하는 산벚나무로 불리는 학명 Prunus sargentii로 표기하는 수종이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산벚나무는 중국에서는 자생하지 않고 일본에서는 큰산벚나무 즉 대산앵(大山桜)이라고 부른다. 꽃과 잎의 사이즈가 산앵(山桜) 즉 벚나무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서도 이 벚나무를 산벚나무(1949, 박만규)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그 외에 참벚나무(1982, 안학수 등)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벚나무와 산벚나무의 차이점

이제는 벚나무 즉 Prunus serrulata와 산벚나무 즉 Prunus sargentii의 차이점에 대하여 파악해 보자. 참고로 요즘 국내 나무시장에 가면 벚나무 종류는 겹벚나무나 처진벚나무 그리고 왜성인 후지벚나무 등 그 특징이 뚜렷한 수종들은 당연히 별도로 구분하여 거래된다. 그 다음 겉모습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나머지 벚나무들 중에서는 단연 꽃이 가장 화려하여 가장 인기가 높은 왕벚나무가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간혹 그 외에 품종들을 찾으면 모두가 산벚나무라고 말한다. 즉 분홍벚나무 잔털벚나무 올벚나무 사옥 개벚나무 털벚나무 섬벚나무 꽃벚나무(구) 등 우리 자생종만 하여도 이렇게 많은 수종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산벚나무 하나로 묶여서 구분 없이 유통되는 것이다. 이는 이들간의 차이점이 크지 않다는 것이고 차이가 있더라도 묘목상태에서는 구분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식물분류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이들 중 일부를 통합하여 분류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국표식에도 개벚나무와 털벚나무, 꽃벚나무(구)는 흡수 통합되어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올벚나무와 섬벚나무는 이미 앞에서 다룬 바와 같이 독립된 종으로 분류하는 데에 대하여 학자들간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털이 없는 벚나무와 산벚나무 그리고 털이 많은 분홍벚나무와 잔털벚나무 그리고 사옥인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털이 많은 수종들 셋 중 최소한 둘을 통합하거나 아니면 아예 셋 모두를 학명 Prunus leveilleana 하나로 통합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벚나무와 산벚나무는 그 외형이 매우 비슷하여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이들 둘의 통합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길래 둘이 통합되지 않고 각각 독립된 종의 신분을 유지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산벚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일본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산벚나무를 큰산벚나무 또는 붉은산벚나무라고 부른다. 잎과 꽃의 사이즈가 벚나무보다 더 크고 꽃의 색상이 주로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산벚나무는 매우 진한 분홍색 꽃이 피므로 서양에서도 그 색상은 deep pink라고 묘사할 정도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 산벚나무의 꽃은 그만큼 붉은색은 아닌 것 같아서 변별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잎과 꽃의 크기도 큰 차이가 아니라서 애매하다. 그 다음 이들 둘의 구분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화서축(花序軸)이다. 화축(花軸)이라고도 하는 화서축이 길게 자란 다음 꽃자루가 몇 개씩 나와서 꽃이 피는 경우가 벚나무이고 화서축이 거의 없이 바로 가지에서 꽃자루가 몇 개씩 나와서 꽃이 피는 것이 바로 산벚나무인 것이다.  벚나무는 동아에서도 인편의 끝이 밖으로 향하며 떨어져 있어 항상 밀착하고 있는 산벚나무 동아와 구분된다. 그리고 산벚나무는 꽃차례가 우산 모양인 산형화서인데 반하여 벚나무는 끝이 편평한 산방화서에 가깝다는 점으로도 구분이 된다. 또한 벚나무는 왕벚나무보다는 열흘 정도 늦게 개화하지만 산벚나무는 벚나무보다도 2주 정도 늦게 개화한다. 그 외에도 애매하기는 하지만 벚나무 잎의 너비가 좁아서 다소 길쭉하게 보이며 산벚나무 잎의 밑부분이 약간 오목하게 들어간 아심장형인 경우가 많고 가장자리 톱니가 좀더 촘촘하다는 점 등에서 미세하나마 차이를 보인다. 그 외에도 또 하나 차이점은 생육환경으로 내한성이 강한 산벚나무는 북쪽이나 남쪽 고산지대에서만 자생하지만 벚나무는 내한성이 약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함경도에서는 생육이 어렵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벚나무는 그 수명이 올벚나무 다음으로 길어서 일본에서는 평균 200~300년은 된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산벚나무도 길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수명에 관한 언급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둘이 비록 외형적으로는 매우 비슷해 보여도 각각 독립된 종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벚나무(좌)와 산벚나무(우)의 잎
벚나무(좌)와 산벚나무(우)의 화서
벚나무(좌)와 산벚나무(우)의 화서축
벚나무(좌)와 산벚나무(우)의 동아 - 벚나무 인편은 끝이 밖으로 향하여 큰 차이를 보인다.

 

 

 

벚나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그럼 이쯤에서 서두에서 언급한 궁금증에 대한 일부 답이 나온다. 우선 벚나무라는 우리이름을 가진 특정수종이 있었음에도 아무도 잘 모르는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이름은 벚나무이지만 일본인들은 야마자쿠라 즉 산벚(山桜)이라고 부른 데다가 우리나라 한자 표기도 산앵(山櫻)이었고 일부 학자들도 산벚나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상용으로 식재하는 벚나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왕벚나무가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는데 반하여 벚나무와 산벚나무는 잎과 동시에 꽃이 피므로 꽃이 만개할 당시는 이미 홍갈색 잎이 상당수 나와 꽃과 섞여서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특별히 벚나무와 산벚나무를 구분하기도 어렵고 굳이 구분할 필요성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통업체 등에서는 왕벚나무가 아니면 모두 산벚나무라고 통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 일반인들은 주변에서 가로수 등으로 심어진 벚나무 중에서 잎과 동시에 꽃이 피는 수종을 보면 산벚나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산벚나무는 거의 없고 거의 모두 벚나무이거나 잔털벚나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2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분당 중앙공원 일대의 벚나무 식재현황을 조사한 결과 벚나무 총 5,866그루 중에서 산벚나무는 겨우 10그루에 불과하였지만 벚나무는 무려 1,192그루로 왕벚나무와 잔털벚나무에 이은 세 번째로 20.3%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주변에 왕벚나무가 아니면서 잎에 털이 없으면 거의 모두 벚나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벚나무를 심는 입장에서는 왜 잎이 나기도 전에 불순물(?) 하나 없이 백색 또는 연분홍색 꽃을 눈부시게 피우는 왕벚나무로만 심지 않고 잎과 동시에 꽃이 피는 벚나무나 잔털벚나무를 섞어서 심을까? 그 이유는 바로 개화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왕벚나무와 벚나무 등을 섞어서 심으면 오랫동안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실생으로 대량 번식이 가능한 벚나무나 잔털벚나무에 비하여 삽목이나 접목으로 번식하는 왕벚나무 묘목의 가격이 비싼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한중의 벚꽃문화

이제 마지막 궁금점인 벚꽃놀이 문화가 일본에는 옛날부터 있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에는 왜 없었는지에 대하여 탐구할 시간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약간의 어폐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그런 벚꽃문화가 전혀 없었지만 중국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놀랍게도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앵도를 대상으로 노래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에 대하여 앞 1815번 게시글에서 당나라 천재시인인 이하(李贺, 790~816)가 쓴 미인소두가(美人梳头歌)나 시선 이백(李白, 701~762)이 쓴 구별리(久别离)라는 시 그리고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쓴 오앵도(吴樱桃)라는 시와 상택(傷宅)이란 시를 소개한 바 있다. 특히 우리나라 많은 문인들이 존경했던 백낙천은 벚나무에 대하여 27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도 중국에도 벚꽃문화가 없었던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이들 시에서 벚나무를 앵도(櫻桃)라고 표기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물론 오늘 현재까지도 우리는 이상하게 중국 앵도(櫻桃)를 교목 또는 소교목인 벚나무라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관목인 앵두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관목인 앵두가 도입되었는데 중국 동북지방에서 앵두를 앵도(櫻桃)라고 불렀기 때문에 우리가 오인(誤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버들 같은 허리와 앵도 같은 입술이라는 미인의 비유는 바로 백거이전에 수록된 아래 글에서 비롯된 표현인데 이를 우리는 앵두 같은 입술이라고 지금도 표현하고 있다. 원래는 중국 체리 즉 버찌 같은 입술이라는 뜻이다.

 

樱桃樊素口(앵도번소구)

杨柳小蛮腰(양류소만요)

번소의 입술은 앵도와 같고

소만은 허리는 버들과 같다.

 

중국의 앵도(櫻桃)는 바로 이런 과수용 벚나무의 일종을 이른다. 

 

물론 중국에는 앵도보다는 매화나 행화 그리고 도화에 대한 시나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다. 왜냐 하면 중국의 앵도(櫻桃)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서양 체리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관상용으로 식재하는 나무가 아니라 열매를 수확하기 위한 과수용 수종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나 풍취가 결코 매화나 행화 그리고 도화를 능가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국내에 없어 이해가 잘 안 되는 앵도(櫻桃)는 제쳐두고 매화(梅花) 행화(杏花) 도화(桃花) 또는 이화(梨花)에만 심취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벚꽃놀이 문화

그런데 일본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중국 문인들이 언급한 앵도(櫻桃)가 앵두가 아닌 사쿠라를 말한다는 것은 진작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들도 처음에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는 앵두를 우리를 따라서 앵도(櫻桃)라고 표기하다가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오류임을 알아차리고 지금은 앵도(櫻桃)라고 표기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앵두를 함경도 방언인 유스라지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스라우메(ユスラウメ)라고 부르고 한자로는 현재는 매도(梅桃)라고 표기한다. 우리는 고려시대 이전인 삼국시대쯤에 중국에서 앵두가 도입되면서 앵도라는 잘못된 이름이 딸려 왔기에 지금도 그렇게 굳어져 있지만 일본에서 앵두는 임진왜란 이후 즉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 직전에 도입되었기에 쉽게 오류가 수정된 것이다. 그리고 앵두가 도입되기 훨씬 전에 이미 중국 앵도(櫻桃)가 일본에 매우 흔한 벚나무와 유사한 종임을 간파하고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비롯된 국풍문화(國風文化) 운동에 백낙천의 벚나무 즉 앵도에 관한 시까지 활용한다. 일본의 국풍문화란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까지만 하여도 당(唐)나라 문화를 숭상하여 그 시대에 쓰여진 만엽집(万葉集)에 수록된 노래 중 매화관련 곡이 118수이고 벚꽃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는 44수라고 한다. 그래서 그냥 꽃이라고 표현하면 나라시대까지는 당나라서 건너 온 매화로 통했는데 이를 일본 자생종인 사쿠라로 바꾸자는 운동이 바로 일본의 국풍문화인 것이다. 벌써 그 당시에 일본인들이 이런 주체성을 찾으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원래 여성 목걸이용 옥구슬 같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라는 뜻에서 중국에서 신맛이 나는 중국 체리를 생산하는 교목인 벚나무의 일종인 중국 앵도를 표기하기 위하여 만든 한자인 앵(櫻)를 먼 훗날 자기들 독자적으로 앵(桜)이라는 약자(略字)를 만들어 썼는데 이 약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태평양전쟁 직후인 1946년 일본정부에서 당용한자표를(当用漢字表) 1850자를 만들어 고시했는데 그 때는 앵(桜)이 포함되지 않아서 3년 후 추가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호적에 이름을 등록할 때 약자인 앵(桜) 자를 1949년부터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지금 일본은 1981년 제정하고 2010년 개정한 상용한자표(常用漢字表) 2,136자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앵(桜) 자도 포함된다. 벚나무를 뜻하는 일본 이름 사쿠라는 일본식 분류에 의한 벚나무속 즉 Cerasus속 낙엽 활엽수들을 총칭하며 사쿠라라는 이름을 가진 특정 수종은 없다. 국제적인 분류법에 의하면 Prunus속 벚나무아속 즉 Subgenus Cerasus의 수종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일본 사쿠라의 어원은 세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봄에 마을로 벼(稲, サ)의 신이 빙의하는 자리(座, クラ)라고 사쿠라(サクラ)가 되었다는 설이다. 농경사회인 고대 일본에서 벼의 신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므로 그 신이 강림하는 자리가 바로 벚꽃이라는 뜻이다. 둘째는 꽃이 핀다는 뜻의 사쿠(咲く)에 복수를 뜻하는 라(ら)가 추가된 말로서 원래 꽃이 밀집하여 피는 모든 식물들을 표현하는 말인데 그 대표적인 벚꽃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는 설이다. 셋째는 후지산 정상에서 꽃을 가꾸던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매우 아름다운 여신인 고노하나노사쿠야비메(木花開耶姫, 木花之佐久夜毘売)의 이름 중 사쿠야(サクヤ)가 변하여 사쿠라가 되었다는 설이다. 어느 설이든 벚나무를 대하는 태도가 그냥 옥구슬 목걸이 같은 열매가 달린다고 앵도(櫻桃)라고 하는 중국이나 벗(버찌)이라는 검은 열매가 달린다고 벚나무라고 부르는 우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과거부터 일본의 벚꽃 사랑이 지극하였던 이유는 이렇게 신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불교국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신도(神道)가 불교보다도 우위에 있으며 일본 전국의 신사(神社)의 숫자는 편의점보다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벚꽃은 일본 국민들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꽃인 것이다. 게다가 일본에는 아름다운 벚나무가 유독 많다. 에도 말기에 개발된 교잡 원예품종인 왕벚나무가 등장하기도 전부터 벚꽃에 열광하였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만 하여도 중국에서 도입된 매화가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면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와서는 그 당시 시작된 국풍문화(國風文化)의 영향으로 일본 원산의 벚꽃이 매화를 밀어내고 꽃의 대명사라는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국 중당(中唐)시대의 대시인 낙천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벚꽃 즉 앵도(櫻桃)와 관련된 시를 무려 27수나 썼다고 거론하며 벚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품격 향상을 위하여 노력한다. 이 때까지만 하여도 벚꽃의 중심은 일본에서 야마자쿠라(山桜)라고 부르는 벚나무였지만 때 맞춰 일본에는 겹꽃이 피는 품종이 등장하여 접목에 의한 증식이 이루어졌으며 가지가 처지는 품종도 등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에 와서는 정치의 중심지인 관동의 카마쿠라(鎌倉)에서 가까운 이즈제도의 오시마(大島) 원산의 새로운 일본 자생종인 오시마벚나무 즉 왜벚나무가 문화의 중심지인 관서지방으로 유입되는 계기가 된다. 이 왜벚나무는 여타 수종들과의 교잡이 쉽게 이루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기존의 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잔털벚나무 등과의 교잡이 활성화되어 오늘날 일본을 벚꽃 강국으로 만든 왕벚나무(染井吉野)나 칸잔(関山) 등 수많은 품종들로 구성된 사토자쿠라(里桜)그룹이 훗날 탄생하게 된다.

 

벚꽃 품종이 개발되기 시작한 카마쿠라시대를 이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36~1573)에 드디어 현재까지도 인기가 높은 겹벚이 피는 보현상(普賢象)과 미쿠루마가에시(御車返し) 같은 품종들이 등장한다. 그 후 아츠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가 일본 제일의 벚나무 명소인 요시노야마(吉野山)에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와중인 1594년 수하들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기라성 같은 무장들과 예인 등 5000명을 대동하고 신사에서 5일간 머물면서 성대한 벚꽃놀이에 나섰으나 3일 연속 비가 와서 망쳤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도 이들 두고 나쁜 짓을 많이 한 그의 업보 때문에 꽃놀이를 망쳤다고 언급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598. 4. 20 벚나무 700그루를 심었다는 교토의 사찰 다이고지(醍醐寺)에서 가까운 신하와 다이묘(大名) 등 500명을 대동하고 성대한 하나미(花見) 행사를 가진 뒤 5개월 후 63세로 사망하여 임진왜란도 끝나게 된다. 여하튼 다이고지 하나미가 오늘날 일본의 연회식 벚꽃놀이 문화의 기원이라고 한다. 토요토미정권 후에 들어선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에는 오시마 원산의 왜벚나무와 여타 수종들간의 활발한 교잡으로 수많은 원예품종들이 탄생하여 사토자쿠라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에도시대에는 도쿄 우에노(上野)에 있는 사찰 간에이지(寛永寺)의 벚나무가 유명하였으나 서민들은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에도 중기에 8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 재직1716~1745)가 도쿄 북부 아스카야마(飛鳥山)와 아사쿠사(浅草) 스미다강(隅田川)변에 벚나무를 심게 하여 서민들도 즐기기를 허용한 것이 일반 서민들 하나미(花見)의 시초라고 한다. 이후 하천정비를 하면서 강둑에 벚나무와 버드나무를 적극적으로 심었으며 계속 신품종이 개발되어 에도말기에 이미 300종이 넘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왜벚나무와 올벚나무의 교잡으로 에도 말기에 탄생한 그 유명한 왕벚나무 즉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도 있다. 이 왕벚나무의 등장으로 온 세상 벚꽃의 판도가 아니라 나아가 봄 꽃나무 전체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게 된다. 에도시대 이후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1912)에는 사회적 격변기로 귀족의 저택이나 사찰 그리고 신사의 정원이 붕괴되면서 거기에 심어진 다양한 품종의 벚나무들이 마구잡이로 벌채되고 그 자리에는 왕벚나무 일색으로 심어지게 되어 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그 때 아라카와(荒川) 주변의 호장(戶長)이던 시미즈켄고(清水謙吾)라는 사람이 아라강변에 다양한 품종의 벚나무들을 구해다 심어 오색벚꽃(五色桜)의 명소로 만들었는데 그 결과 수많은 귀한 품종들을 지키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풍신수길의 요시노야마 벚꽃놀이(좌)와 다이고지 연회식 하나미(우)

 

이와 같이 일본의 벚꽃놀이는 메이지시대에 왕벚나무가 대량으로 심어지기 전까지는 벚나무 올벚나무 왜벚나무 잔털벚나무 등과 원예품종들이 대상이었는데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벚나무였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벚나무 명소인 요시노야마의 3만 그루의 벚나무 중 대부분이 벚나무라고 한다. 그러니까 토요토미는 물론 에도시대 도쿠카와 가문에서 즐긴 벚꽃도 일본의 산벚나무 즉 벚나무가 주종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벚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자생하는데 왜 일본에서만 그토록 벚꽃에 열광하였을까? 그 이유는 아무래도 자생하는 개체수가 중국과 우리는 매우 적었기에 깊은 산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교잡 원예품종이 거의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왜벚나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수많은 원예품종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왜벚나무가 일본에서만 자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과 마찬가지로 올벚나무와 벚나무 산벚나무 잔털벚나무 모두가 자생하지만 국내서는 자연교잡종은 나중에 발견된 제주왕벚나무 외에는 탄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겨우 벚나무와 잔털벚나무 정도만 자생하는 중국에서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벚나무가 신도(神道)의 신들과 결부되어 있어 신성시되고 있기에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현에 있는 요시노야마(吉野山)의 경우도 원래는 벚나무가 많지 않았는데 약 1300년 전에 수험도(修験道)라는 밀교를 만든 역소각(役小角)이란 도사가 신선이 깃든 이상향이라고 알려진 요시노야마에서 부처가 장왕권현(蔵王権現)이라는 신의 모습으로 현신하는 것을 감득(感得)한 후 벚나무로 그 존상(尊像)을 새겨 요시노야마 금봉산사(金峯山寺)에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 수도자들이 벚나무를 어신목(御神木)이라고 하면서 신격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요시노야마의 벚나무는 그 누구도 훼손하지 못하고 오히려 수행자들이 벚나무 모종을 헌목(献木)하기 시작하여 점점 개체수가 늘어나 현재는 200여종에 3만주가 심어진 관광의 명소이자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 일본 전역의 사찰이나 신사에 심어진 벚나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에게는 사쿠라는 단순한 꽃나무만 아니라 일종의 신앙의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이주해온 일본인들이 일본의 상징과도 같은 벚나무를 주변에서 찾았으나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자 견디지를 못하고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들여와 열심히 심었다고 한다. 그러자 조선총독부에서도 정책적으로 지원 또는 권장하여 고궁이나 공원 및 학교 등에 일본산 벚나무를 적극적으로 식재하게 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왕벚나무(吉野櫻)라고 한다.

 

나라현 요시노야마의 벚나무 장관
나라현 요시노야마의 벚나무 장관

 

 

우리나라의 벚나무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벚나무가 일본만큼이나 여러 종이 자생하고 있었다. 일본의 자생 벚나무가 10~11종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그 정도 된다. 그 중에서 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잔털벚나무 분홍벚나무 섬벚나무는 어디에 내놔도 전혀 무시당할 나무들이 아니다. 게다가 일본 왕벚나무와 구분이 어려워 초창기 일본학자들이 일본 왕벚나무의 원조라고 했던 제주왕벚나무도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리 선조들은 벚꽃을 감상하고 즐기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린 즉 벚꽃문화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매화 행화 도화 이화(梨花)를 노래한 시는 많아도 앵화(櫻花)를 읊은 시는 없다. 그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초창기 한반도로 건너온 일본인들이 왜 굳이 본국에서 벚나무를 들여와 심었을까? 1926년에 조선에 13년 거주한 카메오카 에이키치(亀岡栄吉)이라는 일본인 기자가 쓴 사계의 조선이라는 글에 그 원인의 일말이 보인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잘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봄을 대표하고 봄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꽂이며… 벚꽃이야말로 실로 봄이 갖는 최대의 자랑이며 꽃 중의 왕이다. 그러나 우리조선에는 내지처럼 많은 벚꽃의 명소가 없다. 거기에는 예부터 이 나라 사람들이 벚꽃에 대한 감상의 생각이 부족했던 원인도 있다. 벚나무는 겨우 군궁용(軍弓用)으로 썼기 때문에 경성 교외 가오리나 우이동에 식재된 것 외에는 별로 밀식된 곳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병합 이래 내지인의 이주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일본인들은 거의 그 국민성이라고도 할 만큼 벚꽃의 동경을 버리지 못하니 고국의 봄을 생각할 때도 조선에 벚꽃이 없음을 얼마나 쓸쓸하게 느꼈을까. 그 결과 백 그루 이백 그루라는 식으로 시험적으로 요시노자쿠라(吉野桜)의 이식을 시도하는 자가 나와 그 결과가 좋음이 실증되자 각지에서 다투어 이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벚꽃 명소가 곳곳에 생겨 봄에 더 많은 번창과 광명을 가져온 것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1907년 일본에서 3년생 묘목 1,500주를 들여와 남산 왜성대공원에 500주를 심고 나머지는 각지에 분산하여 심은 것이 최초의 일본산 왕벚나무의 도입이라고 한다. 그 다음 1908년부터 1909년까지 2년 동안 오사카에서 2년생 묘목 300주를 들여와 창경원에 심었는데 그로부터 10년 후인 1918년 창경원 벚꽃축제가 시작되었으며 1924년부터는 야간에도 개장하였다고 한다. 이 창경원의 벚나무들이 해방 후 여의도로 옮겨가 오늘날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신도시인 진해에는 왕벚나무를 1910년의 2만 그루를 시작으로 무려 15만 그루를 심어 오늘날 우리나라 최고의 벚꽃명소로 만들게 된다. 1924년 7월 조선총독부관보에 의하면 1923년 5월부터 1924년 4월까지 1년간 수입한 벚나무가 무려 97,871주라고 한다. 심은 묘목이 자라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지쳤던지 국내서 찾아보니 우이동계곡과 수유리(가오리역 부근)에 벚나무 군락이 있음을 발견하고 1912년부터 일본인들이 벚꽃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게 국내 최초의 벚꽃놀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남산이나 창경원의 벚나무가 커서 꽃을 피우자 교통이 불편한 데다가 수종도 왕벚꽃나무가 아니라서 감흥이 떨어지는 우이동계곡은 관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벚꽃놀이 문화가 없었으며 일제 초기에 적극적으로 일본 벚나무를 심은 것은 일본인들의 한반도 이주를 장려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이동계곡의 벚나무도 일부는 우리 자생종이겠지만 상당수는 조선조 영정조시대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선생이 영조 40년인 1764년에 일본에서 벚나무 수백 그루를 들여와 심어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우이동계곡의 벚나무들은 일본명이 카스미자쿠라(カスミザクラ) 즉 하앵(霞桜)인 분홍벚나무와 일본명이 히메야마자쿠라(ヒメヤマザクラ) 즉 희산앵(姬山桜)인 초창기 우리가 꽃벚나무라고 불렀던 수종 둘이 주종을 이루었다고 한다. 과거 꽃벚나무로 불렸던 수종은 현재 잔털벚나무로 흡수통합 되었는데 결국 둘 다 국내 어디에선가는 자생하는 우리 자생종이다. 왕가 외척의 후손으로 훗날 이조판서에 대사간 대제학 판중추부사를 역임하고 학문에도 뛰어나 고증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으며 지방관시절에는 두만강변에 버드나무 3만 그루를 심는 등 치산 치수에도 밝았던 그가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는 벚나무를 일본 통신사로 가는 일행에게 부탁하여 어렵게 구하여 심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자생종이라는 벚나무들의 실상을 가늠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열심히 찾아보니 한반도 어디에선가 자생하고 있더라는 정도이지 일반인들 눈에 띄는 장소는커녕 대충 둘러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심산유곡에 자생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 자생종 벚나무 약 10종 중 한두 종은 제법 흔하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극히 드물게 자생한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우리 조상들은 벚나무의 꽃을 감상하기보다는 그 수피를 자작나무 수피 즉 화피(樺皮)를 대신하여 활 제조용으로 썼으며 그런 목적으로 벚나무를 심기도 했다. 홍양호선생이 우이계곡에 벚나무 숲을 조성한 것은 그런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벚나무 외에도 소나무와 단풍나무 등을 심어 우이동을 아름다운 계곡으로 만든 것은 중국 남송의 대유학자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동경한 것으로 보인다. 즉 군사적 목적만이 아니라 꽃을 감상할 목적이 분명 있었다는 뜻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퇴계의 도산구곡(陶山九曲)과 율곡의 고산구곡(高山九曲) 그리고 우암의 화양구곡(華陽九曲) 등이 있다.

 

한편 군사용 활을 제조하는데 자작나무 피 대신에 벚나무 피를 사용한 것은 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자작나무가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도나 평안도 외에는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예 자작나무를 뜻하는 한자 화(樺) 자를 벚나무를 뜻하는 글자로도 쓴다. 이건 우리가 벚나무를 뜻하는 한자 앵(櫻)을 앵두를 뜻하는 글자로만 알고 있었으므로 딱히 벚나무를 지칭할 마땅한 한자어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43년 정태현선생이 저술한 조선삼림식물도설에도 벚나무를 지칭하는 한자어로 山櫻(산앵) 樺木(화목) 奈(내) 등 세 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 역어유해(譯語類解) 등에서는 벗나무를 산도(山桃)라고도 했다. 우리나라 국보인 합천 해인사에서 보관하는 팔만대장경의 목재는 화목(樺木)으로 알려져 자작나무이겠거니 했는데 실제 목재 조직을 검사한 결과 자작나무로는 거제수나무가 있었는데 9%에 불과하였고 64%의 대장경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화목(樺木) 재질이라고 언급한 것은 처음부터 벚나무를 지칭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화(桦)와 앵(樱)을 구분하여 쓰는 중국에는 자작나무보다 벚나무가 귀하므로 화피(樺皮)를 그렇게 쓸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중국에서는 화피(樺皮)를 간이나 기관지 위장 등의 치료용 약재로 쓰기에 더더욱 엄격하게 자작나무 수피만을 지칭한다. 일본에서는 화피(樺皮)를 자작나무 피라고 정의하지만 벚나무 피로 공예품을 만드는 화세공(樺細工)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어 아마 우리나라의 영향인지 과거 벚나무를 화(樺)라고도 쓴 것 같다.

 

활을 자작나무 껍질로 감싸기에 화피단장(樺皮丹粧)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벚나무 수피를 대용으로 많이 썼다.
과거 북방 오랑캐들이 이런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가벼운 배인 화피선을 타고 두만강을 건너와 우리 백성들을 많이 괴롭혔다.
일본의 벚나무 화피 채취 모습과 아키타현 특산 벚나무 화세공품

 

 

이와 같이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벚나무가 흔하지도 않았고 있더라도 관상용보다는 수피나 목재를 사용하기 위한 나무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깊은 산에서 간혹 큰 나무 사이에 좁고 높게만 자란 벚나무가 꽃을 피우더라도 쳐다보기도 어렵고 보이더라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서 별 감흥이 없다. 마을어귀에서 피는 살구꽃이나 도로변 야산에서 피는 복사꽃이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벚나무나 잔털벚나무 등도 사방이 탁 트인 개활지에서 자유롭게 자라서 꽃이 만개하는 절정기 잠깐 동안은 볼 만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가로수로 무리 지어 심어져 왕벚꽃이 진 다음 꽃이 피므로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잎과 동시에 꽃이 피므로 만개시에는 잎이 상당부분 성장하여 마치 홍갈색 불순물이 섞인 듯한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꽃의 수도 적어 왕벚과 같이 흐드러지게 피지는 않는다. 가끔 왕벚나무가 아닌 벚나무나 잔털벚나무가 심어진 가로수를 지나가면 왜 이딴 걸 벚나무라고 심었을까 하고 무의식적으로 안타까워하게 된다. 실제로 나무시장에 가면 왕벚나무에 비하여 벚나무(산벚나무)는 가격이 매우 싸다. 생산원가 차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움에 있어서 못 미치기에 찾는 이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벚나무와 잔털벚나무 산벚나무 등을 구분 없이 묶어서 산벚나무라고 통칭하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벚나무는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사람도 없는 신세이다. 이건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워싱턴 DC에 심어진 각종 벚나무 3,800그루 중 원예품종이 아닌 야생 벚나무 그 자체는 단 한 그루도 없다. 우리 고유종 섬벚나무는 5%나 되고 비록 1% 미만이지만 산벚나무도 심어져 있는데 말이다. 그만큼 벚나무는 그다지 매력이 있는 수종은 아니라는 뜻이다.  

 

벚나무는 잎과 동시에 꽃이 피어 만개시에는 잎이 매우 많이 자란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즉 현급 이상 행정구역 가운데 무려 8개 현에서 전체 또는 일부 지역의 해당지자체의 상징 나무로 선정되어 있다. 왕벚나무의 본고장에서 벚나무를 도시의 상징으로 선정하다니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왕벚나무는 종자번식이 아닌 영양번식에 의한 복제품종이므로 꽃모양도 비슷하고 시기도 일제히 개화하고 한꺼번에 낙화하여 단조롭지만 왕벚나무는 각 개체마다 유전자가 달라서 개체간 변이가 심하고 개화와 낙화시기도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오히려 매력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최고의 벚꽃 명소로 알려진 요시노야마의 수종 대부분은 왕벚나무가 아닌 벚나무라고 한다. 평소 우리가 생각하던 일본인들의 특성과는 많이 다른 면모이다.   

 

일본만 벚꽃놀이 문화가 발달한 원인

그리고 일본의 벚꽃문화는 왕벚나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므로 일본의 독특한 벚꽃문화를 단순히 왕벚나무의 등장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처음부터 벼의 신이 현신하였다거나 일본민족의 성산인 후지산에서 꽃을 가꾸는 절세 미모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 등이 얽혀서 사쿠라를 일본의 상징과도 같이 신성시 여기는 일본인들의 벚꽃사랑은 그저 목재 또는 수피를 채취하는 나무 정도로 인식하는 우리 민족과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일본은 아름답게 꽃이 피는 여러 원예품종이 1000년 전부터 개발되어 관상용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하면서 사쿠라의 위상을 높여 왔던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나 중국에는 없는 일본 특산 오시마자쿠라 즉 왜벚나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앞 1823번 게시글에서 다룬 바와 같이 왜벚나무는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왕벚나무 즉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라는 교잡종과 겹벚꽃나무로 인기가 가장 높은 칸잔(関山)이라는 품종을 탄생시킨 부모종이다. 이들 두 품종은 에도시대에 개발된 품종이지만 그 훨씬 전인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이미 겹벚꽃과 처진벚꽃 품종이 등장하여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일본의 헤이안시대는 우리나라의 통일신라시대가 되는 먼 옛날이다.

 

이를 요약하면 일본에서만 벚꽃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첫째 일본에는 벚나무가 중국은 물론 우리보다 흔하게 주변에서 야생한다.

둘째 일본 신도(神道)와 결부되어 벚나무가 일종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셋째 종간 교잡이 쉽게 이루어지는 수종이 오시마에서 발견되어 타지역으로 보급되면서 수많은 교잡품종들이 탄생하였다.

넷째 에도시대 말기에 걸출한 교잡종인 왕벚나무가 등장하여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른쪽 백색이 왜벚나무이고 왼쪽 연분홍이 그 교잡종인 왕벚나무이다 - 신주쿠교엔

 

 

등록명 : 벚나무

학  명 : Prunus serrulata f. spontanea (E. H. Wilson) Chin S. Chang

이  명 : 본문 참조

분  류 : 장미과 벚나무속 낙엽 교목

원산지 : 한중일

중국명 : 산앵도, 산앵화

일본명 : 야마자쿠라(산앵)

수  고 : 10~20m

수  피 : 암갈색, 가로 피목

가  지 : 일년지 암갈색 무모

동  아 : 난원형, 무모, 4~6인편, 8~10mm, 광택

잎특징 : 난형, 도란타원형, 기부원형, 단거치 중거치

잎크기 : 6~12cm 길이

잎색상 : 상면 심록색 하면 백색을 띤 담록색

잎자루 : 2~2.5cm, 무모

탁  엽 : 선형, 5~8mm, 선치, 조락

선  체 : 잎자루 끝, 잎의 기부 2~3개

꽃차례 : 산방 또는 산형화서, 2~5 송이, 화엽 동시개방

총포편 : 홍갈색, 도란상원형, 8 x 4mm, 외면무모, 내면장유모

화서축 : 3~27mm, 무모, 포편 갈색, 담록갈색, 5~8 x 2.5~4mm, 선치

소화경 : 1.5~4cm, 무모

꽃받침 : 관상, 5~6 x 2~3mm, 악편 3각피침형, 전연

꽃부리 : 광타원형, 도란상 타원형, 선단 오목, 백색, 연분홍색

수  술 : 36~40개, 꽃잎보다 짧음

암술대 : 무모

열  매 : 핵과, 난형 구형, 지름 8~10mm, 흑자색

개화기 : 4~5월

결실기 : 6~7월

내한성 : 영하 29도

특  징 : 올벚나무 다음으로 수명이 길며 개화적령기가 5~10년, 단풍이 아름다움

 

벚나무 수명이 올벚나무 다음으로 긴만큼 나이가 들어야 꽃이 핀다.
개화기에 잎이 많이 성장한다.
꽃자루 꽃받침에 털이 없다.
잎자루에 선체가 있으며 포편 외부에도 털이 없다.
벚나무 꽃받침
동아의 인편 끝이 밀착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신엽은 홍갈색이다.
선체가 있는 선형 턱잎의 길이는 5~8mm
벚나무
벚나무 검은색으로 익는다.
단풍이 왕벚에 비하여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