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중국에서 살구꽃이 항상 좋은 의미로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살구나무 즉 행(杏)을 풍류수(風流樹)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풍류란 멋스럽고 풍치가 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색정적(色情的)이라는 뜻으로 결국 에로틱(erotic) 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20세기 초반에 에로틱하다는 뜻으로도 쓰기 시작하여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도색(桃色)이라는 개념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행색(杏色)을 그런 색정적인 의미로 쓰지는 않고 단지 살구나무 즉 행수(杏樹)를 풍류수(风流树)라고 하며 홍행출장(红杏出墙) 즉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는 붉은 살구꽃을 유부녀가 외도를 하는 것이라는 의미 정도로 쓴다. 이는 하루 아침에 누가 말한 것이 아니고 과거 당송시대부터 시인들이 노래한 시구를 후대인 명청시대에 와서 다소 부풀려서 해석하고 덧붙여서 그런 의미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만당 시인인 설능(薛能, 817~880)의 아래와 같은 행화(杏花)라는 시를 살구나무의 이미지를 처음 훼손한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그 시에서 살구꽃을 웃음을 파는 창기(娼妓)에 비유하였다는 것이다. 설능(薛能)이 꽃놀이 나온 기생들이 살구꽃을 마구 꺾어 청루로 가져가자 금새 시들어 막 버리고서도 끊임없는 웃음으로 접대하는 모습을 보고서 곧 나이 들어 젊음이 사라지면 잊혀질 청루녀 자기들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서 동정하여 읊은 시인데 이걸 살구꽃의 격하라고 할 수 있겠나 싶다. 여하튼 설능의 행화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杏花(행화) - 薛能(설능)
活色生香第一流(활색생향제일류)
手中移得近青楼(수중이득근청루)
谁知艳性终相负(수지염성종상부)
乱向春风笑不休(난향춘풍소불휴)
색상과 향기 단연 으뜸이로구나
꺾어 들고 청루로 가져 갔으나
누가 알았으랴 시들고 만다는 것을
살랑대는 봄바람에도 쉬지 않고 웃네
그리고 송나라 시인 엽소옹(叶绍翁, 1194~1269)이 그다지 나쁜 의미로 쓴 것이 아닌 유원불치(游园不值)라는 시도 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살구나무의 이미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유원지에 갔다가 봄을 맞아 새로 돋아나는 이끼나 새싹이 망가질까 봐 함부로 다니지도 못하고 문이 잠긴 정원도 있어 실망스럽다가 담장 넘어 온 살구나무 가지에서 핀 붉은 살구꽃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읊은 시인데 후세인들이 이 시에 표현된 홍행출장(红杏出墙)이라는 용어를 유부녀가 외도를 한다라는 뜻으로 왜곡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명말 청초의 희곡작가 이어(李渔, 1610~1680)라는 사람은 열매가 잘 열리지 않는 살구나무에 처녀 치마를 걸어두면 열매가 잘 맺힌다는 속설을 실제로 입증했다고 하면서 그의 저서 한정우기(闲情偶记)에서 “수성음자(树性淫者) 막과우행(莫过于杏)”이라고 “나무 중에서 음탕하기로는 살구나무 이상은 없다.”라고 단언하여 살구나무를 부귀길상(富貴吉祥)이나 급제화(及第花) 등 과거의 좋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나무로 전락시켜 버렸다. 일단 여기서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엽소옹의 시 유원불치를 소개한다. 참고로 나막신은 일본인들만 신던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 전반에서 널리 사용하던 나무 신발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목극(木屐)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목 유원불치(游园不值)는 꽃놀이 하러 놀이공원에 갔으나 헛걸음 했다는 의미이다.


游园不值(유원불치) - 叶绍翁(엽소옹)
应怜屐齿印苍苔(응련극치인창태)
小扣柴扉久不开(소고시비구불개)
春色满园关不住(춘색만원관부주)
一枝红杏出墙来(일지홍행출장래)
행여 나막신에 푸른 이끼가 밟힐까 봐
사립문을 두드려도 끝내 열리지 않네
봄기운 가득차 다 가둘 수는 없었는지
붉은 살구 한 가지 담장 넘어 나오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국에서는 이미 명나라 말기부터 이런 조짐이 보였는데도 우리 선조들은 여기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일본 영화평론가가 쓴 도색(桃色)이라는 용어는 쉽게 수용한 셈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살구나무를 당도(唐桃)라고 하므로 혹시 일본의 쓰무라히데오(津村秀夫)가 중국의 이런 살구나무 비하를 염두에 두고서 한 말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의 살구나무 비하는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점잖게 풍류수(風流樹)라고 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일본의 도색 즉 모모이로(ももいろ)는 보다 노골적으로 외설(猥褻) 즉 포르노에 가깝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원래 복숭아꽃에 그런 외설적인 이미지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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