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의 수많은 품종
가지과 탐구의 마지막으로 목본은 아니지만 우리 식생활에 너무나 중요한 채소인 고추에 대하여 간단하게 파악하려고 들여다 보니 이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곧 알게 된다. 이제 보니 고추는 결코 간단하게 후딱 파악될 식물이 전혀 아니다. 몇 날 며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 봐도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품종이 워낙 많고 나라마다 이름이 제각각 다른 데다가 한중일 3국에 고추가 도입된 경로가 명확하지 않아서 논란에 있기 때문이다. 모두 남북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속 즉 Capsicum속은 전세계 모두 43개 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 인류가 식용하는 고추는 그 중 5종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재배하는 단 한 종 Capsicum annuum 즉 고추만 등록되어 있다. 이 종은 임진왜란 전후 일본을 통하여 국내에 들여와 재배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무려 6,000년 전부터 멕시코에서 재배되어 왔다는 고추는 인류가 재배한 가장 오래된 작물 중 하나라는데 신대륙의 발견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 기후조건이 맞는 지구 전역에서 재배되면서 수많은 품종이 개발되어 왔는데 그 품종의 수가 수백이나 수천이 아닌 수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 유전자정보네트워크 즉 USDA-ARS GRIN에서 종자를 관리하는 식용 고추의 품종은 4,000개가 넘으며 나머지 4종의 품종을 합할 경우 6,200종이 넘는다고 한다.
고추 외의 식용 고추 종들
그런데 식용 고추는 이게 전부가 아니고 또 다른 4개 종(種)이 더 있다. 우선 이들은 국내 미등록종이므로 정식 국명이 없다. 따라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학명과 중국명을 함께 소개한다. 우선 열매의 모양이 종(鐘) 또는 풍령(風鈴)같이 생긴 Capsicum baccatum(풍령랄초, 风铃辣椒)이 있는데 종소명 baccatum이 berry 같은 열매가 달린다는 뜻이므로 국내 일부에서 이를 베리고추라고도 한다. 실제로 이 종의 열매는 베리같이 작고 둥글기도 하지만 풍령같이 생긴 품종도 있어 둘 다 나름대로는 의미 있는 이름이다. 다음은 한 마디에 하나씩만 달리는 고추와는 달리 한 마디에 2~5개의 열매가 달리는 Capsicum chinense(중화랄초, 中华辣椒)가 있는데 중국이 원산지는 아니지만 중국에서 유난히 많이 재배하여 이런 학명이 붙었다. 극히 매운맛을 내는 품종이 많은 이 종을 국내서는 중국고추라고 한다. 그리고 작지만 매운맛이 강한 여러 개의 작은 열매가 위로 향하여 달리는 Capsicum frutescens(관목상랄초, 灌木状辣椒)가 있는데 이를 국내서는 나무고추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잎과 줄기에 털이 많은 Capsicum pubescens(융모랄초, 绒毛辣椒)가 있는데 국내서는 이를 털고추라고 부른다. 이상 4개 종들 또한 고추만큼은 아니더라도 수 천개의 재배품종이 개발되어 있다.
고추에 대한 궁금증
고추는 이렇게 식물분류학적으로 5개 종으로 분류된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 맛과 모양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모양이 정말 천차만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모양이 매우 다양한 데다가 그 맛도 단맛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극심하게 매워서 초창기에는 유독식물로 알려진 품종까지 무수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추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직후 16~17세기에 거의 전 세계로 급속도로 퍼져나간 식물이므로 나라마다 또는 그 모양이나 맛에 따라서 그 명칭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도 헷갈리게 하는 요소라고 판단된다. 예를 들면 파프리카(paprika)나 피망(piment)의 경우는 분명 해외에서 도입된 외래어인데도 해외에 나가면 우리가 알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쓰고 있어 도대체 이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따라서 고추는 매우 복잡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궁금한 점 또한 많아서 도저히 그냥 생략하고 지나칠 수는 없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양고추나 고추장 등 매운 음식을 잘 먹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알고 보니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세상에는 우리나라서 개발된 품종인 청양고추는 맵다는 말도 못할 수준으로 극도로 매운 고추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고추는 대개 길쭉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고추는 모양도 다양하여 짧고 굵은 국내서 파프리카나 피망으로 부르는 품종도 있고 체리같이 생긴 것도 있고 화초용으로 재배하는 하늘고추(팔방고추)와 같이 위로 향하여 자라는 고추도 있고 과거 아주 매운 맛으로 유명하였던 월남고추의 정체도 궁금하며 최근에 매운 요리에 널리 사용되는 소스인 캡사이신의 정체 등도 궁금하여 이들을 파악하고자 탐구를 시작한다.
모든 고추의 원산지는 남북 아메리카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남북 아메리카 열대지역이 원산지인 고추 또한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토마토, 호박, 담배와 마찬가지로 신대륙이 발견된 다음 유럽의 식물들이 건너가고 신대륙에서 새로운 식물이 도입된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 즉 Columbian exchange의 일환으로 15세기 후반에 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맨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1492년 신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 자신과 그때 동행한 스페인 의사 디에고 알바레즈 찬카(1463~1515)가 현지인들이 이를 사용하더라고 1493~1494년에 보고하면서 그 자신들이 직접 들여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중해 연안 남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인도를 거쳐서 중국 등 동아시아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원의 화초용으로 재배하다가 포르투갈 수도사가 독특한 매운맛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후추의 대용품으로 사용하게 되어 17세기 중반에는 남유럽과 중부유럽에서 널리 재배하게 되었으며 우리나라도 17세기 초인 1614년 실학의 선구자인 이수광(李睟光, 1563~1629)선생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 사전인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남만초(南蠻椒)라고 하며 일본(倭國)을 통하여 도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중부유럽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도래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인류에게 엄청난 식량 자원을 보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하는 한편 그동안 유럽의 문물은 거의 항상 중앙아시아와 연결된 중국 서역을 통하여 육로로 접하던 우리나라도 17세기에 와서는 유럽인들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를 거치는 해상루트를 통하여 도입되기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추의 학명
고추를 처음 접한 유럽에서는 오래 전에 인도로부터 유럽에 도입된 향신료인 후추의 일종으로 파악하여 그냥 pepper라고 불렀으며 둘을 구분하기 위하여 고추는 red pepper나 hot pepper 또는 chili pepper라고 부르고 후추는 black pepper라고 불렀다. Black pepper로 불리는 후추는 학명도 Piper nigrum이라고 표기하는데 속명의 어원은 원산지의 산스크리스트어 pippali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인 고추는 실제로는 후추와는 식물분류학적으로 아무런 관련성이 없으나 초창기 유럽인들이 잘못 파악하고 pepper라고 불러서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753년 린네가 명명한 고추의 속명 Capsicum는 라틴어로서 강한 매운 맛에서 비롯된 이를 악물다라는 뜻의 capto에서 온 것이라는 설과 열매의 모양이 box형이라서 capsa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물론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유럽에 고추가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린네가 그런 의미의 속명을 찾아서 붙인 것이다. 고추속의 모식종은 국내에 흔한 고추로서 학명은 Capsicum annuum이다. 여기서 종소명 annuum은 일년생이라는 뜻이다. 고추가 초본인데 왜 이런 종소명을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당초 린네가 명명한 고추속 두 종 중 다른 하나가 관목형으로 생겼다고 Capsicum frutescens이라고 명명한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된다. 다년생 아관목으로 하늘로 향하여 열매가 달리는 후자를 국내 일부에서는 나무고추라고 부른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일부 학자들은 이 나무고추를 고추에 통합시키기도 한다.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일본에 전래
한중일 3국 중 가장 먼저 도입된 일본은 고추의 전래에 관한 다수의 설이 있다. 그 중 가장 널리 인정받는 설은 1829년 에도시대 말기 농학자인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 1769~1850)가 저술한 초본육부경종법(草木六部耕種法)에 따르면 1542년 또는 1552년에 포르투갈 선교사가 풍후국(豊後国) 즉 현 규슈(九州) 오이타현(大分県)에 호박(南瓜)와 함께 헌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이 명시되어 일본에서는 대부분 이 설을 따라서 16세기에 남만선(南蠻船)을 타고 온 포르투갈인에 의하여 전래되어 남만초(南蠻椒)라고도 하다가 곧 해외에서 도입되었다고 토우가라시(トウガラシ)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당신자(唐辛子) 또는 번초(蕃椒)라고 쓴다. 당신자(唐辛子)의 당(唐)은 원래는 중국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거치지 않고 도입되었기에 여기서는 그냥 해외에서 도입된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되고 신자(辛子)는 물론 매운 열매라는 뜻이고 번초의 번(蕃, 番) 또한 외국 또는 해외라는 뜻이다. 두 번째 설은 일본의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이란 유명한 본초학자가 1698년 저술한 화보(花譜)와 1709년 저술한 본초서인 대화본초(大和本草)에서 기술한 다소 놀라운 내용이다. “番椒(タウカラシ) : 昔は日本に無く、秀吉公の朝鮮伐の時、彼の国より種子を取り来る故に俗に高麗胡椒と云う, 西國にて南蛮胡椒と稱す” 즉 번초는 과거 일본에는 없었는데 풍신수길이 조선정벌 때 그 나라에서 종자를 가져왔기 때문에 속칭 고려호초라고 한다. 이를 서국에서는 남만호초라고 칭한다.”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서국은 일본의 서쪽 지역을 말한다. 이러면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런 조선전래설은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외에 다른 학자들이 쓴 문헌에서도 더러 보인다. 1723년의 대주편년략(対州編年略)과 1734년의 본조세사담기(本朝世事談綺) 그리고 1775년의 물류칭호(物類称呼) 등이 바로 그 문헌이다.
그런데 문헌이 발표된 시기를 보면 남만전래설은 1829년이므로 1698년에 발표된 후자 조선전래설이 앞선다. 그래서 조선전래설에 무게가 실린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음을 알려주는 그보다 앞선 또 다른 남만전래설이 있다. 그게 바로 에도시대 전기의 본초학자인 히토미 히츠다이(人見必大, 1642~1701)가 1697년 발간한 본조식감(本朝食鑑)이다. 거기에는 “畨椒(トウカラシ), 我が国で畨椒を使 うようになってから、百年に過ぎない。 煙草と相先後 して、いずれも番人によって伝播され、海西から移栽 して、今は全国にある.”라고 번초의 일본내 재배는 100년에 불과하며 담배와 함께 번인(番人)들에 의하여 해서(海西)지방으로 들어와 전국으로 퍼졌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에도시대 의사인 테라시마 료안(寺島良安, 1654~?)도 1712년에 펴낸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서 “畨椒(たうがらし) 畨は南畨の意味。俗に南蛮胡椴 という。 今は唐芥子という。 畨椒は南蛮に産する。慶長年中(1569~1615)にこれと煙草と が同時に日本にもたらされた.”라고 “번초의 번은 남번을 의미하므로 남만호초라고도 하며 지금은 당겨자라고도 한다. 번호는 남만산으로 담배와 함께 1569~1615년 사이에 일본에 도입되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게 세 번째 설인데 첫 번째 설과 다른 점은 도입시기가 16세기 후반으로 다소 늦고 호박이 아닌 담배와 함께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남만전래설에서 포르투갈의 남만선에 의하여 일본에 고추가 가장 먼저 도입되었다는 지역이 규슈 오이타현인데 대화본초(大和本草)를 저술한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은 관동이 아닌 바로 그 이웃인 규슈 후쿠오카현에서 1630년에 태어나 자랐는데 실제로 1542~1615년에 도입되었다면 그런 사실을 몰랐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선전래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인데 여기에 가장 큰 복병은 바로 우리나라 조선의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9)선생이 1614년에 발간한 지봉유설(芝峯類說)이다. 그리고 그 당시 포르투갈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통상하던 국가는 일본이지 우리나라가 아니므로 일본을 제쳐두고 한중일 3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도입하여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설은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과 우리나라 학자들도 대부분 “南蠻椒有大毒。始自倭國來。故俗謂倭芥子.”라고 기록한 지봉유설을 따라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개화기 사학자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 일본전래설을 인정하였고 고대 식생활연구로 유명한 한양대 이성우(李盛雨, 1928~1992)교수와 재일 교포로 조선요리연구가인 정대성(鄭大聲, 1933~ ) 일본 시가(滋賀)대학 명예교수 등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참고로 일본인들은 매운 음식을 싫어하여 고추의 소비량이 매우 적어 채소로서의 비중이 매우 작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고추에 대한 관심은 없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통하여 임진왜란 전후에 도입
임진왜란(1592~1598) 전후 일본에서 고추를 도입한 우리는 17세기 초인 1614년에 쓰여진 지봉유설(芝峯類說)에 고추가 남만초(南蠻椒)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거기에 속칭 왜개자(倭芥子)라고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어 우리는 처음부터 겨자(芥子)에 견줄 만한 강한 매운맛의 향신료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 숙종때인 1682년에 사역원에서 신이행(愼以行) 김경준(金敬俊) 등이 편찬한 역어유해(譯語類解)에 중국 고추의 일종인 진초(秦椒)를 예고쵸라고 풀이한 내용이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자 유암(流巖) 홍만선(洪萬選, 1643~1715)선생이 지은 농업 책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 고추를 벌써 채소로 분류하여 재배법을 설명하면서 그 제목을 “種 南椒 남만쵸。혹稱 倭椒”라고 즉 남초와 왜초라고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기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 숙종의 어의를 지낸 의관(醫官) 이시필(李時弼, 1657-1724)이 여러 정보를 모아 1720~1722년경에 편찬한 책인 소문사설(謏聞事說)의 제2편 식치방(食治方)에 놀랍게도 순창고초장조법(淳昌苦艸醬造法)이 수록되어 있다. 그 당시는 후추를 고쵸라고 말하던 시기이므로 후추장이나 산초장이라는 설도 있을 수 있지만 순창장도 아니고 순창고초장이라고 분명하게 제목을 단 데다가 씻어서 말린 좋은 고추가루 6되를 운운한 제조법 자체를 봐도 고추장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산초는 초(艸)가 아니며 후추는 고가품이므로 가능성이 낮다. 그리고 고추가 국내 도입된 이후 남만초나 왜초 또는 번초라고는 불려도 고초(苦艸)라고 기록한 것은 처음으로 보인다. 고추가 국내 도입된지 어언 100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고추장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의가 고초장 제조법을 언급하였는데 왕궁에서 지나칠 리가 없다. 영조 25년인 1749년의 승정원일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嘗見昔年進水剌時, 必進鹹辛之物, 今予亦常嗜川椒之屬及苦椒醬。此乃食性, 漸與少時不同者, 其亦胃氣之漸衰耶? 여기서 임금이 짜고 매운 음식으로 천초(川椒)와 고초장(苦椒醬)을 언급하고 있다. 영조는 유난히 고추장을 좋아하였는지 승정원일기에서 고초장을 여러 번 언급한다. 그리고 태의원 의관이던 유중임 (柳重臨, 1705~1771)이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보완하여 1766년에 편찬한 농업서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도 조만초장법(造蠻椒醬法)과 급조만초장법(急造蠻椒醬法)이라고 상세한 고추장 담그는 법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서는 소문사설의 고초장(苦艸醬)이 아닌 만초장(蠻椒醬)이라고 기록하여 고추장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걸 최초의 고추장 제조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 1768년 즉 영조 44년 영조실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上曰 "松茸ㆍ生鰒ㆍ兒雉ㆍ苦椒醬, 有此四味則善飯, 以此觀之, 則口味非永老矣." 즉 임금이 말씀하시길 "송이(松茸)· 생복(生鰒)· 아치(兒雉)· 고초장(苦椒醬)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은 아니다." 아치(兒雉)는 어린 꿩고기를 말한다. 그 당시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선생이 저술한 총서를 아들 이광규가 내탕금을 받아서 1795년 편집 간행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여전히 고추를 번초(番椒)나 만초(蠻椒)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쵸는 원래 호초(胡椒)를 우리말로 부르던 명칭으로 1489년 고급간이방언해에서 胡椒를 한글로 고쵸라고 함께 표기한 기록이 있으며 1527년 훈몽자회에서 椒를 고쵸 쵸라고 풀이하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한자 椒의 훈(訓)이므로 순수 우리말이라는 것인데 이걸 나중 사람들이 한자로 苦라고 주로 쓰므로 쓴맛과 관련한 오해를 하게 만든다. 글쎄 그렇다면 초창기에는 매운맛과 쓴맛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는 말인가? 여하튼 호초를 왜 고쵸라고 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러다가 1682년 역어유해에서 고추의 일종인 진초(秦椒)도 예고쵸라고 한글로 표기하고 있어 후추와 고추 둘 다 고쵸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후추와 고추는 유럽에서도 같은 pepper로 불리고 있어 이들을 동일하게 부르는 것은 우리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그 맛이 고통스러울 만큼 맵다고 고쵸라고 했다고 하는데 글쎄 이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나중에 들어 온 고추는 그렇다 하더라도 먼저 들어 온 후추는 결코 고통스러울 정도로 맵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국내서는 후추를 한자로 胡椒라고 썼지만 부르기는 고쵸라고 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늘을 한자로 天이라고 쓰지만 모두들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다가 드디어 후추 즉 고쵸를 음차(音借)하여 한자어 고초(苦椒)로 쓴 기록이 나타난다. 그게 바로 조선후기 의관인 이석간(李碩幹, 1509~1574)선생 등 4명이 질병에 대한 경험방과 서적을 인용하여 저술한 의서인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에서 후추인 호초(胡椒)를 고초(苦椒)라고 쓴 것이다. 이 시기는 고추가 국내에 도입되기 전인데 물론 그 이전에 후추를 한글로 고쵸라고 표기한 문헌은 있었지만 한자로 苦椒라고 표기한 것이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胡椒를 우리말로 고쵸라고 하다가 한자로 아예 苦椒라고 표기하다가 고추가 전래되자 고추도 한자어 이름 번초(番椒)나 만초(蠻椒)를 제쳐두고 아예 고초(苦艸, 苦椒)라고 한자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의 출신이 쓴 1720년의 소문사설에서 고추를 맨 처음 苦艸라고 썼고 다음은 영종조의 1749년 승정원일기에서 고추를 苦椒라고 썼다.
이렇게 표기하고 보니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맵다고 한자어 랄(辣)이나 신(辛)이라고 하는데 반하여 우리만 쓴맛을 뜻하는 고(苦)라고 한 것처럼 보여서 결코 합리적인 이름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은 완전히 우리 독창적인 이름이기는 하다. 여기서 순수 우리말 고쵸를 한자어로 차자(借字)하여 쓴 것이 苦椒 古椒 苦草 古草 등 고초로 발음되는 한자어이므로 반드시 쓴맛을 뜻하는 苦가 아닌 옛이나 낡은 것을 뜻하는 古로도 썼으며 후추를 뜻하는 椒가 아닌 草로도 썼다. 따라서 이 표기는 뜻을 음미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쓴맛을 운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하튼 어의나 내관 등 왕실 주변에서 유난히 고초(苦椒)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미 고추장(苦椒醬)이 등장하여 임금이 즐겨먹는 귀한 반찬이 되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왕이 이렇게 고추장을 좋아하고 특히 순창고추장을 선호한 이유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순창 만일사에서 초장을 무척 맛있게 먹었다는 일화때문으로 보인다. 이성계가 먹었고 나중에 궁에 진상하였다는 순창 초장(椒醬)은 물론 산초를 재료로 담근 것이겠지만 장아찌 수준의 청장(淸醬)인지 아니면 산초향과 맛이 나는 메주로 담근 장인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고추가 새롭게 도입되자 순창에서는 자연스럽게 고추장 제조를 시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가 청장관(靑莊館) 이덕무의 손자이자 조선 후기 박학다식(博學多識) 사조(思潮)의 대표자인 이규경(李圭景, 1788~1856)선생이 펴낸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초목류(草木類) 채종(菜種)편 번초남과변증설(番椒南瓜辨證說)에서는 고추를 번초(番椒)라고 하면서 향명(鄕名)은 고초(苦草)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초를 한자로 苦椒 대신에 苦草로 쓰고 있다. 그리고 이규경선생은 일본 에도시대 의사인 테라시마 료안(寺島良安, 1654~?)이 1712년에 펴낸 일본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를 인용하면서 일본에서는 당개자(唐芥子)라고 하지만 우리는 왜개자(倭芥子)라고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당시 중국에는 고추가 구슬 같은 모양도 있고 계심(鷄心)같은 짧고 굵은 모양도 있고 끝이 뾰족하고 길쭉한 모양의 진초(秦椒)도 있고 열매가 위로 향하는 앙천초(仰天椒)도 있으며 그 외에도 주름이 많거나 여러 개가 다발로 달리는 불수감(佛手柑) 같은 다양한 모양의 고추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푸른 열매의 속씨를 빼고 고기를 채워 청장(淸醬)을 담아 먹거나 가루로 고추장(椒醬)을 만든다는 내용이 있으며 순창과 천안에서 생산된 것이 가장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고 보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 진초(秦椒)를 예고쵸 즉 예고추라고 풀이한 것은 그 품종의 열매 끝이 뾰족(銳)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진초(秦椒)란 원래 중국에서 산동지역에서 생산하는 품질이 우수한 화초(花椒) 즉 산초 또는 초피를 지칭하였으므로 우리 동의보감에서도 촉초(蜀椒)는 쵸피로 진초(秦椒)는 분디라는 한글로 표기했으나 나중에는 중국에서 산동산 고추를 지칭하는 용어로 변했다. 정조(재위 1776~1800)시대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는 한성부 서쪽 연희궁(延禧宮)앞 들에 고초전(苦草田)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한문소설인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도 延禧宮(연희궁) 苦椒(고초)라는 내용이 있어 연희동 지역에서 고추를 대량 재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조시대 문인인 김려(金鑢, 1766~1822)의 담정유고(藫庭遺藁)에는 ‘丹椒蠻椒草椒。俗名苦椒。東俗盛種。疑是倭菜’라고 ‘단초 만초 초초 속명 고초를 우리나라서 많이 심는다. 일본에서 온 채소로 추정된다.’는 내용으로 다양한 새로운 이름도 등장한다. 단초는 열매가 붉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고 초초는 목본인 산초에 비하여 초본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고초(苦椒, 苦草)는 원래 호초(胡椒)를 부르던 우리말 고쵸를 한자어로 표기한 말이다. 고추가 도입된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호초(胡椒) 외에도 고추 즉 번초(番椒)도 고쵸라고 하다가 18세기 말에 와서 홍명복(洪命福) 등이 1778년에 편찬한 대역어휘집(對譯語彙集)인 방언유석(方言類釋)에 의하면 고추는 고쵸라 하고 후추는 호쵸라고 하여 점차 굴러온 돌 고추가 박힌 돌 후추를 쳐내기 시작하다가 19세기에 와서 호초(胡椒)를 밀어내고 번초(番椒)만을 지칭하는 한편 고쵸가 고초로 변한 것이고 호쵸는 호초가 되었다가 20세기에 와서 고추와 후추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1960년대의 우리 옥편에서는 椒를 고쵸 쵸가 아닌 후추 초로 변경하여 풀이하다가 오늘 현재는 산초나무 초, 후추나무 초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 국어사전에서는 고추가 고초(苦椒)에서 기원한 말이기는 하지만 고추의 고가 한자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식물분류학이 도입된 이후 1937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식물목록집인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고초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1949년 박만규선생이 우리나라 식물명감에서 맞춤법을 따라서 고추라고 변경하면서 오늘날의 정명이 되었다.
중국은 우리나라서 산동반도로 전래
중국에서는 고추가 우리보다는 조금 이른 16세기 후반에 동남아시아에서 도입되었으나 처음에는 식용할 줄을 몰라서 관상용으로 재배하다가 청나라 강희제(1661~1722) 시대부터 식용하였다고 밝히고 있어 뜻밖에도 한중일 3국 중에서 중국이 가장 늦게 식용으로 재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16세기 후반에 도입되었을 거라는 추정만 있지 실제 기록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중국에서는 실제로 강희 10년인 1671년에 가서야 절강성 삼음현지(山阴县志)에 “辣茄(랄가) 红色(홍색) 状如菱(상여릉)이라는 기록이 보이며 5년 후인 1686년 항주부지(杭州府志)에 细长(세장) 色纯丹(색순단) 可为盆几之玩者(가위분기지완자) 名辣茄(명랄가)라는 내용이 실려 그 당시에 고추를 매운 가지라는 뜻에서 辣茄(랄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에 관하여 다른 기록과 주장이 있다. 전국 송대문학 학회이사(全国宋代文学学会理事)이기도 한 중국 남경사범대학 문학원 정걸(程杰, 1959~ )교수가 2020년 강소성 학술지 阅江学刊(열강학간)에 발표한 我国辣椒起源与早期传播考(아국랄초기원여조기전파고):起源山东(기워산동) 来自朝鲜半岛(래자조선반도)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게 바로 명나라 희곡작가이자 양생학자인 고렴(高濂, 1573~1620)이 1591년 편찬한 중국 고대 양생학을 집대성한 책인 준생팔전(遵生八笺)과 명나라의 저명한 원예학자인 왕상진(王象晋, 1561~1653)이 1614~1621년 사이에 저술한 군방보(群芳譜)에 고추가 번초(番椒) 또는 진초(秦椒)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16세기 후반에 도입되었다고 중국 백과사전에서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준생팔전 원전에는 번초가 없다가 1628~1644년 사이에 발간된 개정판 현설거중정번각본(弦雪居重订翻刻本)에서 번초(番椒)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최초의 문헌은 고추를 번초(番椒) 또는 진초(秦椒)라고 기록한 왕상진이 17세기 초에 저술한 군방보(群芳譜)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출처를 바로 조선반도(朝鲜半岛)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초(秦椒)라는 이름은 원래 산동반도 특산 초피를 이르는 이름이고 왕상진의 고향이 산동이며 그가 모친상을 당한 후 산동성으로 내려와 있을 때 쓴 책이 바로 군방보라는 것이다. 《群芳谱》蔬谱卷1的记载:“番椒,亦名秦椒。白花,子如秃笔头,色红鲜可观,味甚辣。子种.” 이렇다면 1614년에 쓰여진 지봉유설과 시기적으로 맞고 1671년 강희제시절의 산음현지와도 시기가 맞다. 그리고 1690년에 발간된 우리나라 역어유해에 중국의 고추로 진초(秦椒)만 예고추라고 풀이한 이유가 바로 그 당시 중국에는 산동성에서 나는 진초(秦椒)만 널리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산동반도에 고추가 가장 먼저 도입되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나중에 남방 해로를 통하여 다른 품종이 청나라 강희제 때 도입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고추의 유입경로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거꾸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중국에서는 고추를 매운 초(椒)라는 의미에서 랄초(辣椒)라고 한다. 중국에서 초(椒)는 원래 자극성 맛을 풍기는 산초나 초피 등 초피나무속 식물을 지칭하며 후추도 해외(胡)에서 도입된 초(椒)라는 의미에서 호초(胡椒)라고 한다.
일본전래설을 부정하는 사람들
이렇게 하여 고추는 그 당시 말라카나 동티모르 또는 마카오에 식민지를 두었던 포르투갈의 상인들에 의하여 16세기에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17세기에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런데 2008~2009년 국내 한국식품연구원 일부 연구원들이 고추의 자생설을 주장하면서 일본전래설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그 설을 주장한 학자들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역사를 왜곡한 마치 친일행위를 한 것처럼 몰아세워 비난하는 주장이 나왔다. 엄청난 사료를 참고자료로 들고 나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수차례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일본 일부에서도 인정하는 일본 고추의 조선전래설을 왜 부정하느냐는 것인데 글쎄 고추가 왜로부터 처음 도입되었다는 바로 그 시기에 활동하였던 우리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9)선생의 기록이 아무런 근거가 안 된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주장의 요지는 우리 고추장의 역사는 임진왜란 이전은 물론 삼국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가 최소한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우리 전통 발효음식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고추는 결코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 이후에 들여온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원산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 분들 아마 고추장 특히 순창고추장에 대한 사랑이 너무 지나쳐 오버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우리 고문헌에 나타나는 번초(番椒)와 만초(蠻椒)를 고추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추가 국내에 도입되기 전에는 후추(胡椒)를 지칭한 한글 고쵸나 한자 苦椒(고초)를 모두 고추를 지칭하는 것은 이해불가이며 산초나 호초를 지칭하는 초(椒)나 초장(椒醬)도 대부분 고추나 고추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수긍할 수 없다. 그 범위를 국내에 한정하지 않고 심지어는 중국 당나라 때 편찬된 식의심감(食醫心鑑)이나 사시찬요(四時纂要)에 나오는 중국의 초장(椒醬)도 죄다 고추장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기가 막힌 이야기이다. 세상의 고추는 모두 남북 아메리카가 원산지이고 콜럼버스에 의하여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다른 대륙에서는 전혀 없던 식물이라는 것이 거의 모든 식물학자들이 인정하는 설인데 어떻게 우리나라와 중국에 천 년 전에 고추라는 식물이 있었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 한자 椒(초)는 원래 초피나무들을 지칭하는 글자인데 기원전 2세기에 인도에서 후추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향과 맛이 비슷하여 호초(胡椒)라고 하였고 16~17세기에 고추가 도입되면서 번초(蕃椒) 또는 날초(辣椒)라고 하여 현재는 3종의 식물을 지칭하는 글자인데 어떻게 가장 늦게 들어온 고추로만 풀이한다는 것인지 정말 황당하다.
고쵸는 원래 胡椒이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한자 椒(초)를 고쵸 쵸라고 풀이 했다. 1527년에 어린 학동들을 위해 쓴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훈(訓)인 고쵸는 호초(胡椒)를 지칭하는 것으로 국한 혼용 문헌인 1489년 허종(許琮), 윤호 등이 왕명을 받아 간행한 구급간이방언해(救急簡易方諺解)에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胃寒五臟風冷心復痛吐淸水用胡椒고쵸硏酒服之亦宜湯服若冷氣呑三七粒. 배 안이 차서 바람의 냉기로 가슴과 배가 아파 맑은 물을 토하거든, 후추를 갈아 술에 타서 먹으라. 따뜻하게 먹되 그래도 냉기가 있으면 스물한 개 정도를 복용하여도 좋다. 이로서 고추가 도입되기 전에는 고쵸가 바로 후추(胡椒)이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반면에 같은 훈몽자회에서 山椒(산초)는 분디라고 풀이하고 있어 대조를 보인다. 전술한 바와 같이 椒는 원래 초피를 지칭하다가 나중에 후추도 지칭하는 글자로 쓰였는데 아마 조선시대에는 이미 후추가 도입되어 널리 사용되었기에 이 椒를 고쵸라고 훈(訓)을 달고 음(音)은 쵸로 풀이한 것이다. 참고로 그 당시 草는 플 초로 풀이하고 있어 초와 쵸를 다른 음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여하튼 후추는 글자로는 胡椒 또는 호초(楜椒)라고 썼지만 민간에서는 고쵸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한자 표기도 아예 苦椒나 苦草 등으로 쓴 것이다. 이렇게 苦椒는 고쵸를 음차(音借)한 글자이므로 여기서 맛이 쓰다는 것은 운운할 필요가 없다.
사의경험방의 고초는 후추이며 도문대작의 초시는 산초된장이다.
그리고 우리 문헌에 고초(苦椒)라는 한자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조선후기 임진왜란 이전에 이석간(李碩幹, 1509~1574)선생 등 4명의 명의가 질병에 대한 경험방과 서적을 인용하여 저술한 의서로서 1644년에 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痢疾當歸及苦椒煎服而看病人之氣品加減用之. 내용인 즉 이질에는 당귀와 고초를 달여서 복용하고 환자의 상태를 보고 가감하여 사용한다.”이다. 여기서 고초가 고추라는 주장을 펴면서 임진왜란 이전에 고추가 국내에 있었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고초(苦椒)는 주 저자인 이석간선생은 임진왜란 전의 인물이므로 시기적으로 고추일 가능성이 낮고 또한 이질(痢疾)이라는 병에는 당귀와 후추는 처방 가능하지만 당귀와 고추는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키므로 처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고초는 후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그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인물인 허균(許筠, 1569~1618)의 시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의 우리나라 팔도의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개설서인 1611년 작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소채류(蔬菜類)를 26종을 소개하면서 거기에 포함된 초시(椒豉)는 황주산이 가장 좋다고 ‘椒豉 黃州所作甚佳’라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 초시가 바로 고추장의 메주라는 주장을 편다. 따라서 고추가 임진왜란 직후에 도입되었다면 허균 당시에는 고추장이 식재료로 널리 보급될 수가 없으므로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존재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초시(椒豉)가 고추장 메주라면 그게 어떻게 채소류에 포함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채소류라면 최소한 바로 요리를 할 수 있는 식재료이어야 하는데 고추장을 그대로 쓰면 되지 일본 낫토(なっとう, 納豆)도 아닌 고추장 메주를 왜 쓰겠는가? 시(豉)란 메주를 뜻하기도 하지만 된장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감자로 담근 된장을 서시(薯豉)라고도 했다. 따라서 이건 분명 초(椒)를 넣어 그 향과 매운맛을 살린 된장을 이르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찾아보니 동의보감의 허준(許浚, 1539~1615)선생보다 약간 앞선 시대의 명의인 양예수(楊禮壽, ? ~ 1597년)선생이 편찬한 의서 의림촬요(醫林撮要)에 초시원(椒豉圓)이라는 부종 치료용 환약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그 재료가 바로 초목(椒目)과 메주(豉)이다. 초목이란 천초의 씨를 말하며 천초(川椒)란 초피나무를 말한다. 따라서 허균이 말한 초시(椒豉)는 바로 이 초피나무의 향과 매운맛을 활용하기 위하여 초피를 메주와 버물려 반죽하여 된장과 같이 만들어 쓴 식재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7세기 초에도 국내에 고추는 흔치 않았다.
조선 중기 허균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시인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 1579~1651)선생의 문집 '옥담시집'(玉潭詩集)의 만물편(萬物篇) 약초류(藥草類)편에 인삼(蔘)과 이출(二朮, 삽주) 복령(茯苓, 소나무 뿌리 균체) 황정(黃精, 둥글레) 산약(山藥, 마)과 천초(川椒)와 후추(楜椒)를 시로 읊은 내용이 있는데 그 중 매운맛을 내는 천초 즉 초피와 후추에 대한 것을 소개한다. 만약 이 시기에 고추가 널리 재배되었다면 응당 포함되었거나 최소한 언급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도 고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따라서 이는 그 당시 고추가 옥담선생 주변에는 없었음을 말하고 있다.
천초(川椒)
촉 땅에 자라는 특이한 열매가 / 異實生川蜀
동쪽으로 건너와 우리 집에 심겼어라 / 東來樹我家
이슬 젖은 가지엔 푸른 옥이 달렸고 / 露枝懸碧玉
바람 맞는 잎에는 붉은 단사 빛난다 / 風葉映丹砂
음식에 넣으면 향기가 좋고 / 入饌薰甘足
국에 넣으면 맛이 더 좋아지지 / 和羹美味加
후추가 이것과 비길 만할 뿐 / 楜椒能比目
다른 것은 이보다 나은 게 없네 / 他物莫能加
후추(楜椒)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후추가 / 楜椒南面産
천리 먼 우리 동방에 들어왔네 / 千里入東方
매운 맛은 파 마늘보다 낫고 / 郁烈凌葱蒜
향기는 겨자 생강보다 나아라 / 薰芳蔑芥薑
음료로 마시면 가슴이 후련하고 / 呑漿胸滯豁
가루를 섞으면 국이 향기롭지 / 和屑鼎湯香
한 곡을 쌓아두기도 어렵거늘 / 一斛難爲貯
누가 팔백 곡이나 창고에 뒀던고 / 誰能八百藏
참고로 중국에서는 고추(辣椒)도 천초(花椒)나 후추(胡椒) 못지 않는 약재로 취급한다. 이들 3종의 특성은 거의 대동소이한데 다음과 같이 원문을 소개한다. 그러니까 고추가 우리 자생종이라면 옥담선생의 약초류에 당연히 포함되거나 최소한 언급이 있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말한다.
고추(辣椒)
온중산한(温中散寒) 하기소식(下气消食)
위한기체(胃寒气滞) 완복창통(脘腹胀痛) 구토(呕吐) 사리(泻痢) 풍습통(风湿痛) 동창(冻疮)
산초(花椒)
온중지통(温中止痛) 살충지양(杀虫止痒)
완복냉통(脘腹冷痛) 구토설사(呕吐泄泻) 충적복통(虫积腹痛) 습진(湿疹) 음양(阴痒)
후추(胡椒)
온중산한(温中散寒) 하기(下气) 소담(消痰)
복통설사(腹痛泄泻) 식용부진(食欲不振) 전간담다(癫痫痰多)
이와 같이 순창고추장이야기라는 논문을 쓴 분들은 세계 어느 나라 식물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한중 양국에 아메리카산이 아닌 별도의 고추라는 종이 원래부터 있었다는 주장을 펴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분들의 노력 덕분에 고추에 관련한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한자리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높이 살만하며 고추장의 출현시기가 1766년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가 아니라 1720년의 소문사설(謏聞事說)로 앞당겨진다는 점 그리고 고추의 어원이 한자어 苦椒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순수 우리말 고쵸에서 왔다는 주장은 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서양의 다양한 고추 이름들
그럼 이제 서양에서는 고추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보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고추는 인류가 식용하는 5종을 통칭하는 광의의 고추가 있고 가장 널리 재배하는 학명 Capsicum annuum로 표기하는 특정 종을 지칭하는 협의의 고추가 있다. 한중일 3국에서는 식용하는 고추 전체를 통칭하기 위하여 각각 고추와 랄초(辣椒) 및 당신자(唐辛子)라고 한다. 서양에서도 나라마다 다르다. 우선 식용하는 고추속을 통칭하는 용어는 pepper 또는 보다 구체적으로 chili pepper라고 하거나 capsicum이라고 한다. 그 어원은 pepper의 경우 기존의 향신료인 후추에서 온 것이며 chili는 멕시코 중부 나와족이 쓰던 Nahuatl 즉 나와틀어로 부르던 이름 chilli에서 온 것이며 캡시컴(capsicum)은 물론 학명에서 온 것이다. 다만 pepper의 경우는 black pepper로 불리는 후추나 Sichuan pepper로 불리는 초피나무들과 혼동될 수 있으므로 chile pepper라고 불러야 전세계 어디서든 정확하게 통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Capsicum annuum인 협의의 고추 이름인데 전술한 바와 같이 고추는 다양한 색상과 모양 그리고 단맛에서부터 아주 매운맛까지 수많은 품종들이 전 세계에 수천 종이 재배되고 있으므로 나라마다 주로 재배하는 품종들이 동일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들을 부르는 이름 또한 다양하여 일정하지 않다. 일단 영국에서는 단맛은 sweet pepper이라고 하고 매운맛은 hot pepper 또는 chili pepper라고 하며 특별한 경우에만 그 품종명으로 부른다. 반면에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최대한 그 품종명으로 불러 준다. 우리나라서 마트에서 사과를 부사니 홍옥이니 홍로니 양광이니 하면서 품종명으로 부르면서 판매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면 짧은 종모양은 bell pepper로 부르며 길이 5~10cm의 중간 사이즈에 4,000~8,500 SHU인 적당하게 매운맛은 jalapeño(할라페뇨)라고 부르는데 이는 멕시코 베라크루즈주의 주도의 이름 Xalapa를 스페인어로 부르는 이름에서 온 것이다. 결국 멕시코 원산 품종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길이 10~25cm로 길쭉하고 30,000~50,000 SHU로 아주 매운맛을 내는 품종을 cayenne pepper라고 부르는데 이 cayenne는 브라질 원주민들이 고추를 부르던 이름 kyynha에서 온 것이다. 브라질 인근 프랑스령 기이나의 행정구역 Cayenne이나 독일 포르쉐의 준대형 SUV의 이름 카이엔도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그리고 bird's eye chili라는 품종이 있는데 이는 길이 4cm의 작은 아주 매운 고추로서 SHU가 무려 50,000~100,000에 달하는데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재배하기 때문에 Thai chili라고 불리며 국내서는 과거에 월남고추로 널리 불렸다. 참고로 고추의 맵기를 측정하는 척도로 SHU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Scoville heat units의 약자로 미국 화학자인 Wilbur Scoville(1865~1841)이 1912년 고안한 방법이다. 우리나라 롱그린 정도는 1,500 SHU에 불과하고 청양고추도 10,000 SHU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카이엔이나 월남(태국)고추가 얼마나 매운지를 알 수 있겠다. 중국에서는 SHU를 랄도(辣度)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서는 그냥 스코빌 또는 스코빌지수라고 말한다. 같은 영어권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캡시컴 즉 capsicum이라고 하는데 주로 크고 달삭한 품종들이다.
반면에 비 영어권인 독일과 헝가리에서는 고추를 파프리카 즉 paprika라고 하는데 이게 잘못 전달되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과육이 두툼하고 매운맛이 아닌 약간 단맛이 나는 적색 황색 자색 갈색 등 다양한 색상의 품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 헝가리 등에서는 길쭉하고 다양한 수준의 매운맛이 나는 품종을 파프리카라고 했다. 1831년 영어권에 처음 나타난 파프리카 즉 paprika의 어원을 살펴보면 헝가리어 paprika에서 왔으며 그 어원을 찾아 거슬러 가면 세르보-크로아티아와 라틴어를 지나 결국 산스크리트어 pippalī에 도달한다. 이는 결국 pepper와 같은 어원에서 출발하였다는 말이다. 따라서 파프리카는 결코 특정 모양이나 색상의 고추 품종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고 고추를 뜻하는 영어 pepper에 상응하는 헝가리어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 비영어권에서 점차 종모양의 bell pepper 품종들을 특별히 파프리카라고 부르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고추를 piment라 쓰고 피망이라고 발음한다. 그 어원은 안료 또는 향신료를 뜻하는 고대 라틴어 pigmentum에서 온 것이다. 이 또한 한일 양국에는 잘못 전달되어 종모양의 bell pepper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피망과 파프리카는 원래 다양한 모양과 맛을 가진 고추를 통칭하는 용어인데 이를 일본에서 짧막하고 통통하며 맵지 않는 bell pepper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자 우리도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가서 피망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피망과는 전혀 다른 일반 고추로 알아듣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가서는 각각 pimiento와 pimento로 불리면서 짧고 둥글며 매운맛이 적은 종모양의 bell pepper나 하트형의 cherry pepper를 지칭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에서 프랑스의 piment(피망)도 그런 모양의 고추를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에서는 고추를 말할 때는 aji 즉 아히라고 부른다. 반면에 프랑스에서 우리의 피망을 지칭할 때는 poivron(뿌아브롱)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나라마다 고추를 부르는 이름은 정말 복잡하고 헷갈린다.
고추의 분류 그룹
고추의 학명 Capsicum annuum의 유사학명으로 통합되어 이명처리된 학명이 무려 113개나 된다. 그러니까 과거에 식물학자들이 각각 독립된 종이나 최소한 변종이나 품종으로 학명을 부여하였던 100여 개의 학명을 통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만큼 다양한 특징을 가진 천차만별의 개체들이 모두 고추 하나에 통합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고추는 그야말로 방대한 형태와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을 다수의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그 대표적인 그룹 몇 개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천 개의 품종을 아래 5개의 그룹으로 분류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과거에는 모두 고추의 하위 변종으로 분류되었다가 이제는 통합된 것이다.
Cerasiforme group은 그 열매가 체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그룹으로서 cherry peppers라고 불린다. 이를 중국에서는 앵도초(樱桃椒)그룹이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가실군(榎実群, ホシ) 이라고 한다. 앵도는 체리를 뜻하고 호시(榎実)는 팽나무 열매를 뜻한다. 이 그룹은 대개 작은 체리형이라서 식용보다는 관상용이나 향신료용으로 재배한다.
Conoides group은 그 열매가 작고 끝이 뾰족하여 마치 콘같이 생겼다고 그런 의미의 그룹명이 붙었으며 영어로는 Cone Pepper라고 부른다. 아주 강한 매운맛이 나는 이 그룹을 중국에서는 사천지방에서 많이 재배하는데 열매가 위를 향하여 자란다고 조천초(朝天椒)그룹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열매의 끝이 뾰족한 데다가 약간 휘어져 있어 매의 발톱을 닮았다고 매발톱군(鷹の爪群)이라고 부른다.
Fasciculatum group은 열매가 다발로 달리기에 붙은 이름으로 Red cluster pepper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족생초(簇生椒)그룹으로 부르며 일본에서는 팔방군(八房群)이라고 부른다.
Longum group은 길쭉한 모양의 고추를 말하며 Long pepper 또는 Chili Pepper나 Hot Pepper로 불려 우리가 아는 고추가 대부분 이 그룹으로 분류된다. 중국에서는 이를 장랄초(长辣椒)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교토 후시미(伏見)구에서 최초로 재배하였다고 복견군(伏見群)이라고 하거나 그냥 Long pepper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jalapeño나 cayenne 같은 품종이나 우리나라의 청양(靑陽)이나 롱그린 같은 품종은 이 그룹으로 분류된다.
Grossum group은 열매가 크고 통통하기에 붙은 그룹 이름으로서 영어로는 bell pepper나 green pepper 또는 sweet pepper로 불린다. 대부분 매운맛보다는 단맛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를 중국에서는 달다고 첨초(甜椒) 채소로 쓴다고 채초(菜椒)라 하거나 그 모양이 등같이 생겼다고 등롱초(灯笼椒)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대과군(大果群)이라고 하거나 푸른 상태로 수확한다고 청과군(青果群)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국내서 파프리카나 피망으로 부르는 품종들은 바로 이 그룹으로 분류된다.
고추의 매운맛의 척도인 스코빌지수 SHU
그럼 이제 고추의 매운맛의 정도에 대하여 알아보자. 중국에서는 동주 전국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황제내경 영추(黄帝内经·灵枢)에서부터 산(酸) 즉 신맛과 고(苦) 즉 쓴맛 감(甘) 즉 단맛 그리고 신(辛) 즉 매운맛과 함(咸) 즉 짠맛을 오미(五味)라고 칭했다. 중국 최초의 의학이론서에서 오미(五味)를 언급한 이유는 약의 맛에 따라서 그 작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초창기 중국에서는 매운맛은 16세기 후반에 도입된 고추는 물론 기원전 1~2세기에 도입된 후추도 아닌 생강이나 마늘 부추 또는 파나 산초 및 겨자 등의 맛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고추의 경우 매운맛을 측정하는 기준을 미국 약사이자 대학 교수였던 Wilbur Scoville(1865~1841)가 발명한 스코빌 척도(Scoville scale)를 많이 쓴다. 전혀 맵지 않은 0에서부터 순수 켑사이신의 1,500만~1600만까지 수치로 나타내는데 이를 Scoville heat units라고 SHU라고 쓴다. 중국에서는 이를 맵기의 정도라고 랄도(辣度)라고 하지만 우리는 두음법칙에 따라서 날도(辣度)라고 하거나 아니면 신도(辛度)라고 하면 적당하겠지만 아직은 그냥 스코빌지수라고 한다. 이 수치는 고추나 후추의 매운맛에는 적용 가능하여도 마늘이나 겨자의 매운맛에서는 측정할 수 없다는 한계성이 있다고 한다.
하여튼 이 지수로 볼 때 우리나라의 청양고추는 겨우 1만 SHU내외이므로 중하위 맵기에 불과하며 인도와 중국에서 많이 재배하는 Cayenne의 경우는 3~5만에 이르며 태국고추라고 불리는 Bird's Eye는 5~10만 SHU에 달한다.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고추인 Chiltepin pepper는 10~20만에 달하여 매우 높다.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고추도 많으며 우리나라의 롱그린은 1.5천 SHU에 불과하고 미국에서 많이 소비되는 Jalapeño는 2.5~8천 SHU로 적당한 수준이다. 그리고 고추와는 종이 다른 중국고추 즉 Capsicum chinense의 경우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가 나온다. 하바네로 즉 Habanero라는 품종은 10~35만 SHU로 극강이지만 비슷하게 생긴 Ají Dulce의 경우는 전혀 맵지 않다. 미국의 Carolina reaper나 남미의 Trinidad moruga scorpion 등은 200만을 넘어 그냥 독초라고 알고 있으면 될 듯하고 그 중에서 현 세계 챔피언은 미국의 PepperX인데 무려 269만 SHU라고 한다. 이게 모두 중국고추의 품종들이다. 먹으면 극심한 복부 경련과 속쓰림이 온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그칠까 싶다. 고추는 풋고추와 건고추로 갈라져 전세계 생산량의 거의 대부분을 중국과 인도 베트남에서 생산하는데 건고추는 인도가 풋고추는 중국이 최대생산국이라고 한다. 건고추는 2022년 기준 전 세계 약 4,909만톤을 생산하며 우리나라는 6~7만톤으로서 미미한 편이며 그 이상의 물량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여 사용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고추가 일본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으며 일본에는 고추와 관련된 많은 정보가 있지만 실제로 일본인들은 고추를 거의 소비하지 않아서 일본에 여행가면 식당에서 고추는 물론 고추가루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대신에 시치미(七味)라고 7종의 향신료를 혼합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시치미의 성분은 생산자마다 다르지만 대개 고추(唐辛子)와 생강(白薑) 자소엽(紫蘇) 산초(山椒) 감귤(陳皮) 참깨(胡麻) 그리고 삼씨(麻種) 등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은 고추를 연간 겨우 1~2만톤을 소비하는데 그나마도 90%를 수입에 의존한다.
캡사이신 소스
고추는 17백만 년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 존재하였으며 인간이 그 매운 맛을 활용한 것은 기원전 7,500년 전이며 재배하기 시작한 것도 최소한 기원전 4,000년부터라고 한다. 건고추와 풋고추로 주로 활용하지만 다른 재료들과 섞어서 소스로도 만들어 먹는데 그게 국내서는 캡사이신 소스라고 하며 해외에서는 그냥 hot sauce라고 부른다. 이런 소스 형태는 1807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1800년대에 등장한 브랜드 중에서 아직까지 건재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타바스코(Tabasco)라고 한다. 캡사이신(Capsaicin)은 원래 방향족 화합물로 고추 등에 다량 존재하는 알칼로이드 물질을 말하는데 그 순수 원액은 1,500만~1600만 SHU이지만 타바스코의 소스는 매운 맛이 거의 없는 스위트 소스에서부터 33,000 SHU인 가장 매운 스콜피온 소스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타바스코는 원래 멕시코 남동부 주의 이름인데 이 지역에서 나는 30,000~50,000 SHU인 아주 매운 고추의 품종명이기도 하다. 이 품종은 고추가 아닌 작은 열매가 모여서 위로 향하여 달리는 나무고추 즉 Capsicum frutescens의 품종 중 하나이다. 주로 이 고추로 소스를 만들기에 Tabasco sauce라고 부르는 것이다. 국내서 제조하는 캡사이신의 스코빌 지수는 공개하지는 않지만 대개 6~7천대라고 하므로 거의 청양고추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청양고추
청양(靑陽)고추는 한국에서 재배되는 고추 중 가장 매운 고추 품종 중 하나이다. 1983년 중앙종묘의 유일웅박사에 의해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교잡시켜서 개발되었으며 경북 청송과 영양군에서 고추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3년간 연구 및 시험재배를 하였기에 청양고추라는 이름을 붙였다. 청양고추의 매운 정도는 4000~1만2000 SHU에 이른다. 산지에서는 주로 땡초로 불리지만 전국에서 청양고추로 널리 불리게 되자 충청도 청양군에서 자기들 품종이라는 주장이 있어 한때 논쟁이 있었으나 특허권을 가진 중앙종묘에서 경북 청송과 영양이라고 명확하게 밝혀 일단락 되었다.
피망과 파프리카
전술한 바와 같이 고추를 지칭하는 프랑스어와 헝가리어인데 최근에는 일본과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맵지 않고 피육이 두툼하고 컬러풀한 품종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원래의 실체가 어느 한 품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둘의 특징 정의나 둘의 차이점 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이런 유형의 품종을 영어로는 Sweet pepper나 Bell pepper라고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poivron(뿌아브롱)이라고 하며 이탈리아에서는 peperone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채초(菜椒)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원어 그대로 ピーマン(피만)과 パプリカ(파프리카)라고 한다.
등록명 : 고추
옛이름 : 남만초 번초 외겨자 왜초 고초
학 명 : Capsicum annuum L.
분 류 : 가지과 고추속 일년생 초본 또는 다년생 아관목
원산지 : 멕시코 등 남북 아메리카
영어명 : chili pepper
중국명 : 날초(辣椒)
일본명 : 토우카라시(唐辛子)
프랑스 : 피망
독일명 : 파프리카
스페인 : 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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