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雪-
이렇게 추운 겨울이 와서야 송백(松柏)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미국 원산 떡갈잎수국은 원산지에서 oakleaf hydrangea라고 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oak를 떡갈나무로 봐서 떡갈잎수국이라고 부른다. 원래 영어권에서 oak는 특정수종이라기 보다는 참나무속 전체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를 떡갈나무라고 참나무속 특정수종에 국한시켜 부르는 것은 일본에서 카시와바아지사이(カシワバアジサイ)라고 하는 것을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카시와(カシワ)는 떡갈나무이고 바(バ)는 잎이며 아지사이(アジサイ)는 수국이다. 우리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그 수종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적절한 이름이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떡갈잎수국을 백엽자양화(柏葉紫陽花)라고 한자로 쓴다는 것에 관심이 간다. 그럼 일본에서는 柏(백)이 떡갈나무를 뜻하는 글자라는 말인가? 중국에서 측백나무를 뜻하는 한자 柏(백)이 우리나라에서 엉뚱하게 주로 잣나무를 지칭하는 글자로 둔갑한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일본에서는 또 다른 나무를 지칭하는 글자로 쓰이고 있다니 정말 흥미롭다. 그래서 한중일 3국이 같은 글자를 쓰지만 그 뜻이 각기 다른 이 柏(백) 자(字)를 탐구해 본다.
우선 이 백(柏)은 논어 자한(子罕)편에서 공자의 말씀으로 등장한 이래 송(松)과 더불어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오랫동안 선비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 구절의 원문은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이다. 논어를 더 이상 암송하지 않는 요즘 세대에 와서도 조선 후기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와 그 발문(跋文)에 이 문구가 등장하므로 여전히 국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 뜻은 '추운 겨울이 온 다음에야 송백(松柏)이 시들지 않고 꿋꿋하게 푸르름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는 것이다. 즉 '좋은 시절에는 분간하기 어렵지만 어려움이 닥쳐야 진정한 친구 또는 군자나 충신이 누구인지 드러난다.'라는 뜻이다. 서양속담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이야기이다.
세한도 <출처 : 동아일보>
제주 대정향교(오른 쪽 아래)를 배경으로 그린 것 같다는 동아일보의 2011년 기사이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은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그 공자님 말씀의 해석이 아니라 과연 공자가 말한 송백(松柏)이 무슨 나무이냐는 것이다. 우선 중국에서는 위 문구의 송백(松柏)이 송수(松树)와 백수(柏树)를 말하는 것이라고 풀이를 하며 坚贞的洁操(견정적결조) 즉 곧고 고결한 지조 또는 坚贞不屈的英雄气概(견정불굴적 영웅기개) 즉 꺾이지 않는 굳센 영웅적 기개를 비유한다고 풀이한다. 이를 아예 세한송백(岁寒松柏)이라고 하며 在艰苦困难的条件下节操高尚的人(재 간고곤란적 조건하 절조고상적 인) 즉 어려운 환경에서도 절개와 지조를 지키는 고상한 사람에 비유한다고도 풀이한다. 세한송백(岁寒松柏)은 추운 계절의 송백을 뜻한다. 중국어에서 논어의 위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리고 송백의 또 다른 의미는 분묘(坟墓)를 지칭하는데 이는 워낙 예로부터 무덤 주변에 많이 심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글 끝부분에서 설명된다.
중국에는 다양한 세한도(歲寒圖)가 있고 세한연후 송백의 기개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도 공자뿐만은 아니다. 중국이들에게는 송백은 고결한 지조를 상징하는 것 외에도 장수하는 나무로 알려져 동물의 학 만큼 오래 산다고 “松鹤同龄(송학동령)” 이라는 표현도 있다.
중국에서 복과 장수를 비는 이런 덕담이 있다. "복은 끝없이 흘러 마르지 않는 동해와 같고 수명은 영원히 늙지 않는 남산 불로송 같아라."
“福如东海长流水,寿比南山不老松”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애국가 가사가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을 듯하다.
"동해물과 ~~ 마르고 ~~, 남산위에 저 소나무 ~~ 불변함은~~"
복여동해(福如东海) 수비남산(寿比南山)
여기서 동해는 동중국해이며 남산은 설이 분분하지만 섬서의 종남산(秦岭)이라는 설이 많다.
송백(松柏)의 송(松) 즉 송수(松树)는 소나무과 소나무속 식물을 통칭한다. 한자 송(松)은 이 나무의 수형이 公 자형이므로 만들어진 상형글자이다. 소나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소나무 즉 Pinus densiflora 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국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중국에서는 우리 소나무를 적송(赤松)이라고 부르는데 동북지방에서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중심지역에서는 그다지 흔한 나무는 아니다. 소나무속에는 전세계 100여 종이 분포하는데 그 중 중국에는 약 30종이 분포한다. 그 중에서 중국 중심지역에 흔한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는 만주곰솔의 원종인 유송(油松)이라고 할 수 있다. 송진에서 기름(테레빈유)을 추출하여 공업용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유송(油松)이라고 한다. 실제로 북경 이화원에 심어진 소나무는 모두 학명 Pinus tabulaeformis로 표기되는 유송이다. 그 외에 중국에 흔한 소나무로는 구주소나무의 변종인 장자송(樟子松)과 대만소나무로 불리는 황산송(黄山松)이 있고 우리가 잣나무라고 하는 홍송(红松)도 동북지방에 많이 자생한다. 그리고 아주 흔한 것은 아니지만 수피가 백색이라서 우리가 백송이라고 부르는 백피송(白皮松)도 있다. 그러니까 송백의 송(松)은 소나무속(屬) 전체 수종을 통칭하므로 우리 이름으로는 소나무와 곰솔 백송 잣나무까지 포함되는 개념이지만 중국 이름은 모두 xx송(松)이다.
중국 고유종인 유송(油松)의 아름다운 수형
Pinus tabuliformis
영객송(迎客松)
중국 황산에 있다는 기이한 황산송(黄山松) 중 하나, 수령 800년 추정
Pinus armandii
송객송(送客松)
중국 황산에 있다는 기이한 황산송(黄山松) 중 하나
Pinus armandii
그러나 백(柏)은 한중일 3국에서 나라마다 그 뜻이 다르다. 우리나라 옥편에는 백은 1. 잣나무 2. 측백나무로 나온다. 그러나 송백(松柏)을 붙여 한 단어가 될 경우에는 측백나무는 빠지고 모두 한결 같이 소나무와 잣나무라고 풀이를 한다. 바로 이 것이 문제다. 이 글자는 분명 중국에서 온 것인데 중국에서는 백(柏)을 절대로 잣나무라고 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백(柏) 즉 백수(柏树)는 좁게는 특정수종인 측백나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주로 넓게 백과(柏科) 수목을 통칭하는 말이다.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수명 또한 매우 길어 백목지장(百木之长)으로 불렸기 때문에 栢이 되었으며 현재는 주로 柏으로 쓰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전세계에서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전인 이아(尔雅)와 중국 최초의 자전인 설문해자(说文解字)에 백(柏)이 곧 국(椈)이라고 나온다. 우리나라 옥편에서 국(椈)은 측백나무나 노송나무라고 풀이를 한다.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노송(老松)나무는 향나무의 이명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한자사전에서 국(椈)은 측백나무나 향나무라고 제대로 풀이하면서 중국에서 같은 뜻이라는 백(柏)은 우리나라에서 엉뚱하게 잣나무나 측백나무라고 다르게 풀이하고 있다.
백과(柏科)는 학명으로는 Cupressaceae로 표기되는데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측백나무과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히노키과라고 한다. 백과는 송과(松科)와 더불어 Pinales목의 주요 구성요소이다. 이 Pinales목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소나무목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송삼목(松杉目)이라고 한다. 여기서 송과와 백과의 큰 차이점은 잎 모양이다. 송과가 바늘잎이라면 백과는 비늘잎이거나 가시잎이다. 측백나무과에는 전세계 약 30개의 속에 13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며 이 중 중국에 29종이 분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측백나무와 편백나무 향나무 나한백 등이다.
송백(松柏) 즉 소나무과와 측백나무과 (APG 분류체계 기준)
목(目) | 과(科) | 특 징 | 대표 속(属) |
소나무목(Pinales) | 소나무과(Pinaceae) | 바늘잎 | 소나무속, 가문비나무속, 전나무속, 솔송나무속, 미송속 등 |
측백나무과(Cupressaceae) | 비늘잎 또는 가시잎 | 향나무속, 측백나무속, 편백나무속, 나한백속 등 |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송백(松柏)의 백은 측백나무과 전체 수목을 통칭하지만 송은 소나무과 전체가 아닌 소나무과 소나무속의 수목만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 백(柏)이라고 하는 잣나무는 Pinus koraiensis로 학명 표기되는데 식물분류학상 백과(柏科)가 아니고 송과 소나무속으로 분류되는 엄연한 소나무의 한 종류인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동북부 및 시베리아 그리고 일본 등지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의 일종으로서 공자 시절 그의 주변 지역에서는 자라지도 않던 나무이다. 중국에서는 잣나무를 홍송(红松)이라고 하며 과송(果松) 또는 조선송(朝鲜松)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부르며 본초강목에서는 해송(海松)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잣나무를 백(柏)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다.
일본 또한 잣나무를 조선오엽(朝鮮五葉 : チョウセンゴヨウ)이라고 하며 백(柏)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조선오엽은 자기나라에 자생하는 오엽송(섬잣나무)과 대비되는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백(柏)이 중국과는 달리 엉뚱하게 잣나무를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백(柏)이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엉뚱하게 참나무의 일종인 떡갈나무를 지칭한다. 카시와(カシワ)로 발음하고 한자로는 백(柏) 외에도 곡(槲)이라고도 쓴다. 곡(槲)은 중국에서 떡갈나무를 지칭하는 글자이다. 떡갈나무의 학명은 Quercus dentata이다.
잣나무 숲 Pinus koraiensis
중국에서 잣나무를 홍송(红松)이라고 한다. 식물분류학적으로도 소나무과 소나무속이라서 측백나무과인 백(柏)과는 거리가 있다.
종자를 먹을 수 있고 내한성이 강하고 목재도 단단하며 숲의 모습이 좋아 나름대로 쓸모가 많지만 30m 이상 자라는 속성수이며 개별 수형도 아름답지 않아서 정원이나 산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섬잣나무 Pinus parviflora
일본에서도 원산지에서는 15m 이상 자라지만 타지에서는 6m 이상 자라기 어렵다. 그런 왜성에다가 수형도 좋아 정원수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서 일반적으로 오엽송(五葉松)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 이름 고요우마츠(ゴヨウマツ)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불러서는 안된다. 왜나하면 우리 잣나무가 오엽송이기 때문이다. xx송으로 부르려면 차라리 일본오엽송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한중일 3국의 각기 다른 백(柏)의 의미
구분 | 한자 | 지칭수종 | 학 명 | 같은 글자 | 같은 글자 풀이 |
한국 | 백(柏) | 잣나무, 측백나무 | Pinus koraiensis(잣), Platycladus orientalis(측백) | 栢 | 잣 백, 측백 백 |
중국 | 백(柏) | 측백나무과 수종의 통칭 | Cupressaceae(柏科 : 측백나무과) | 椈 | 노송나무 국, 측백나무 국 |
일본 | 백(柏) | 떡갈나무 | Quercus dentata | 槲 | 떡갈나무 곡 |
일본에서 측백나무를 コノテガシワ(児手柏·側柏)라고 하여 柏을 떡갈나무로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송백(松柏)이라고 하면 곧바로 논어의 세한송백(歲寒松柏)을 뜻하는 것으로 통한다.
위와 같이 원래는 중국에서 측백나무과 전체 수종을 통칭하는 글자인 柏(백)이 우리나라에서는 측백나무 보다는 소나무과 소나무의 일종인 잣나무를 지칭하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고 일본에서는 참나무과 떡갈나무로 쓰이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자기들 나름대로 한자를 풀이하고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며 때로는 새로운 한자를 자기들 나름대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항상 중국 원어에 충실하였던 우리는 상황이 좀 다르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중국이 柏을 측백나무나 향나무를 지칭한다고 반드시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뭘 지칭하던 그대로 우리끼리 통하기만 하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나무 네 그루 모두 송(松)으로 판단되며 백(柏)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한송백도라고 반드시 송백(松柏) 둘 다 등장할 필요는 없다. 중국에서도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송백(松柏)이라고 많이 한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의 발문(跋文)
옆줄을 그은 부분이 공자의 말씀이다.
그러나 중국의 고전을 읽으면서 우리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그려진 나무 4그루를 송백(松柏) 즉 소나무와 잣나무라고 판단하고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라고 읊으면서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송백이라고 언급한다면 약간 넌센스다. 세한도에 그려진 나무는 그림을 유심히 살펴 봤을 때 측백나무나 향나무가 아닌 소나무의 일종으로 보인다. 설혹 잣나무가 한두 그루 섞여 있다 할지라도 그것도 송(松)이지 백(柏)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잣나무도 소나무속으로 분류되는 소나무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사의 세한도에는 송(松)만 존재하지 백(柏)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실지로 중국에서 송과 백이 함께하는 경우가 흔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둘이 있어야 온전한 송백(松柏)이 되는 개념은 아니다. 어느 한쪽만 있으면 족하다. 그러나 잣나무를 백(柏)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에서 송백을 귀한 나무로 여기게 만든 것은 논어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 한나라 시절 반고(班固)라는 학자가 그 당시 장묘규범인 묘장안주례(墓葬按周礼)를 정리한 것이 백호통의(白虎通义)라는 책에 나온다. 거기에서 모든 사람들을 천자와 제후 대부와 선비 그리고 서민 등 신분별로 5등급으로 나눠 분묘의 높이와 주변에 심을 수 있는 나무의 수종을 제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천자의 분묘에는 송(松)을 제후의 분묘에는 백(柏)을 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제후 이하의 일반인들은 산소에 송백을 심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대부(大夫)는 모감주나무(栾)를 선비(士)는 회화나무(槐)를 서민(庶人)들은 버들과 사시나무(杨柳)를 심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중국의 황릉이나 왕릉 그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天壇) 등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일반인들의 무덤에도 송백을 앞다퉈 심게 된 것 같다.
그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실제로 우리나라 조선왕릉 사진을 쭉 살펴봐도 소나무 외에 다른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산에는 원래 소나무가 많아서 산소에 별도로 소나무를 심을 필요가 거의 없지만 그런데도 중국 고대 장례법을 따라 송백이 좋다고 만약 잣나무를 백(柏)으로 생각하고 추가로 심는다면 정말 우습게 된다. 잣나무도 송(松)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속성수라서 그늘을 만들어 분묘의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높고 뿌리가 넓게 퍼져 좋지 않다. 산소에는 소나무를 심거나 정히 백(柏)을 심고 싶으면 향나무나 측백나무를 심어야 과거 문화와 부합하기도 하거니와 생명력이 강하고 빨리 자라지 않고 늘 푸르며 수형이 좋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타당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전설의 삼황오제의 한 명인 황제(黄帝)의 천하제일릉(天下第一陵)
섬서성 연안시에 있는 일명 교산황제릉(桥山黄帝陵)에는 8만 그루의 오래된 백(柏)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 수령 천 년이 넘는 것만도 3만 그루라고 하니 실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북경 자금성 인근 천단공원에 있는 향나무 구룡백(九龙柏) 수령 500년 추정
천단공원에 있는 향나무 구룡백(九龙柏)
북경에 있는 명13릉(明十三陵)에도 백(柏) 즉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중국 현대화가 서비홍(徐悲鸿)이 1918년에 그린 서산고송백(西山古松柏)
이 그림에는 이름 그대로 앞에 송과 뒤에 백이 분명하게 함께한다.
고려 공양왕릉에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조선왕릉에는 소나무만 보이는 것 같다.
중국 백(柏)의 실체
그럼 원래 중국에서 공자나 반고가 말하고자 하는 백(柏)이란 무슨 나무를 지칭하는 것일까? 우선 무엇보다도 공자나 한나라 반고(班固)는 분명 우리나라와 만주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잣나무를 본 적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비슷한 5침엽 구조를 가진 소나무가 중국에 없지는 않았다. 화산송(华山松)이라고 섬서성에 있는 중국 오악 중 하나인 화산(華山)에 많이 자생하는 나무가 바로 그런 나무인데 학명은 Pinus armandii이며 우리나라 이름은 중국잣나무이다. 그리고 설혹 공자나 반고가 잣나무를 접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소나무의 일종인 홍송(红松)이므로 절대로 柏(백)이라고 했을 리가 없다.
그럼 백(柏)이 과연 중국에 분포하는 백과(柏科) 8속 29종 모두를 염두에 두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현대 식물분류학적으로 세분하였으니 여러 속으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측백나무과는 우리 이름 기준으로 측백나무와 향나무 나한백 그리고 화백을 포함한 편백으로 나뉠 수 있고 크게 보면 주로 향나무와 측백나무로 대별된다. 향나무라는 우리 이름만 들었을 때는 측백나무와는 많이 다른 나무 같지만 중국 이름은 가시가 없는 것은 원백(圓柏) 가시가 있는 것은 자백(刺柏)이라고 부르고 있어 그저 백(柏)의 일종일 뿐이다. 그리고 학명 Juniperus로 표기되는 향나무속의 우리나라 이름도 수종에 따라서 향나무 외에도 두송 또는 노간주나무로도 불린다.
실제로 중국 북경에 있는 황실원림(皇家园林)인 이화원(颐和园)에 심어진 오래된 나무의 종류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나무 지름 60~70cm 이상의 1급 고목(古木)을 기준으로 파악한 자료를 보면 유송(油松) 67그루, 백송(白皮松) 2그루, 향나무(桧柏) 29그루, 측백나무(侧柏) 5그루, 목련(玉兰) 1그루라고 한다. 그러니까 황실정원에는 주로 송백을 심었고 송(松)이라면 유송을 심고 백(柏)이라면 주로 향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원백(圓柏) : 향나무
Juniperus Chinensis
자백(刺柏) : 대만향나무
Juniperus formosana
맺음말
이제까지 매우 장황하게 탐구해 왔지만 결국 중국의 송백이 지칭하는 나무는 매우 간단하다. 즉 송백(松柏)은 주로 소나무와 향나무를 말한다. 다만 여기에 모양 좋은 측백이나 편백이 일부 포함되는 정도이다. 이들의 특징은 수명이 매우 길고 추위와 더위에 강하여 지역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잘 자라지만 더디게 자라 수형도 매우 아름답고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궁이던 일반 정원이던 조상의 산소이던 제단이던 사찰이던 어디서든지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한자사전은 송(松)에는 잣나무를 추가하여야 하고 백(柏)에는 잣나무를 제외하고 그대신 향나무를 추가하여야 마땅하다.
송(松) : 소나무나 곰솔, 백송 또는 잣나무 등 소나무속 수목의 통칭
백(柏) : 향나무나 측백나무, 편백, 나한백 등 측백나무과 수목의 통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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