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가 표준어이다.
앵도나무는 표준말이 앵두나무인데도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앵도나무를 추천명 즉 정명으로 삼는다. 원래 원산지 중국에서 온 한자 이름이 앵도(櫻桃)에서 비롯되었다면 앵도나무가 옳을 듯하지만 우리말이 20세기에 들어와서 2음절의 도가 두로 변화는 과정을 거쳤다. 예를 들면 자도(紫桃)가 자두로 호도(胡桃)가 호두로 변화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앵두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하지만 1937년 정태현선생 등이 정리한 조선식물향명집에 앵도(櫻桃)라고 기록되었다. 그 후 1942년 정태현선생이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칭한 앵도나무가 현재까지도 정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작 정태현선생은 나중인 1949년에 조선식물명집에서는 표준말을 따라서 앵두나무라고 개칭했으나 여태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당초 그대로 앵도나무를 고수하고 있다. 도대체 이 사람들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앵두의 원산지는 중국
재배 역사가 매우 긴 원산지 중국의 앵도(櫻桃) 출전은 중국 후한 허신(許愼, 58~147)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설문해자(說文解字)이다. 거기에 앵두는 원래 노랑꾀꼬리 즉 황앵(黄鶯)이 특별히 쪼아먹기를 좋아하여 앵도(鶯桃)라고 하다가 나중에 다닥다닥 달린 그 열매가 옥구슬 즉 영주(璎珠)를 닮았기에 발음이 같은 앵도(櫻桃)로 변했다고 한다. 한자 앵(櫻)는 나무 목(木) 자에 목에 건다는 뜻의 영(嬰) 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함도(含桃)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함(含)은 입안에 음식을 머금고 먹는 것 즉 함식(含食)을 의미한다. 중국 고서에는 꾀꼬리가 열매를 함식하였다고 설명하는데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람이 앵도를 먹을 때 입안에서 한 움큼 털어 넣고 혀를 굴러 과육과 종자를 분리하여 과육은 삼키고 씨앗은 뱉어내면서 먹어야 한다고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앵도나무의 학명 Prunus tomentosa Thunb.는 스웨덴 식물학자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가 일본서 발견하여 1784년에 잎이나 가지 등에 털이 많다고 그런 뜻의 종소명을 써서 명명한 것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도입
앵도나무는 시골 우물가에 많이 심어져 있어서 우리 자생종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중국 최북단 동북3성과 내몽고지역에서부터 중국 최남단 남쪽 사천성 운남성 및 서장성 등 거의 전역에서 자생하는 중국 고유종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문헌에 등장하므로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54권에 예종 6년 1111년 六月(6월) 中書省櫻桃結子(중서성앵도결자) 大如杏子(대여행자) 而中空無核(이중공무핵). 즉 “중서성(中書省)의 앵두나무가 열매를 맺었는데 크기는 살구만했으나 속이 비고 씨가 없었다.”라고 변괴가 발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무신집권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9~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다음과 같은 앵도(櫻桃)에 대한 율시가 있다.
無奈櫻桃何(무나앵도하)
那堪着地多(나감착지다)
無情鸎擺落(무정앵파락)
有信蝶來過(유신접래과)
細葉微藏蔕(세엽미장체)
繁花逬壓柯(번화병압가)
趁春如未賞(진춘여미상)
零落謾長嗟(영락만장차)
어쩌면 좋을까 저 앵두꽃
저리도 많이 땅에 떨어지네
무정한 꾀꼬리 꽃잎을 털고 가고
믿음직한 나비는 오고 가네
여린 잎은 겨우 꼭지를 가리고
빼곡한 꽃에 가지가 휘어지네
이 봄에 구경하지 못하고
낙화 후 탄식한들 부질없으리
1254년에 편찬된 보한집(補閑集)에도 “櫻桃云(앵도운) 摘來夏實珠千顆(적래하실주천과) 想得春花雪一枝(상득춘화설일지)”라고 “앵도(櫻桃)에 이르기를 여름 과일 따러 갔는데 구슬 천 개를 봄꽃을 기대했는데 가지 가득 눈이네”라고 작시(作詩)에 관한 대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고려말 정몽주의 문하생인 문신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櫻桃(앵도)라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粲爛朱櫻熟(찬란주앵숙)
찬란하게 익은 빨간 앵두
團圓湛露濡(단원담로유)
동글동글한 것에 이슬이 가득하네.
摘來盤上看(적래반상간)
따서 소반에 담아서 보니
箇箇是明珠(개개시명주)
하나하나가 빛나는 구슬이네.
고려시대 이전에 남북국시대(698∼926) 즉 신라말 학자인 최치원이 886년에 지은 문집인 계원필경(桂苑筆耕)에 이미 앵도(櫻桃)가 등장하지만 계원필경이라는 것이 그가 당나라 유학시절 그리고 그 후 당나라에서 관리를 역임하던 시절 집필한 시문을 엮은 것이므로 그 시문에 등장하는 앵도는 신라의 앵도가 아니고 당나라에 있던 앵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라말기에 이미 앵도라는 존재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그 이름은 알려졌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참고로 남북국시대란 우리나라 통일신라와 발해를 합하여 그 시기를 이르는 새로운 역사 용어이다. 지금은 앵두를 아무도 과일로 취급하지 않아서 재배 농장도 없고 마트에서도 보기 힘들지만 고려시대에는 매우 귀한 과일로 대접을 받아 태묘에 매월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위에 올리는 즉 천신(薦新)제례 때 4월의 제물로 보리와 앵두를 올린다고 고려사 61권 길례대사 태묘편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와서도 태종 이방원이 5월 천신제례에 보리 및 앵두와 살구 그리고 참외를 함께 올리라고 명을 내린 기록이 태종실록에 있다. 세종은 앵두를 너무 좋아하여 문종이 세자시절 직접 대궐에 심어서 부왕에게 바쳤다는 기록도 있고 중종실록에는 앵두를 승정원과 홍문관 예문관에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선조실록 8년 즉 1575년 9월에 가을 날씨가 너무 더워서 호남에는 앵도가 열매를 맺었고 한양에는 살구꽃이 만발하였다면서 변괴가 발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요즘 같으면 이상 고온으로 개나리 벚꽃이 피었다라고 할 법한 상황을 이렇게 보고한다. 그 당시의 대표적인 봄꽃이 앵두와 살구라는 이야기가 된다. 허준선생에 의하여 1610년에 완성된 동의보감에도 앵도(櫻桃)가 우리말로 이스랏이며 조중(調中) 익비기(益脾氣) 등의 효과가 있는 약재로 소개하고 있다. 그 이전인 1527년에 쓰여진 훈몽자회(訓蒙字會)에도 앵(櫻)을 이스랏으로 풀이하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 고문헌에 앵두와 관련된 기록을 여럿 인용하는 것은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나라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에서 관리하는 도감에 앵두가 우리나라에는 1600년대에 도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그대로 퍼 나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임진왜란(1592~1597) 이후에 도입되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록에 나오는 앵도(櫻桃)는 뭐라는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이 국생정도감에 수록된 것은 아마 일본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인 것처럼 착각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은 에도시대(1603~1868) 초기에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다가 해방 후 1950년대 그 유명한 유행가 앵두나무처녀가 등장한다. 한복남 작곡 김정애 노래의 작사가는 천봉 천상률(千相律, 1923~1989)선생님이다. 그래서 전국민이 앵두나무는 우물가에 많이 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앵두는 습한 지역과 응달은 싫어하는 나무이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다음은 한 포기의 야생화만 봐도 울고 시래기 삶는 냄새에도 눈물 지어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었던 박용래(1925~1980)선생의 ‘앵두, 살구꽃 피면’이라는 시인데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 앵두꽃과 살구꽃에서 외할머니 목도리를 연상하며 눈물깨나 흘렸을 것 같다. 아마 작자의 말년인 70~80년대에 발표한 시 같은데 정확한 연대는 찾지 못했다.
앵두꽃 피면
앵두바람
살구꽃 피면
살구바람
보리바람에
고뿔 들릴세라
황새목 둘러주던
외할머니 목수건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2천년 이전부터 중국에서 재배 기록이 있는 중국 원산 앵도(櫻桃)가 우리나라에는 천년 전인 고려시대에 도입되어 귀한 과일로 대접을 받아 왔지만 최근에는 사과 배 귤 바나나 복숭아 자두 블루베리 등 다양한 과일들에게 밀려 푸대접을 받아 과일로서의 존재감은 거의 상실하고 그저 빨간 작은 열매가 달리는 추억 속의 꽃나무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아무리 현재 위상이 많이 실추되었다고 앵두가 1600년대에 도입된 국내 재배 역사가 겨우 400년에 불과하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는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앵두는 중국 앵도(櫻桃)가 아니고 모앵도(毛櫻桃)이다.
그런데 앵두에 관하여 잘못된 정보가 이것뿐만은 아니다. 매우 중요한 새로운 정보가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우리 주변의 앵두가 중국에서 도입된 중국 고유종임은 틀림없지만 중국에서 앵도라고 부르는 수종은 우리가 앵두라고 부르는 수종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의 앵두가 분명 먼 옛날 중국에서 도입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인들이 앵도(櫻桃)라고 부르는 수종은 따로 있고 우리의 앵도는 중국에서 모앵도(毛櫻桃)라고 부르는 수종이라는 것이다. 중국 이름이 앵도와 모앵도이므로 털의 유무에 따른 원종과 변종의 관계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는 전혀 아니다. 우리 앵두는 학명을 Prunus tomentosa로 표기하며 벚나무속에서도 자두나무아속으로 분류되지만 중국 앵도(櫻桃)는 학명을 Prunus pseudocerasus로 표기하며 벚나무속에서 벚나무아속으로 분류되는 전혀 별개의 종이다. 우리 앵두는 풀또기와 산옥매 그리고 산이스라지 등과 가까운 근연관계에 있지만 중국 앵도는 벚나무의 일종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벚나무 즉 사쿠라를 한자로 앵(桜) 즉 앵(櫻)으로 쓰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서 사쿠라를 왜 앵두나무의 앵(櫻)으로 쓰는지 매우 궁금하였는데 이제야 그 의문이 풀린다.
중국 앵도는 벚나무 즉 일본 사쿠라와 비슷하고 서양의 체리와 비슷한 것이다. 중국 앵도는 관상용으로 쓸 만 하지만 비록 열매는 작아도 그 열매를 수확하기 위하여 재배하는 과수용 벚나무의 일종이다. 쉽게 말하여 서양에서 도입된 양벚나무나 신양벚나무에서 체리를 수확한다면 중국 앵도에서 중국 체리를 수확하는 것이다. 그래서 앵도(櫻桃)의 별명 중에 차리자(車里子)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바로 영어 cherry를 음역한 것이다. 우리 앵두도 식용하므로 굳이 차리자(車里子)라고 말해도 안될 것은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과일로 널리 보급되는 중국 앵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중국의 앵도는 실제로 식용으로 재배하고 판매하기 때문에 학명 Prunus cerasus인 서양 체리 즉 신양벚나무와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중국 앵도의 학명도 가짜 신양벚나무라는 뜻으로 Prunus pseudocerasus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라말 유학자 최치원이 중국에서 접했다는 앵도는 분명 우리가 말하는 앵두가 아니며 동의보감에서 언급한 중국 약재 앵도 또한 우리 앵두가 아닌 중국의 앵도인 것이다. 중국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 기록된 앵도(櫻桃)는 분명 중국 앵도를 말한다. 우리 앵두도 종자를 대리인(大李仁)이라며 욱리인(郁李仁)과 비슷한 효능의 약재로 쓰기는 하지만 중국 앵도와 같이 가지와 잎 뿌리 그리고 꽃까지 약으로 쓴다는 기록은 중국에 없다. 즉 중국 앵도(櫻桃)와 우리 앵두(毛櫻桃)의 약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 인터넷은커녕 사진도 없던 시절 타국과의 사이에 이런 정보 오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목련은 중국 이름이 목란이고 중국에는 따로 목련이라고 불리는 상록수종들이 여럿 있다. 오동도 마찬가지이다. 오동나무에 봉황이 깃든다고 우리 주변의 오동나무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다. 중국의 오동나무는 우리가 벽오동이라고 부르는 다른 수종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유명 시인들이 해당화를 노래하였다고 그게 가시가 많은 우리나라 명사십리 해당화로 생각하면 안 된다. 중국에서의 해당화는 수사해당 서부해당 등과같이 꽃사과나무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럼 문제는 중국에서 보다 더 많이 식용하는 진짜 앵도(櫻桃)는 왜 도입이 안되고 국내에는 왜 중국의 모앵도(毛櫻桃)만 도입되었으며 그런 사실을 왜 여태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앵도를 원산지 중국에서 언제부터 재배하였는지도 궁금하다. 중국은 우리 앵두를 모앵도라는 이름 외에도 산앵도(山櫻桃)라고 부른다. 이는 그냥 농가에서 재배하는 앵도가 아니라 산에서 야생하는 앵도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열매를 채집하여 식용 또는 약용으로 쓰기는 하지만 대량 재배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정원에서 관상수로 가끔 심고 있는 정도로 보인다. 그래서 재배역사에 관한 연구가 없는지 중국에서도 특별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앵도 대신에 모앵도가 국내에 도입된 이유는 나름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 앵도는 내한성이 떨어져 화북 화중 지방을 중심으로 비교적 온난한 지역에서만 자생하고 흑룡강성이나 길림성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심지어는 난지앵도(暖地桜桃)라고도 부른다. 둘째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모앵도(毛櫻桃)를 앵도(櫻桃)라고 부른다고 중국식물지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접경지역 중국인들이 앵두를 앵도(櫻桃)라고 하니 우리 선조들은 모앵도를 앵도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초기에 도입되었다는 앵두의 이름 유스라우메(ユスラウメ)의 어원을 공식적으로 모른다고 한다. 웬만한 식물명의 어원을 거의 다 규명하고 있는 일본에서 고대에 도래한 식물도 아니고 비교적 최근인 에도시대에 도입된 수종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함경남도 방언에 이스라지나무를 유수라지나무라고 한다고 정태현선생이 조선삼림식물도설에 분명히 기재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일본 유스라우메의 어원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러니까 일본에서 어원 파악을 못하는 것 아니라 하기 싫은 것으로 보인다. 식물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은 종종 인정해도 이름이나 식물문화까지 조선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은 웬만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더더욱 일본 유스라우메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건너가면서 함경남도 방언인 유수라지나무라는 이름이 그대로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하나 중요한 것은 일본은 현재 유스라우메(ユスラウメ)를 절대로 앵도(櫻桃)라고 한자표기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중국 이름인 산앵도(山桜桃)로 쓰거나 아니면 엉뚱하게 매도(梅桃)라고 쓴다. 분명 2차세계대전 말기 또는 그 직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앵도(櫻桃)라고 부르면서 열매를 구황식물로 요긴하게 애용하였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서양 체리에 비견되는 중국의 앵도(櫻桃)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 결국 우리나라만 멍청하게(?) 아직도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현재 일본에서 桜桃(앵도)라고 하면 사쿠란보(サクランボ)라고 발음하고 영어 cherry와 동일한 의미로 식용 열매를 지칭한다. 다음에 벚나무를 탐구할 때 보다 더 자세하게 파악하겠지만 체리는 유럽과 서아시아의 원산인 단맛과 신맛 두 종류가 있고 여기에 중국 원산의 또 한 종이 있는데 그게 바로 중국 앵도(櫻桃)인 것이다.
櫻(앵)은 앵두가 아니라 벚나무를 뜻하는 한자이다.
그래서 한자 櫻을 과거 우리 옥편에서는 앵두나무 앵이라고만 풀이하였으나 최근의 네이버사전에는 이미 벚나무라는 풀이도 추가하고 있다. 이게 일본 사쿠라 때문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원래부터 중국의 앵(櫻)은 최초의 중국 사서인 설문(說問)이나 이아(尔雅) 그리고 예기(禮記)에서부터 후대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이나 강희자전(康熙字典)에까지 한결같이 벚나무의 일종인 중국 앵도(櫻桃)를 지칭했지 우리 앵두인 모앵도(毛櫻桃)를 지칭한 적은 없다. 열매가 구슬 즉 영주(璎珠) 같다느니 꾀꼬리가 함식(含食)하므로 함도(含桃)라고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모두 우리 앵두가 아닌 중국 앵도를 대상으로 한다. 결국 우리만 이게 앵두를 뜻하는 글자인 줄 알았고 일본도 임진왜란 이후 처음에는 앵두를 櫻桃라고 한자 표기하다가 메이지유신 즈음에 체리가 도입되면서 쓰지 않게 되었는데 사쿠라를 언제부터 일본식 간체자인 桜(앵)으로 한자표기 하였는지는 다음에 벚나무편에서 파악해 보기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라도 한자 櫻(앵)을 벚나무라고 풀이하고 앵두나무는 부기 정도로 풀이해야 될 것 같다. 참고로 桜은 일본에서 만든 櫻의 간체자이다.
등록명 : 앵도나무
표준말 : 앵두나무
학 명 : Prunus tomentosa Thunb.
분 류 : 벚나무속 자두나무아속 왜성벚나무조 낙엽 관목
원산지 : 중국
중국명 : 모앵도(毛櫻桃) 산앵도(山樱桃) 매도(梅桃) 산두자(山豆子) 앵도(樱桃)
일본명 : 유스라우메(ユスラウメ, 梅桃, 山桜桃)
영어명 : Korean cherry, Manchu cherry 등
수 고 : 1~2.4m, 소교목 형
가 지 : 자갈색 회갈색, 눈지 융모 밀생, 무모
동 아 : 난형, 단유모 무모
엽 편 : 난상차원형 도란상타원형
잎크기 : 2~7 x 1~3.5cm
잎모양 : 선단급첨 점첨, 기부 설형, 조예거치
잎색상 : 상면 암록색, 심록색, 유모, 하면 회록색, 회색융모, 후변 희소
측 맥 : 4~7대
잎자루 : 2~8mm, 융모 탈락 희소
탁 엽 : 선형, 3~6mm, 장유모
꽃차례 : 단생, 2송이 족생, 화엽동시, 선엽개방
꽃자루 : 2.5mm 근무경
악 통 : 관상 혹 배상, 4~5mm, 단유모 무모
악 편 : 3각란형, 선단 원둔 급첩, 2~3mm, 내외면 유모 무모
화 판 : 백색 분홍색, 도란형, 선단원둔
수 술 : 20~25매, 화판보다 단
화 주 : 신출 수술과 등장 초장
자 방 : 모, 정단 혹 기부 모
열 매 : 핵과 근구형, 홍색, 지름 05~1.2cm, 핵표면 제외 척추 양측 종구, 무릉문
개화기 : 4~5월
결실기 : 6~9월
염색체 : 2n=16
용 도 : 생식, 양조, 약용 - 종인(대리인) 윤장이수 효능, 무독
특 성 : 내한성 내서성 병충해에 모두 강하나 과습과 응달을 싫어한다.
내한성 : 영하 45도
앵도나무 원예품종으로 흰색 열매가 달리는 Prunus tomentosa 'Leucocarpa'라는 품종이 앵도나무 '레우코카르파'라는 국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일부에서 중국에는 황색 열매가 달리는 품종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우리 앵두가 아니라 중국 앵도를 말하므로 종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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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중국의 앵도(櫻桃)인데 오래전에 국내 도입되어 우리 주변에 흔한 앵두와는 전혀 다른 나무로서 벚나무의 일종이다.
명 칭 : 중국 앵도(櫻桃) – 미등록종
학 명 : Prunus pseudocerasus Lindl.
분 류 : 장미과 벚나무속 벚나무아속 벚나무조 낙엽 소교목
원산지 : 중국 요녕성 이남지역
일본명 : カラミザクラ(唐実桜)
영어명 : Chinese sour cherry, Chinese cherry
수 고 : 8m
잎크기 : 5~12 x 3~5cm
측 맥 : 9~11대
잎자루 : 0.7~1.5cm
꽃차례 : 산방상 3~6송이
열 매 : 핵과, 근구형, 홍색, 지름 0.9~1.3cm
개화기 : 3~4월
결실기 : 5~6월
용 도 : 식용, 양조, 지엽근화 약용
내한성 : 영하 26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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