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시(詩)/漢詩(한시)

春风(춘풍) - 白居易(백거이), 앵행도리(櫻杏桃梨)

낙은재 2025. 4. 15. 20:12

 

 

 

春风(춘풍) - 白居易(백거이)

 

春风先发苑中梅(춘풍선발원중매)

樱杏桃梨次第开(앵행도리차제개)。

荠花榆荚深村里(제화유협심촌리)

亦道春风为我来(역도춘풍위아래)

 

봄바람 불어와 정원의 매화가 먼저 피고

앵도와 살구꽃 복사꽃 배꽃이 차례로 핀다

깊은 산골 마을의 냉이꽃과 느릅열매도

봄바람이 나에게도 불어온다고 말하네요.

 

이 시는 당 문종 대화 5년 즉 831년에 지은 것으로 당시 59세인 백거이는 낙양에서 하남윤을 지내고 있었다. 여기서 荠花(제화)는 냉이꽃을 말하고 榆荚(유협)은 느릅나무 열매를 말한다. 정원에서 가꾸는 아름다운 꽃이든 산골 마을 들판에서 저절로 자라는 들꽃이든 봄바람은 공평하게 대하여 특별히 어느 쪽을 더 후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통치자에게 인재를 골고루 중용하고 편애하지 말라는 바람을 담아 이 시를 썼다고 한다.

 

 

荠花(제화)와 榆荚(유협)

 

 

여기서 그의 정치적인 의도는 논외로 하고 관심사는 그가 처음으로 사용한 앵행도리(櫻杏桃梨)라는 용어이다. 행앵도리(櫻杏桃梨)는 벚나무와 살구나무 복사나무 배나무를 말하며 백낙천은 봄에 꽃이 피는 순서대로 나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살구가 벚꽃과 거의 동시이거나 오히려 약간 일찍 피기에 위 순서와는 다를 수가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앵(櫻) 특히 왕벚나무가 없던 백낙천 시대의 앵(櫻)은 거의 중국앵도 즉 중국 체리나무를 말한다. 이 수종은 살구보다 일찍 피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에는 1월에 꽃이 피는 벚나무 종류들도 더러 있다. 그래서 월등하게 먼저 피는 매화(梅)를 제외하면 앵행도리라고 불러야 봄꽃의 개화순서에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배나무 대신에 자두나무를 포함한 앵행도리(櫻杏桃李)라고 하는 것은 오류라는 말인가? 아니다. 이는 장미과 벚나무속 즉 Prunus속의 대표적인 수종들을 언급하기 위하여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앵행도리(櫻杏桃李)는 모두 하나의 속으로 분류되는 근연종들이지만 앵행도리(櫻杏桃梨)는 별도의 속으로 분류되는 Pynus속 배나무가 포함되어 있어 식물분류학상 그 범위가 넓어지는 차이점이 있다.  

 

일본의 경우는 살구나무와 배나무를 빼고 매화와 자두나무를 추가하여 주로 앵매도리(桜梅桃李)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이는 가마쿠라(1185~1333)시대 불교 일련정종을 창시한 승려 일련(日蓮, 1222~1282)이 써서 널리 알려진 말이라고 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앵행도리(櫻杏桃梨)나 앵행도리(櫻杏桃李) 둘 다 거의 쓰지 않았다. 다만 도리(桃李)라는 말은 매우 빈번하게 사용하였는데 이 용어는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의 사기에서 나오는 "桃李不言(도리불언) 下自成蹊(하자성혜)"에 근거한다.  그 뜻은 “도리화는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감상하러 몰려들어 저절로 나무 아래 길이 생긴다.”라는 의미이다. 사마천은 스스로 잘난 척하지 않아도 남이 먼저 알아주는 전한(前漢) 중기의 명장 이광(李廣, ? ~ 119 BC)을 도리(桃李)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앵행도리(櫻杏桃梨) 외에도 봄꽃나무를 표현할 때 도리행앵(桃李杏櫻)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이 용어는 특별한 출전에서 유래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꽃의 순서가 아닌가 한다. 이(李)씨가 워낙 많은 중국인들의 자두꽃 사랑은 각별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자두나무는 결코 무시당할 수종은 아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자두나무 품종도 많다. 실제로 국내서 자두꽃축제가 배꽃축제에 비하여 결코 관심이 적지 않다. 그리고 요즘 자두와 매화의 교잡종인 미인매(美人梅)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필자로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결론은 백거이의 춘풍(春風)이라는 시를 근거로 앵행도리(櫻杏桃梨)가 옳고 앵행도리(櫻杏桃李)는 잘못된 용어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춘풍은 백낙천과 배꽃에만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자두꽃에도 공평하게 불어오기 때문이다.

 

이광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