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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화서(葇荑花序) – 유이화서(x) 미상화서 꼬리화서

낙은재 2024. 11. 25. 07:19

 

가래나무 웅화

 

 

이제부터 가래나무와 호두나무 그리고 피칸 및 굴피나무 등으로 구성된 가래나무과 목본들의 탐구에 나서려고 하는데 이들의 길게 아래로 처진 부드러운 화서를 일부 학자들은 유제화서라고 하고 일부 학자들은 유이화서라고 하여 혼란스럽다. 낙은재는 그동안 옥편을 따라서 유제화서라고 불러 왔으나 현재 산림청을 비롯하여 백과사전 등에서도 유이화서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기에 이번 기회에 한자로 葇荑花序라고 쓰고 한글로 유이화서 또는 유제화서라고 읽는 것에 대하여 왜 이런 혼선이 야기되었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해 보려고 한다.

 

식물용어 중에 꽃차례라고 마치 순수 우리말같이 느껴지는 용어가 있다. 매우 간단한 개념 같지만 꽃차례는 종류가 많아서 그 구분이 결코 간단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래 전에 이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차례라니 무슨 차례라는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꽃 화(花) 자와 차례 서(序) 자를 합한 한자어 화서(花序)를 쉽게 풀이한 것이므로 꽃차례가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차례가 순수 우리말은 아니다. 한자로 次例(차례)라고 쓴다. 하지만 이 차례라는 용어는 중국에서 쓰는 용어는 아니다. 중국에서 원래 차제(次第)라고 하는 용어가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차례(次例)로 변한 것이다. 즉 영어 order나 sequence 또는 one by one 및 one after another를 우리는 차례 또는 순서라고 인식하는데 둘 다 한자어라는 말이다. 이렇게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우리말이다. 이와 같이 순수 우리말 같은데 알고 보면 한자어인 경우가 많다. 지금(只今) 당장(當場) 잠간(暫間) 물론(勿論) 어차피(於此彼) 여전(如前)히 무려(無慮) 대강(大綱) 가령(假令) 별안간(瞥眼間) 역시(亦是) 간신(艱辛)히 심지어(甚至於) 졸지(猝地)에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개념 자체가 처음부터 중국에서 들어왔거나 아니면 아주 오래 전부터 널리 사용하던 외래어라서 순수 우리말처럼 이미 굳어져 버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하튼 꽃차례라 하든 화서라고 하든 둘 다 꽃이 피는 순서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보면 꽃차례를 ‘꽃이 줄기나 가지에 붙어 있는 상태’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산림청 식물용어 사전에도 꽃차례를 꽃대축에 꽃이 배열되어 있는 상태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까 꽃이 피는 차례가 아니라 꽃이 피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는 말이다. 우리만 그렇게 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花在轴上排列的位置(화재축상배열적위치) 즉 화축 위에 꽃이 배열된 위치를 화서라고 말하고 일본에서도 枝上における花の配列状態라고 가지 위에 꽃의 배열상태를 말한다. 즉 동양 3국의 풀이가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화서(花序)를 우리나라에서 꽃차례 외에도 꽃자리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또 다른 풀이가 있다. 중국에서는 화서(花序)를 배열 상태뿐만 아니라 开花的顺序(개화적순서)라고 개화의 순서를 말하며 주로 이 순서에 의하여 구분(划分)한다라고 설명한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茎に対する花のつき方이라고 줄기에 꽃이 달리는 방법을 화서라고 설명한다. 즉 꽃이 피어 배열이 완성된 상태만이 아닌 피는 과정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실제 이 개념은 서양의 inflorescence에서 온 것인데 into를 의미하는 in과 ‘begin to flower’를 의미하는 라틴어 florescence로 이루어져 결국 ‘come into flower’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그러므로 이 꽃차례 즉 화서라는 용어는 결코 사후적인 상태(狀態)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과정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순서라는 한자 序로 번역한 것이 매우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화서는 서양의 inflorescence 개념을 일본에서 처음 花序라고 번역한 것을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그대로 수용한 용어이다.

 

꽃차례의 종류 - 여기서 Q가 유제화서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가래나무나 호두나무 자작나무 버드나무 사시나무 밤나무 오리나무 등에 흔한 꽃자루가 거의 없으며 꽃잎이 없는 단성꽃으로 아래로 처진 꽃대축에 밀생한 이삭 모양 꽃차례에 대하여 파악해 보자. 가는 원통형이며 웅화(수꽃)인 경우가 많은데 드물게 자화(암꽃)인 경우도 있고 수분은 드물게 충매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풍매인 것이 특징이다. 서양에서는 이를 영어로 catkin이라고 하거나 ament라고 한다. 먼저 catkin은 새끼 고양이를 뜻하는 중세 네덜란드어kitten에서 온 말로써 꽃차례가 고양이 꼬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ament는 끈을 뜻하는 라틴어 amentum에서 온 말로서 꽃차례가 매우 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는 葇荑花序라고 쓰고 유제화서 또는 유이화서라고 읽다가 나중에는 미상화서(尾狀花序)라고 하다가 현재는 꼬리화서 또는 꼬리모양화서라고 부른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서는 유제화서라고 하지만 글자가 약간 다른 柔荑花序(유제화서)라고도 쓴다. 일본에서는 현재 尾状花序(미상화서)라고 한다. 현재 중국에서는 미상화서라고 하지 않고 일본에서는 유제화서라고 하지 않는다. 이렇다면 누가 봐도 양국에서 영어 catkin을 달리 번역하였구나 하고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진실이 그렇지는 않다.

 

버드나무들

 

 

 

동양에서 catkin을 맨 처음 번역한 사람은 일본의 서양학자 우다가와 요안(宇田川 榕菴, 1798~1846)이었다. 그는 1830년대 서양 식물용어를 번역하면서 catkin이나 ament 葇荑라고 번역하였던 것이다. 葇荑는 중국 시경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손을 형용할 때 희고 부드러운 띠의 싹에다 비유하여 手如柔荑(수여유제)라고 표현한 것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 유(柔)는 부드럽다는 뜻이고 제(荑)는 띠로 불리는 백모(白茅)의 여린 이삭(嫩穗)을 말한다. 하지만 19세기 일본 학자가 서양에서 부드럽고도 긴 고양이 꼬리를 뜻하는 catkin이라는 용어를 갑자기 중국 고전에 나오는 유제(柔荑) 즉 띠의 부드러운 싹이라고 번역한 것에는 약간의 동떨어짐이 있어 보인다. 알고 보니 역시 그 사이에 명나라의 저명한 원예학자인 왕상진(王象晋, 1561~1653)이 저술한 군방보(群芳譜)가 있었다. 왕상진은 1621년 발간된 군방보 목보(木譜)에서 버드나무 즉 柳树(유수)의 꽃을 설명하면서 수차례 유제(柔荑)라고 묘사했다. 그래서 일본 학자는 바로 이 유제(柔荑)의 한자 유(柔)에다가 풀 초(艹) 변을 추가하여 葇(유)라고 고쳐서 葇荑花序(유제화서)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를 근대 중국 식물학자들이 그대로 수용하여 중국에서는 현재까지도 caktin을 유제화서라고 하는데 한자표기는 원래 시경이나 군방보의 글자대로 柔荑花序(유제화서)라고 쓴다.

 

이게 중국서 백모(白茅)라고 하는 띠인데 그 싹을 제(荑)라고 하며 여인의 부드러운 손에 비유했다. - 유제화서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에서 제(荑) 또는 백모(白茅)라고 하는 띠는 원추화서인 데다가 원통형도 아니고 아래 처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유제화서와는 거리가 멀다. 이점에 대하여는 필자도 2021년 띠에 관한 게시글을 올리면서 의문을 표한 바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식물학자인 마키노 토미타로(牧野 富太郎, 1862~1957)가 그의 식물기(植物記)에서 葇荑花序(유제화서)가 원래는 없던 이름이라고 다소 부정적인 언급을 해서 그런지 일본에서는 현재 이를 모두 꼬리모양꽃차례라는 뜻인 미상화서(尾状花序)라는 용어로 대체하여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일본을 따라서 유제화서 또는 유이화서라고 하다가 미상화서라고 하였고 최근에는 꼬리화서 또는 꼬리모양화서라고 부르는데 알고 보면 모두 일본을 열심히 따라서 하고 있는 셈이다.

 

등나무와 통조화는 아래로 길게 원통형으로 처지지만 꽃잎이 있으므로 유제화서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葇荑花序의 우리말 음이다. 일본식 葇(향유 유)를 중국식 柔(부드러울 유)로 쓰더라도 우리 음은 같은 유이지만 荑는 제와 이로 음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유제화서라고 하고 혹자는 유이화서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알아보자. 우선 국내 한자사전에 荑의 발음이 둘이다. (풀을) 베다 할 때는 이로 발음하고 띠나 초목의 싹을 뜻할 때는 제로 발음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유제라고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풀 초(艹)을 뺀 夷가 항상 이로만 발음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荑는 중국에서도 割去田里野草(할거전리야초) 즉 ‘밭의 잡초를 베다.’라는 뜻일 때는 yi로 발음되고 植物初生的嫩芽和嫩叶(식물초생적눈아화눈엽) 또는 稗子一类的草(패자일류적초) 즉 식물의 첫 여린 싹이나 여린 잎 또는 띠의 일종을 일컬을 때는 ti라고 발음한다. 바로 중국 발음 ti를 우리 옥편에서는 제라고 음을 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드러운 띠의 싹을 뜻할 때는 항상 ti에 상응하는 제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일부 옥편에서 흰 비름을 지칭할 때는 이로 발음해야 된다고 풀이 되어 있으나 옳지 못한 번역으로 보인다. 흰 비름이란 중국의 莁(무) 또는 莁荑(무제)를 말하며 이 또한 띠를 말하는 것이므로 ti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도 葇荑花序를 쥬우테이카죠(じゅうていかじょ)라고 荑를 tei로 발음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荑가 싹을 의미할 때도 티(ti)로 발음하지 않고 이(yi)로 발음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고 심지어는 중국에서도 그런 경우가 보인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말에서 분명 옥편에서는 원론대로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산마늘의 별명인 명이나물의 茗荑는 명제가 아닌 명이로 발음하고 자목련의 별칭인 신이(辛夷)도 원래는 한자 辛荑가 변한 말인데 이 또한 신제라 하지 않고 신이라고 발음한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신이를 辛夷로 쓸 때는 xinyi로 발음하지만 辛荑로 쓸 때는 xinti로 제대로 발음하라고 한다. 그리고 한의학계에서도 신농본초경에 나오는 蕪荑(芜荑)를 무제로 발음하지 않고 무이라고 하여 그 열매를 무이인(蕪荑仁)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종도 중국에서는 왕느릅나무라고 하는데 국내서는 난티나무라고 한다. 여하튼 중국에서 蕪荑를 wuyi가 아닌 wuti로 발음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중국에서 그렇게 정확하게 구분하여 발음하는지는 의문이다. 원래 한자 荑가 艹와 夷가 결합한 글자인데 뜻은 艹를 따르고 음은 夷를 따른다고 되어 있는데 夷는 항상 이(yi)로만 발음된다. 그런데도 싹을 의미할 때는 예외적으로 티(ti)로 발음하라고 하니 중국인들도 제대로 따라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중국의 사서에도 오류가 더러 보인다. 그리고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葇荑花序를 유제화서라고 바르게 읽는 사람보다는 유이화서라고 잘못 읽는 사람들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현실에서 우리 마음대로 고쳐서 읽을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바로잡아 읽어야 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워낙 잘못된 것도 대세가 되면 정답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유럽개암나무 웅화
황철나무의 웅화와 자화(우)
사시나무(좌)와 새우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중국굴피나무(좌)와 버드나무 자화(우)