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시(詩)/漢詩(한시)

折花行(절화행) - 이규보(李奎報)

낙은재 2025. 4. 26. 07:54

모란

 

 

다양한 식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시를 많이 남긴 시인으로 중국에 백거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도 식물에 관심에 많았던 고려시대 대표적인 문인이자 관료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9~1241)선생이 있다. 선생은 특히 모란을 무척 사랑하여 모란 관련 시를 많이 남겼는데 그 중 절화행(折花行)을 소개한다. 매우 흥미로운 대화 형식의 독특한 시이다. 여기서 檀郎(단랑)은 과거 중국에서 미남자를 칭하던 용어로서 여자들이 사위나 사랑하는 남자를 부르는 존칭으로 썼다. 이는 중국 역사상 미남자의 상징인 서진 문학가 반안(潘安, 247~300)의 어릴 때의 이름이 단랑(檀郎)이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있는 중국의 미남자 난릉왕(兰陵王) 고장공(高长恭)보다 더 잘생긴 미남자라는 말이다. 단랑(檀郎)은 나중에 부군(夫君)이나 정인(情郞)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道(도)는 길이나 도덕을 뜻하지만 동사일 때는 말하다 또는 ~라고 생각하다 등으로 풀이된다.

 

우리문화신문의 이동식 인문탐험가의 확인에 의하면 이 시 절화행(折花行)은 나중에 중국 명대 유명한 화가이자 시인인 당인(唐寅, 1470~1523)에 의하여 제염화미소도(题拈花微笑图)라는 제목의 화제시(题画诗)로 리메이크 되기도 한다. 그만큼 소재나 방식이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선조들만 중국 유명 시인들 시의 내용이나 형식을 활용하여 개편(改编)한 것이 아니라 중국 문인들도 우리나라 유명시인들의 작품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끔 중국 사신들이 와서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음미하면서 감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냥 의례적인 찬사는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折花行(절화행) - 이규보(李奎報)

 

牡丹含露眞珠顆(모란함로진주과) 

美人折得窓前過(미인절득창전과) 

진주알 같은 이슬을 머금은 모란을

꺾어든 여인이 창 앞을 지나가면서  

 

含笑問檀郞(함소문단랑) 

花强妾貌强(화강첩모강)

檀郞故相戱(단랑고상희) 

强道花枝好(강도화지호) 

美人妬花勝(미인투화승) 

踏破花枝道(답파화지도) 

花若勝於妾(화약승어첩)

今宵花同宿(금소화동숙) 

 

미소를 띠며 정인에게 묻는다.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정인이 장난끼를 되받아 

"꽃이 그대보다 더 예쁘구려." 

여인은 그 말을 듣고 토라져서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꽃이 나보다 더 예쁘거든 

"오늘밤은 꽃과 동침하시구려."

 

 

 

 

 

참고로 명나라 당인(唐寅)이 리메이크한 시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는 모란이 아니라 해당화로 꽃이 바뀌었고 단랑(檀郎)이 그냥 랑(郎)으로 바뀌었다. 중국에서는 꽤 알려진 시인데 그 원문만 소개한다. 물론 이규보선생의 절화행을 개편(改編)한 작품이란 것을 모른 채 말이다. 뭐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던 그 당시로서는 개편작 정도는 일반적인 것이었으므로 큰 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하기야 중국은 지금도 표절(剽窃)에는 너그럽지 않은가?

 

题拈花微笑图(제염화미소도) - 唐寅(당인)

 

昨夜海棠初着雨,数朵轻盈娇欲语。

佳人晓起出兰房,折来对镜比红妆。

问郎花好奴颜好,郎道不如花窈窕。

佳人见语发娇嗔,不信死花胜活人。

将花揉碎掷郎前,请郎今夜伴花眠。

 

해당화의 대표격인 수사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