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과 관련된 우리 선조들의 시 중에서 시기적 순서에 의하여 다음으로 소개할 시가 바로 우리 국민들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만고의 명시조 다정가(多情歌)이다. 한글로 쓰여진 “이화에 월백하고~”에 익숙하여서 그런지 이 작품이 이렇게 이른 시기에 쓰여진 작품일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작가 이조년(李兆年, 1269~1343)선생은 고려 24대 원종에서부터 28대 충혜왕시대까지 살았던 문신이다. 고려 마지막 공양왕이 34대인 점으로 봐서는 완전히 고려 말기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가장 이른 시기에 이화 관련 시를 남긴 이규보선생에 비하여 겨우 100년 늦게 태어나신 분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 시조문학의 역사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 작품은 우탁(禹倬, 1262~1342)선생의 ‘석양에 홀로 서서’와 이조년선생의 다정가로 보는 것 같다.
그런데 한글이 창제되어 반포된 년도가 1446년이니까 무려 백여 년 전에 한글이 없던 시절 우리말로 된 그 시조를 무슨 수로 기록하여 지금까지 전해왔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그래서 당초에는 한시로 지어졌는데 나중에 누군가 한글 시조로 번안하고 그 한글 시조를 김천택(金天澤, 1680~?)선생이 1728년 엮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다. 아니라면 당초 우리말 시조로 창작하여 대대로 구전되어 왔고 한편으로는 그 내용을 한자로 번역한 한시가 보충적으로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고려 후기 문신인 이조년(李兆年, 1269~1343) 작품이라고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는 다음과 같다. 고어를 그대로 타이핑할 수가 없어서 현대어로 몇 자 고쳐서 올린다. 이 시조의 제목 다정가(多情歌)는 당초에는 없었는데 후세인들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지금도 특히 저녁 무렵 배꽃만 보면 생각나는 시조이다.
다정가(多情歌) – 이조년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졔
一枝 春心을 子規야 알아마는
多情도 病인양하야 잠못드러 하노라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 잠못 이뤄 하노라
다음은 정조(正祖) 때 문신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의 문집인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소악부(小樂府)에 실려 있다는 이조년 다정가의 한시(漢詩) 버전이다. 우리말 시조는 3행이지만 한역(漢譯)판인지 아니면 이게 원본(原本)인지는 모르지만 이 한시는 7언절구(七言絕句)인 4행시로 되어 있다.
多情歌(다정가) – 이조년
梨花月白三更天(이화월백삼경천)
啼血聲聲怨杜鵑(제혈성성원두견)
儘覺多情原是病(진각다정원시병)
不關人事不成眠(불관인사불성면)
달 빛 아래 배꽃이 하얗게 피는 삼경에
원통한 두견새는 피를 토하며 울고 있네
다정이 병인 줄은 항상 깨닫고 있었지만
세상사 무관하게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이렇게 글자 그대로 어설프게 번역하고 보니 만약 이 한시(漢詩)가 원본이라면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올려진 시조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재창작 된 한글 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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