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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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비치꽃사과나무 - 첼시 꽃박람회를 창설한 비치가문

낙은재 2024. 5. 8. 21:16

비치꽃사과나무

 

 

비치꽃사과나무는 학명 Malus yunnanensis var. veitchii Rehder에서 알 수 있듯이 운남꽃사과나무의 변종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 변종을 전지해당천악변종(滇池海棠川鄂变种) 또는 위씨운남해당(魏氏云南海棠)이라고 한다. 천악(川鄂)은 사천성과 호북성의 약칭이다. 왜냐하면 이 변종은 사천성과 호북성 귀주성이 원산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씨(魏氏)는 중국에서 Veitch를 발음에 가깝게 쓴 글자이다. 이 수종은 전설적인 식물채집가인 Ernest Henry Wilson(1876~1930)이 1901년 중국 호북성 의창시(宜昌市)에서 반출해간 수종을 대상으로 미국 하버드대학 Alfred Rehder(1863~1949)교수가 1923년에 명명한 학명이다. 여기서 변종명 veitchii는 영국의 유명한 원예가문인 Veitch Nurseries에서 온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문에서 윌슨을 중국에 파견하여 이 수종을 채집하여 재배하다가 발견한 변종이기 때문이다. 이 변종은 원종인 운남꽃사과나무에 비하여 잎에 털이 없고 기부가 주로 하트형이고 가장자리에 결각이 뚜렷하며 열매가 더 짙은 홍색인 경우가 많다는 차이점이 있다. 글쎄 웬만해서는 통합하는 이 시대에 이런 정도의 차이로 아직 변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바로 비치가문에 대한 존중심이 약간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이 변종을 원종에 통합시키는 학자들도 있다. 그럼 여기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여 외아들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시켰다가 전사하는 바람에 후사(後嗣)가 없어져  그만 대(代)가 끊어진 안타까운 비치가문에 대하여 알아보자. 앞 1175번 게시글에서 올렸던 것을 다시 한번 올린다. 

 

영어 veitch는 원래 cow 즉 암소라는 뜻에서 유래된 스코틀랜드 지역의 성씨인데 본토에서는 바이치에 가깝게 발음되지만 국내서는 일반적으로 베이치나 베치 또는 비치 등으로도 표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표식에 veitch가 들어간 학명으로 등록된 식물이 무려 수십 종이나 되는데 대개 비치나 베이트키라는 국명을 붙였다. 학명에 veitchii나 veitchianum 또는 veitchiana 등으로 표기되는 veitch는 영국의 Veitch Nurseries를 뜻하거나 아니면 그 Nurseries를 경영하던 Veitch가문의 인물들 중 한 명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상황에 따라 파악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Veitch Nurseries는 영국 잉글랜드에 있는 개인이 운영하는 일개 원예종묘사 또는 원예 농장에 불과하지만 워낙 원예업 종사 역사가 길고 내부에 걸출한 인물이 많으며 대표도 한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치꽃사과나무의 변종명 veitchii는 어네스트 윌슨을 중국에 파견하여 비치꽃사과나무를 도입한 Harry Veitch(1840~1924)를 말한다. 그는 비치 원예가문이 창설자 John Veitch의 증손자이다. 비치가문에는 원예계에서 유명한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자기들 스스로도 식물학자이라서 식물 명명자로 약칭을 가진 인물도 더러 있었고 세계적인 식물 채집가로 이름을 날린 일원도 3명이나 되면서도 윌리엄과 토마스 롭 형제와 어네스트 윌슨 그리고 찰스 마리스 등 19세기 전설 같은 식물 채집가들을 세계 여러 나라에 파견하여 엄청난 수량의 새로운 식물들을 수집하여 유럽에 처음으로 선 보였기 때문에 19세기 영국은 물론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예업체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 외에도 비치 가문은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관람하는 세계 최대의 화훼전시회인 런던 첼시쇼의 창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세계 원예학계 및 화훼업계에 크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무척 많아 놀랍다.

 

Harry Veitch와 그가 창설을 주도한 Chelsea Flower Show
Chelsea Flower Show

 

 

영국 남서부 데번주의 엑스터와 런던의 첼시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였던 Veitch Nurseries는 1808년 이전에 스코틀랜드 출신 John Veitch(1752~1839)에 의하여 엑스터에서 원예 농장을 시작하였다. 아마 John Veitch의 아버지 Thomas Veitch 가 데번에 있는 귀족 저택의 정원사로 일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John Veitch의 아들에 이어 손자인 James Veitch, Jr. (1815–1869)가 물려 받아 경영할 때 런던의 첼시에 있던 Royal Exotic Nursery를 1853년 인수하면서 사업을 확장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 가문을 Royal Nurseries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엑스터(Exeter)에 있던 Nurseries는 동생인 Robert Veitch (1823–1885)가 경영하다가 나중에서 아예 분리하게 되는데 그래서 형이 경영하는 런던의 사업체는 James Veitch & Sons로 부르고 동생이 경영하는 엑스터의 사업체는 Robert Veitch & Sons로 부르기 시작한다. 

 

3대 대표 James Veitch, Jr.를 기려 1870년 창설한 Veitch Memorial Medal은 현재까지도 매년 전세계 원예산업에 기여한 사람을 RHS에서 선정하여 메달을 수여한다.  비치너서리는 첼시에 있던 Royal Exotic Nursery를 1853년에 인수하였지만 계속 로얄너서리라고 했다.

 

 

첼시 사업체는 나중에 빅토리아여왕 시절 최초의 식물 채집가 중 한 명이며 일본에까지 다녀 간 맏아들 John Gould Veitch(1839~1870)가 잠시 경영하다가 요절하자 그 동생인 Harry Veitch (1840~1924)가 경영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오늘날 세계 최대의 화훼전시회인 런던의 첼시꽃박람회를 창설한 장본인이다. 1898년 유한회사로 전환한 다음 Harry Veitch는 후손이 없어서 그랬는지 형 John Gould Veitch의 아들 James Herbert Veitch(1868~1907)가 대표가 된다. 그는 1892~1894년 아시아 일부와 호주 뉴질랜드 등을 다녀간 식물 채집가이었는데 그 중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되어 있다. 그 또한 단명으로 1907년에 사망하자 유명한 축구선수인 그의 동생 John Veitch (1869~1914)가 물려받았으나 그도 장수하지는 못하고 1914년 사망한데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불황 여파로 첼시 사업체는 문을 닫게 된다.

 

한편 엑스터에 있던 동생이 경영하던 Robert Veitch & Sons는 그의 사후 아들 Peter Veitch(1850~1929)가 경영을 맡게 된다. 1875년부터 1878년까지 호주와 보르네오 등을 식물 채집을 위하여 다녀간 그는 목본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분야 사업에 중점을 두는데 이때 백목련과 캠밸목련의 교잡을 시도하여 1907년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서 외아들이 전사하였기에 그가 사망한 1929년부터는 딸 Mildred Veitch (1889~1971)가 물려받아 경영하다가 말년인 1969년에 St Bridget Nurseries에 매각하면서 근 200년간 이어져 온 비치 가문의 원예 사업은 막을 내린다. 이렇게 세계 원예 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 Veitch dynasty 즉 비치왕조라고도 불리던 비치가문은 따지고 보면 후손이 없어서 세계 원예 업계에서 그 화려한 영광을 뒤로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비치너서리의 창업자 John Veitch와 그의 가계도

 

 

 

그럼 Veitch Nurseries가 왜 유명하며 존경과 칭송을 받고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에 대하여는 그 당시 영국 왕실정원인 큐(Kew)의 초대 원장이던 William Jackson Hooker(1785~1865)가 그들은 희귀식물의 재배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기록이 남아 있어 비치가문은 희귀식물 수집에만 열을 올린 것이 아니고 재배에도 대단한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들은 2대 James Veitch(1792~1863)가 경영할 때인 1840년 William Lobb(1809~1864)를 브라질에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1843년 윌리엄의 동생 Thomas Lobb (1817~1894)를 동남아시아로 파견하는 등 해외식물 채집에 무척 애를 쓴다. 이런 세계 식물 채집활동은 3대 경영자 James Veitch, Jr. (1815~1869)를 거쳐 5대 경영자 Harry Veitch (1840~1924)가 1899년 그 유명한 Ernest Henry Wilson (1876~1930)을 중국에 파견할 때까지 무려 60년간 22명의 식물 채집가들을 파견하여 거의 전세계 식물들을 채집하게 된다. 그 중에는 위에서 언급한 롭형제와 어네스트 윌슨 외에도 1877~1879 동안 중국과 일본 대만을 방문하여 무려 500종의 신종을 발견하여 영국으로 도입한 Charles Maries(1851~1902) 같은 유명한 채집가도 있으며 비치 가문의 일원으로서 일본과 호주를 방문한 John Gould Veitch(1839~1870)와 호주와 동남아를 방문한 Peter Veitch (1850~1929) 그리고 우리나라도 방문한 바 있는 James Herbert Veitch(1868~1907)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 가문의 사람들은 단순하게 농장에서 재배만 하고 해외로 다니면서 식물 채집만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발견한 식물을 직접 묘사하고 절차에 따라서 명명하여 신종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식물 명명자의 약칭을 가지고 있는 비치 가문 일원이 한둘이 아니다. 3대 경영자 James Veitch, Jr. (1815~1869)는 J. J. Veitch로 통하고 그의 동생 Robert Veitch(1823~1885)는 R. T. Veitch로 썼다. 그리고 4대 경영자 John Gould Veitch(1839~1870)는 그냥 Veitch로 통한다. 아마 그가 명명한 식물이 가장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동생이자 5대 경영자인 Harry Veitch(1840~1924)는 H. J. Veitch로 통한다. 그리고 6대 경영자이자 창업자인 John Veitch(1752~1839)의 고손자인 James Herbert Veitch(1868~1907)는 J. H. Veitch라는 약칭을 썼다. 이렇듯 한 집안에서 새로운 식물의 종에 학명을 부여하는 식물학자가 무려 5명이나 배출된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직접 또는 plant hunter들을 고용하여 세계적인 희귀식물을 수집한 결과 유럽에서 오직 자기들만이 공급 가능한 무수한 식물들을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키가 90m 넘게 자라고 3천년 이상 장수하는 거삼나무 즉 자이언트 세콰이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빅토리아여왕이 Royal Horticultural Society의 정원에 심은 자이언트 세콰이어도 바로 비치가문에서 공급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럽에 최초로 도입한 종이나 원예 품종은 무려 1281종이라고 하며 그 내역을 보면 상록수가 498종 난(蘭)종류가 232종 낙엽수가 153종 초본이 122종 희귀 양치식물이 118종 상록 덩굴식물이 72종 침엽수가 49종 구근식물이 37종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그 수량이 늘어 났으며 자기들이 처음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희귀 식충식물들도 많이 취급하여 그 중에는 Nepenthes veitchii 즉 네펜테스 베이트키와 같이 그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종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비치 너서리에서는 자기들만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 일이백 종도 아니고 무려 천삼백 종이나 되게 넘쳐났던 것이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채집해 간 식물이 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등록명 : 비치꽃사과나무

학    명 : Malus yunnanensis var. veitchii Rehder

분    류 : 장미과 사과나무속 낙엽 교목

원산지 : 중국

중국명 : 위씨운남해당(魏氏云南海棠) 전지해당천악변종(滇池海棠川鄂变种)

차이점 : 잎에 털이 없고 기부가 하트형이고 열매의 색상이 더 붉다.

 

비치꽃사과나무
비치꽃사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