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문신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선생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천수사문(天壽寺門)이라는 시이다. 이규보선생은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 기재(奇才)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자유분망하여 형식적인 과거문을 멸시하여 연속 과거에 낙방하다가 나중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나 관직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낙심하고 24세에 개경 북쪽에 있는 천마산에 들어가 장자(莊子)에 관심을 보이며 시문이나 지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아마 그 때 식물과 접할 기회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식물 관련 시들도 그때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생활고 문제도 있고 감투에 대한 욕심이 있어 관직을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32세 때 무신정권의 실권자 최충헌을 칭송하는 시를 지어 바쳐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이다. 비록 그가 재물 욕심이 없어서 이권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무신정권을 찬양한 것으로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저술한 동명왕편 등이 수록된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은 우리에게 과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규보는 유난히 식물애호가였던 것 같다. 황매화를 지당화(地棠花)라면서 거의 마니아 수준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번에는 배꽃에 대한 사랑도 만만치 않아 여러 수의 시를 남겼다. 아래 시에서는 이별을 운운하고 있는데 이는 당나라 대시인들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와 원진(元稹, 779~831)이 강가에서 핀 배꽃을 주제로 한 이별시를 서로 주고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천수사는 개성 동쪽에 있던 사찰이다. 고전번역원 김철희선생의 한역을 그대로 옮긴다.
天壽寺門(천수사문) – 이규보, 김철희역
連天草色碧煙翻(연천초색벽연번)
滿地梨花白雪繁(만지이화백설번)
此是年年離別處(차시년년이별처)
不因送客亦銷魂(불인송색역소혼)
하늘에 닿는 풀빛 푸른 연기 뒤치는 듯
땅에 가득 찬 배꽃 흰 눈처럼 피었구나
여기는 해마다 이별하는 곳이라
손님 보내지 않을 때도 넋이 나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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