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
얼레지는 무리지어 자라는 특성이 있다.
얼레지는 우리나라 깊은 산 계곡 주변에 주로 집단으로 자생하는 토종 아생화이다. 얼레지는 이른 봄 복수초나 노루귀, 깽깽이들에 비하면 다소 늦지만 대지가 미처 다 녹기도 전인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에 봄꽃답지 않게 매우 화려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봄꽃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대개 봄꽃이 그렇듯이 추위에는 매우 강하여 얼레지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은 물론 북한이나 더 추운 만주나 시베리아 지역에서도 잘 자란다. 그러나 기후가 너무 온난한 제주도의 저지대에서는 생육이 어려워 우리나라 도감에서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 넓게 자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내한성도 충분하게 강하고 이른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 봄소식을 전하기에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도 왜 우리 주변에 얼레지를 정원에서 가꾸는 사람들이 흔하지 않는 것일까? 자생지가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인간에 의한 번식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생육조건이 아주 까다로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함부로 이동이나 매매 그리고 재배가 금지된 것도 아니다. 그럼 왜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다는데도 얼레지를 모두들 막연하게 희귀한 야생화라고 말한다. 아마 주변에서 직접 볼 기회가 흔하지 않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얼레지는 생육조건에 적합하면 주변 지역을 온통 점령하여 수천수만 포기가 군락을 이루어 매우 넓은 얼레지 전용 꽃밭을 만든다. 따라서 개화 절정기에 군락지에 가면 그 귀하다는 얼레지가 수천수만 포기가 무리를 지어 그야말로 숨막히는 장관을 연출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야생화이다.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광대한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식물은 그다지 흔하지 않다. 일본의 연구에 의하면 얼레지는 인간에 의하여 훼손만 되지 않는다면 13~40년이 지나면 수천수만 포기가 주변을 온통 뒤덮는 군락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전국 여기저기서 이런 대규모 군락지를 발견한 사람들이 마치 보물을 발견한 양 가슴 벅찬 감격을 올린 글들은 인터넷에서 종종 보게 된다.
얼레지
뿌리가 깊고 주변 큰나무 뿌리가 얽혀 있어 절대로 채취하기 어렵다.
불법적으로 욕심내면 성공하지도 못하고 아까운 잎만 따게 된다. 나물로 채취하더라도 반드시 두개 중 하나만 따야 한다.
얼레지가 이런 군락지를 형성하는데 최소한 13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옆에 개울이 있다. 얼레지는 이렇게 가재가 자랄 만한 계곡 부근에서 주로 자생한다고 가재무릇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이른 봄에 피는 노루귀나 깽깽이 바람꽃 처녀치마 등의 꽃은 실제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제각기 매우 아름답지만 실제로 야외에서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잘 뜨이지 않아 지나치기 쉽다. 얼음을 뚫고 나와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를 제외한 대부분의 봄꽃들은 존재감이 약하지만 얼레지는 다르다. 근연종인 백합과 백합속인 참나리나 솔나리를 닮은 길이 6cm의 꽃잎 6장으로 이루어진 큰 꽃을 피우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분포지도 넓고 대량으로 무리지어 자라며 꽃도 작지 않은데도 얼레지가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지상에 머무는 시간이 일년 중 개화기를 전후로 약 두 달여에 불과하여 매우 짧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짧은 기간 중에서도 꽃이 피는 약 2주 정도만 인간의 눈에 잘 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화기가 아니면 얼레지가 주변에 있어도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고 설혹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잎이 말라버리고 휴면기에 들어가는 5월 하순 이후에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정원에서 재배하는 경우에도 장소를 기억하지 않으면 어디에 심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얼레지는 아주 흔한 것은 아니지만 군락지가 있더라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귀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얼레지
백합과 백합아과 백합족 얼레지속
우리나라 대표적인 나리인 참나리와 솔나리
백합과 백합아과 백합족 백합속으로 얼레지와 근연종이다.
얼레지
좌) 2019.3.19 꽃대가 올라온 모습, 우) 2019. 3.28 개화 직전
얼레지
2019.4.4 만개한 모습
이러다가 6월이 되면 완전하게 자취를 감춘다.
얼레지는 3월 초중순에 지하에서 잎이 나오는데 한 장이 나오면 아직 개화적령기가 안된 어린 포기라서 대개 당해 연도에는 꽃을 볼 수 없다. 대부분의 개화주는 잎이 두 장이 나오고 그 가운데서 10~25cm 길이의 꽃대가 올라와서 그 끝에 한송이의 꽃을 아래로 처지게 피운다. 자홍색 꽃잎은 6개이며 피침형으로서 길이 5~6cm이고 너비 0.5~1cm이며 만개시 꽃잎이 뒤로 완전히 젖혀진다. 그리고 꽃잎 안쪽 기부에 W형 짙은 무늬가 있다. 수술은 6개이며 그 중 3개는 짧고 3개는 긴데 바깥쪽 긴 3개가 먼저 성숙하여 열린다. 암술머리는 3개로 갈라진다. 개화시 항상 꽃잎이 열리는 것이 아니고 맑은 날에는 열려 꽃잎이 뒤로 젖혀지지만 흐린날이나 밤에는 닫히게 되는데 이를 매일 반복한다. 꽃이 진 다음 달리는 열매는 삭과로서 3개의 짧은 날개와 같은 능선이 있는 타원형 또는 원형으로서 그 안에 3개의 방이 있다. 각 방에 최대 20개의 배주가 있으며 이 중 60%가 나중에 2mm 길이의 타원형 종자로 성숙한다. 종자에는 엘라이오솜(elaiosome)이라는 개미를 유인하는 지방질과 단백질이 붙어 있어 개미가 이를 개미집 주변으로 이동시켜 얼레지의 이동 번식을 돕게 된다. 사실 엘라이오솜은 얼레지의 종자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제비꽃 금낭화 피나물 깽깽이 등 매우 다양한 수천 종의 식물 종자에 붙어 있는 물질이다. 식물들이 종자 산포를 위하여 개미 등 곤충을 이용할 때는 그만한 미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른 봄에 얼레지 싹이 올라오는 모습
우측 맨앞에 보이는 두 장 나오는 것만 꽃이 피고 나머지 잎이 한 장씩 올라오는 것들은 아직 어려서 꽃을 피우지 못한다.
얼레지
개화한 다음에도 밤이나 흐린 날에는 이렇게 꽃잎을 닫는다.
얼레지
볕이 좋은 낮이 되면 꽃잎을 뒤로 완전히 젖힌다.
얼레지
시들 때는 꽃잎의 끝부터 말라간다.
얼레지 열매 - 3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레지 종자 끝에 불룩하게 붙은 부분이 개미를 유인하는 엘라이오솜이다.
얼레지는 자가수분(自家受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암술대가 수술보다 길다. 그리고 수술 6개 중에서 긴 수술 3개가 먼저 성숙한 다음 나중에 짧은 수술 3개가 성숙하며 그 때 암술대가 열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른 꽃에서 짧은 수술의 꽃가루를 묻혀 온 벌이 안쪽 짧은 수술의 꽃가루를 채취하기 위하여 들어가면서 암술에 수분을 하게 되는 구조이다. 이런 식물들이 많은데 이런 특성을 자가불화합성(自家不和合性)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self- incompatibility라고 한다. 그리고 얼레지는 지상에 나온 줄기 이상으로 더 긴 부분이 지하에 묻혀있다. 나이가 많은 포기들은 30~40cm 깊이에 길이 5~6cm의 통상 타원형 비늘줄기 형태의 구근이 자리잡고 있다. 얼레지는 5월말부터 9월까지 여름 휴면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10월에 깨어나 지하 비늘줄기 즉 인경(鱗茎)에서 싹이 나와 지상을 향하여 올라오는 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올라오다가 지표면에 와서 땅이 녹기를 기다려 3월 초중순에 잎 하나가 뾰족하게 나오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든 개화주는 잎이 한장 더 나오며 두 잎 사이에서 꽃대가 같이 올라온다. 그렇게 하여 약 10여 일 후에 꽃을 피우고 약 2주일을 밤낮으로 꽃잎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진 다음 짧은 3개의 날개(능)를 가진 타원형 열매가 달린다. 그 열매가 터져 종자가 나오며 그 종자에 엘라이오솜이라는 물질이 있어서 개미가 물어서 운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6월에 되기 전에 자취를 감추어 휴면에 들어가는 것이 얼레지의 일년 사이클이 된다.
얼레지
수술 3개는 길고 3개는 짧다. 암술대의 머리는 3부분으로 갈라진다. 자가수분을 피하려 암술대가 더 길다.
얼레지
이미 수분이 끝나 수술은 말라비틀어 지고 자방은 자라고 있다.
개미가 물어가 엘라이오솜은 먹이로 사용하고 버린 종자가 비바람에 의하여 땅에 묻히어 싹이 발아하면 단 한 장의 잎이 나와 자라지만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므로 꽃을 피우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6월이면 휴면에 들어가 사라지는데 그 두 달여 동안 광합성을 하여 일년 사용할 영양분을 비늘줄기(인경)에 저장을 한다. 그러다가 휴면이 끝나는 10월에 깨어나 다시 이듬해 봄에 싹을 지상으로 올리게 준비를 하는데 매년 인경을 갱신을 하여 기존의 인경 밑에 생성시키므로 해마다 뿌리가 땅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대개 구근들이 영양번식을 하여 구근이 늘어나게 되는데 얼레지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분주가 어려우므로 인위적인 번식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어린 얼레지는 한장의 잎만 나오기를 무려 7~8년을 지속한 다음에야 잎이 한장 더 나오면서 개화하게 되어 종자의 발아에서 개화까지는 무려 8~9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그 사이 인경은 점점 더 커지고 그만큼 더 깊이 땅속으로 파고들게 되며 지상의 잎도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개화주의 잎은 6~12 x 2.5~5cm 사이즈로서 타원형 또는 넓은피침형이며 녹색 바탕에 자색 무늬가 있으며 잎자루는 3~4cm이다.
얼레지는 최소한 7~8년이 되어야 꽃이 핀다.
새로운 인경이 기존 인경의 아래에 생성되기 때문에 매년 뿌리는 점점 더 깊게 들어간다.
따라서 야생 얼레지는 뿌리가 깊어서 개화주는 이식이 거의 불가능하다.
연도별 얼레지의 인경 성장 과정
얼레지는 분주도 어렵고 실생 번식으로 개화까지 오랜 세월이 소요되어 화훼농가에서 재배하기에는 경제성이 낮다.
그리고 야생 얼레지의 채취는 불법이지만 아니더라도 뿌리가 깊어 이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귀한 것이다.
얼레지의 이름유래
이제까지 봄꽃의 여왕이라는 얼레지의 특성과 생장습성까지 살펴보았다. 그럼 이제 얼레지의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자. 잎의 얼룩에서 온 이름이라는 설이 대세인 것 같기는 하지만 뒤로 젖혀진 꽃모습이 연의 자세 즉 얼레나 머리를 빗는 얼레빗을 닮았다는 주장도 있는 등 아직 논란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명인 가재무릇의 어원도 명확하지 않다. 항상 하는 소리이지만 초창기 뚜렷한 근거도 없이 허둥지둥 마구잡이로 식물 이름을 붙였으며 최소한 왜 그렇게 붙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 백년 전도 아니고 불과 수 십년 전에 붙인 이름을 그 이유를 모른다니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얼레지는 우리 토종 야생화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외에도 일본에서도 홋카이도부터 구마모토까지 거의 전지역에 넓게 자생하며 중국은 동북 만주지방에 그리고 극동 러시아의 쿠릴열도와 사할린섬에서도 자생한다. 그리고 얼레지는 백합과 얼레지속으로 분류되는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참나리나 솔나리 들을 많이 닮았는데 역시 백합과 중에서도 백합아속으로 분류되고 다시 백합족으로 분류되어 그 백합족에서 백합속과 얼레지속으로 각각 분리가 된다. 그만큼 백합과 중에서도 그야말로 백합들과 매우 가까운 근연관계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속명 Erythronium는 1753년 린네가 식물분류학을 창설하면서 명명한 것으로 꽃이 붉다는 뜻이다. 당시 모식종은 유럽에서 자생하는 Erythronium dens-canis라는 국내 미등록종이다. 이렇게 얼레지는 동양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한 종이 자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알아보니 얼레지속을 구성하는 전세계 33종 중 거의 대부분은 동양도 유럽도 아닌 북아메리카에서 자생한다고 하니 놀랍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학명 Erythronium japonicum인 얼레지 단 한 종만 자생하고 중국도 얼레지와 Erythronium sibiricum이라는 신강얼레지 한 종이 더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전세계 얼레지는 동양에 2종 유럽에 1종 러시아에 몇 종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과 캐나다에서 자생하는 것이다. 그럼 외국에서는 이 식물을 어떻게 부르는지를 파악해 보자. 얼레지의 학명 Erythronium japonicum는 1854년 프랑스 식물학자 Joseph Decaisne(1807~1882)이 일본에서 채취한 표본을 대상으로 명명한 것이다.
한중일 3국에는 얼레지 외에 중국의 신강얼레지라는 또 다른 한 종이 더 자생한다. 꽃모습이 얼레지와는 많이 다르다.
얼레지의 동양 이름들
일본에서는 얼레지를 카타쿠리(カタクリ)라고 하며 한자로는 편율(片栗)이라고 쓴다. 카타쿠리의 어원은 일본에서도 명쾌하지 않다. 7세기 후반에 쓰여진 만엽집(萬葉集)에 얼레지는 카타카고(かたかご) 즉 견향자(堅香子)로 표기 되어 있다. 따라서 카타카고에서 카타쿠리가 된 것은 분명한데 그 과정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것이 바구니 모양의 꽃이 기울어져서 핀다고 경롱(傾籠)의 발음 카타카고(かたかご)라는 설도 있고 어릴 때 계속 몇 년간 새끼 사슴 무늬가 있는 외잎만 나온다고 편엽녹자(片葉鹿子) 즉 카타하카노코(かたはかのこ)에서 전와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외에도 편율(片栗)은 밤 쪽을 의미하는데 얼레지의 식용하는 부위인 인경(鱗茎)이 영양생식을 할 경우 밤 쪽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 얼레지는 오래전부터 구황식물로 흔하게 활용되며 특히 그 인경에 양질의 녹말이 있어 이를 말려 가루로 만든 편율분(片栗粉)이 자양강장제 또는 건위 지사제 용으로 인기가 높다. 일본에는 아직도 편율분이 있는데 최근에는 얼레지가 귀하여 감자나 고구마 전분으로 대신한다.
얼레지는 꽃대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꽃도 아래로 처지면서 핀다.
얼레지의 식용부위인 비늘줄기 즉 인경(鱗茎)
원래 인경 옆에 번식된 인경이 편율(片栗) 즉 껍질을 벗긴 밤 쪽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편율분은 감자가루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얼레지가 백두산 인근 길림성 임강(临江)시에 많이 자생하는데 이를 저아화(猪牙花)라고 한다. 저아는 글자 그대로는 돼지 어금니를 말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멧돼지나 기타 포유동물의 강하고 휘어진 돌출된 긴 이 즉 요아(獠牙)를 뜻한다. 이 또한 얼레지의 비늘줄기 즉 인경(鳞茎)이 멧돼지 어금니를 닮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래서 명확하게 야저아(野猪牙)라고 멧돼지 어금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같은 것을 보고서 중국인들은 돼지 어금니로 일본인들은 밤 쪽으로 봤다는 것이 흥미롭다. 어원을 설명하는 중국 원문은 이렇다. 称猪牙花. 是因其鳞茎为长椭圆柱形, 稍弯曲, 无皮光滑, 白色肉质形如猪牙而得名。이와같이 매끈하고 백색 육질이며 약간 휘어진 장타원주형 인경(鳞茎)의 모양 때문에 저아화(猪牙花)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코 긴 꽃망울 때문에 붙이 이름이 아니다. 옛 사람들에게는 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먹거리용 뿌리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었던 것이다.
왼쪽 멧돼지 어금니 장식품과 오른쪽 얼레지 인경
그 외에도 중국에서는 이 얼레지를 산지과(山地瓜) 산우두(山芋头) 편율화(片栗花) 등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인경(鳞茎)과 관련된 이름이다. 지과(地瓜)는 두서(豆薯)라고도 하는데 히까마로 알려진 콩감자 즉 Pachyrhizus erosus를 말하지만 고구마 즉 Ipomoea batatas를 지칭하는 번서(番薯)의 별명이기도 하다. 우두(芋头)는 토란 즉 Colocasia esculenta를 뜻한다. 토란은 땅속에 알같이 생기는 덩이 줄기 즉 괴경(塊茎) 때문에 우리는 이를 토란(土卵)이라고 한자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우(芋)나 우두(芋头), 우잉(芋艿)이나 토지(土芝)라고 한다. 한편 산우(山芋)라고 하면 이 또한 고구마의 별명이 된다. 한편 중국에서는 감자 즉 Solanum tuberosum는 양우(阳芋) 또는 마령서(马铃薯)나 토두(土豆) 등으로 부른다. 우리말 감자는 중국에서 고구마를 뜻하는 한자어 甘藷(감저)에서 변한 말이 분명해 보인다. 중간에 뭔가 잘못되어 와전된 것이다. 그래서 감자는 한자어로 표기를 못한다. 사실 단 맛이 나는 것은 고구마이지 감자가 아니지 않던가. 여하튼 복잡하게 나열하였지만 지과(地瓜)나 우(芋) 모두 탄수화물이 풍부한 먹거리 식물이라는 것이다. 얼레지도 그들과 같은 먹거리 식물로 취급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편율화는 물론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이름이다. 이들을 나중 공부를 위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관련식물들의 학명과 중국명
우리이름 | 학 명 | 중국 정명 | 중국 별명 |
얼레지 | Erythronium japonicum | 저아화(猪牙花) | 야저아(野猪牙) 산지과(山地瓜) 산우두(山芋头) 편율화(片栗花) |
콩감자 | Pachyrhizus erosus | 두서(豆薯) | 지과(地瓜) |
고구마 | Ipomoea batatas | 번서(番薯) | 지과(地瓜), 산우(山芋), 甘藷(감저) |
토란(土卵) | Colocasia esculenta | 대우(台芋) | 우(芋) 우두(芋头) 우잉(芋艿) 토지(土芝) |
감자 | Solanum tuberosum | 양우(阳芋) | 마령서(马铃薯) 토두(土豆) |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의 출전
그 외에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은 아니라서 출전을 찾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서 얼레지의 한자이름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차전엽산자고(车前叶山慈菇)에 대하여 알아보자. 말 그대로 차전의 잎을 가진 산자고라는 뜻이다. 차전(车前)은 이뇨(利尿) 청열(清热) 명목(明目) 거담(祛痰)에 약효가 있다는 질경이 즉 Plantago asiatica를 말하며 산자고(山慈菇)는 그 뿌리가 자고(慈姑) 즉 Sagittaria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으로 그 정체가 매우 복잡한 약초의 이름이다. 우선 한자 표기가 다양하다. 우선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는 산자고를 山茨菰와 山慈姑로 표기를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山茨菰는 보이지 않고 山茨菇와 山慈菇 및 山慈姑로 표기를 한다. 한자 표기가 복잡한 만큼이나 이들이 지칭하는 식물들도 일정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다. 우선 우리나라 국표식에 등록된 우리 자생종 산자고는 백합과 산자고속으로 신학명 Amana edulis로 표기되며 구학명이 Tulipa edulis인 튜립과 매우 유사한 종으로 보면 된다. 중국에서는 우리 산자고를 백합과 울금향(郁金香)속 노아판(老鸦瓣)이라고 하고 약재명은 광자고(光慈菇)라고 한다. 산자고의 약재명이 광자고(光慈姑)라고 국생정에도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에는 산자고로 불리는 식물들이 따로 있다.
왼쪽이 차전(车前)으로 불리는 질경이 오른쪽은 우리나라 산자고(山慈姑)
얼레지를 특히 우리나라에서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茨菰)라고 하는데
질경이 잎에는 얼룩도 없고 산자고는 열매 외에는 꽃도 인경도 잎도 얼레지를 많이 닮지는 않았다.
중국식물지에 등록된 산자고(山慈菇)는 둘이다. 하나는 백합과 산자고속 Iphigenia indica를 지칭하는데 우리나라 미등록종이다. 기관지염과 천식 통풍 등에 약으로 쓴다. 다른 하나의 산자고(山慈菇)는 쥐방울덩굴과 족도리풀속 Asarum sagittarioides로서 이 또한 우리나라 미등록종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그 외에도 산자고로 불리는 약재들이 몇 종이 더 있다. 그중 하나가 중국에서 두견란(杜鹃兰)이라 불리는 학명 Cremastra appendiculata인 난초과 우리 자생종 약난초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같은 난초과의 독산란(独蒜兰)으로서 학명은 Pleione bulbocodioides이며 미등록종이다. 따라서 결국 이들 4종의 산자고와 우리 산자고를 포함하여 모두 5종의 산자고가 있는데 그중 얼레지와 가장 가까운 근연관계에 있는 것은 같은 백합과 백합족으로 분류되는 우리 산자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차전엽산자고(车前叶山慈菇)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이 산자고가 정확하게 어느 식물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얼레지는 우리나라에서도 편율분(片栗粉)이라고 하면서 건위 지사 등의 약으로 사용하지만 이는 중국의학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 일본을 따른 약재로 보인다.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茨菰) 관련 식물
우리이름 | 학 명 | 중국 정명 | 중국 별명 | 과 |
질경이 | Plantago asiatica | 차전(车前) |
| 질경이과 |
산자고(山茨菰) | Amana edulis | 노아판(老鸦瓣) | 광자고(光慈菇) | 백합과 |
미등록종 | Iphigenia indica | 산자고(山慈菇) | 백합과 | |
미등록종 | Asarum sagittarioides | 산자고(山慈菇) | 쥐방울덩굴과 족도리풀속 | |
약난초 | Cremastra appendiculata | 두견란(杜鹃兰) | 산자고(山慈菇) | 난초과 |
미등록종 | Pleione bulbocodioides | 독산란(独蒜兰) | 산자고(山慈菇) | 난초과 |
중국의 대표적인 산자고(山慈菇) 백합과 산자고속 Iphigenia indica
얼레지를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이와같이 얼레지를 뜻하는 한자어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가 당연히 중국에서 온 말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중국을 다 뒤졌으나 중국에 차전도 있고 산자고도 있으나 얼레지를 지칭할 만한 용어로 사용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일본을 기웃거리다가 드디어 차전엽산자고의 출전을 찾았다. 거참 일본에서는 카타쿠리를 편율(片栗)이라는 한자어로 표기하고 아주 옛날에는 견향자(堅香子)라고 하였으며 어원을 편엽녹자(片葉鹿子)에다가 엮으려고 애쓰길래 전혀 의심하지 않았는데 예상을 제대로 빗나가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1700년대부터 얼레지를 한자어로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라고 쓰고 있다가 최근에 와서 편율(片栗)로만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는 중국 한자어가 아니고 일본에서 얼레지를 산자고 즉 Amana edulis와 구분하기 위하여 만든 한자어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과거 산자고가 두 종류 있었는데 이들을 구분하기 위하여 지금 우리의 산자고는 구엽산자고(韭葉山慈姑)라고 하며 일본어로는 아마나(アマナ)라고 불렀고 얼레지는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카타쿠리(カタクリ)라고 불렀던 것이다. 구(韭)는 부추를 뜻한다. 이것들을 현재 발음에 맞게 한자어를 붙인 것이 아마나는 감채(甘菜)이고 카타쿠리는 편율(片栗)이 된 것이다. 이는 에도 중기 본초학자인 松岡恕庵(1668-1746)이 쓴 천금방약주(千金方薬註)에 근거한다. 나중에 일본의 린네라 불리는 유명한 본초학자 小野蘭山(1729~1810)이 1731년에 현향이라는 스님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도감인 동유남무참(東莠南畝讖)에 아래와 같이 얼레지 그림에 당도백합초(唐嶋百合草) 또는 산자고(山慈姑)와 편조(片繰)라고 이름이 붙은 것을 붉은 글씨로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 그리고 카타쿠리(カタクリ)라로 수정하여 가필을 한다. 그래서 그 이후 한자어로는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가 일본명은 여러 향명 중에서 카타쿠리(カタクリ)가 일본 정명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산자고라고 하지 않던 두 식물 즉 노아판(老鸦瓣)과 저아화(猪牙花)를 일본에서 구엽산자고(韭葉山慈姑)와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이므로 중국과는 상관없는 식물명인 것이다. 이걸 우리는 중국 이름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고..
1731년 진천사(真泉寺) 주지 현향(玄香)이 그린 동유남무참(東莠南畝讖)의 얼레지이다.
그 당시 일본의 다른 도감에는 얼룩무늬가 있던데 여기는 정말 얼룩이 없어 질경이를 닮게 그렸다.
일본 최고의 본초학자인 오노란잔이 붉은 글씨로 이름을 수정한 것이다.
얼레지의 서양 이름들
이제 일본 이름과 중국 이름들을 살펴보았으나 그 어디에도 얼레지의 어원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럼 얼레지가 많이 자생하는 미국 등 서양으로 가보자. 물론 미국에는 얼레지와 같은 종은 자생하지 않지만 유사종이 매우 많이 자생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얼레지속 식물들을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우선 린네가 얼레지속을 창설할 당시 모식종으로 삼은 유럽에서 자생하는 종을 Erythronium dens-canis라고 명명하였는데 그 종소명 dens-canis가 바로 dog's tooth라는 뜻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영어로 이 종을 dog's-tooth-violet이라고 부른다. 그럼 이 유럽얼레지의 어디가 개의 이빨을 닮았다는 것인가? 거기에 대하여는 분명하게 길쭉한 인경(鳞茎)이 개의 이빨을 닮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개의 이빨을 꽃망울이나 꽃의 W자 무늬에서 찾는 분들이 있기에 이를 설명하는 영어 원문을 추가한다. The white bulb is oblong and resembles a dog's tooth, hence the common name "dog's tooth violet" and the Latin specific epithet dens-canis, which translates as "dog's tooth".
유럽얼레지의 꽃과 인경
유럽인들은 이를 개의 이빨을 닮았다고 봤던 것이다.
다음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의 대표적인 얼레지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카얼레지 즉 Erythronium americanum의 일반명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 종은 노란 꽃이 피기 때문에 yellow dogtooth violet이라고 불리는 것 외에도 trout lily 또는 yellow trout lily로도 불리고 있다. trout는 송어를 말하는데 송어의 반점 무늬가 얼레지 잎의 무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아메리카얼레지를 미국에서 adder's tongue 또는 serpent’s tongue이라고도 한다. 이는 모두 뱀의 혀라는 뜻이다. 꽃차례에 생성되는 포자(胞子)가 뱀의 혀를 닮았다고 유럽에서 adder's tongue으로 불리는 고사리삼과 Ophioglossum 즉 나도고사리삼속 일부 식물들의 잎을 닮았다고 그렇게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얼레지의 열매 끝에 한동안 남아 있는 암술대의 모습이 영락없는 뱀 혀의 모습으로 보인다.
아메리카얼레지
아메리카얼레지
얼레지 잎의 얼룩 무늬가 trout 즉 송어를 닮았다고 trout lily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adder's tongue으로 불리는 나도고사리삼속 식물(좌)을 얼레지(우)의 꽃대가 나올 때 모습이 닮았다고 뱀의 혀라고 부른다.
아메리카얼레지의 열매
하지만 우리 눈에는 이렇게 암술대가 남아 있는 열매 모습이 정말 뱀의 혀같이 보인다.
그리고 그외 거의 모든 얼레지의 영어 이름에 fawn lily가 들어 간다. fawn은 새끼 사슴을 말한다. 새끼 사슴의 무늬가 얼레지 잎의 얼룩무늬를 닮았으며 또한 새싹이 나올 때 마치 새끼 사슴의 귀와 같다는 것이다. 묘하게도 일본에서 카타쿠리(カタクリ)의 어원을 편엽녹자(片葉鹿子)에서 찾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일본의 카코(鹿子)가 바로 새끼 사슴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일본과 미국에서 동시에 얼레지 잎 무늬를 새끼 사슴의 무늬로 봤는지 아니면 일본에서 미국의 일반명을 듣고서 이를 응용하여 어원을 풀이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서양에서는 얼레지의 인편을 보고서 dogtooth violet이라고 하고 잎의 얼룩 무늬를 보고서 trout lily 또는 fawn lily라고 하며 열매를 보고서 adder's tongue 또는 serpent’s tongue이라고 하는 것이다.
새끼 사슴의 무늬를 닮았다고 서양인들은 fawn lily라고 하고 일본인들은 편엽녹자(片葉鹿子)라고 한다.
얼레지와 가재무릇의 어원
우리이름 얼레지는 1937년 정태현의 조선식물향명집에 얼네지로 되어 있다가 1949년 조선식물명집에서는 얼레지로 변경 등재된 것을 이창복이 1980년 대한식물도감에서 그대로 따랐기에 우리 정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1922년 발간된 일본인 모리 타메조(森爲三)가 쓴 조선식물명휘에 기록된 얼네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편 정태현선생은 1937년에는 가재무릇으로 1949년에는 가제무릇으로 철자가 다르게 기록하여 얼레지의 이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현재 국표식에는 가재무릇만 얼레지의 이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이명도 등록된 것이 없다. 하지만 다른 도감들에서는 산우두나 차전엽산자고 등 한자식 이름을 이명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차전엽이나 산자고 등 정체가 다른 식물 이름을 이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강원도 양구에 전래되는 민요 중에 얼러지타령이라는 노래가 있고 그 가사에 분명하게 얼러지라고 국어사전에도 얼러지는 얼레지의 방언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조차 이명으로 기록하지 않고 있는 국표식이 무심하기는 하다.
무심하기는 지금의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 뿐만은 아니다. 초창기 식물학자님들도 이 아름다운 야생화에 얼네지나 얼레지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붙였으며 왜 어떤 연유로 붙였는지 한 마디라도 설명이 있어야지 그게 없으니까 지금까지 그 유래에 대하여 온갖 설들이 난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이분들 그리고 그 직계 제자 학자님들 정말 아쉽다. 하다못해 "우리 고향 뒷집 할머니가 그렇게 부르더라." 라던가 아니면 "그냥 마땅한 것이 없어서 내가 생각나는대로 정했다." 라고 기록해 두었더라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원이 불확실하기는 가재무릇이나 가제무릇도 마찬가지이다. 가제가 가재의 오자인지 아니면 그런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지조차도 모르는 것 같다. 정태현선생은 1971년 작고하셨고 이창복선생은 2003년에 작고하셨는데 어찌 수백 년 전의 인물들인 양 기록이 그렇게도 없을까? 정말 아쉽다.
얼레지의 어원으로 제기되는 설들은 우선 잎의 얼룩 무늬에서 비롯된 '얼룩이' 또는 '어루러기'에서 변형된 말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수캐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순수 우리말 '엘레지'에서 왔다는 설이다. 이 설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꽃봉우리가 개의 생식기 즉 구신(狗腎)을 닮았다는 설과 잎의 얼룩 무늬가 구신을 닮았다는 설이다. 그 외에도 꽃이 만개하여 꽃잎이 뒤로 완전히 젖혀진 모습이 마치 연을 날릴 때 쓰는 연자세 즉 '얼레'를 닮아서 거기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꽃 모양이 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인 '얼레빗'을 닮아서 거기에서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옛 기록에 얼레지를 지칭하는 한자어가 있다는 이야기는 없다. 얼레지는 중국에서도 약재로 사용하지 않아서 동의보감에도 기록이 없는 것 같다. 조선시대 이전에 얼레지를 지칭하는 한자어가 있었는지 만약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인 편율(片栗)로 기록된 자료는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 그때부터 얼레지 인경(鳞茎)으로 전분(澱粉)을 만들어 식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얼레지 잎을 봄나물로 채취하여 식용한 것은 그 이전부터 이겠지만 그 구근을 캐서 먹을 정도로 우리 산하에 얼레지가 흔하지는 않았던 것인가? 아니면 구근을 먹을 줄 몰라서 캐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양구지역에 전래되어 오는 양구 아리랑 얼러지타령을 보면 가사에 얼러지를 따러 가는 것이 아니고 캐러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머루는 "따러 가자" 인데 얼러지는 더덕과 마찬가지로 "캐러 가자"라고 되어 있어 분명 인경 즉 구근을 캐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럼 하나의 식용자원인데도 왜 얼러지를 표기하는 한자어가 없을까? 우리나라 고문헌에는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茨菰)를 비롯한 중국에서 얼레지를 뜻하는 저아화(猪牙花)나 그 별명들인 산지과(山地瓜) 산우두(山芋头) 편율화(片栗花) 등 그 어느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양구지역에서 얼레지를 캐서 먹던 것도 일제강점기 이후에 시작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식용으로 채취한 얼레지 잎과 인경
두 장 중 하나를 채취해야지 잎이 하나만 나오는 어린 얼레지 잎을 2년 연속으로 따 버리면 얼레지는 죽고 만다.
일년에 겨우 두 달여 광합성작용을 하는데 그 잎을 홀랑 따버리면 일년 먹을 영양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김덕원님과 김옥희님이 창한 강원도 양구의 얼러지타령의 가사이다.
(김덕원) 바랑골 뒷동산에 더덕싹이 나거든 우리나 삼동세 더덕 캐러 가세
(김옥희) 대바우 용옆에 얼러지가 나거든 너하고 나하고 얼러지 캐러 가자
(김덕원) 바랑골 뒷동산에 머루 다래가 열거든 우리나 삼동세 머루 따러가세
(김옥희) 산이나 높아야 골도나 깊지 조그만 여자에 속이 뭘 그리 깊을소냐
(김덕원) 바랑골 샛바람에 휘몰아치니 황금같이 익은 곡식 다 떨어진다
(김옥희) 돌산령 샛바람이 휘몰아치니 심곡사 풍경소리가 요란도하다
(김덕원) 바랑골 밭갈이 소리가 처량도 한데 오구 가는 행객들이 머물러진다
(김옥희) 노랑두 대가리 뒤범벅 상투 원제나 길러서 내 낭군을 삼나
(김덕원) 대바우 용옆에 참나물이 나거든 너하고 나하고 보나물가세
(김옥희) 요년으 기집애야 그 말두 말어라 이십년 안쪽에 내낭군이 될라 요년으 총각아 내 손목을 놓아라 물같은 내 손목이 자잘클어 진다
(김덕원) 니가 잘났나 내가 잘났나 인기도툼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왠 성화야
(김옥희) 올르락 내리락 잔지침소리 이빠진 남박에 돌 넘어간다 울타릴 꺾으면 나오신다더니 행랑채를 다 부셔도 왜 아니 오나
(김덕원) 바랑골 까마귀야 고만두나 울어요 정드신님 병환이 나날이 짚어간다
(김옥희) 돌산령 구비는 아흔아홉 구빈데 나 넘을 구비는 단 한구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주) 바랑골 : 팔랑리에 있는 골짜기 이름, 삼동세 : 삼동서, 대바우 용옆 : 양구 대암산의 용늪
듣기 ☞ https://www.provin.gangwon.kr/app_dep/folksong/prc_folksong_content.jsp?articleSeq=65
다음은「한국민요학」(1999· 한국민요학회) 제 7집에 게재된 김선풍교수의 논문〈양구아리랑얼러지 小考>의 가사인데 약간 다르지만 얼러지를 따는 것이 아니고 캐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바람골 뒷동산에 머루 다래가 떨거든 우리나 산 동배 머루 따러 가자
바랑골 뒷동산에 더덕살이 나거든 우리나 산 동배 더덕 캐러 가자
앞집에 총각아 낫 갈아라 바랑골 뒷동산으로 갈 꺽으로 가자
동산령 달산령 선질꾼이 떴다 재각자 애기 갈보야 술 빌려나라
대바원 용늪에 얼러지가 나거든 너하고 나하고 얼러지 캐러 가자
노란둑 대가리 뒤범벅 상투 언제나 길러서 네 낭군을 삼나
요년의 계집애야 그 말도 말어라 이십년 안쪽에 내 낭군이 될라
돌산령 새바람이 휘몰아치니 황금같이 익은 곡식 다 떨어진다
바랑골 밭가는 소리 처량도 한데 오고가는 행객들이 머물러진다
인생이 났구서 금전이나 났는데 인생은 모르고 금전만 아네
천천이 부르족족 다 가시던 낭군 백설이 휘날려도 왜 아니오나
머루 다래 떨어진 것은 꼭지나 있지 부모동생 떨어진 것은 꼭지조차 없네
놀다가 죽어도 원통 하다는데 땅만 파다가 죽은 요내 몸 얼마나 불쌍한가
얼레지라는 이름 외에 처음 기록된 얼네지나 평안도나 강원도 방언인 얼러지도 있다는 것을 보면 얼레라는 단어 때문에 그 유래로 등장한 연날리기 도구인 얼레나 얼레빗은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잎의 얼룩 무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구신(狗腎)을 뜻하는 엘레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한데 구신설도 그 꽃망울이 구신을 닮았다는 설은 납득하기 어렵다. 얼레지의 꽃망울이 거의 젓가락만한 굵기인데 그 가느다란 것을 보고 구신을 떠올린다는 것은 비약이 심한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잎의 얼룩 무늬가 다소 얼룩덜룩한 구신을 닮았다는 설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그렇게 되면 구신을 뜻하는 엘레지에서 왔던 얼룩에서 왔던 결국 잎의 얼룩 무늬에서 이름이 왔다는 것이 된다.
얼레지
설혹 얼레지의 이름이 구신을 뜻하는 엘레지에서 왔더라도 그 유래는 꽃망울이 아니라 잎의 얼룩 무늬일 것으로 판단된다.
얼레지 외에도 이명인 가재무릇에 대하여도 유래가 분명하지 않다. 우리나라에 무릇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 무릇을 비롯하여 중의무릇 까치무릇 가재무릇 꽃무릇 두메무릇 등 10여 종이 있는데 주로 백합과와 수선화과에 속한다. 무릇의 어원도 명쾌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가재의 어원 또한 아리송하다. 우선 가재가 절지동물을 뜻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뜻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일단 갑각류 가재라고 할 때 일부에서는 등껍질 등 갑각(甲殼)에 점점이 박힌 얼룩이 얼레지의 얼룩과 닮았다는 설을 제기한다. 미국에서 얼레지를 송어나리 즉 trout lily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서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잎에 얼룩 무늬가 전혀 없는 백양꽃이나 상사화 석산 등도 모두 가재무릇 또는 xx가재무릇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중의무릇이 사찰 주변에 많이 자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재무릇은 가재가 사는 계곡 주변에 많이 자생하는 무릇이라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설이기는 하다. 얼레지나 상사화 석산 모두 계곡가 습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가재무릇의 가재는 민물 가재인 것으로 판단되며 가제는 그 당시 흔한 오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얼레지 잎의 얼룩 무늬가 가재의 얼룩무늬를 닮았다는 것인데 설득력이 있으나
얼룩무늬가 없는 백양꽃이나 석산, 상사화 등을 설명할 길이 없다.
정말 가재가 살 법한 계곡가에 얼레지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등록명 : 얼레지
이 명 : 가재무릇, 얼네지, 얼러지, 차전엽산자고
학 명 : Erythronium japonicum Decne.
분 류 : 백합과 얼레지속 다년생
원산지 : 우리 자생종, 일본, 만주, 러시아
중국명 : 저아화(猪牙花) 별명 - 야저아(野猪牙) 산지과(山地瓜) 산우두(山芋头) 편율화(片栗花)
일본명 : 카타쿠리(カタクリ) = 편율(片栗)
영어명 : Asian fawnlily
높 이 : 25cm
개화기 : 3월 중순 ~ 4월 초순
내한성 : 영하 37도
용 도 : 관상용, 식용, 약용(일본)
얼레지를 정원에 재배하고자 할 경우 종자 파종은 비추이다. 너무 오래 걸린다. 요즘은 이런 야생화를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화훼농가가 더러 있으므로 거기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그럴 경우 반드시 잎이 두 장 나오는 것을 구입하여야 당해 연도에 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장소는 큰 낙엽수 아래 다소 습한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른 봄 개화기까지는 햇볕을 받고 그 이후에는 낙엽수에서 잎이 나와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름에 너무 뜨거운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한성이 아주 강하므로 북쪽 반그늘도 무방하다. 다만 늦봄에 하고현상(夏枯現象)이 발생한 이후 죽을 줄 알고서 그 자리에 큰 나무 등을 심으면 안된다. 다만 그 빈자리에 늦여름이나 가을에 꽃이 피는 뿌리가 얕게 내리는 일년초 등을 심어서 가꾸는 이모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얼레지
얼레지
얼레지
얼레지
얼레지
얼레지
얼레지
얼레지
얼룩 무늬가 없는 변이종도 있다.
'기타 과 식물 > 토종야생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921 복수초(福壽草) = 얼음새꽃 그 특성과 이름의 유래 (2) | 2020.02.07 |
---|---|
920 흰얼레지 - 매우 희귀한 변이종 그리고 북미 원산 얼레지들 (0) | 2020.02.04 |
836 앵초 = 프리뮬라,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우리 토종 야생화 (0) | 2019.11.05 |
834 노루귀와 섬노루귀 (0) | 2019.11.03 |
3월에 피는 야생화 (0) | 2019.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