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벚나무가 없던 과거 중국에서 살구나무는 그 개화시기가 매화와 복사꽃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특히 고향의 조상들 묘소를 찾게 되는 명절인 청명절에 피는 꽃이므로 고향의 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된다. 게다가 중국에는 살구나무와 얽힌 좋은 의미의 용어들이 많다. 앞에서 본 두목(杜牧)의 청명(淸明)이라는 시 덕분에 중국에서 주막을 뜻하는 행화촌(杏花村)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공자가 살구나무 단에서 강의를 하고 거문고를 연주하였다고 강단(講壇)을 뜻하는 행단(杏壇)이라는 용어가 있으며 청명절 즈음에 내리는 봄비를 행화우(杏花雨)라고 하며 의술이 고명한 의원을 행림(杏林)이라고 한다. 행림은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 오나라에 살던 동봉(董奉, 220~280)이라는 의원이 평소 진료비를 살구나무로 받아서 주변에 심어 급기야 10만 그루 이상의 거대한 살구나무 숲 즉 행림(杏林)을 조성하였는데 나중에 대흉년이 들자 그 나무에서 수확한 살구를 곡식과 교환하여 빈민 수만 명을 구제하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이후 행림(杏林)이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행림시조(杏林始祖)로 불리는 동봉(董奉)은 의술도 매우 뛰어나 그 당시 관운장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한 화타(华佗)와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을 저술한 장중경(张仲景)과 더불어 건안 3신의(建安三神医)로 불린다. 건안(建安)은 후한 헌제의 세 번째 연호이다. 그러니까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의 3대 신의(神醫) 중 한 명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고 행림춘연(杏林春燕)이라는 말도 매우 많이 사용된다. 중국의 고서화나 도자기 등에 살구꽃과 제비가 묘사된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제목을 거의 모두 행림춘연(杏林春燕)이라고 하며 버드나무가 추가되는 경우에는 도류사연(桃柳賜宴)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당나라 때 살구꽃이 필 무렵 과거를 시행하였고 진사과 급제자들을 장안성에서 유원지로 유명한 곡강(曲江)에 있는 행원(杏园)에서 주로 황제가 연회를 베풀었기 때문에 생겨난 용어이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행림(杏林)은 의원이라는 뜻은 아니고 말 그대로 살구나무 숲을 말한다. 연회의 宴(연)이 제비의 燕(연)과 발음이 같으므로 예술품에 등장하는 제비를 연회(宴會)의 의미로 받아들이며 청명절에 새잎이 아름답게 나오는 수양버들의 늘어진 가지와 잎을 추가할 경우에는 도류(桃柳)라고 하며 황제가 베푸는 연회라고 사연(賜宴)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사꽃이 살구꽃보다는 약간 늦게 피지만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수양버들이 추가되는 이유는 그 시기에 24번 화신풍의 양류풍(楊柳風)이 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唐詩) 중에 곡강홍행(曲江红杏)이나 등제후한식행원유연(登第后寒食杏园有宴)이라는 제목의 시도 남아 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행화(杏花)를 중국에서는 별명으로 급제화(及第花)라고도 부르게 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시 곡강홍행(曲江红杏)의 女郎折得殷勤看(여랑절득은근간) 道是春风及第花(도시춘풍급제화)라는 구절에서 급제화(及第花)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소녀가 붉은 살구꽃 가지를 꺾어 들고서 (기쁜 얼굴로) 은근히 바라보는데 이는 (낭군의) 급제 소식(春風)을 고대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이 하사하는 관모 장식용으로 종이로 만든 어사화의 유래가 살구꽃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글쎄 살구꽃이 중국에서 급제화라고도 불리므로 취지는 공감이 가지만 실제 우리나라 어사화인 종이꽃의 모양으로만 봤을 때는 살구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하튼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가객 김수장이 그의 시조 “모란은 화중왕이요.”에서 행화소인(杏花小人)이라고 한 것이 엉뚱하게만 들린다. 살구꽃은 부귀길상의 상징으로 급제화로도 불리며 어사화의 취지에 가장 어울리는 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나라 시인 정곡(郑谷, 851~910)이 쓴 바로 그 곡강홍행(曲江红杏)이라는 제목의 시를 소개한다.
曲江红杏(곡강홍행) - 郑谷(정곡)
遮莫江头柳色遮(차막강두류색차)
日浓莺睡一枝斜(일농앵수일지사)。
女郎折得殷勤看(여랑절득은근간)
道是春风及第花(도시춘풍급제화)。
강기슭 푸른 버들도 다 가리지 못하고
봄볕에 꾀꼬리 가지 위에서 졸고 있네
소녀는 가지를 꺾어 은근히 바라보네
이게 바로 봄바람에 실려 온 급제화이리라.
이 시에는 구마다 제목에 들어 있는 홍행(紅杏) 즉 붉은 살구나무 또는 붉은 살구꽃이 생략되어 있으므로 해석할 때는 중간중간에 삽입하여야 의미가 잘 통한다.
강기슭 푸른 버들도 (홍행을) 다 가리지 못하고
봄볕에 꾀꼬리 (홍행)가지 위에서 졸고 있네
소녀는 (홍행)가지를 꺾어 은근히 바라보네
이 (홍행)이 바로 봄바람에 실려 온 급제화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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