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인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영평의 객관에 묵으면서 앞의 운을 사용하여 신어사에게 부치고 겸하여 이사군에게 적어 부치다.(宿永平客館用前韻寄申御史兼簡李使君)라는 매우 길고도 어려운 제목의 시이지만 내용은 7언절구로 짧다. 영평(永平)은 경기도 북부에 있던 현 이름이며 지금의 포천시에 해당한다. 지금도 그 지역을 흐르는 하천의 이름을 영평천이라고 한다. 그의 호 사가정 또한 영평천 인근의 지명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 서울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은 바로 그 지역에서 옛날 서거정선생이 살았기에 붙인 이름이다. 신어사(申御史)와 이사군(李使君)은 사람을 직책을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 시는 고려시대 이조년의 다정가를 패러디한 작품이 분명해 보인다.
서거정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권근의 외손자로서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 이후 공직에 나아가 이조판서 병조판서와 좌찬성을 역임한 관료이지만 학문이 뛰어나 조선초에 국가에서 펴낸 동국통감(東國通鑑)과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동문선(東文選) 경국대전(經國大典) 및 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 등 각종 중요한 서책의 편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학자이다. 특히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꽃사과나무들을 지칭하는 해당(海棠)이라는 명칭이 엉뚱하게 중국에서 매괴(玫瑰)라고 부르는 장미과 관목이 차지하자 매괴가 해당화라는 이름을 훔쳐갔다고까지 표현하면서 아쉬워하여 다음과 같은 표현을 남긴 분이다. 玫瑰名竊海棠花(매괴명절해당화) 肉眼紛紛奈汝何(육안분분내여하) 즉 “매괴가 해당화란 이름을 훔친 것 때문에 식견 없는 이들이 말도 많아라 너를 어찌 할거냐”.
宿永平客館用前韻寄申御史兼簡李使君(숙영평객관용전운기신어사겸간이사군) - 서거정(徐居正), 임정기역
梨花如雪月如銀(이화여설월여은)
空舘無人更憶君(공관무입경억군)
過盡春宵渾不寐(과진춘소혼불매)
子規啼破滿山雲(자규제파만산운)
배꽃은 눈빛 같고 달빛은 은빛 같은데
빈 객사에 사람 없어 또 그대가 생각나네
봄 밤이 다 지새도록 전혀 잠 못 이룰 제
두견새는 산 가득한 구름을 울어 부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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