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매화시를 가장 많이 남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2~1571)선생의 매화시 중 백미라는 도산월야영매라는 시이다. 도산서원에 핀 매화와 하늘에 뜬 달 그리고 퇴계 자신이 하나가 된 모습이다. 중국의 많은 매화시나 고려말 또는 조선초 매화시와는 달리 퇴계의 매화시에는 정치적인 색채는 없다. 퇴계에게 매화는 견정불굴(堅貞不屈)의 의지를 가진 고결지사(高洁志士)라기보다는 세속의 띠끌이 없는 순수함과 아름답고 격조 높은 운치를 가진 사려 깊은 벗이자 스승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매화시를 남긴 문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매화를 꽃나무 그 자체로 보거나 중국의 도연명이나 임포와 같은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그에게 자연의 일부로서 풍류의 대상이거나 인격을 부여하여 수시로 교감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여타 시인들이 읊은 매화는 한겨울인 음력 정초에 눈과 얼음을 뚫고서 꽃을 피우는 그야말로 설중매(雪中梅)라야 제격이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관념적인 매화이었다면 퇴계의 매화는 여느 봄꽃나무들과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 이른 빨라야 음력 2월에 피는 현실 속의 매화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퇴계는 우리나라 최고의 성리학자이지만 매화 재배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원예가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과거 우리나라 천 원권 지폐에 앞면 퇴계의 초상화 옆에 도안된 꽃이 바로 매화이다.
陶山月夜詠梅 (도산월야영매) –이황(李滉)
步屧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梅邊行繞幾回巡(매변행요기회순)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香滿衣布影滿身(향만의포영만신)
뜨락 거니노라니 달이 날 따라와서
매화꽃 언저리 돌고 또 돌았다네.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설 줄 몰랐더니
옷 가득 향기서리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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