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나이가 든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화투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화투가 조선말기에 일본에서 들어 온 것이며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일본의 중앙 정권을 장악한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치하던 1573~1603 사이인 소위 安土桃山時代(안사도산시대)에 포루투칼에서 도입된 플레잉 카드를 본따서 만든 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은 서양 카드는 52장이지만 그 당시 포르투갈 카드가 48장이었으므로 화투도 그렇게 12달을 대표하는 꽃이나 식물을 모델로 4장씩 모두 48장으로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화투가 아니라 하나후다(はなふだ)라고 하며 한자로는 화찰(花札)이라고 쓴다. 플레잉 카드를 일부에서 포커나 트럼프라고 하는데 이는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포커는 플레잉 카드로 할 수 있는 게임의 한 종류이며 트럼프(trump)는 으뜸패를 뜻하는데 초창기 일본인들이 이를 카드를 지칭하는 말인 줄로 잘못 알아듣고서 그렇게 잘못 쓴 것이 우리나라에까지 넘어온 것이다. 그 당시 포르투갈 상인이나 선교사가 가지고 온 것이 화투뿐만은 아닌데 그 중에는 기독교와 총포 그리고 카스텔라 등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 총포 즉 조총을 재빨리 도입하였기에 중소 규모의 영주에 불과하였던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 거의 전역을 통일할 수 있었으며 그의 후계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나라까지 침공하여 조선을 무참하게 짓밟게 된 계기가 되었다니 씁쓸하다.
그 화투에 흑싸리와 홍싸리가 각각 4월과 7월을 대표하는 화(花)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흑싸리와 홍싸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자. 왜냐하면 오늘 탐구할 검나무싸리가 바로 흑싸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표식에 등록된 약 1만 5천 종의 식물 중에서 흑싸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이 검나무싸리 뿐이다. 그렇다면 화투(花鬪)의 흑싸리가 정말 일본 화찰(花札)의 4월의 꽃일까? 그건 아니다. 화투의 흑싸리는 같은 콩과이기는 하지만 싸리와는 전혀 다른 식물인 등(藤)을 말한다. 화투의 흑싸리는 원래 일본에서 후지라고 하는 등나무를 말하는데 왜 이것이 국내에 와서 흔하지도 않은 흑싸리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싸리라는 부분이 흑백으로 그려진 우리나라 화투에서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컬러로 그려진 일본 화찰에서는 검은색 잎과 보라색 꽃이 구분되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화투도 자세히 보면 잎이 아래로 처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원래부터 직립하는 모습은 아니다. 참고로 흑싸리 옆 새는 두견새를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7월 홍싸리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표식에 홍싸리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싸리속 분홍싸리 단 하나가 있다. 그렇다면 학명 Lespedeza floribunda로 표기되는 분홍싸리를 모델로 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분홍싸리는 중국 에서만 자라는 싸리의 일종으로서 2000년대에 들어와서 우리나라와 일본에 유입된 귀화식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분홍싸리를 아예 중국싸리라는 뜻으로 도우쿠사하기 즉 당초추(唐草萩)라고 부른다. 따라서 화투가 만들어진 임진왜란 이전은 물론 우리나라에 전파된 조선말에도 분홍싸리는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7월 홍싸리는 분홍색 꽃이 피는 싸리속 식물 모두를 모델로 한 것인데 딱히 하나를 꼽으라면 일본에서 인기가 매우 높으며 꽃이 아름다운 학명 Lespedeza thunbergii인 우리나라 등록명 참풀싸리를 꼽을 수 있다. 참고로 화투 홍싸리 옆 동물은 멧돼지이다.
검나무싸리의 학명 Lespedeza melanantha Nakai는 1923년 일본 학자 나카이 타케노신이 명명한 것이다. 싸리와 매우 흡사한데 꽃 색상이 암적자색을 띠고 있는 신종이 아이치현(愛知県)과 구마모토현(熊本県)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종소명 melanantha는 검은 꽃밥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꽃 색상이 완전히 검은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검은 색조를 띠고 있어 그렇게 붙인 것이다. 꽃 색상 외에는 싸리와 그다지 다른 점이 없어서 나중에 일부 한일 학자들이 이를 싸리의 변종으로 분류하여 발표한 바도 있으나 지금 현재는 독립된 종으로 나카이가 명명한 학명이 널리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일본에서 이를 쿠로하나키하기(クロバナキハギ)라고 하며 한자로는 흑화목추(黒花木萩)라고 쓴다. 검은꽃 나무싸리라는 뜻인데 이 이름을 그대로 따라서 우리 이름을 정한 것 같아 씁쓸하다. 꽃이 검붉은 색이지 실제로 검은 색도 아닌데다가 특히 나무싸리라고 하는 것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싸리도 나무고 참싸리도 나무이며 조록싸리 등 싸리속 큰싸리아속은 거의 모두 목본인데 이 종만 특별히 나무싸리라고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나무싸리 즉 목추(木萩)라고 한다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따라 한 셈이 되었다.
여하튼 우리이름 검나무싸리는 정태현의 1942년 조선삼림식물도설에 근거하고 이후 1996년 이우철의 한국식물명고에서 다시 인용됨으로써 정명이 되었다. 그런데 이 종은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외래종이 아니라 우리나라 충청도 이남 여러 군데서 자생하는 것이 발견된 엄연한 우리 자생종이다. 그래서 검은나무싸리라는 이름이 마땅치 않다고 느꼈는지 많은 국내 학자들이 새로운 다양한 이름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는 이창복의 쇠싸리와 이영노의 흑싸리 박만규의 자주싸리 등이 있다. 그 외에도 1982년 안학수 이춘영 박수형이 펴낸 한국농식물자원명감에서 제시한 빨강흑싸리가 있는데 이 이름이 가장 실상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검나무싸리는 우리나라서는 충청도 이남에서 자생하는데 겨울에 지상부 절반이 말라 죽는다고 하며 일본에서도 온난한 지역에서만 자생하므로 내한성이 약할 것으로 판단되어 중부지방에서의 노지월동은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검나무싸리는 싸리에 비하여 잎이 작고 둥근 꽃도 작으며 꽃자루도 짧고 꽃부리의 크기는 기판 익판 용골판 순서인데 용골판이 익판보다 더 큰 싸리와는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열매는 싸리보다 길지만 너비는 좁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뭐니뭐니해도 검은색을 띤 암적자색인 꽃 색상이라고 할 수 있다.
등록명 : 검나무싸리
이 명 : 흑싸리, 쇠싸리, 자주싸리, 빨강흑싸리 등
학 명 : Lespedeza melanantha Nakai
이 명 : Lespedeza bicolor var. higoensis (T.Shimizu) Murata
이 명 : Lespedeza bicolor var. melanantha (Nakai) Akiyama & H.Ohba
이 명 : Lespedeza bicolor var. melanantha (Nakai) Y.N.Lee
분 류 : 콩과 싸리속 큰싸리아속 관목
원산지 : 우리 자생종, 일본
수 고 : 1~3m
잎특징 : 우상복엽 3소엽, 정소엽 타원형 원두, 1.5~4cm 길이, 하면 단모
꽃차례 : 총상화서 액생
꽃특징 : 암적자색, 1.1~1.5cm
꽃받침 : 열편이 꽃받침통보다 짧음
개화기 : 7~8월
결실기 : 10~11월
용 도 : 밀원용, 사방용, 약용
내한성 : 중부 노지월동은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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