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장미과 아몬드아과/산사나무속

1922 털산사 or 좁은잎산사나무? 엉망진창 명칭

낙은재 2024. 3. 2. 11:53

좁은잎산사나무

 

 

털산사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산사나무 변종이 있다. 중국 동북지방과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다는 이 수종의 학명은 1906년 독일 식물학자인 Camillo Karl Schneider (1876~1951)가 명명한 Crataegus pinnatifida var. psilosa C.K.Schneid로 등록되어 있다. 이 학명의 변종명 psilosa는 영어로 naked 즉 털이 없다는 뜻의 라틴어 psilo에 온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 수종을 변종명의 의미와는 반대인 털산사라고 등록하고 있다. 우리 외에도 또 다른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한때 동북목본식물도설(东北木本植物图说)에서 이 수종을 장모산사(长毛山楂)라고 했다. 왜 학명과는 정반대되는 이름을 원산지인 우리나라와 중국 양국에서 붙이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원래 털이 많은 변종인데 학명을 실수로 잘못 붙인 것인가 싶어서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의 도감인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을 찾아봐도 그 어디에도 털산사에 긴 털은커녕 짧은 털이 있다는 내용도 없다. 그 대신에 원종인 산사나무와 차이점으로 잎의 갈라진 조각 즉 열편(裂片)이 좁다는 설명만 기재되어 있다. 실제로 이 변종은 열편이 좁고 길며 털이 거의 없다. 특히 잎 전면과 꽃자루에는 털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털산사라는 이름은 1966년 이창복선생의 한국수목도감에 근거하는데 혹시 이게 실수로 붙여진 이름인가? 그런데 그 이름은 1943년 정태현선생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 수록된 털산사나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실수일 것 같지는 않다. 그 이후에도 1982년 안학수선생이 털이광나무라고 했고 1996년 이우철선생은 한국식물명고에서 연변 방언이라며 털찔광나무라는 이름을 소개했다. 그리고 국표식에 기재된 영어명을 봐도 Hairy Korean hawthorn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건 누가 봐도 털이 아주 많은 변종이라야 하는데 왜 국생정 도감에는 털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왜 변종명 psilosa는 전혀 반대인 털이 없다는 뜻이란 말인가?   

 

산사나무의 변종인 이 Crataegus pinnatifida var. psilosa는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서양 대부분이 변종으로 인정하여 분류하지만 앞 게시글의 넓은잎산사나무와 마찬가지로 영국 왕립식물원인 큐(Kew)에서는 이미 원종인 산사나무에 통합시켰으므로 우리나라도 앞으로 원종인 산사나무에 통합시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다지 중요한 변종은 아니지만 이렇게 학명과 우리 이름이 정반대인 사실은 규명하지 않을 수가 없어 지금부터 파악해 본다. 우선 국가표준식물목록 외국명을 살펴보면 일본 이름이 이상하게 호소바산자시(ホソパサンザシ)라고 즉 세엽산사자(細葉山査子)라고 기재되어 있어 털에 대한 내용이 없다. 그리고 그 아래 북한 이름 또한 좁은잎찔광나무와 좁은잎산사나무로 되어 있어 일본 이름과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잎이 좁기만 하는 변종인지 아니면 좁으면서 털도 많은 변종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1937년에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찾아 봤다. 아니다 다를까 거기에도 동일한 학명이 좁은잎산사나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 북한이나 일본 이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왜 이런 중요한 정보를 현재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외면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무시하려면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던가 말이다. 우리 학자들에 의하여 작성된 우리말 최초의 식물목록인 조선식물향명집의 명칭은 반드시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수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국가표준식물목록인데 국명과 영문명은 털산사이지만 학명과 일본명 북한명은 모두 좁은잎산사나무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동일한 학명인 Crataegus pinnatifida Bunge var. psilosa C.K.Schneid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좁은잎산사나무라고 제대로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도대체 왜 지금에 와서는 털산사라고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없던 털산사라는 우리 이름이 왜 갑자기 1943년 조선삼림식물도설에 나타난 것인지가 의문이다. 정태현선생 외에도 이창복선생 또한 1966년에 털산사라고 했으니 분명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당대 최고의 식물학자 두 분이 그렇게 칭(稱)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추적해 보니 역시 그 당시부터 거의 최근까지 잎의 앞뒷면과 꽃자루에 털이 많은 Crataegus pinnatifida var. pubescens Nak.라는 학명으로 표기하던 털산사라는 다른 변종이 좁은잎산사나무와는 별도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변종명 pubescens는 downy or short haired로 즉 솜털 또는 단모로 덮여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이름이 털산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학자 나카이가 명명한 이 학명은 제대로 조건을 갖추어 발표한 것이 아닌 비합법명이라서 국제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2002년 서울대 장진성교수 등이 발표한 비합법명 리스트에도 포함되어 있다. 나카이의 학명이 비합법명이라서 그랬던지 언제부터인가 나카이의 사위이자 일본 식물학자인 마사오 키타가와(北川 政夫, 1910~1995)가 1979년에 산사나무 하위 품종으로 재명명한 Crataegus pinnatifida f. pilosa (C.K.Schneid.) Kitag.로 학명 표기를 바꾼다. 그러니까 조선식물향명집에 수록된 좁은잎산사나무의 학명은 Crataegus pinnatifida var. psilosa C.K.Schneid.로 되어 있었지만 한동안 국내 털산사나무의 학명은 Crataegus pinnatifida f. pilosa (C.K.Schneid.) Kitag.로 표기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관련된 학명 같아 보여도 자세히 보면 변종에서 품종으로 재명명되면서 품종명의 스펠링이 달라진 것이다. 즉 psilosa가 pilosa로 알파벳 한 글자가 빠진 것인데 그 내용은 무모(無毛)에서 장모(長毛)로 완전 정반대어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품종명 pilosa는 영어로 covered in soft long hair 즉 장유모(長柔毛)로 덮여 있다는 뜻이므로 pubescens와 유사하여 털산사와는 어울리는 학명이 된다.

 

하지만 당초 독일학자가 변종(var.)으로 명명한 것을 나중에 품종(f.)으로 얼마든지 재명명할 수는 있어도 변종명 그 자체를 변경할 수는 없는데 어떻게 정반대의 의미로 변경된 품종명을 가진 학명이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1979년 일본 학자 키타가와가 발표한 학명은 Crataegus pinnatifida f. psilosa (C.K.Schneid.) Kitag.라고 제대로 명명되었다. 그렇다면 이를 한중 양국 또는 어느 쪽에서 먼저 실수한 것을 다른 한쪽이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1955년에 발간된 중국의 동북목본식물도지(东北木本植物图志)에서 슈나이더의 학명을 실수로 C. pinnatifida Bge. var. pilosa Schneid.라고 기록하면서 중국 이름을 장모산사(长毛山楂)라고 한 것에서부터 오류가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학자 기타가와가 변종을 품종으로 재명명하기 전부터 좁은잎산사나무를 위하여 독일학자 슈나이더가 명명한 학명의 Crataegus pinnatifida var. psilosa의 스펠링을 실수로 변경하여 Crataegus pinnatifida var. pilosa C.K.Schneid.라는 비합법 학명으로 장모산사(長毛山楂)를 표기하였다는 말이다. 이런 실수를 하게 된 이유는 아마 러시아 학자가 1930년에 다른 표본을 대상으로 명명하였으나 현재 원종이 통합된 학명 Crataegus pinnatifida var. pilosa Skvortsov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구체적인 과정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털산사를 한때 Crataegus pinnatifida f. pilosa (C.K.Schneid.) Kitag.라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카이의 학명이 비합법명이 되자 엉뚱하게 중국에서 misspelling한 학명으로 과거 한동안 털산사를 표기했다.

 

 

그러다가 아마 최근에 스펠링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품종에서 원래의 변종으로 되돌린답시고 학명을 Crataegus pinnatifida var. psilosa C.K.Schneid.로 수정하였는데 이러고 보니 과거 좁은잎산사나무와 동일한 학명이 된 데다가 털산사와는 정반대의 의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이미 좁은잎산사나무는 넓은잎산사나무와 함께 원종인 산사나무에 통합되었기에 같은 학명이 동시에 존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금 현재 국제적으로는 영국의 큐(Kew)를 제외한 대부분이 좁은잎산사나무를 아직 변종으로 분류하고 있는 반면에 털산사는 세계 모두가 원종에 통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변종을 그대로 두려면 좁은잎산사나무를 남겨야지 털산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 국립수목원이 남기고 싶은 변종이 좁은잎산사나무인지 털산사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제까지 매우 장황하게 오히려 헷갈리게 설명하였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과거 국내 산사나무는 5개의 변종이 있었는데 그 중 4개의 변종은 원종인 산사나무에 통합되었고 털산사 하나만 남았는데 그 학명이 하필이면 정반대의 뜻을 가진 과거 좁은잎산사나무의 학명으로 잘못 등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학명 기준으로 말하면 산사나무 5개 변종 중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변종인 좁은잎산사나무 하나를 남겼는데 국명을 털산사라고 잘못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식물 명칭은 털산사이지만 정보 내용은 털산사와 좁은잎산사나무가 혼합된 뒤죽박죽이고 국립수목원 도감은 거의 대부분의 정보가 좁은잎산사나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냥 한마디로 말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국표식 목록 수정의 작업 이력을 밝히지 않아서 이런 잘못된 문제를 파악하기 위하여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헛되이 소비한 것이 아깝기 짝이 없다.

위와 같이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산사나무를 원종 외에 5개 변종으로 추가 분류했었다.

 

 

 

등록명 : 털산사(수정을 요함)

수정명 : 좁은잎산사나무

학    명 : Crataegus pinnatifida var. psilosa C.K.Schneid.

이    명 : Crataegus pinnatifida f. psilosa (C.K.Schneid.) Kitag.

분    류 : 장미과 산사나무속 낙엽소교목 산사나무의 변종

원산지 : 자생종, 중국

북한명 : 좁은잎찔광나무, 좁은잎산사나무

중국명 : 무모산사(无毛山楂)

일본명 : 세엽산사자(ホソパサンザシ, 細葉山査子)

특    징 : 잎이 좁고 길며 잎과 꽃자루에 털이 없음

 

1937년과 1956년 채집한 좁은잎산사나무 표본

 

 

 

 

변종명 : 털산사

이    명 : 털찔광나무 털이광나무

수정명 : 산사나무

학    명 : Crataegus pinnatifida Bunge(원종에 통합)

과거명 : Crataegus pinnatifida var. pubescens Nak.(비합법명)

과거명 : Crataegus pinnatifida var. pilosa C.K.Schneid.(오기)

과거명 : Crataegus pinnatifida f. pilosa (C.K.Schneid.) Kitag.(오기)

원산지 : 자생종, 중국

중국명 : 장모산사(長毛山楂)

특    징 : 잎 앞뒷면과 꽃자루에 많은 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