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탐구이야기

장미과 아몬드아과/배나무속

1949 도대체 누가 배나무를 식물목록에서 지웠나?

낙은재 2024. 3. 21. 09:29

재배용 농장의 배꽃도 아름답기만 하다.

 

 

 

우리나라 식물분류학에서는 장미과 Pyrus속을 배나무속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배나무속의 주인장 즉 대표 수종이라고 할 수 있는 배나무가 없다. 이게 말이 되나? 당연히 안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37년 한글 최초의 식물목록인 조선식물향명집에는 당연히 배나무(과수용 재배종)가 돌배나무(지금의 콩배나무)와 산돌배 그리고 좀돌배나무(지금의 콩배나무)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불과 2년 전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현재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돌배나무 산돌배 그리고 콩배나무는 여전히 있는데 정작 배나무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다니 그 사이 멸종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무리 단순한 업무적인 실수라고 하더라도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복사나무 벚나무 매실나무 자두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모두 다 등록되어 있건만 배나무라는 나무가 없다니 그러고도 국가의 표준 식물목록이라고 할 수 있겠냐 말이다. 용납하기 어렵다.

 

사정인 즉슨 배나무의 학명 Pyrus pyrifolia var. culta가 태생적으로 과수용 재배종에다가 붙인 학명이므로 이를 원종인 돌배나무의 학명 Pyrus pyrifolia에 국제적으로 통합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이명처리 된 것이라고 변명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배나무라는 명칭을 가진 수종이 중국에도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핏 들으면 상당히 논리적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절대 수긍할 수 없다. 우선 돌배나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그 학명 즉 Pyrus pyrifolia를 지칭하는 우리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초 조선식물향명집을 발간할 당시 돌배나무는 지금 현재 콩배나무의 원종인 학명 Pyrus calleryana로 표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새로운 학명 Pyrus pyrifolia로 갈아 탄 이름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한 돌배나무라는 이름이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특정 수종을 부르던 굳어진 이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금 먼저 Pyrus pyrifolia로 갈아탔다고 나중에 합류한 배나무 더러 넌 나중에 왔으니까 네 이름을 버리고 내 밑으로 들어 와서 내 이름을 쓰라고 강요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 말이다. 배나무라는 이름은 어제 오늘 생긴 이름은 물론 아니고 조선시대에 생긴 이름도 아닌 삼한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쓰던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걸 마음대로 쉽게 버릴 수 있느냐 말이다.

 

이게 이제부터는 돌배라고?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건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한 대표적인 처사가 아닌가 한다. 국제식물명명규약에서도 이런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해결한다. 즉 예로부터 또는오랫동안 널리 쓰던 굳어진 이름은 일부 규칙에 위배되더라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둔 것이다. 우리나라 자생종 목련의 경우 스위스 식물학자 깡돌에 의하여 1818년에 명명된 학명 Magnolia kobus에 하자가 있었지만 널리 사용되었기에 그대로 인정한 경우이며 은종나무의 학명 Halesia carolina도 이미 속명을 누가 먼저 사용하였지만 그대로 인정해 준 경우이다. 이런 이름을 보존명(保存名)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conserved name이며 라틴어로는 nomen conservandum이라고 한다. 설령 이런 국제규약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정서상 배나무를 돌배나무라고 부르라고 하는 것을 누가 납득조차라도 할 수 있겠냐 말이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식물의 우리 이름 명명에 관한 어떤 제대로 된 규칙이 있기라도 하느냐 말이다.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그런 규정이 전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하루 아침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들이 따지지 않아도 될  이 경우에는  새삼스럽게 무슨 규칙을 적용한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배나무와 산돌배 돌배나무 콩배나무의 국명과 국제적인 명칭인 학명의 이리저리 짝짓기는 관계 담당자들의 영역일지는 몰라도 배나무라는 이름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그 누구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얼른 배꽃이 피기 전에 배나무를 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흥분하여 쓴소리를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개별 수종을 탐구하면서 차분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배나무
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